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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 싶다' 구더기 아내 방치…살인 혐의 기소

이다겸 기자
2025-12-19 09: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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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 싶다' 구더기 아내 방치 남편…살인 혐의 기소

경기 파주에서 육군 부사관 남편이 거동이 불편한 아내를 장기간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에 대해 군 검찰이 '유기치사'가 아닌 '살인'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경기 파주에서 발생한 육군 상사 남편의 아내 방치 사망 사건과 관련해, 군 검찰이 피의자에게 살인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SBS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그알)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며 이른바 '구더기 아내' 사건으로 불린 이번 사건은, 거동이 불가능한 아내를 돌보지 않고 방치해 참혹한 죽음에 이르게 한 정황이 드러나며 공분을 샀다. 당초 수사 단계에서는 유기치사 혐의가 거론되었으나, 군 검찰은 법리 검토 끝에 피의자의 행위가 살인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군 검찰은 남편 A 상사가 아내 B 씨가 사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예견했음에도 구호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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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 싶다' 구더기 아내 방치 남편…살인 혐의 기소

사건의 내막은 충격적이었다. 발견 당시 아내 B 씨의 시신은 미라에 가까울 정도로 앙상하게 말라 있었으며, 욕창 부위 등 신체 곳곳에서 구더기가 발견될 정도로 부패가 진행된 상태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B 씨의 사인은 기아와 탈수로 인한 영양실조로 추정됐다. 남편 A 상사는 아내가 쓰러져 거동을 하지 못하는 상태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병원에 데려가거나 적절한 식사를 챙겨주지 않았다. A 상사는 아내가 죽어가던 안방 문을 닫아둔 채, 같은 집 거실과 다른 방에서 어린 자녀와 함께 일상생활을 영위했다. 심지어 아내가 사망한 뒤에도 즉시 신고하지 않고 시신을 방치했던 정황까지 포착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은 '부작위에 의한 살인' 법리가 인정될지 여부다. 부작위란 마땅히 해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형법상 보증인 지위(가족 등 보호 의무가 있는 사람)에 있는 자가 위험 발생을 방지하지 않아 사망 결과가 발생했을 때, 이를 작위(직접적인 행위)에 의한 살인과 동등하게 처벌하는 개념이다. 군 검찰은 남편 A 상사가 법률상 배우자로서 민법이 규정한 부양 의무와 보호 의무를 지니고 있음에도 이를 저버렸다고 봤다. 아내에게 음식과 물을 주지 않고 치료를 중단하면 사망할 것이라는 점을 A 상사가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는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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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 싶다'(그알)

법조계는 이번 사건에서 '미필적 고의' 입증이 유죄 판결의 열쇠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미필적 고의란 사망이라는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을 인식하고도 이를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를 뜻한다. A 상사 측은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높다. 단순히 돌봄을 소홀히 했을 뿐 죽이려는 의도는 없었다며 살인죄가 아닌 유기치사죄 적용을 주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군 검찰은 A 상사가 아내의 상태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하고도 방치 행위를 지속했다는 점을 들어 고의성이 충분하다고 반박한다. 아내 B 씨가 스스로 생존을 유지할 능력이 전혀 없었던 상황에서 보호자의 방임은 곧 흉기를 사용한 살해 행위와 다름없다는 논리다.

대법원은 과거 '세월호 참사' 당시 승객을 버리고 탈출한 이준석 선장에게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인정한 바 있다. 선장이 승객을 구조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음에도 퇴선 명령 등 적절한 조치 없이 탈출해 승객들을 사망에 이르게 했고, 사망 가능성을 용인했다는 이유였다. 이번 파주 부사관 사건 역시 피해자가 저항하거나 스스로 탈출할 수 없는 상태였다는 점에서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A 상사가 아내의 죽음을 방지할 수 있는 유일한 보호자였음에도 구조 조치를 이행하지 않은 행위는 사법적 단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알고 싶다'(그알) 방영 직후 여론은 들끓었다. 국민들은 국가를 지키는 군인 신분인 A 상사가 정작 가장 가까운 가족의 생명을 외면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군사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리느냐에 따라 향후 가정 내 방임 학대 사건에 대한 처벌 수위와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 방치를 넘어선 명백한 살인 행위라는 군 검찰의 주장이 받아들여질지, 재판부의 판단에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