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간 전례 없는 충돌이 미국 정치권과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현직 대통령이 중앙은행 수장을 향해 형사 기소 가능성까지 내비치며 수사에 착수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가운데, 파월 의장이 공개 영상을 통해 “이는 금리 인하 압박에 따르지 않은 데 대한 정치적 보복”이라며 정면으로 맞섰다.
사건의 발단은 파월 의장의 충격 폭로였다. 그는 11일(현지시각) 공개한 영상 성명에서 “연준 청사 개보수 관련 지난해 6월 의회 증언을 문제 삼아 법무부로부터 대배심 소환장과 형사 기소 위협을 9일 받았다”고 밝혔다.
파월 의장은 “이 전례 없는 행위는 행정부의 지속적인 위협과 압박이라는 맥락에서 봐야 한다”며 “청사 개보수는 구실일 뿐”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형사 기소 위협은 연준이 대통령의 선호를 따르기보다 공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금리를 독립적으로 결정해왔기 때문”이라며 금리 정책을 둘러싼 백악관의 압박이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연준 독립성을 무시한 채 노골적인 금리 인하 압박을 이어왔다. 그는 기준금리가 1%까지 낮아져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파월 의장은 ‘마이웨이’ 행보로 맞섰고, 트럼프는 그를 ‘너무 늦은 자(Mr. Too late)’, ‘멍청이’라 비하하며 해고 검토설까지 흘렸다.
법무부는 팸 본디 장관 지시로 “납세자 돈 남용 사안을 우선 수사하라”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본디 장관이 트럼프의 개인 변호사 출신이라는 점에서 법무부의 ‘사유화·도구화’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그는 “공화당과 민주당 행정부를 모두 거친 네 차례 행정부에서 근무하며, 정치적 편파성 없이 오직 물가 안정과 최대 고용이라는 연준의 책무에 집중해왔다”며 통화정책의 독립성 원칙을 재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나는 모르는 일”이라며 선을 그었지만, 시장에서는 그간 파월을 공개 비난하며 금리 인하를 압박해온 트럼프의 ‘배후설’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백악관-연준 충돌 소식에 장 초반 흔들리던 뉴욕증시는 놀라운 복원력을 보였다. 12일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지수는 전장보다 86.13포인트(0.17%) 오른 49,590.20에, S&P500지수는 10.99포인트(0.16%) 상승한 6,977.27에 거래를 마쳤다. 두 지수 모두 종가 기준 사상 최고치다. 나스닥 역시 0.26% 오르며 강세를 이어갔다.
이날 시장의 주인공은 알파벳(구글)이었다. 생성형 AI ‘제미나이’ 흥행에 힘입어 1% 상승하며 역사상 처음으로 시가총액 4조 달러(약 5,400조원)를 돌파했다. 시총 3조 달러 달성 후 단 4개월 만의 쾌거다.
반면 트럼프의 ‘이자율 상한제’ 직격탄을 맞은 비자(-1%), 마스터카드(-1%), 아메리칸익스프레스(-4%) 등 신용카드사는 실적 악화 우려에 급락했다.
파월 수사 소식이 알려지자 공화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나왔다. 상원 은행위원회 소속 톰 틸리스 의원(공화·노스캐롤라이나)은 “이 법적 사안이 해결될 때까지 연준 의장 공석을 포함해 어떤 연준 지명자 인준에도 반대하겠다”고 밝혔다. 케빈 크레이머 의원(공화·노스다코타)도 파월이 “범죄자라고 믿지 않는다”며 옹호했다.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은 트럼프에게 파월 수사가 상황을 “엉망으로” 만들었으며 금융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악시오스가 보도했다.
최근 공화당 내에서 베네수엘라 추가 군사공격 제한, 오바마케어 연장 등을 놓고 이탈표가 나온 점도 트럼프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금리뿐 아니라 연준 인사에도 깊숙이 개입해왔다. 매파(통화긴축 성향) 성향의 리사 쿡 이사를 주택담보대출 사기 혐의로 전격 해임 통보했고(현재 법원 이의제기로 유지), 아드리아나 쿠글러 전 이사가 조기 사퇴한 자리에 측근인 스티븐 마이런을 임명했다.
현재 연준 이사 7명 중 트럼프가 임명한 인사는 3명이다. 트럼프는 금리를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자신의 금리 인하 기조에 동조하는 인사로 최대한 채우려는 전략을 구사 중이다.
월가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의 연준 흔들기가 계속되겠지만, 시장은 이미 ‘트럼프 리스크’를 관리 가능한 변수로 보고 있다”며 “당분간 AI 실적과 실물 경기가 증시 향방을 결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정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