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이란 전쟁이 2주째로 접어든 13일, 정부가 29년 만에 꺼내든 ‘석유 최고가격제’가 이날 0시를 기해 본격 시행에 들어갔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선을 재차 돌파하며 서민 생활을 압박하는 가운데, 밥상 물가까지 덮친 기름값 충격이 한국 경제 전반을 흔들고 있다.
1997년 유가 자유화 이후 정부가 시장 가격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소비자가 주유소에서 체감하는 가격은 2~3일의 시차를 두고 반영되며, 정부는 전국 평균 휘발유 판매가격이 현재의 리터당 1897원대에서 1800원 초반대까지 내려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고가격은 2주마다 국제 석유제품 가격(MOPS) 변동률을 반영해 조정하는 구조다. 정유사의 손실은 공인 회계법인 심사를 거쳐 분기 단위로 정부가 보전하며, SK에너지·GS칼텍스·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사는 즉각 준수 입장을 밝혔다.
재정경제부도 이날부터 5월 12일까지 두 달간 ‘석유제품 매점매석 행위 금지 고시’를 시행에 들어갔고, 공정위는 담합이 의심되는 부산·경북·제주 지역 주유소 현장 조사에 착수했다.
최고가격제 시행에도 국제 유가 불안은 가시지 않고 있다. 이란의 새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12일(현지시간) 국영TV를 통해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초강경 입장을 공식화하면서 브렌트유는 전 거래일 대비 9.2% 급등한 배럴당 100.46달러로 마감, 약 3년 7개월 만에 다시 100달러 선을 넘어섰다. WTI 선물도 9.7% 급등한 배럴당 95.73달러를 기록했다.
IEA가 32개 회원국의 전략 비축유 4억 배럴 방출을 합의했음에도 시장의 공급 우려를 진정시키지 못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공급 감소가 지속될 경우 유가가 2008년 최고치인 배럴당 147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고 경고한 상태다.
유가 급등의 파장은 주유소 가격에 그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이번 유가 충격이 물가·환율·성장률을 동시에 옥죄는 ‘3중 악재’로 번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물가 측면에서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오를 때마다 소비자물가가 연평균 0.4%포인트 상승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팜유 가격만 해도 최근 2주 사이 10% 이상 뛰었다. 라면·과자·빵 등에 쓰이는 주요 튀김유인 만큼 가공식품 전반의 원가 부담이 커지고 있다.
무역수지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오를 때마다 한국의 무역수지와 경상수지는 연간 150억 달러 안팎 줄어드는 것으로 분석된다. 원유 대부분을 중동에 의존하는 한국 구조상 수입물가 상승이 원화 약세를 부추기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기름값 급등 속에서도 서민 밥상을 짓누르는 가공식품 가격은 오히려 내리는 분위기다.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에 화답해 농심·삼양식품·오뚜기·팔도 등 주요 라면 업체들이 다음 달부터 일부 제품 출고가를 인하하기로 했다.
농심은 안성탕면 등 16개 제품 출고가를 평균 7.0% 내린다. 삼양식품은 삼양라면 오리지널 2종 가격을 평균 14.6% 인하하고, 오뚜기는 진짬뽕 등 8종을 평균 6.3% 낮춘다. 팔도도 비빔면·틈새라면 등 19종 가격을 평균 4.8% 인하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는 각각 13일, 12일부터 일부 제품 가격을 내렸고, 해태제과도 제과업계 최초로 비스킷 2종 가격 인하를 발표했다. 롯데웰푸드·오리온도 인하를 검토 중이다.
이 대통령은 12일 청와대에서 “식용유와 라면 생산업체들의 가격 인하 조치가 국민 물가 부담 완화와 민생 안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감사의 뜻을 밝혔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중동 사태가 빨리 끝나지 않으면 올해 경제성장률 2.0% 목표에 마이너스 영향은 확실하다”고 국회에서 밝혔다. 정부는 에너지 대체 공급선 발굴과 수요 감축 노력을 병행하는 한편, 석유화학·항공·해운 업종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할 방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