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캄보디아에서 대규모 범죄단지를 운영하며 한국인을 포함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인신매매와 강제노동을 자행한 혐의를 받는 프린스 그룹의 천즈(Chen Zhi·38) 회장이 실종됐다.
18일 캄보디아 데일리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천즈 회장의 행방은 현재 캄보디아 내에서 묘연한 상태다. 훈센 전 총리와 훈 마넷 현 총리의 고문을 역임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그의 갑작스러운 실종으로 캄보디아 정재계가 발칵 뒤집혔다.
프린스 그룹이 사기로 얻은 비트코인은 20개가 넘는 여러 주소로 분산됐다가 다시 하나의 공통 주소로 모인 뒤, 최종적으로 천즈가 직접 관리하는 지갑으로 전송된 것으로 확인됐다.
캄보디아 야당(CNRP) 전직 고위 간부인 힝 속산은 “천즈가 소프트웨어 지갑(핫월렛)에 비트코인을 보관한 것이 압수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며 “하드웨어 지갑(콜드월렛)을 사용했다면 미국 당국의 압류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영국 정부도 천즈 회장의 영국 내 부동산 등 관련 자산 1억7600만달러를 동결했다. 동결된 자산에는 런던 최고급 주택가인 애비뉴 로드의 1200만 파운드(약 228억원)짜리 대저택과 런던 금융가의 9500만 파운드(약 1808억원) 상당 오피스 빌딩 등이 포함됐다.
이베트 쿠퍼 영국 외무장관은 “끔찍한 사기 센터의 주모자들이 취약한 사람들의 삶을 망치고, 그 돈으로 런던의 집을 사들이고 있다”며 강력히 비판했다.
1987년 중국 푸젠성에서 태어난 천즈는 2010년경 캄보디아로 이주해 인터넷 카페 사업으로 시작, 2015년 소액대출 기관 ‘프린스 파이낸스’를 설립하며 금융업에 진출했다. 이는 2018년 상업은행인 ‘프린스 은행’으로 전환됐으며, 현재 캄보디아 전역에 31개 지점을 둔 대형 은행으로 성장했다.
그의 급성장 배경에는 캄보디아 최고 권력층과의 유착 관계가 있었다. 2014년 캄보디아 시민권을 취득한 천즈는 사르 켕 전 부총리, 헹 삼린 국회의장, 훈센 전 총리, 훈 마넷 현 총리에 이르기까지 연달아 ‘고문’ 직함을 받았다. 또한 ‘옥냐(Oknha·국가공신)’ 칭호도 받으며 캄보디아 정재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천즈는 훈센 전 총리의 개인 고문으로 활동하며 유엔 총회 방문 등 해외 순방에 동행했고, 전세기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캄보디아 아세안(ASEAN) 정상회의 당시 각국 정상에게 선물한 2만 달러(약 2700만원) 상당의 고급 시계 25개도 그의 계열사인 프린스 호롤로지에서 제작됐다.
미 검찰에 따르면 프린스 그룹은 캄보디아 내에 최소 10곳의 비밀 수용소를 건설했다. 높은 벽과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이 수용소에는 고임금 일자리를 미끼로 전 세계에서 유인된 이주 노동자들이 감금됐다.
한국인 피해자도 다수 발생했다. 캄보디아 내 한국인 피해자는 2022년 1명에서 2023년 17명, 2024년 550명으로 급증했으며, 이 중 80여 명은 여전히 행방불명 상태다. 현재 63명은 현지 구금 상태로 확인됐고, 4명은 이미 국적기를 통해 귀국했다.
중국 법원은 2020년 프린스 그룹을 “최소 50억위안(약 9500억원)의 불법 수입을 올린 사악한 국제적 온라인 도박 범죄 집단”으로 규정했으며, 베이징 경찰은 2020년 5월 프린스 그룹 수사를 위한 특별팀을 구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천즈는 미·영 당국의 제재 발표 직전인 지난해 12월 돌연 프린스 은행 이사회 의장직에서 사임했다. 일각에서는 그가 캄보디아 시민권을 박탈당하고 중국으로 송환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캄보디아 내무부는 “불법 활동에 대한 국제사회의 협력 요청 시 합법적으로 협조할 것”이라면서도 “아직 천즈의 불법 행위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받지 못했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캄보디아 시민사회에서는 이번 사태가 캄보디아의 국가 이미지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며 천즈의 신병을 미국 사법당국에 인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초국가적 사기로 미국인들이 수십억 달러 피해를 보고 있다”며 “영국 등과 협력해 이 범죄 네트워크를 뿌리 뽑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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