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이엘이 ‘서지연’의 네 얼굴을 연기력 하나로 압축했다.
JTBC 토일드라마 ‘경도를 기다리며’에서 자림어패럴 대표 ‘서지연’ 역을 맡은 이엘이 냉철함과 다정함, 천진난만함과 책임감을 오가는 1인 4색 연기를 촘촘히 쌓으며 드라마 전체의 중심을 끝까지 지켜냈다.
특히 11회에서는 숨겨왔던 진실을 꺼내 들며 강민우(김우형 분)에게 이혼을 요구하는 정면 돌파로, 조용히 눌러왔던 카리스마를 폭발시키며 서사의 방향을 바꿨다. 더 나아가 임원진 앞에서 ‘오너 리스크’ 프레임을 정면으로 깨고 회사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장면은 대표 서지연의 무게를 확실히 각인시켰다.
두 번째 얼굴은 서지우(원지안 분)의 언니였다. 회사에서는 단호한 대표였지만, 동생 앞에서는 미소와 눈빛의 결이 달라졌다. 이엘은 지우를 바라보는 순간마다 경계가 풀리는 표정으로 ‘동생 바라기’의 온도를 만들었고, 지우와 경도(박서준 분)의 두 번째 이별이 자신 때문이라는 죄책감에 흔들리면서도 결국 두 사람의 사랑을 누구보다 애정하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서사를 끌고 갔다.
세 번째 얼굴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다. 서지연이 동생에게 더욱 마음을 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가족 안에서 지우가 감당해 온 미움과 상처를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봤기 때문이다.
엄마 앞에서는 억눌러온 감정이 터지며 분노와 연민, 이해할 수 없는 슬픔이 한꺼번에 뒤섞인 ‘장녀의 얼굴’을 드러냈다.
네 번째 얼굴은 ‘서지연’ 그 자체였다. 서지연은 알츠하이머로 인해 기억이 툭 비는 순간을 반복해서 마주하는 인물이었다. 이엘은 그 공포를 크게 터뜨리기보다, 말을 잠깐 멈추고 표정이 낯설게 바뀌는 공백의 순간으로 보여주며 시청자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구내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 장면에선 아무렇지 않은 척 버티는 얼굴 뒤로 쌓인 두려움을 비췄고, 로비를 맨발로 걷는 장면에서는 순간적으로 ‘다른 사람이 된 듯한 낯섦’을 정확한 톤 전환으로 그려내 안타까움과 긴장감을 동시에 끌어올렸다.
무엇보다 이엘의 진가는 네 얼굴의 서지연을 과한 변화로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연결해 낸 지점에서 빛났다.
대표의 냉정함에서 언니의 다정함으로, 가장의 책임에서 환자 당사자의 두려움으로 넘어가는 전환을 큰 감정으로 밀어붙이기보다 호흡과 시선, 말의 속도로 인물의 리듬을 달리 쌓았고, 기억이 지워지는 순간마저 감정 폭발이 아닌 ‘공백의 디테일’로 그려내며 서지연의 두려움을 시청자가 그대로 체감하게 했다.
한편 JTBC 토일드라마 ‘경도를 기다리며’는 지난 11일 12회를 끝으로 종영했다.
한효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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