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사회에서는 나이가 알려지는 순간 함께 따라붙는 질문들이 있다. 스무 살 무렵에는 대학을 묻고, 졸업할 때쯤에는 취업을 묻고, 20대 후반이 되면 결혼을 묻는다. 이상한 점은 그 질문이 한 사람의 구체적인 삶에서 출발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연애를 하고 있는지,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지, 어떤 삶을 원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이가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결혼 언제 하니”라는 질문이 너무 쉽게 도착한다. 상대의 안부를 묻는 말처럼 보이지만, 실은 사회가 정해 둔 생애 시간표를 확인하는 말이다.
20대 후반이 되면서 필자가 가장 자주 들었던 질문도 결혼 계획이었다. 남자친구를 소개한 적도, 결혼 계획을 말한 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나이 하나만으로 결혼은 당연히 다음 순서처럼 호명되었다. 여기에는 한국 사회 특유의 생활 감각이 있다. 결혼을 개인의 선택으로 말하면서도, 일정한 나이에 도달하면 선택 이전에 의무처럼 묻는다. 묻는 사람들도 모두 악의를 품고 있는 것은 아니다. 걱정해서 묻고, 익숙해서 묻고, 필자를 사랑한다고 생각해서 묻는다. 그러나 선의가 담긴 말이라도 반복되면 압력이 된다. 문제는 그 질문이 아무렇지 않게 허용되는 문화다.
그 문제의식은 개인전 〈계란 한 판, 결혼할 나이〉로도 이어졌다. ‘계란 한 판’은 서른을 가리키는 한국식 농담이다. 요즘은 한 판에 계란이 몇 알인지조차 예전만큼 익숙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지만, 이상하게도 ‘계란 한 판’이 서른 살을 뜻한다는 문화적 감각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 표현은 가볍고 우스워 보이지만, 그 안에는 “이제 결혼을 생각해야 할 나이”라는 사회적 압박이 함께 들어 있다. 나이를 계란 개수에 빗대어 웃고 넘기는 사이, 한 사람의 삶은 어느새 결혼이라는 다음 단계로 밀려난다. 그래서 〈계란 한 판, 결혼할 나이〉라는 제목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다. 나이를 세는 한국 사회의 방식, 그리고 그 숫자에 결혼과 출산의 기대를 덧씌워 온 문화를 드러내는 장치다.
한복 그림이라는 형식과 명절이라는 시기가 맞물릴 때, 이 질문은 더 선명해진다. 명절 밥상에서 가장 쉽게 오가는 말이 바로 결혼과 출산이기 때문이다. 전시장은 작품을 조용히 보는 장소를 넘어, 그동안 사적인 자리에서 흘러나오던 질문들을 공적인 대화의 장으로 옮기는 공간이 될 수 있었다. “결혼 언제 하니”라는 말이 던져지는 방식, 그 말을 듣는 마음, 그 말을 하는 세대의 불안까지 함께 꺼내 놓고자 한 것이다. 사적인 잔소리처럼 흩어지던 말들이 작품 앞에서는 하나의 사회적 질문이 된다.
작품은 미켈란젤로의 유명한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구도를 차용한다. 국내에서는 흔히 이 장면을 〈천지창조〉라고 부르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 한 장면의 공식 명칭은 〈아담의 창조〉에 가깝다. 바티칸 미술관은 이 장면을 ‘Creation of Adam’으로 소개하며, 창조주의 손가락과 아담의 손가락이 맞닿는 지점이 생명의 숨이 전달되는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시스티나 성당 천장 중앙부에는 창세기의 여러 장면이 이어져 있고, 그중 하나가 바로 〈아담의 창조〉다. 따라서 한국에서 이 장면을 통칭해 〈천지창조〉라고 부르는 관습은 넓은 의미의 창조 서사를 가리키는 표현에 가깝지만, 작품의 정확한 장면은 ‘신이 인간에게 생명을 주는 순간’이다.
바로 이 지점이 〈결혼: 천지차이〉와 맞닿는다. 원작에서 오른쪽은 신의 영역이다. 신은 천사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왼쪽의 아담을 향해 손을 뻗는다. 그 손끝은 생명의 전달이자 인간이 세계 안으로 들어오는 결정적 순간이다. 〈결혼: 천지차이〉는 그 장면을 빌려 묻는다. 한국 사회에서 결혼은 여성에게 어떤 생을 건네는가. 축복인가, 역할인가, 혹은 그 둘이 뒤엉킨 복합적인 질서인가.
반면 오른쪽은 결혼 후 여성의 세계다. 원작의 신의 영역을 빌린 이 공간에는 활옷을 입은 여성이 등장한다. 풍속화 속 인물들은 원작의 천사 자리를 대신하며, 결혼이 두 사람만의 사건이 아니라 가족과 가족의 결합으로 작동해 온 한국적 현실을 보여준다. 고무장갑, 젖병은 결혼 이후 여성에게 자연스럽게 부여되는 역할들을 상징한다. 아내, 며느리, 엄마라는 이름은 축복의 말처럼 들리지만, 동시에 가사노동과 돌봄, 출산과 양육의 의무를 동반한다. 한쪽 화면의 명품 가방이 자기 선택의 세계라면, 다른 쪽 화면의 고무장갑은 생활이 요구하는 반복 노동의 세계다.
두 세계를 가르는 것은 손끝이다. 원작에서 신과 아담의 손끝은 생명의 탄생을 상징하지만, 이 작품에서 손끝은 결혼 전후의 삶이 갈라지는 경계가 된다. 닿기 전과 닿은 후, 여성의 위치는 달라진다. 결혼 전에는 한 사람의 취향과 가능성이 먼저 보이지만, 결혼 후에는 가족 안에서 수행해야 할 역할이 먼저 호출된다. 물론 결혼이 곧 불행이라는 뜻은 아니다. 문제는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너무 많은 기대가 여성에게 자동으로 배정된다는 데 있다. 사랑은 둘이 시작하지만, 살림과 돌봄의 세부 항목은 여전히 한쪽에게 더 많이 쌓인다. 그 차이가 바로 이 작품의 제목처럼 ‘천지차이’다.
오른쪽 화면에 숨어 있는 출산의 장면은 이 문제를 더 오래된 시간으로 끌고 간다. 아들을 낳은 여인 곁의 금줄은 전통적 출산 관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이 장면은 단지 옛 풍습의 재현이 아니다. 여기에는 필자의 탄생을 둘러싼 가족사의 기억이 스며 있다. 당시에는 이미 초음파를 통해 태아가 여자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12시가 넘어 태어나면 남자일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이는 실제로 12시가 넘어 태어났다. 그러나 여자아이였다. 그 말을 들은 할머니는 화를 내며 얼굴도 보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웃으며 넘길 수 있는 가족 일화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그 안에는 딸의 탄생을 실망으로 받아들이던 시대의 공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 일화는 한 가족의 특이한 사건에 머물지 않는다. 남아선호는 오랫동안 한국 사회의 가족질서 안에서 작동해 왔다. 아이의 탄생은 한 생명의 시작이기 전에 가문의 기대, 성별의 평가, 가족의 체면과 연결되곤 했다. 딸로 태어나는 일은 누군가에게 실망이 되기도 했고, 아들을 낳는 일은 여성의 책임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출산은 여성이 감당하는 신체의 사건인데, 그 결과에 대한 평가는 가족과 사회가 나누어 가졌다. 〈결혼: 천지차이〉의 금줄은 바로 그 모순을 환기한다. 생명을 맞이하는 기쁨의 장치이면서도, 동시에 성별에 따라 환대의 온도가 달랐던 시대의 흔적이다.
〈내숭 시리즈〉는 이처럼 겉과 속의 간극을 드러낸다. 한복은 단아하고, 화면은 화려하며, 명화의 구도는 익숙하다. 그러나 그 안에 놓인 사물들은 결코 고상한 장식이 아니다. 명품 가방은 욕망을, 고무장갑은 노동을, 젖병은 돌봄을, 금줄은 출산과 성별의 기억을 불러낸다. 한지와 수묵담채, 콜라주가 만드는 반투명한 표면은 한국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해 온 ‘괜찮은 척’의 표정과 닮아 있다. 겉으로는 축하받는 결혼이지만, 그 안에는 감당해야 할 현실의 목록이 촘촘히 들어 있다.
결국 이 작품은 “결혼 언제 하니”라는 질문을 다시 사회에 돌려준다. 정말 물어야 할 것은 일정이 아닐지 모른다. 결혼을 하면 한 사람의 삶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결혼 이후에도 개인의 욕망과 취향은 존중되는가. 출산과 돌봄은 누구의 책임으로 배분되는가. 딸의 탄생을 실망으로 받아들이던 시대는 정말 끝났는가. 한국 사회가 결혼을 축복이라 부르고 싶다면, 결혼이 일방의 희생 위에 세워지지 않도록 먼저 물어야 한다.
〈결혼: 천지차이〉의 두 손끝은 아직 완전히 닿지 않았다. 그 미세한 틈에는 결혼을 둘러싼 오래된 질문과 새로운 가능성이 함께 놓여 있다. 결혼은 언제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삶을 함께 만들 것인가의 문제다. 나이 하나만으로 던져지는 질문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 전체를 존중하는 질문으로 바뀌어야 한다. 신의 손끝이 생명을 건네는 장면을 빌려, 이 작품은 묻는다. 우리는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에게 무엇을 건네고 있는가.
〈결혼: 천지차이〉는 약 4미터 규모의 대작과 100호 규모의 선행 작업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100호 작업은 작다고 하기에는 충분히 큰 화면이지만, 4미터 대작을 완성하기 전 구도와 서사를 미리 실험한 작업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100호 작품은 현재 갤러리 UHM에서 지난 5월6일부터 오는 5월20일까지 전시된다.

한국화가 김현정은 선화예중·예고와 서울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대 한국인의 삶과 감정을 유머와 풍자로 풀어낸 21세기 풍속도 〈내숭 시리즈〉로 널리 알려졌으며, 이를 통해 한국 사회의 모습을 ‘한국의 초상’이라는 시선으로 그려 왔다. EBS ‘해요화 해요서 댕기언니로 활동했으며 서울시와 희망브릿지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30만 팔로워와 소통하며 국내외 전시와 강연을 통해 한국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글_김현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