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엽기토끼 신발장 사건'과 연관되어 20년 가까이 장기 미제로 남아있던 서울 양천구 신정동 연쇄살인 사건의 피의자가 마침내 특정됐다.
2005년 서울 양천구 신정동 일대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연쇄살인 사건의 진실이 20년 만에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형사기동대는 21일, 해당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장씨를 피의자로 최종 특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장씨는 사건 발생 당시 60대 초반의 나이로, 피해자들이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건물의 관리인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수사 결과 장씨는 2005년 6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피해 여성들을 건물 지하로 유인해 금품을 빼앗고 성폭행한 뒤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장씨는 범행 후 시신을 쌀 포대와 비닐 등으로 치밀하게 감싸 자신의 차량을 이용해 인근 주택가와 초등학교 주변에 유기했다. 당시 경찰은 대규모 수사팀을 꾸려 범인 검거에 나섰으나, 뚜렷한 단서를 찾지 못해 사건은 2013년 미제로 분류되는 아픔을 겪었다. 그러나 서울경찰청 미제사건 전담팀의 끈질긴 재수사가 이번 성과의 발판이 되었다.
이번 수사 결과에서 주목할 점은 장씨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엽기토끼 신발장 납치 미수 사건'의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2015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영 이후, 2005년의 연쇄 살인과 2006년의 납치 미수 사건은 동일범의 소행일 것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이었다. 당시 납치 미수 사건의 피해자가 탈출 과정에서 엽기토끼 스티커가 붙은 신발장을 목격했다고 진술하며, 이 사건들은 통칭 '엽기토끼 사건'으로 불려 왔다.

그러나 경찰의 정밀 분석 결과, 2006년 5월 납치 미수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장씨는 이미 다른 범죄 혐의로 구속 수감 중이었다. 장씨는 2006년 2월, 건물을 찾은 또 다른 여성을 지하로 유인해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쳐 현행범으로 체포되었고, 이후 강간치상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아 교도소에 복역하고 있었다. 알리바이가 명확히 입증됨에 따라, 2006년 납치 미수 사건은 장씨가 아닌 다른 인물의 소행임이 확인되었다. 경찰은 해당 사건 역시 공소시효가 만료되었으나 진범을 찾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장기 미제 사건 해결의 결정적 열쇠는 진화한 과학수사 기법이었다. 경찰은 2016년과 2020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증거물 재감정을 의뢰했다. 2005년 당시에는 기술적 한계로 검출하지 못했던 미세한 DNA 조각들이 최신 분석 기법을 통해 확보되었고, 1차와 2차 살인 사건의 범인이 동일인이라는 사실을 먼저 밝혀냈다.

이후 경찰은 광범위한 용의자군을 설정해 DNA 대조 작업을 벌였다. 동일 수법 전과자와 신정동 거주 및 출입자 등 약 23만 명을 수사 선상에 올렸으며, 외국인 범죄 가능성까지 열어두고 국제 공조 수사를 진행했다. 살아있는 용의자들에게서 일치하는 DNA가 나오지 않자, 경찰은 수사망을 사망자 56명으로까지 확대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비록 장씨의 사망으로 인해 법적인 처벌은 불가능하게 되었지만, 이번 수사 결과는 "범죄자는 반드시 잡힌다"라는 수사 기관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경찰은 DNA 증거 외에도 보강 수사를 통해 장씨의 혐의를 입증할 추가 증거들을 확보했다. 장씨가 근무했던 건물 지하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피해자 시신에 묻어있던 것과 동일한 성분의 곰팡이와 모래가 검출되었고, 결박에 사용된 것과 유사한 노끈과 비닐도 발견되었다. 또한 장씨와 함께 수감 생활을 했던 동료 재소자들로부터 장씨가 범행 사실을 암시하는 발언을 했다는 진술까지 확보하며 수사의 완성도를 높였다.
신재문 서울경찰청 형사기동대 4팀장은 "비록 피의자가 사망해 법의 심판대에 세울 수는 없지만, 억울하게 희생된 피해자들의 원혼을 달래고 유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전했다. 경찰은 앞으로도 장기 미제 사건에 대해 포기 없는 수사를 이어갈 방침을 재확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