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인터뷰] ‘의외로’, ‘생각보다’ 김영철

2016-09-19 14:5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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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신 기자] 연예인 이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을 마주하면 흔히 두 분류로 나뉜다. TV와 다르거나 혹은 그와 같거나. 그는 정확히 오차 없이 한 점도 다른 게 없었다. 그렇게 17년이라는 시간을 한결 같은 모습으로 웃겨온 개그맨 김영철과 만났다.

1999년 ‘개그콘서트’와 함께 대중들에게 모습을 드러낸 그는 다양한 유행어를 뿌리며 뜨겁게 도약했다. 데뷔 1년차가 무색할 정도로 연거푸 두 차례의 상을 거머쥔 그. 이후 변함없이 우직한 모습으로 여전히 그때 그 시절 그 개인기로 여전히 대중들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천상 개그맨인 김영철과 bnt와의 첫 패션화보에서 그는 한 결 같은 모습을 뒤로 하고 기존에 찾기 힘들었던 진중한 면모를 보여줬다. 이어진 인터뷰에서 그는 다시금 본연의 김영철로 돌아와 뜨거웠던 자신의 과거와 여전히 뜨거울 자신의 미래를 보여주었다.

화보 촬영 어땠는지.

오랜만이었다. 작년에 다 달렸다. 지큐, 그라치아, 엘르 까지. 화보 촬영은 살며 좋은 옷을 사 입을 기회도 있지만 평상시에 입어보지 못한 옷을 입어보는, 나에게는 약간 꿀맛 같은 휴가처럼 느껴진다. 스튜디오에서 마냥 웃기는 개그맨이 아닌 옷을 잘 입는 개그맨으로 가도 되고 안경을 잘 써서 멋있는 개그맨으로 가도 되고 그런 날이라서 좋았다.

그전 촬영과 다른 점

그전에는 웃기는 것과 진지한 것이 공존했다면 오늘은 모든 컷을 진지한 모습으로 촬영했다. 다만 직업병의 일환인지 중간 중간 영상 팀이 따라다닐 때 자꾸 까불고 싶어지더라. 그런 흔적을 영상에 남겨 뒀으니 재밌게 봐줬으면 좋겠다. 대체적으로 오늘은 과묵한 김영철 이라고 해도 될 거 같다. 이런 날도 있어야지.(웃음)

가장 마음에 들었던 콘셉트

마지막 옷. 촬영을 하다 보면 사서 입었으면 하는 의상이 있다. 특히 사진작가님께서 가장 잘 어울린다고 얘기해줘서 더더욱 그랬다.

대체적으로 옷이 잘 어울리더라.

내가 ‘의외로’, ‘생각보다’ 라는 부사어가 많이 붙는 편이다.(웃음)

개그맨 마음먹었던 계기.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입대 전 첫 지원에서 떨어지고 군 제대 후 두 차례의 도전 끝에 시험에 합격했다. 학창시절 내내 나는 웃기는 아이였다.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이 이것 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주변에서도 개그맨이 되라고 했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됐다.

99년 개그콘서트 첫 출연

뭣 모르고 했다. 김미화, 전유성, 백재현, 심현섭, 김준호 선배 외에 신입은 김지혜와 김대희, 나까지 셋이었다. 당시 방청객을 앞에 두고 하는 공개 코미디가 처음이었기에 신선했었다. 개그 프로의 춘추전국시대였던 것 같다. 그때 심현섭 선배가 개인기를 하나의 장르로 만들기도 했다.

이듬해 신인상, 코미디언상을 수상했다.

데뷔하자마자 1년 만에 이룬 쾌거라면 쾌거였다. 내가 알기로 신동엽 선배를 제외하곤 신인 때 그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경우가 없었는데 내가 받게 되니 너무 놀랐었다. 올해 남자 부분 최우수상 후보에 올라서 백상예술대상에 또 갔었다. 장소는 바뀌었지만 15년 전 생각이 났다. 그때 그 기억을 떠올리며 격세지감도 느껴보고 그랬다.

다양한 코너를 진행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코너는.

가장 메인 코너이고 전체가 함께 진행하는 ‘사바나의 아침’이 기억에 남는다. 또 ‘114 안내전화’ 라는 코너를 8주 간 진행 했는데 덕분에 cf도 찍었었다. 개콘을 알릴 수 있었던 사바나와 나를 알릴 수 있었던 114 이렇게 두 가지 코너가 기억에 남는다.

반면에 아쉬웠던 코너

‘앵콜 개그’라고 있었다. 모든 코너가 끝나고 전체 앙코르를 하는 건데 그게 고난도의 연기가 필요한 거다. 마치 몰랐던 건데 애드리브를 치는 것처럼 연기해야 했는데 1년차 밖에 되지 않아 천연덕스럽게 하지 못했다. 그때 내 연기력이 많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한다면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그때는 어쩔 수 없었던 거 같다.

다양한 유행어 만들었는데 그런 영감은 어디서 얻는지.

확실히 작정하고 하면 안 되는 것 같다. ‘미안합니다’ 도 사실 그걸 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당시 옷 로비 사건이 일었을 때 네 분 중 한 분이 너무 재밌었다. 그걸 한 회 패러디한 건데 그걸 서세원 선배가 다시금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그걸 잘 살렸었다. 그 이후에 매 순간 반복해 사용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유행어처럼 됐다.

‘엽..때요?’도 당시 PCS가 잘 안 터지던 상황을 표현했던 거였다. ‘힘을 내요 슈퍼파월~’도 그렇다. 이게 초등학생처럼 유치한 발상이 필요한 것 같다. 그래서 초등학생들이 날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내 개그 수준이 높지 않다는 것도 알았고.(웃음)

‘주먹을 부르는 개인기’라고들 한다. 예능 고수들이 보기엔 정말 낮은 수준임은 맞다. 슈퍼파월 이라는 것 자체가 너무 아동틱 하니까.(웃음) 유행어는 그렇게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우연히 내 이상형을 보는 것처럼 마주하게 되는 것 같다.

당신과 같은 개그맨을 비롯, 가수나 배우들처럼 예술을 생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철 들지 않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그렇다. 철들지 않는 것 그리고 어느 정도의 배고픔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하다. 적당한 헝그리 함과 갈구하는 욕심과 욕망이 있어야만 새로운 게 나오더라. 이건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나는 또 웃기고 싶어서 불안할 때가 더 웃긴 것 같다. 나는 철들면 안 되고 배고프면 더 잘하는 그런 캐릭터인 것 같다.

김영철에게 ‘개콘’이란.

개인적으로 굉장히 의미 있는 프로다. 돌아갈 친정이 있다는 느낌. 내가 데뷔한 프로그램이 아직도 있다는 게 좋다. 미국 SNL이 전설로 불리는데 그것처럼 개콘이 평생 가는 프로그램이 됐으면 좋겠다. 700회 때 게스트로 출연했었는데 1000회 까지 가서 출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고 늘 생각한다.

재석이 형이 무한도전에 10년 이상을 있는 것처럼 한 개인이 한 프로그램에 그렇게 오래 있을 수 있다는 것과 같이 출연했던 프로그램이 오랜 기간 남아있다는 건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다. 나뿐만이 아닌 누구든지 ‘전원일기’, ‘전국노래자랑’을 꿈꿀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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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잼설’

2년 전에 그 얘길 들었으면 싫어했을 거 같다. 진짜 같지 않냐.(웃음) 하지만 안 웃긴다는 표현이 괜찮은 나이가 된 것 같다 . 2년 전에 ‘노잼’이라고 했으면 죄송하다고 했을 것 같은데 지금은 개그 화 시켜서 받아칠 수 있게 된 것 같다.

인터넷 악성 댓글에 대해서.

댓글을 분석해봤다. 나를 향한 댓글의 유형이 세 가지라는 걸 알았다. ‘비호감’, ‘핵노잼’, ‘극혐’ 3종 세트인데 난 이만하면 됐다 생각했다. 근데 친한 작가 누나가 그러더라. 개그맨이 들으면 안 되는 3가지를 다 들었다고. 그래도 죽어라, 뒤져라 는 없더라.(웃음) 그래도 요즘은 간간히 좋은 댓글도 달려서 보는 재미가 있다.

개인기를 너무 우려먹는 게 아니냐는 말에 대해서.

최우수상 수상 후에 상의 무게가 무거워 변신을 해야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내가 해오던 것들을 안 하려고 했다. 그때 모 아는 기자가 김영철은 그걸 계속 해야 웃긴 게 아니냐고 하더라. 그렇게 한두 달을 방황하며 직업적인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던 찰나에 이번에 확실히 느꼈다. 하춘화 선생님의 성대모사를 30년 동안 하는 것도 되게 의미가 있을 것 같다는 것. 하춘화 선생님 보다 더 오래 하는 것.

내가 어떤 불특정 다수의 반응에 주눅 들어서 안하는 게 아닌 내가 식상해져서 안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 내 개인기가 신선한 건 없는데 지겹도록 해서 웃긴 게 아닐까 싶다. 당당하게 당당 다라당당하게 하는 것.(웃음)

그래도 이제는 대놓고 하는 것보다 나올 것 같지 않은 구석의 틈새를 노린다. 지겨워도 어쩔 수 없다. 나에겐 숙명 같은 게 되었다. 한 기자회견장에서 이런 말을 한 적도 있다. ‘기자님, 제가 할 소리는 아닌데 이영자랑 저랑은 자웅동체로, 한 몸으로 봐 주세요’라고. 이제는 내 몸속에서 ‘킬미힐미’처럼 내가 하다가 내보낼 때까지 시청자들이 기다려주셨으면 좋겠다.(웃음)

하춘화 씨 본인은 정작 싫어하지 않았었나.

싫어하셨다가 좋아하시게 된 케이스다. 처음에는 남편 분이 싫어하셨다고 들었다. 그런데 하춘화 선생님이 어느 순간부터 젊은 친구들이 김영철이 흉내 낸 가수로 알아봐준다고 하더라. 이제는 내가 흉내 내는 김영철을 직접 흉내 내기도 한다고. 또 역으로 감히 말씀드리고 싶은 건 이 분들이 정색하기엔 타이밍이 너무 지나기도 했다.(웃음) 내 생각엔 육칠십 살의 내가 당당다라당당 하는 것도 웃길 것 같고.

그래도 다행인 건 방송 쪽 관계자들이 질리지 않아하고 꾸준히 불러준다는 점인 것 같다.

피디들은 되레 하라고 한다. 가끔 안전 빵으로 쓰일 때도 있다.(웃음)

다양한 예능 출연, 기억에 남는 예능

데뷔했던 프로로써 기억에 남는 건 개콘이다. 또 하나 ‘진짜 사나이’는 주말 예능에 고정으로 출연했던 게 처음이라 기억에 남는다. 내가 중심부에 있었던 주말 프로는 거의 처음이었다. 또 내가 처음으로 일요일에 집에 있을 이유가 생기기도 했다. 일요일 프로그램 시작 전 내가 출연한 예능을 보기 위해 집으로 뛰어가며 설레 하던 그 기분이 너무 행복했다. 내가 ‘최우수상’을 받은 것도 진사의 힘이 크지 않았나 생각한다.

김영철 하면 ‘무한도전’을 빼놓을 수가 없다.

이런 댓글을 봤다. 김영철은 무한도전만 나오면 ‘하드캐리’*하는 것 같다고. 내가 여섯 번 정도 나갔는데 존재감이 괜찮았던 것 같다. ‘못친소’ 부터 ‘쓸친소’ 그리고 ‘힘을 내요 슈퍼파월’까지. 사실 무한도전은 독을 품고 갔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 기필코 뭔가를 하겠다고 생각해도 워낙 쟁쟁한 분들이 계셔서 마음대로 되지도 않는다. 사실 김태호 피디가 만들어준 작품인 것 같다. 내가 무슨 이유 때문에서였는지 오프닝부터 진상을 부리다가 무도 멤버들에게 핀잔을 들었던 적이 있다. 그때 김태호 피디가 다 제치고 나게 와서 재밌으니까 계속 하라는 거다. 형 그냥 막 하세요, 이러더라. 그때 슈퍼파월이 나왔다. 피디가 주눅 들지 말고 막 하라고 하니까 했지 안 그랬으면 그렇게 하지도 못했을 거다. 식스맨은 안됐지만 무한도전은 나의 메인작품도 아닌데 갈 때마다 뭔가를 하고 온 거 같아서 나와 잘 맞지 않나.(웃음)

*하드캐리: 게임에서 나온 단어로, 팀워크가 중요한 게임에서 팀을 승리로 이끄는(carry) 역할을 한 플레이어를 뜻하다 사용 범위가 넓어져, 스포츠나 방송에서 크게 활약한 사람에게 사용한다. (NAVER 지식iN 오픈국어 발췌)

박명수를 공격하다가 악플에 시달리기도 했다.

근데 그게 김태호 피디가 좋아했던 부분이기도 한 것 같다. 댓글 신경 쓰지 말라고 하더라. 아무도 공격하지 않는 박명수를 공격하라는 임무를 받기도 했었다.(웃음)

그런 것에 재미를 느끼는 사람도 상당하다.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누구나 다 10명 중 10명에게 칭찬 받고 싶겠지만 나는 무색무취 보다는 호불호가 명확한 게 더 나은 것 같다. 무색무취는 정말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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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나 혼자 산다’에서 하차했다.

‘나 혼자 산다’가 변화를 겪어 가는 과정이었다. 이게 리얼리티라고는 하지만 내가 매순간 보여줘야 하는 것들이기에 아이디어를 계속 만들어내야 했고 하차 두 달 전부터 슬슬 새로운 아이템에 대한 준비가 어려웠다. 마침 프로그램에서도 새로운 인물을 모색하려던 찰나였고 내가 약간 억지스러워 지려고 하기도 해서 하차했다. TV는 계속 진화한다는 말처럼 ‘나 혼자 산다’ 역시 진화하고 있었다. 예전처럼 자연스럽게 집에서 낮잠 자는 그런 모습이 그립다는 분들도 계시는데 방송이다 보니 그런 모습만 계속 보여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더 이상했다가는 억지스러워져 욕먹을 거 같았다. 박수칠 때 떠나라고 그래도 다행히 아쉽다는 반응이 많았다. 피디도 기분 좋게 보내줬었다.

마지막 방송에서 나왔었던 첫 사랑 절친에 대해서.

방송에서 예쁘게 포장해줬다.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첫사랑 같은 친구’다. 그 친구 같은 경우는 나도 좋아하지만 부모님이 너무 좋아하신다. 하지만 그게 결혼하고 싶은 감정과는 다른 부분인 것 같다. 가족 같은 소울메이트 이다. 방송을 보고 주위에서 첫사랑이랑 잘해보라고 하는데 우리는 딱 거기까지.

이상형은.

웃음 포인트가 같은 여자. 개그는 설명하기 시작하는 순간 끝나는 것 같다. 그런 포인트가 잘 맞는 여자. 밝고 재밌고 같이 웃을 수 있는 그런.

의외의 연기 활동

드라마 2편을 했다. 김수현 선생님의 ‘부모님전상서’ 라는 주말연속극이었다. 김희애 선배님이 나왔었던 작품이었는데 이동욱 주인공 친구로 출연했었다. 나 같은 경우는 재밌는 개그맨이 가도 좋을 것 같다는 추천으로 조연출 분을 통해 캐스팅 됐다. 첫 리딩 때는 너무 못해서 혼이 나기도 했지만 금방 는다고 칭찬도 받았었다. 이후 아침드라마 한 편 더 하고 드라마는 접었다. 해봤더니 주인공 친구 밖에 안하더라. 주인공 친구를 하는 것도 재밌었지만 극 안에 내 인생이 없더라.(웃음) 두 편하고 예능 더 열심히 하기로 다짐했다.

영어 공부하게 된 계기

2003년 7월 캐나다 몬트리올 코미디 페스티벌을 다녀오고 나서 캐나다 몬트리올 하늘에 떠있는 달과 잠시 얘기를 나눴다. 내가 약간 생각보다 문학적이고 감수성이 예민하다. 최근 읽은 권대웅 선생님의 ‘당신이 사는 달’이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있더라. ‘달에게 많은 얘기를 해보세요. 이사를 간다면 당신이 사는 달은 어딘지 달을 확인하세요. 달에게 가끔 비밀 얘기를 해보세요.’ 그러한 대화를 내가 10년 전에 했었다. 달은 마치 비밀을 지켜줄 거 같지 않나. 그래서 몬트리올에서 달을 보고 그런 얘기를 했다. 너무 가슴이 답답한데 또 뻥 뚫리는 것 같기도 하고 이건 뭐지 하는 느낌으로 ‘달아, 나 정말 이 무대 10년 뒤에 올 수 있을까? 나 영어를 너무 잘하는 개그맨이 되고 싶어. 이 무대 꼭 올게. 너랑 약속할게.’ 하고 한국에 오자마자 영어 학원에 다니게 됐고 지금까지도 배우고 있다. 이후 13년이 지나 멜버른에 다녀왔다. 순수하게 달에게 툭 내뱉었던 내 꿈을 온 우주가 들어준 것 같았다. 때로는 내가 갖고 있는 동심 적이고 문학적인 면이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 되는 것 같다.

일각에서는 당신이 낸 책이 교재로 사용하기엔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언어는 수학과 달리 개인차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말은 맛있게 하는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원어민이 안 쓰는 표현이라는 말을 듣는데 의사소통만 가능하다면 그 사람이 안 쓰는 말이어도 어딘가 에서는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말에도 그런 경우가 있고. 사실 이런 면에서 사람들은 조금 경직돼 있는 것 같다. 영어를 재밌게 배우는 아이가 알기 쉽게 낸 책 정도로 편히 봐주셨으면 좋겠다.

잘 맞는 개그맨 동료

김구라, 강호동 형 같은 유형이 나와 잘 맞는다. 나를 짓밟아주는. 잔디 내지는 인동초로 만들어 주는. 내가 밟으면 밟을수록 일어나니까. 그 기점이 강심장이었다. 예전에는 호동이 형이 하지 말라고 하면 안했었다. 어느 날 느꼈던 게 예능에서 하지 말라는 건 하라는 뜻이구나, 라는 걸 느꼈다. 그때부터 그렇게 했는데 잘 맞더라. 그래서 재석이 형이나 동엽이 형처럼 잘한다잘한다 하고 칭찬해주는 스타일보다는 밟아주는 게 더 좋다.

호흡을 맞춰보고 싶은 동료

이경규 선배랑 새 프로를 하나 해보고 싶다. 재미있는 구도로 선배에게 제가 잘 개길 수 있을 것 같다.(웃음)

김영철을 필두로 예능을 새로 만든다면 어떤 예능을 해보고 싶은지.

이경규, 신동엽, 강호동, 유재석, 김구라와 같이 A급을 향해 꿈꾸는 사람들을 모아 ‘A특공대’를 만들고 싶다. 예를 들면 김영철, 윤정수, 박명수, 유세윤, 김신영, 정준하 등 우리가 A급이 되기 위한 특공대. 한 회 한 회 A급 게스트를 모시고 각자 개인 쇼를 하는 거다. 할 게 너무 많을 거 같다.

롤모델

강호동 형. 가끔 한 번씩 나를 잡아주는 말을 해주시는데 그때마다 뭔가에 얻어맞은 듯 깨닫는다. 마치 내겐 철학과 선배처럼 날 한 번씩 정돈시켜준다. 자신감을 주고. 그런 호동이 형이 내겐 알게 모르게 스승 같은 형이다.

소속사 ‘미스틱’은 어떤지.

좋다. 미스틱은 가수 윤종신 사단으로 음악적인 느낌이 강한 곳이기 때문에 음악적인 시도를 해보고 싶기도 하다. 싱글앨범을 내보고도 싶고. 장재인 노래할 때 피처링 한 번 재밌게 해보고 싶다. 근데 안 시켜준다.

개인적으로 가장 맘에 드는 개인기

엄마 좋아 아빠 좋아 같다. 영자 누나를 하려는 순간 하춘화 선생님이 눈앞에 싸악 들어왔다. 김희애 선배도 아른 거리고. 그래도 개인기 하는 순간 영자 누나가 생각났다. 콩트 할 때도 제일 잡기 좋은 톤이 영자 누나다.

올해 계획 및 목표

올해는 ‘아는 형님’ 자체가 더 잘 됐으면 좋겠다. 처음으로 나보다 전체가 잘 되기를 바라는 경우인 것 같다. 이제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인데 국민 예능 같은 느낌으로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다. JTBC의 ‘무한도전’ 같은 느낌으로.

두 번째 로는 정말 개인적으로 미래를 향해서 준비하고 있다. 미국 에이전시에 보낼 데모 영상을 거의 다 만들어가고 있는데 슬슬 뿌려볼까 한다. 채널하나를 더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국 진출의 꿈과 웹 드라마, 팟 캐스트, 영어 관련 콘텐츠 까지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을 모두 시도해볼 수 있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브라운관 속 예능 하는 김영철 말고도 여러 가지를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그걸 구축하는 시기가 지금이지 않을까. 꼭 채널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콘텐츠로 여러분께 인사를 드리고 싶은 것. 그게 계획 및 목표이다.

끝으로 어떤 개그맨이 되고 싶은지.

육칠십이 돼도 계속 웃기고 싶다. 나는 이 직업을 포기하지 않을 것 같다. 다른 일을 하면서도 항상 이 일을 메인으로. 개그맨 김영철이라는 타이틀이 너무 좋다. 철들고 싶지 않고 TV랑 실생활이랑 똑같은 사람, 쉼 없이 개그 하는 사람, 그런 한결같은 개그맨이 되고 싶다.

기획 진행: 조원신
포토: bnt포토그래퍼 류수
영상 촬영, 편집: 조영래, 박승민
의상: MUNSOO KWON, 반달리스트, 비아바이이정기, 슈퍼스타아이
슈즈: 푼크트
아이웨어: 룩옵티컬
시계: 잉거솔
헤어: 재클린 송우리 디자이너
메이크업: 재클린 수진 부원장
장소: 미즈컨테이너 서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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