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년 반, 부족하나마 최선을 다했으나 실망만 안겨드렸습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박단 비상대책위원장이 24일 각 수련병원 공지방에 올린 사퇴 메시지다.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를 1년4개월간 이끌어온 상징적 인물의 퇴장 선언이었다.
서울대병원 전공의협의회는 “이제는 전쟁에서 진격할 장수가 아닌, 사태를 외교적으로 풀 인물이 필요하다”고 선을 그었다. 1년 반을 함께 해온 동지들의 냉정한 판단이었다.
박 위원장은 이에 대해 “1년 반을 함께한 동료라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며 “끝내 설명조차 듣지 못했다”고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투쟁의 구심점에서 갑작스레 외톨이가 된 심경을 내비친 것이다.
외부의 압박만큼이나 내부의 균열도 심각했다. 사직 전공의 약 200명은 최근 별도의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 서울시의사회에 복귀 의사를 전달했다. 이들의 불만은 구체적이었다.
“5월 추가 모집 당시 박 위원장의 ‘아직 돌아갈 때가 아니다’는 메시지 때문에 기회를 놓쳤다.” 이들은 “이제는 단체가 아닌 개인의 판단으로 움직이겠다”고 선언했다.
대전협 내부에서도 박 위원장에 대한 직격탄이 날아들었다. 전공의 30여 명은 그에게 탄핵을 포함한 비상대책위원회 재편을 요구했다. 이달 30일까지 총회나 간담회를 열고 활동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최후통첩이었다.
“대전협은 우리가 비판했던 윤석열 정부와 다르지 않다”는 신랄한 비판도 나왔다. 이들은 “지금처럼 자기만족적 메타포와 제한된 소통만 고수한다면 다음은 없을 것”이라며 “와해는 패배보다 더 해롭다”고 경고했다.
박 위원장은 최근까지도 “복지부 장관이 공석이고, 국정기획위도 어수선한 단계”라며 정부와의 협상 시점이 무르익지 않았다고 주장해왔다. “대통령실과 여야 모두 의료 사태를 우선순위에 두지 않고 있다”는 진단과 함께 “새 정부와 전향적으로 대화하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구성원들은 “정치권과 건설적인 논의를 하지 못했고, 복귀를 원하는 개개인의 뜻도 반영하지 못한 채 단체의 명분만 고수했다”고 비판했다. 투쟁의 명분과 현실적 필요 사이의 간극이 벌어진 것이다.
그가 떠난 자리에는 분열된 전공의들과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만 남았다. ‘투쟁의 장수’는 떠났지만, 정작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그대로다. 갈등의 씨앗들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이제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강경 투쟁의 시대는 막을 내렸지만, 진짜 해법을 찾는 여정은 이제 시작이다. 누군가는 대화의 테이블에 앉아야 하고, 누군가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박지혜 기자 bjh@bn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