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찰스 3세 국왕의 동생 앤드루 마운트배튼 윈저(66) 전 왕자가 공무상 부정행위 혐의로 19일(현지시각) 경찰에 전격 체포됐다가 수시간 만에 석방됐다.
왕족이 체포돼 구금된 것은 1647년 찰스 1세가 잉글랜드 내전 중 의회군에 붙잡힌 이후 379년 만에 처음으로, 현대 영국 왕실 역사상 전례 없는 사태다.
경찰은 이날 저녁 성명에서 “오늘 체포된 60대 남성은 수사받는 중에 풀려났다”며 “노퍽에서의 수색은 종료됐다”고 밝혔다. 영국 법에 따라 기소 전 용의자 실명을 공개하지 않았으나, 현지 언론은 체포·석방된 인물이 앤드루 전 왕자라고 일제히 보도했다. BBC는 그가 레인지로버 차량 뒷좌석에서 몸을 구부정하게 숙인 채 에일샴 경찰서를 나서는 모습을 포착해 보도했으며, 로이터는 “눈에 띄게 동요한 상태였다”고 전했다.
이번 수사는 미국 법무부가 최근 공개한 300만 페이지 분량의 엡스타인 관련 문건이 도화선이 됐다. 로이터·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해당 문건에는 앤드루 전 왕자가 2001~2011년 영국 무역 특사로 재직하던 시절 싱가포르·홍콩·베트남 방문 관련 정보와 아프가니스탄 재건 투자 기회에 관한 기밀을 이메일로 엡스타인에게 전달한 정황이 담겨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은 그가 2010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아랍에미리트(UAE) 국빈 방문 당시 엡스타인을 옹호하거나, 중국 방문 전 UAE와 중국 간 80억 달러 규모 대출 중개를 시도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엡스타인은 이 정보를 바탕으로 사업적 이익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WSJ는 엡스타인이 앤드루 전 왕자에게 여러 여성을 소개해 줬으며 이들 일부는 버킹엄 궁전까지 드나들었다고 보도했다.
영국 법에 따르면 공무상 부정행위는 공직자가 권한이나 책임을 심각하고 고의로 남용했을 때 성립하며, 유죄 판결 시 최고 종신형에 처해질 수 있는 중범죄다. 다만 영국 법조계에서는 혐의 입증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로펌 그로스배너의 앤드루 길모어 변호사는 “법원은 공무상 부정행위의 정의를 매우 엄격히 해석하기 때문에 검찰이 입증해야 할 요소가 많다”며 “기소하기 매우 어려운 혐의”라고 말했다.
앤드루 전 왕자는 2019년 엡스타인과의 관계가 폭로되면서 모든 공적 직함과 훈장을 박탈당했다. 미성년자였던 버지니아 주프레로부터 성폭행 혐의로 피소됐으나 2022년 거액의 합의금을 지급하고 민사 소송을 종결지었다. 주프레는 지난해 4월 극단적 선택을 했으며, 또 다른 피해자 마리아 파머는 “이번 체포는 정의의 시작일 뿐”이라며 “권력과 부패가 도미노처럼 무너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찰스 3세 국왕은 동생의 체포 소식에 깊은 우려를 표하면서도 “법은 반드시 순리대로 흘러가야 한다”며 수사 당국에 대한 전폭적인 협조를 약속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도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다”며 엄정 수사를 지지했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조지아주로 향하는 에어포스원 기내에서 기자들과 만나 “왕실에 매우 나쁜 일이며 찰스 국왕이 안타깝다”고 유감을 표했다. 동시에 자신의 의혹에 대해서는 “나는 완전히 혐의를 벗었기 때문에 당당히 말할 수 있다”며 적극적인 선 긋기에 나섰다.
왕실 전문가 에드 오언스는 AFP통신에 “영국 왕실에 중대한 순간으로, 우리는 최근 사건들로 군주제가 흔들리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블룸버그통신도 “이번 사태는 앤드루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보호받던 마지막 장벽이 제거된 것”이라며 왕실의 존립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제기된다고 분석했다.
서정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