Interview

‘준생’ 이기현 “영웅과 인간 사이…중근의 복합적 심리 담아낼 것” [인터뷰]

위수정 기자
2025-08-14 11:4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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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생’ 이기현 “영웅과 인간 사이…중근의 복합적 심리 담아낼 것” [인터뷰] (사진 제공:극단 화살표)



배우 이기현이 안중근 역으로 무대에 오른다.

광복 80주년인 올해, 극단 화살표가 준비한 창작 연극 ‘준생 俊生 – 영웅으로 살다’가 내일(15일) 대학로 씨어터쿰에서 막을 올린다. 이 작품은 영웅 안중근의 위대한 업적을 넘어, 그 뒤에 숨겨진 한 인간의 고뇌와 선택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영웅이어야 하는가, 아버지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무대 위에서 시대와 세대를 가로지르며 날카롭게 울린다.

중근 역을 맡은 배우 이기현은 200대 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캐스팅됐다. 그는 역사적 결단을 앞둔 영웅의 내면, 그리고 미래에서 온 늙은 아들과 마주하는 복합적인 감정을 밀도 있게 그려낼 예정이다. 하얼빈 의거의 순간부터 일제강점기, 한국전쟁까지 40여 년의 근현대사를 80분 동안 압축해 담아내는 무대에서, 이기현은 ‘영웅’과 ‘인간’ 사이의 경계에 서서 관객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다음은 이기현과의 일문일답이다.

Q. 연극 ‘준생 俊生 – 영웅으로 살다’ 공연을 올리기 전 소감이 어떤가요?

“저는 연극 ‘준생’을 2년전인 2023년에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지인이 오랜만에 하는 연극이라고 해서 보러갔던 것이었고 지금 기억으론 별 기대없이 들어 갔던 거 같아요. 하지만 극장에 들어와 자리를 잡고 공연이 시작되자 어느새 저는 숨죽여 극에 몰입하고 있었고 공연이 끝나자 ‘80분이 언제 지나갔지?’ 생각하며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만큼 연극 ‘준생’의 첫인상은 저한테 너무나 강렬한 경험이었어요.

그후 시간이 흘러 2025년 ‘준생’ 오디션 공고가 나온 것을 봤고 관객으로서 느꼈던 강렬한 경험과 감동이 워낙 컸던 터라 이것저것 따지지않고 바로 오디션에 지원했어요. 그리고 제 열정을 좋게 봐주셨는지 감사하게도 이 자리에 있게 되었습니다

어떤 작품이든 올리기 전 소감은 늘 비슷한 거 같아요 새로운 무대에 대한 떨림, 기대감 그리고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부담과 불안감. 등등 그 사이에서 늘 왔다갔다 하는 거 같은데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얼마전까지는 부담감이 더 컸어요.

이번 작품은, 전에 했던 작품들과 다르게 실존 인물을 연기 해야 한다는 것이 꽤나 큰 부담으로 다가왔던 것 같아요. ‘안중근 의사를 잘 담아내야 한다’ 는 생각에 깊은 사명감과 큰 책임감으로 인해 부담감이 더 커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지금도 ‘잘해내고 말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작품에 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연습 막바지를 지나고 있는 지금은 하루 빨리 관객 분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 뿐이에요. 제가 느꼈던 강렬한 감동을 똑같이 선사해 드리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합니다.”

Q. 연극 ‘준생’에서는 안중근의 고뇌와 희생을 철학적으로 조명하고 재해석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석을 하는지 궁금해요.

“‘호부견자’ 호랑이 아비의 개자식. 연극 준생은 아버지는 영웅이었지만 본인은 개처럼 살았던 안중근의 아들 안중생이 생사의 기로에서 타임슬립하여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 할 거사를 앞둔 안중근을 만나 이토를 쏘지 말라고 설득하는 이야기에요.

‘준생’ 대본 맨 첫 번째 페이지에 이런 말이 쓰여있습니다 ‘준생은 커다란 질문입니다.’

‘자신의 행동으로 가족이 개처럼 살았다는 것을 알았다면 안중근은 이토를 쏘지 않았을까?’, ‘이토를 쏜다고 달라지는게 없다면 쏘지 말았어야 했는가?’ 대본을 읽으며 스스로에게 이런 커다란 질문들을 던져보았어요.

우리에게 영웅으로 인식 되어있는 안중근도 사실은 우리랑 다를 바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역시 이토를 쏘기까지 스스로에게 수많은 질문들을 했을 것이라 생각해요. 그러면서 이토를 쏘고 난 후 가족들의 처지를 생각 안 했을리 없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를 쏘기까지는 많은 결심이 필요했을 거에요. 우리는 그 수많은 질문들과 그에 대한 안중근의 답변을 미래와 과거가 만나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준생’은 분명했다고 믿었던 과거를 반추해 막막한 현재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Q. 함께하는 배우들하고도 작품에 대해서 어떤 고민을 주로 나누는지도 궁금해요.

“준생과 중근의 대사량이 워낙 많다보니 주로 대사의 의미들과 전달에 대한 고민들을 많이 나누곤 해요. 제가 정말 오랜만에 남자 배우들 중 막내라서 선배님들에게 조언을 많이 구하려고 하는데, 특히나 이 작품을 오랫동안 해오신 경인 선배님께 많은 도움을 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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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극단 화살표


Q. ‘준생’으로 80분간 무대에 있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어디인가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극 후반부에, 준생의 설득에도 굴하지 않던 중근에게 준생이 최후의 카드를 꺼내 일격을 가하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에요. 그래서 저 역시도 굉장히 공들이고 있는 장면이기에, 많은 관객여러분께서 이 장면을 더 유의하여 보시길 희망하고 있습니다!”

Q. 기현 씨는 무대에 오르는 배우 뿐만 아니라 영화 각본과 연출도 한다고 하던데 다방면으로 두루두루 하는 이유도 궁금하다. 영화를 만들 때는 배우가 아닌 감독으로서 어떻게 다른가?

“연기를 배우면서 공연의 떨림과 생동감이 좋아 주로 공연예술 쪽에서 활동해왔지만, 한편으론 막연하게 “어느 순간에는 꼭 영화를 해야지” 생각했어요. 그만큼 영화라는 매체를 좋아했고 지금도 많이 소비하고 즐기는 편이에요. 20대의 끝자락에 영화 대본을 쓰는 취미를 갖게 되었고 (이유는 모르겠어요. 그 당시에는 혼자 카페에서 그렇게 대본 쓰는게 저의 취미였습니다.) 그러다 30대가 되고 조금씩 영상 매체에 도전하게 되면서, 영상 매체에 대한 공부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영화를 만들면 공부가 되지 않을까? 재밌겠다!”라는 생각에 무작정 수업을 찾아 들으며 영화를 만들었어요.

아무래도 제가 배우의 입장을 잘 알고 있다보니, 영화 만들 때에는 배우가 연기하기 편한 환경을 만드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연기적인 얘기는 잘 안하는 것 같아요. 그만큼 배우를 신뢰하고 있음을 함께하는 배우에게 느끼게 해주고, 그가 최선의 연기를 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 어떤 환경을 만들어줘야 할지, 어떻게 디렉팅을 할지 고민하는 편입니다.”

Q. 얼굴 선이 굵어서 주로 인상적인 역할을 많이 하긴 했는데, 앞으로 어떤 캐릭터를 만나보고 싶나요?

“그동안 얼굴 이미지 때문인지 주로 강한역할이나 악역들이 주어질 일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제가 선택할 수 있는 환경에서는 제 이미지와 거리가 먼 역할들을 선택하곤 했어요. 그래서 “이기현이 저런 역할을?” 싶은 작품들도 다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조금 부족할지라도 제 한계를 깨부수고 싶어하는 사람이고 늘 관객분들에게 제가 드릴 수 있는 새로운 경험들을 선사하고 싶어하는 사람이에요.그래서 전 앞으로도 관객분들에게 또 다른 경험들을 드릴 수 있도록 더 다양한 캐럭터들에 도전하고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에요.” 

Q. 배우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요?

“유명배우입니다. 유명세를 위해서 유명해지고 싶다기 보다는, 배우를 더 오래 재밌게 하고 싶어서 유명해지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저는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부터 늘 한결같이 유명세를 쫓지 않으려고 했어요. 겸손하고 싶다거나 그런 거창한 생각은 아니고 단순하게 스스로가 그정도 깜냥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 무게감을 견디기 두려웠던 것이었겠죠. 주변 친구들이 유명세를 얻어갈 때 그게 부러우면서도 부럽지 않았던 것 같아요.

어찌보면 배우라는 직업과 참으로 모순된 생각이었지만, 저는 좋은 작품에 출연만 한다면 그것에 만족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작품을 계속 해오면서 작품에 대한 눈높이 올라가고 욕심나는 역할들도 늘어나게 됐어요.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좋은 작품을 하기위해서는 유명해져야 했고 좋은 역할을 맡으려면 더 유명해져야 했죠. 그래서 이제는 좀 용기를 내보려고 합니다.”

Q. 이기현에게 연기란 어떤 건가요??

“멀어졌다가도 다시 가까워지는 것. 작업을 하다 보면 감정적으로 쉽지 않은 순간들이 올 때가 있고, 그럴 때면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가끔 그런 생각이 너무 강하게 들면 눈을 다른 곳에 돌리곤 하는데요. 새로운 것들에 도전하는 걸 좋아하다 보니 이런저런 일들을 해보곤 하는데, 결국에는 연기를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돼요. 그렇게 멀어지다가도 다시 가까워지고 멀어졌다가도 더 가까워지는 것이 연기인 것 같습니다.”

위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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