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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가 김현정이 그린 한국의 초상⑱] 우리는 왜 물을 들고도 마시지 못하는가

김연수 기자
2026-06-12 10:5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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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가 김현정이 그린 한국의 초상⑱] 우리는 왜 물을 들고도 마시지 못하는가 (김현정, 〈내숭: 갈증, 오아시스를 찾아〉, 190x120cm,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쥬, 2013. 출처: 김현정 아트센터)


한국 사회는 심판으로 가득하다. 성과를 평가하고, 속도를 비교하고, 태도를 채점한다. 학교에서는 점수가, 회사에서는 실적이, SNS에서는 반응이 사람을 판단한다. 누구나 빠르게 판정하고, 더 정확하게 분석하며, 뒤처지지 않기 위해 자신의 하루를 관리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장 가까운 신호는 자주 놓친다. 목이 마른데도 참고, 피곤한데도 버티고, 쉬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오면 곧바로 죄책감이 따라온다. 우리는 타인의 경기는 잘 보지만, 자기 삶의 중단 신호는 좀처럼 듣지 못한다.

〈내숭: 갈증, 오아시스를 찾아〉는 그 모순을 높은 심판 의자 위에 올려놓은 작품이다. 화면 속 내숭녀는 초록색 차양이 달린 심판 의자에 앉아 있다. 경기장을 내려다보는 권위의 자리다. 검은 상의와 반투명한 한복 치마를 입고, 한 손에는 공을 안고 있으며, 다른 한 손으로는 커다란 생수병을 입에 대고 있다. 얼핏 보면 격렬한 경기를 마친 뒤 물을 들이켜는 장면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생수병의 뚜껑은 닫혀 있다. 마시는 듯하지만 마시지 못한다. 갈증을 해결하는 장면이 아니라, 갈증을 해결하는 척하는 장면이다.

이 닫힌 뚜껑이 작품의 핵심이다. 물은 손에 있다. 입에도 닿아 있다. 필요한 것은 아주 작은 행동, 뚜껑을 여는 일뿐이다. 그런데 그 사소한 행동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장면이 우스우면서도 불편한 이유는 우리의 일상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쉬지 못하고, 돌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을 돌보지 못한다. 괜찮다고 말하지만 괜찮지 않고, 마시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목마른 채로 버틴다. 닫힌 생수병은 자기 돌봄을 끝없이 유예하는 현대인의 초상이다.

심판 의자는 이 모순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 심판은 경기를 멈출 수 있는 사람이다. 반칙을 선언하고, 휴식 시간을 알리고, 다시 시작할 순간을 판단한다. 그런데 정작 그 자리에 앉은 인물은 자기 갈증 하나 해결하지 못한다. 타인에게는 규칙을 적용할 수 있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쉬어도 된다는 판정을 내리지 못한다. 이 아이러니가 오늘의 삶을 찌른다. 우리는 모두 자기 삶의 심판이어야 한다고 배웠지만, 실제로는 자기 자신에게 가장 가혹한 관객이 되어버렸다.

〈내숭올림픽〉의 심판 의자 시리즈 안에서 이 작품이 붙잡고 있는 것은 승부가 아니라 갈증이다. 올림픽은 인간의 한계를 겨루는 무대다. 더 빠르게, 더 높이, 더 강하게. 그러나 삶이 매일 경기처럼 운영될 때, 사람은 결국 지친다. 문제는 지쳤다는 사실보다, 지쳤다고 말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한국 사회는 오래도록 성실함을 미덕으로 삼아왔다. 참고 견디는 사람을 칭찬했고, 쉬어가는 사람에게는 은근한 불안을 안겼다. 잠시 멈추면 뒤처질 것 같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무능한 사람처럼 느껴지는 사회. 그 속에서 갈증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언어가 된다.

한복과 심판 의자, 생수병과 공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사물들이다. 그러나 바로 그 어긋남이 지금의 풍속을 만든다. 반투명한 한지 치마는 단아한 외피처럼 보이지만, 그 안쪽의 몸과 의자의 구조를 은근히 드러낸다. 숨기려 해도 드러나는 피로, 점잖아 보이지만 사실은 지친 몸, 물을 마시는 척하지만 여전히 닫혀 있는 병. 〈내숭 시리즈〉가 오래 붙잡아 온 겉과 속의 간극은 여기서 갈증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내숭은 단순히 얌전한 척하는 태도가 아니다. 괜찮지 않으면서 괜찮은 척하는 시대의 표정이다.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이 작품을 그렸다. 사막은 메마른 곳이지만, 그 메마름 속 어딘가에 물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견딜 수 있다. 삶도 그렇다.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거창한 성취만이 아니다. 잠깐의 그늘, 한 모금의 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다시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는 짧은 순간이 사람을 버티게 한다. 그런데 우리는 오아시스를 찾는 법보다 사막을 오래 견디는 법만 배워왔다. 더 참는 법, 더 버티는 법, 더 잘하는 법은 익숙하지만, 멈추는 법은 낯설다.

그래서 이 작품은 단순히 쉬자는 말로 끝나지 않는다. 더 깊은 질문과도 연결된다. 휴식은 왜 늘 보상이어야 하는가. 자기 돌봄은 왜 성취를 마친 뒤에야 허락되는가. 목이 마른 사람이 물을 마시는 일조차 왜 이렇게 미루어지는가.

우리의 문제는 물이 없는 것이 아니다. 뚜껑을 열지 않는 것이다. 오아시스는 멀리 있는 낙원이 아닐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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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가 김현정이 그린 한국의 초상⑱] 우리는 왜 물을 들고도 마시지 못하는가 (출처: 김현정 아트센터)


한국화가 김현정은 선화예중·예고를 거쳐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동양화과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박사 학위를 취득할 예정이다. 21세기 풍속도 〈내숭 시리즈〉로 널리 알려졌으며, 다수의 개인전과 전시 작품 완판, 6만 7400명의 국내 개인전 최다 관람객 기록 등으로 화제를 모았다. 작품은 초·중·고 교과서 25종에 수록되어 있으며, 현재 서울시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30만 팔로워와 소통하며 국내외 전시와 강연을 통해 한국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장하고 있다.

글_김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