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재 기자] “수식어가 없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을까”
“꿈이 아나운서였던 거야, 마이크였던 거야? (중략) 야, 네가 있는 데가 너한테 메이저 아니야? 네가 좋은 데가 너한테 메이저 아니냐고. 그냥 너 가슴 뛰는 거 해.” 고동만(박서준)은 방송국 아나운서와 RFC 장내 아나운서를 고민하는 최애라(김지원)에게 다음의 응원을 건넨다.
이 가운데 배우 김지원은 최애라를 연기했다. 최애라는 과거 꿈은 방송국 9시 뉴스의 앵커였지만, 현실은 백화점 안내 데스크의 최 모 양일뿐인 현실과 꿈의 경계선 위의 여자. 청춘이 떼로 등장하는 작품이기에 해피 엔딩은 기정사실이었지만, 그럼에도 그가 맞이하는 현실은 예고된 미래를 걱정하게끔 만드는 고난이었다.
특히, 고난의 최고봉은 꿈의 실현을 앞둔 아나운서 면접이었다. 여기서 그는 “열정은 혈기가 아니라 스펙으로 증명하는 거죠”라는 질타를 받기도. 하지만 최애라는 이에 굴하지 않고 “저는 돈 벌었습니다. 유학 가고, 해외 봉사 가고 그러실 때 저는 돈 벌었습니다”라며 현실을 인정하고, 면접관의 충고에 “저 붙이실 거 아니잖아요. 그럼 상처도 주지 마세요, 저도 상처 받지 않을 권리 있습니다. 제 역할은 제가 결정하겠습니다”라고 개인의 가치를 수호한다. 현실에 굴하지 않는 그만의 길을 선언한 것.
‘쌈, 마이웨이’에서 현실을 인정하지만, 동시에 개인을 수호하는 최애라를 연기했던 김지원을 7월27일 오전 서울시 강남구 킹콩바이스타쉽 사옥에서 bnt뉴스가 만났다. 앞서 이상(理想)과의 괴리를 강조했지만, 또한 최애라는 ‘쌈’에서 점 하나만 바꾼 ‘썸’의 시작과 발전 그리고 결과를 몸소 실천했던 인물. 그는 ‘남사친’ 고동만과의 알콩달콩 사랑 이야기를 16부작 동안 그려내며 과거 대한민국의 ‘썸’ 열풍을 재현해냈다. 현실의 김지원과 가상의 최애라는 현실과 청춘의 범벅 속에 ‘썸’과 사랑을 맛깔나게 표현했다.

‘쌈, 마이웨이’는 최고 시청률 13.8%(닐슨 코리아 기준)을 기록하며 7월11일 종영했다. 동시간대 전작 ‘완벽한 아내’ 마지막회 시청률이 6.4%였던 것을 돌이켜보면 두 배 이상의 호(好)성적을 기록한 것.
“워낙 밝고 즐거운 분위기의 드라마였다. 또 워낙 대본에 재밌는 장면이 많았다. 클립 영상을 계기로 드라마를 시작한 분들이 굉장히 많이 계시더라. ‘쌈, 마이웨이’라는 드라마가 장면마다 재밌는 요소가 많아서 관심을 가져주신 것 같다.”
“이 정도 인기를 예상했는지?”라는 질문에 “늘 그렇듯 작품 전에는 예상이 불가능하다. 내가 보기에 가장 재밌는 작품을 선택해서 좋아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졌을 뿐”이라고 답한 김지원. ‘쌈, 마이웨이’는 그의 첫 주연작이다. “부담과 걱정이 있던 것은 맞다. 하지만 워낙 좋은 분들과 함께 작품을 시작했다. 기대가 많이 됐다. 대본도 워낙 재밌었다. 어떻게 하면 재밌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가 언급한 ‘좋은 분’이란 극중 ‘환타스틱4’로 함께 출연한 배우 박서준, 안재홍, 송하윤일 테다. 김지원은 세 사람에 대해 “이번 작품에서 처음 만났다”라며, “처음에 네 명만 모여서 리딩할 때도 ‘아, 촬영 들어가면 정말 재밌겠다’ 이야기를 많이 했다. 이번에 작품을 통해서 좋은 분들을 만났다”라고 교우를 자랑했다. 또한, 박서준과의 호흡에 대해서는 “정말 좋았다. 워낙 팬이었다. 툭탁거리면서 싸우는 장면에서도 합이 좋았다. 워낙 멜로는 잘하시니까 믿고 잘 따라갔다”라고 밝혔다. 최애라와 고동만의 키스 신에 관해서는 “워낙 ‘멜로 불도저’님께서 잘해주셨다”라며 얼굴을 붉혔다.
백설희를 연기한 송하윤은 ‘쌈, 마이웨이’ 종영 인터뷰에서 눈물을 터뜨렸다. 극중 오랜 연인 김주만(안재홍)이 백설희 아닌 타인에게 마음이 흔들리는 점을 언급하던 중 일어난 작은 사건이었다. 작품은 끝났지만, 여운은 배우의 마음 속에서 소용돌이처럼 그 세를 팽창하고 있던 것. 이와 관련 김지원은 “(송)하윤 언니는 울 수 있다”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몇 달간의 고된 촬영을 거친 전우 사이에나 가능한 감정의 표현이었다. “나도 허전함 마음이 너무 있다. 그래서 아직 집에서 OST 틀어놓고 혼자 드라마를 보곤 한다. 긴 시간 함께 하다가 드라마가 갑자기 탁 끝났을 때의 허전함은 너무...”

최애라는 솔직하고, 뒤끝 없는, 홈페이지의 설명을 빌리자면 ‘고양이보단 개 같은 여자’다. 해석하자면 약지 못하고 솔직하며, 털털하다는 뜻이리라. 그런 최애라가 고동만에게 애교를 선보이는 순간, 고동만도 시청자도 모두가 경악한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애교가 계속될수록 최애라의 반전 매력은 그를 돋보이게 하는 하나의 요소로 작용했다.
김지원은 “애라는 시로 시로”라며 극중 애교를 취재진에게 시연했다. “작가님이 대본에 워낙 귀엽게 써주셨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잘 살릴 수 있을지 걱정했다. 녹화 이후에도 방송 전까지 굉장히 걱정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예상 외로 많이 좋아해주셔서 다행이었다.”
김지원이 생각하는 최애라의 매력은 솔직함이라고. “애라의 매력은 솔직과 용감이다. 그런 것들이 처음에 대본을 봤을 때 매력으로 다가왔다. ‘뭐 이런 것까지 이야기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속마음을 다 내비치고, 뒤끝이 없다.”
솔직함은 감정의 표출에 거리낌이 없다는 것이지, 감정이 없다는 요약은 아닐 터. 고동만 때문에 최애라가 겪은 마음 고생 중 최고를 묻자 그는 격투기 선수 고동만의 상처를 언급했다. “아무래도 다치는 부분이다. 격투기를 해서 다치고, 귀가 안 들리고. 이런 장면에서 또, 박서준 씨가 현장 스태프 분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진짜 귀 안 들리는 거 아니야?’라고 반문할 정도로 굉장히 연기를 잘하셨다. 보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질문은 계속됐다. 실제로 남자친구가 격투기를 한다면? “딜레마다. 배우들끼리도 이런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했다. 나는 그분의 꿈을 응원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드라마에서 결국 (고)동만이도 자기 길을 찾아 나서니까, 각자의 꿈을 응원해주는 것이 최선이지 않을까 싶다.”
김지원은 가장 기억에 남는 신으로 앞서 언급된 면접 신을 소개했다. “직업상 오디션을 많이 본다. 도전했다가 실패하는 경험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부분에서 공감이 많이 됐다.” 더불어 그는 최애라에 대해 “동만이 대사 중에 ‘너 아나운서는 안 어울려, 너는 마이크를 잡아야 돼’라는 것이 있다. 결국 애라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이 꿈이 아니었을까 싶다”라고 배우로서 역할을 회상했다.

취재진의 질문 중 일정 지분을 차지하는 주제 하나를 꼽자면 단연 KBS2 ‘태양의 후예’와의 비교였다. 김지원은 ‘태양의 후예’에서 태백 부대 파병 군의관 윤명주를 연기했다. 그는 윤명주와 최애라 중 그와 비슷한 인물을 묻는 질문에 “‘태양의 후예’를 마쳤을 때는 윤명주에 가깝다고 생각했다”라며, “그런데 이번 작품을 마치고 나니까 또 최애라랑 많이 가까워진 것 같다. 그 영향을 많이 받기도 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밝아졌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라고 답했다.
또한, 그는 둘 중 ‘인생 캐릭터’를 선택해달라는 부탁에 처음에는 “어려운 질문이다”라고 난색을 표했다. 더불어 “모두 애정했던 캐릭터이기 때문에 그냥 다 인생 캐릭터로 했으면 좋겠다”라는 욕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거듭되는 질문. 잠시 침묵과 함께 고민하던 김지원은 결국 “아무래도 그렇게 되면 제일 최근 캐릭터가 마음에 남는 것 같다. 최근에 연기했던 캐릭터니까 많은 애정을 쏟았고, 아직 확 떨어지지 못한 상태다”라며 최애라를 ‘인생캐’로 뽑았다.
‘태양의 후예’는 김지원 인생의 작품, ‘인생작’이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막론하고 ‘쌈, 마이웨이’ 이전까지 이토록 대중의 관심이 집중된 작품이 없었기 때문. ‘태양의 후예’는 최고 시청률 38.8%(닐슨 코리아 기준)을 기록하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쌈, 마이웨이’ 제작발표회에서 김지원은 “작품 선택에 고민이 컸던 것이 사실”이라며, “새로운 작품을 만나야 되는 직업이니까 늘 제로 베이스를 떠올렸다. 좋았던 것도 지나간 것이고, 안 좋았던 것도 지나간 것이니까 지금에 충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장인물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가 큰 고민이었다”라고 밝혔던 바 있다.
‘태양의 후예’ 그리고 ‘쌈, 마이웨이’. 성공이라는 길 위를 질주 중인 김지원의 소감이 궁금했다. “나는 이런 인기를 사실 매체 인터뷰에서 제일 많이 느낀다. ‘태양의 후예’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굉장히 많은 분들이 와주셨다. 그때서야 ‘아, 작품을 진짜 많이 봐주셨구나. 관심을 가져주시는구나’라고 실감하게 된다. 그래서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 더 좋은 모습 보여드려야겠다’라는 생각이 사실은 제일 많이 든다. 뻔한 답이긴 하다. (웃음)”
한 번은 운으로 치부될 수 있지만, 연이은 성공이다. 대본을 고르는 기준을 묻자 김지원은 “내가 보여드릴 수 있는 부분이 있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답한 뒤 잠시간 침묵했다. 이어 그는 “캐릭터를 많이 보는 것 같다. ‘이런 부분은 나의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겠다’ 같은 부분을 찾는다”라고 부연했다.

연기 멘토나 동료가 있는지 궁금했다. 사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는 김은숙 작가다. 김은숙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김지원과의 추억을 회상하며 김지원이 드라마가 끝난 후 본인 몸처럼 커다란 과자 한 상자를 들고 왔다고 회상했다. ‘태양의 후예’의 캐스팅 제안 또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수락했다고. 이에 김지원은 “주변 분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배운다”라고 답했다.
“이번에는 작품 하면서 동료 배우 분들이랑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이런 신에서는 여기서 이렇게 움직이면 더 재밌지 않을까?’ 같은. (안)재홍 오빠가 그런 재밌는 호흡을 잘 아신다.”
차기작은 영화라고. 배우 김명민과 오달수의 호흡이 빛나는 영화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의 속속편 ‘조선명탐정3(가제)’다. “‘조선명탐정’이라는 영화 자체가 많은 분들에게 알려진 작품이다. 기억을 잃은 어떤 여인을 맡았다. 그 여인의 사건을 남자 두 분과 함께 팔로우(Follow)하면서 해결해 나가는 것이 내용이다.”
또한, 그는 “기억을 잃었다는 설정이 있기 때문에 조금 더 사연 있는 여자의 느낌을 낼 수 있지 않을까”라며 첫 사극 도전을 부담스러워했다. “지금 대본도 보고, 모니터로 많이 보면서 준비 중이다. 최선을 다할 것이다. 아무래도 사극이다 보니까 옷도 다르고, 말투도 다르고. 워낙 감독님께서 리드를 잘해주신다고 들었다. 믿고 열심히 따라가려고 한다.”
더불어 김지원은 “영화 경험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분량을 해보는 것은 처음이다. 걱정되는 부분도 있지만, 설레는 부분이 더 큰 것 같다. 어떻게 봐주실지 기대감이 있다”라고 그의 어떤 미래를 꿈꿨다. 7년 차 배우의 도전은 여전히 진행형이었다.

배우 안성기는 ‘국민 배우’라는 수식어를 가지고 있다. 황정민 역시 ‘천만 배우’라는 그를 특징하는 수식어의 소유자다. 시야를 넓혀서 다른 방향의 수식어를 찾자면 공효진은 ‘로코 퀸’이라는 명칭으로 그와 로맨틱 코미디 장르 사이의 성공 신화를 주지시킨다. 과연 김지원은 어떤 수식어를 바라고 있을까. “사실 배우 김지원이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그것이 조금 자연스럽게 보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일단 우선이다. 사실 어떤 수식어가 없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또한, 김지원은 처음 연기를 도전했을 때의 목표를 어느 정도 이뤘는지 묻는 질문에 “나는 항상 배우라는 것이 정말 크게 느껴지더라. 과거 배우라고 불리는 것이 이질감 없는 연기자가 되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배우라는 이름이 굉장히 무겁게 느껴진다. 그래서 연기를 하고 있지만, 나 스스로가 ‘배우 김지원’이라는 타이틀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느껴질 때까지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은 늘 갖고 있다”라고 답했다.
수식(修飾). 겉모양을 꾸민다는 뜻이다. 이질감(異質感). 성질이 서로 다른 것을 의미한다. 수식을 싫어하고, 이질감을 거부하고. 결론은 배우로서 속을 채우고, 배우로서 인정 받고 싶다는 이야기다. 그가 인터뷰 중간 사용한 표현처럼 ‘뻔한 답이긴’ 하다.
그러나 내실이 비어있는 채로 먼 거리를 갈 수 없다는 이야기는 이미 옛적부터 내려온 교훈이고, 사실이다. 누군가에게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라는 말은 거부감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만, 아마 그중 하나는 뿌리를 넓게 뻗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너무 길고 힘든 나머지 무의식적으로 작동한 방어기제가 아닐까.
그만큼 원점에 집중하는 것은 고되고 힘든 일이다. 그러나 김지원은 전진 중이다. 수식 없고, 이질감 없는 그의 어떤 날을 향해.(사진출처: 킹콩바이스타쉽, KBS2 ‘쌈, 마이웨이’ 홈페이지, KBS2 ‘태양의 후예’ 홈페이지)
bnt뉴스 기사제보 star@bn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