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의 밥상'이 대하, 꼬막, 주꾸미를 만난다.
만물이 풍요로워지는 계절, 가을이 깊어졌다. KBS '한국인의 밥상'은 찬 바람과 함께 어김없이 찾아온 가을 바다의 진미를 찾아 떠났다. 평생을 바다에 기대어 살아가는 어민들에게 가을은 일 년의 기다림이 결실을 보는 수확의 계절이다. 서해에서 힘차게 솟아오르는 대하, 여름내 살을 찌운 햇주꾸미, 그리고 가을 갯벌의 보물인 벌교 참꼬막까지. 어민들의 땀과 자연의 섭리가 빚어낸 가을 바다의 특별한 밥상에는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넘어서는 삶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자연이 내어주는 만큼만 겸허히 거두며 살아가는 어부들의 밥상을 통해 가을의 진짜 맛을 전한다.

충청남도 서산군 안면읍의 새벽은 별빛조차 보이지 않는 짙은 어둠 속에서 시작된다. 35년 경력의 베테랑 어부 김형봉 씨(58)의 하루는 누구보다 먼저 시작된다. 대하잡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가을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는 김형봉 씨는 거친 비바람을 뚫고 바다로 향한다. 밤새 던져 놓은 그물에 은빛 대하가 가득 걸려 올라올 때마다 어부들의 얼굴에는 고된 노동의 피로를 잊게 하는 환한 미소가 번진다. 밤샘 조업을 마친 후 배 위에서 먹는 첫 끼니는 갓 잡은 대하를 아낌없이 넣은 '대하라면'이다. 싱싱한 대하가 통째로 들어간 라면은 오직 바다 위에서만 맛볼 수 있는 호사스러운 별미이자 고된 조업의 피로를 씻어주는 활력소이다.

조업을 마친 배들이 백사장항으로 속속 들어오면 항구는 활기로 가득 찬다. 가을 바다가 건넨 보물들이 경매를 기다리며 상인들과 손님들을 맞이한다. 항구에는 꽃게, 갈치, 간자미 등 다양한 해산물이 가득하지만, 가을의 왕으로 불리는 것은 단연 살이 통통하게 오른 대하다. 미식가들은 쫄깃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일품인 대하회를 맛보기 위해 1년을 기다린다. 날로 먹어도 훌륭하지만 안면도 어민들이 즐기는 대하 요리는 더욱 다채롭다. 시원한 무를 썰어 넣고 끓여낸 '대하 맑은탕'은 담백하고 깊은 국물 맛을 자랑한다. 얼갈이배추김치에 대하와 꽃게를 듬뿍 넣어 끓인 '대하 게국지'는 안면도의 대표적인 향토 음식으로, 칼칼하면서도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내장이 가득한 대하 머리와 속살을 바삭하게 튀겨 매콤달콤한 소스에 버무린 '대하 탕수'까지, 어부들의 땀과 기다림으로 완성된 진수성찬이 차려진다. 짧아지는 가을을 아쉽게 만드는 대하의 맛을 '한국인의 밥상'에서 만나보았다.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정암마을 사람들은 봄부터 찬바람이 불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가을 갯벌은 수많은 생명이 살아 숨 쉬는 풍요의 들판이기 때문이다. 돌게, 칠게, 짱뚱어 등 갯벌에서 나는 것은 많지만, 가을 갯벌의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다. 바로 '참꼬막'이다. 육지에서 1km 이상 떨어진 깊은 갯벌에 서식하는 참꼬막은 어민들이 직접 '뻘배'라는 널빤지를 타고 나아가 손으로 캐야 하는 귀한 수산물이다. 점토질로 이루어진 여자만의 갯벌은 뻘배 없이는 한 걸음도 내딛기 힘들다.

벌교에서 꼬막을 캐지 않고 살아온 사람이 없을 정도로, 꼬막은 벌교 사람들에게 생계 그 자체였다. 꼬막을 캐서 자식을 키우고 살림을 꾸렸으며, 먹을 것이 귀했던 보릿고개 시절에는 꼬막 덕분에 굶주림을 면할 수 있었다. 꼬막 철이면 마을 집집마다 꼬막 삶는 냄새가 담장을 넘었다고 전해진다. 꼬막이 나는 철이면 가장 먼저 밥상에 올랐다는 '꼬막 회무침', 제사상에 빠지지 않고 올랐다는 '꼬막전', 된장 하나만 풀어 구수하게 끓여낸 '꼬막장국'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꼬막 전골', 그리고 아이들 간식으로 제격인 '꼬막 볶음밥 피자'까지 벌교의 밥상에서 꼬막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식재료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갯벌의 환경 변화로 참꼬막이 점차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면서 꼬막을 캐는 사람들도 줄어들고 있다. 참꼬막이 다시 풍성하게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벌교 사람들의 마음을 '한국인의 밥상'이 함께했다.

인천광역시 중구 덕교동의 한적한 어촌마을에 젊은 부부가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정의창(38) 씨와 송나경(35) 씨 부부가 주인공이다. 낚시 동호회에서 만나 결혼했을 정도로 바다를 사랑하는 부부는, 좋아하는 바다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2년 전 귀어를 결심했다. 아직은 모든 것이 낯선 어촌 생활이지만, 살뜰히 챙겨주는 마을 어르신들 덕분에 든든한 마음으로 적응해가고 있다.

의창 씨 부부는 가을에 잡은 햇주꾸미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기로 했다. 평생을 어부로 살아온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영종도의 풍성한 가을 밥상을 차렸다. 이제 막 알이 차기 시작한 암꽃게에 된장을 풀어 구수하게 끓여낸 '꽃게 칼국수'와 연하고 부드러운 햇주꾸미를 살짝 데쳐 먹는 '주꾸미 샤부샤부', 그리고 마을의 막내 나경 씨가 솜씨를 발휘한 '주꾸미 삼겹살볶음'까지, 음식 하나하나에 이웃 간의 따뜻한 정이 넘쳐난다. 귀어한 후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의미와 사람 사는 맛을 깨닫고 있다는 부부의 이야기와 따뜻한 가을 밥상을 '한국인의 밥상'이 담아냈다.

사람들의 이야기와 대하, 꼬막, 쭈꾸미를 만나는 '한국인의 밥상'의 방송 시간은 11월 6일 목요일 저녁 7시 40분 KBS 1TV에서 방송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