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촬영에 입고 갈 정장이 없었다. 양의식은 양복점을 찾아가 사정을 설명했고, 주민등록증을 맡긴 채 옷을 빌렸다. 모델이 되고 싶어 서울에 올라온 청년에게는 카메라 앞에 서기까지 넘어야 할 문턱이 많았다.
“돌이켜보면 자신감이 넘쳤다기보다 간절함이 컸던 것 같습니다.”
1980년대 초, 서울행 기차표를 들었을 때 분명했던 것은 모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어디를 찾아가야 하는지, 무엇부터 준비해야 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선발대회에서 상을 받고도 회비를 요구받았고, 선배와 여관방에서 지내며 에이전시를 찾아다녔다. 군 복무 중에도 의상 카탈로그를 보며 포즈를 연습했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는 마음이 그 시간을 버티게 했다.
1984년 도투락 아이스크림 CF로 데뷔했지만 생활이 곧바로 달라지지는 않았다. 군 제대 후 다시 찾아간 현장에는 알고 지내던 관계자들이 떠나 있기도 했다. 서울 변두리 지하 단칸방에서 그는 자신에게 필요한 준비부터 다시 짚었다.
백화점에서 카탈로그를 구해 자신의 이미지에 맞는 브랜드를 분석했다. 밤에는 포즈를 연습하고 낮에는 운동했다. 프로필을 들고 에이전시 앞까지 갔다가 돌아선 날도 있었다. 옷 한 벌을 빌려 촬영을 준비했던 경험까지, 그의 무명 시절에는 꿈을 현실로 옮기기 위한 구체적인 수고가 쌓여 있었다.
그가 답변에서 돌아본 활동 규모는 TV CF 150편 이상, 패션 카탈로그 400회 이상이다. 그러나 정작 오래 이야기한 것은 촬영 횟수보다 함께 일하는 방식이었다. 미팅 전에는 브랜드와 제품을 공부했고, 경쟁 브랜드와 출연이 겹치지 않는지 확인했다. 약속 시간을 지키고 촬영팀의 의견을 들었으며, 일이 없는 날에도 포트폴리오를 정리했다.
“광고는 모델 한 사람의 얼굴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디자이너와 광고주, 촬영팀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해해야 결과를 함께 만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카메라 앞에 서는 직업을 오래 경험할수록, 그 한 장면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도 보였던 셈이다. 그는 이때 익힌 협업의 태도가 훗날 교육과 축제 운영의 바탕이 됐다고 돌아봤다.

그렇다고 후배들에게 자신의 선택을 따르라고 하지는 않는다. 배우와 방송인, 크리에이터로 성장하는 길도 존중한다. 그가 바라는 것은 어느 분야에 가더라도 모델로 출발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이다. 자신이 지켜온 직업에 대한 애정은 후배들의 선택지를 넓히는 쪽으로 향했다.
후배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이유를 묻자, 그는 준비 방법을 모르거나 기회를 얻지 못해 현장을 떠나던 친구들을 떠올렸다. 재능과 의지가 있어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멈추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무명 시절이 겹쳤다. 곁에서 조언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 마음은 대학에서 모델을 배우는 길을 만드는 일로 이어졌다. 대덕대학교 모델과와 서경대학교 모델연기전공 개설에 힘을 보탰고, 워킹에 더해 연기와 표현력까지 익힐 수 있도록 교육의 폭을 넓히려 했다. 후배들에게 더 잘 가르치기 위해 자신도 공부를 이어갔다. 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것을 정리하고, 왜 필요한지 설명할 수 있어야 했다.
교재를 쓴 것도 그 때문이었다. 『모델.COM』과 『모델전략』 등에 현장의 경험을 담아, 후배들이 읽고 준비할 수 있는 자료로 남겼다. 밤마다 카탈로그를 펼쳐 혼자 포즈를 익혔던 청년이 이제는 다음 사람이 펼쳐볼 책을 쓰게 된 것이다. 이후 『아시아는 스무살』에는 모델로 살아온 시간과 교육, 축제를 통해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가 가르치려 한 것은 무대 위의 걸음만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어떤 개성이 있는지 살피고, 입고 있는 의상이 무엇을 전하려는지 이해하는 힘도 중요했다. 다른 사람을 닮으려 애쓰기보다 자기다운 표현을 찾도록 돕고 싶었다.
시간을 지키고 준비를 충실히 하는 태도도 같은 무게로 다뤘다. 모델이 한 걸음을 내딛기까지 디자이너와 헤어·메이크업 아티스트, 무대 스태프가 함께 움직인다. 광고 현장에서 배운 협업의 의미를 학생들에게도 전한 셈이다. 기술을 잘 쓰는 모델과 함께, 믿고 일할 수 있는 사람을 기르는 것이 그의 교육이었다.
한국모델협회 활동에서는 그 고민을 직업 전체로 넓혔다. 2005년 협회장을 맡아 13년간 활동하며 교육과 권익, 모델을 바라보는 시선을 함께 고민했다. 모델을 잠시 거쳐 가는 일로 여기거나 화려한 모습만 보는 시선 속에서, 현장의 어려움을 개인이 감당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모델의 성과를 알리는 시상식을 만들고 관련 산업과의 연결을 넓히려 했다. 후배가 배우나 방송인으로 성장한 뒤에도 자신의 출발을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랐다. 모델로 오래 살고 싶었던 마음이, 후배들도 그 이름을 당당하게 간직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어졌다.
그 긴 시간을 돌아볼 때 가장 큰 보람으로 꼽은 장면은 제자가 다시 누군가를 가르치는 모습이었다. 함께 공부하고 현장을 경험했던 학생이 교수가 되어 후학을 양성할 때, 자신이 교육을 시작하며 품었던 생각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있음을 느낀다고 했다.
다만 후배의 성장을 자신의 성과로 앞세우지는 않았다.
“물론 한 사람의 성장은 그 사람 자신의 노력과 선택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는 필요한 순간에 배움의 기회와 작은 발판을 보탤 수 있었다는 데 의미를 뒀다. 후배가 자라 또 다른 후배에게 무대와 기회를 만들어줄 때 느끼는 기쁨도 같았다. 교육을 통해 남기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제 모델을 꿈꾸는 청년에게 양의식은 자신을 관찰하고, 간절함을 실제 준비로 옮기라고 말한다. 작은 일에서도 신뢰를 쌓되, 꿈이 간절하다는 이유로 부당한 요구까지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는 당부도 덧붙였다. 기회를 찾는 마음만큼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일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는 지금도 아시아 각국에서 만나는 모델 지망생들의 눈빛에서 서울행 기차표를 들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랐던 청년의 기억은, 누군가의 출발을 돕는 일을 계속하게 하는 이유로 남아 있다.
한때 자신의 이름이 담길 프로필을 준비하던 사람이 이제는 후배가 설 무대를 준비한다. 모델로 남고 싶었던 양의식이 넓혀온 길에는, 그렇게 다음 사람의 자리가 하나씩 더해지고 있다.
김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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