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옥 기자/사진 김강유 기자] 서울패션위크의 첫 번째 컬렉션으로 정식 데뷔를 앞둔 디자이너 이학림. 막바지 작업을 앞두고 있는 그는 힘들어 보이는 안색과 함께 무거운 인상이었지만 잠깐씩 던지는 유머와 특유의 여유로움이 어두움 가운데 위트가 비집고 나오는 그의 패션과 느낌이 닮아있다.
개성이 강한 인상에 어찌보면 ‘공부 참 안하게 생겼다’고 생각이 들지만 겉보기와는 다르게 학창시절에는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다. 파슨스 시절에도 9시에 들어가면 새벽에야 나올 정도로 학업에 충실하고 디자인 감각도 뛰어나 많은 선생님들과 후배들에게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고.
이러한 과정에서 탄생한 그의 브랜드 ‘20th Century Forgotten Boy Band’의 스토리와 함께 생물학을 전공했던 모범생이 반항기 어린 디자인의 패션디자이너로 전향하게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내 인생을 바꿔놓은 비비안 웨스트우드
학생 때에는 공부도 잘했던 터라 원래는 과학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패션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고 다만 어머니가 미술을 하고계셔서 예술이라는 것이 뭔지는 대충 알고 있을 정도였다. 대학원까지 진학했지만 생물은 창조보다는 있는 것을 찾아내는 학문이고 남들이 알아낸 것을 배우는 것이 싫었다.
다리를 다치게 되어 누워서만 생활하던 중 우연히 TV에서 해외 컬렉션의 피날레를 보게 되었는데 그때 뭔가 새로운 충격을 받았다. 반년을 준비한 과정과 결과를 30분도 채 안되는 짧은 시간안에 모든 것을 보여주고, 쏟아붓고, 보상받는 것에 매료되었다. 바로 비비안 웨스트우드였다. 지금 역시 제일 좋아하는 디자이너 중에 한 명이고 내가 추구하는 패션과 맞물려 있다.
이러한 이유로 군대 제대 후 패션을 복수 전공했고 이후 뉴욕 파슨스에서 제대로 된 패션 교육을 받게 되었다.

모범적인 파슨스 우수생, 취업의 벽에 무너지다.
수업이 자유로운 미국이라고 해도 우리나라 고등학교와 맞먹는다고 할 정도였다. 밤새서 과제를 하며 빠듯한 시간과도 싸우기 바빴지만 세계 각국의 잘나고 감각적인 이들이 모이는 그곳에서의 경쟁까지 더해졌다. 하지만 그러한 힘든 과정에서도 보는 것도, 배우는 것도 수준이 높다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한 결과 뉴욕 파슨스에서 4.0만점에 3.5정도의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햇다.
하지만 모든지 잘한다고 칭찬만 받았던 그에게도 시련이 닥쳤다. 2009년 졸업 후 거의 일 년 정에 이력서를 300통 가까이 돌렸지만 당시 시대 상황도 안좋았으며 경력자들에게 밀려 단 한 번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실패의식으로 몸도 마음도 지쳐 그는 한국으로 돌아갈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던 중 귀국 당일 날 마이클 코어스에서 연락이 왔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공황상태에 빠져있던 그때 모든 것을 거절하고 한국행을 결정했다. 하지만 본인 대신 들어간 친구에게서 아직도 마이클 코어스 담당자가 뉴욕 올 생각 없냐는 언급을 한다고 연락이 온다고. 그 때 선택이 지금 후회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가 대답했다. “마이클 코어스를 선택했다면 더 놓은 곳에서 일하고 있을 것이지만 지금의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내가 훨씬 좋다”
1회 탈락자 이학림? ‘프런코’를 통해 전화위복, 승승장구
하지만 이를 계기로 조금씩 엉켜진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했다. 강한 인상으로 인해 단 한 번으로 출연으로도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았고 경쟁률이 엄청나기 유명한 서울패션창작센터에도 들어오게 되어 자신의 브랜드를 본격적으로 런칭하게 됐다. 뿐만 아니라 컬럼과 방송 출연, 일러스트 강사로도 활동하면서 자신을 키워나갔다.
그렇게 번 돈으로 옷을 만들고 브랜드를 운영해왔다. 이것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뒤돌아 볼 것 없이 한 번만 더 해보자라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달려왔다. 하지만 현재는 모든 것을 접고 브랜드 운영에만 전념하고 있다. 브랜드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되면 어머니가 글을 쓰거나 일러스트 강의를 나가는 모습을 좋아하시고 본인도 글 쓰는 것을 워낙 좋아하기 때문에 이어나갈 것이라고.

설명 없이도 ‘이학림 옷’이 보일 것. 패션에 설명은 필요없다.
‘20th Century Forgotten Boy Band’가 그의 브랜드 네임이다. 이름이 너무 길지 않냐는 질문에 대답은 너무도 쿨했다. “원래 긴 이름을 갖고 싶었다”
굳이 설명하자면 대중적인 것을 싫어하고 편이라 매니악한것을 원하는 편이라 “내 이름을 애써 알고싶다면 읽어라”라는 다소 불친절한(?) 네임이라고 말한다. 또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패션는 음악을 뗄 수 가 없다. 밴드에서 기타를 배울 정도로 음악을 좋아하고 음악에 대해서 한 번도 끈을 놓은 적이 없었다.
음악을 해볼까라고 생각했지만 기타 실력이 부족해 패션에 그 열정을 쏟기로 했다며 웃는다. ‘옷으로 음악을 한다’라는 의미로 ‘밴드’를, 티비나 유행어도 모를 정도로 트렌드에 뒤떨어져 있는 나를 발견하면서 앞부분을 붙였다.
사실 그의 옷을 보면 보는 이들에게는 ‘아! 이학림 옷이다’라는 확실한 콘셉트가 보이지만 그에게서 설명을 듣기는 힘들다. 그는 브랜드 콘셉트를 따로 만들어 놓지 않았다. 그저 머릿속에서는 설명이 되지만 설명하기가 애매하다는 이유다.
굳이 표현하자면 부정적인 과정에 긍정적인 요소로 반전의 재미를 보여주고자 한다. 본인도 겉모습이나 말투는 음지같지만 항상 밝고 희망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부정의 끝은 항상 해피엔딩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초반에 더욱 극단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이번 서울 컬렉션 프로필 사진에서 입은 티셔츠에도 욕이 써 있는데 이 또한 밝은 면을 더욱 밝게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어떠한 사람들은 설명 없이 어떻게 브랜드를 알릴 수 있겠냐고 말하지만 이것만은 자신한다고. 지금 국내 디자이너 가운데 락시크를 베이스로 펑키하고 위트있는 음악적 사조를 가지고 장난치는 이는 없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댄디하고 프레피적인 옷과는 전혀 다른 의상이기 때문에 내 브랜드의 색깔만은 뚜렷하고 유니크하다고 전한다.
이번에 서울컬렉션에 참가하게 된 것도 이러한 독특한 의상이 장점으로 부각이 되었다. 또한 선택될 것이라는 자신도 있었다. 서울컬렉션을 꾸준히 참가해 앞으로는 한국보다는 뉴욕과 일본 등 해외에서 먼저 의상을 판매할 예정이다.
사실 해외의 벽이 그다지 높지 않지만 국내 디자이너들은 아직 유통이나 마케팅 능력이 없기 때문에 괜히 겁먹고 브랜드를 접는 상황이 많기 때문에 본인 만큼은 과감히 부딪혀 볼 것이라는 생각이다.
넥스트 제너레이션의 가장 큰 장점이 참신함과 개성. 여기에 웨어러블함까지 적절히 갖춘 무대가 아닐까. 이에 딱 들어맞는 이학림 디자이너의 컬렉션 무대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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