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려해야 할 패션 사진이 어딘가 낯설다. 낡은 목욕탕에 모인 여성들은 카메라를 외면한 채 각자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빛바랜 타일과 흐릿한 윤곽까지 더해지면서 아름다움보다는 인물의 감정과 공간의 시간이 돋보인다.
터브빌의 국내 첫 전시 ‘데보라 터브빌: 분위기’가 전시공간 피크닉에서 열리고 있다. 빈티지 프린트와 콜라주 원본 등 기존 작품 102점에 뉴욕에서 새롭게 제작한 프린트 88점을 더해 약 200점을 선보인다.
터브빌은 패션 잡지 에디터로 일하다 30대 중반 사진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대표작 ‘배스하우스’는 1975년 미국 패션잡지 보그에 실린 작품으로, 뉴욕의 오래된 공중목욕탕에서 수영복 차림의 여성 다섯 명을 촬영했다. 낡은 타일과 침울한 분위기, 카메라를 외면한 인물들은 당시 패션 화보의 관습과 거리가 멀었고 독자들의 항의를 불러오기도 했다.
그는 패션을 넘어 건축 공간에도 시선을 돌렸다. 1981년 사진집 ‘보이지 않는 베르사유’에서는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아내 재클린의 의뢰로 베르사유 궁전의 비공개 공간을 촬영했다. 천으로 덮인 가구와 먼지 쌓인 방, 세월이 묻은 조각상 등을 통해 화려한 궁전 이면의 쇠락과 시간의 흔적을 포착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패션 사진뿐 아니라 건축 사진과 후기 포토콜라주까지 터브빌의 작업 세계를 폭넓게 만날 수 있다. 영화와 문학적 서사를 사진에 녹여내며 현실과 허구 사이의 모호한 세계를 만들어낸 작가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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