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한국화가 김현정이 그린 한국의 초상⑭] 이 그림 속 3000원, 지금은 얼마일까

김연수 기자
2026-05-15 10:00:02
기사 이미지
[한국화가 김현정이 그린 한국의 초상⑭] 이 그림 속 3000원, 지금은 얼마일까 (김현정, <내숭: 환상의 떡볶이>, 111x160cm,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쥬, 2016. / 출처: 김현정 아트센터)


강남의 밤은 밝다. 간판은 쉬지 않고 빛나고, 사람들은 늦은 시간까지 이동하며, 도시는 지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불빛 아래를 걷는 사람들의 속은 자주 비어 있다. 퇴근길의 피로, 약속 사이의 허전함, 혼자 버틴 하루의 긴장이 목 안쪽에 남는다. 그럴 때 한국인은 길거리의 붉은 양념 앞에서 무장해제된다. 떡볶이는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도시가 허락한 즉각적인 위로다.

〈내숭: 환상의 떡볶이〉는 바로 그 위로의 장면을 그린 작품이다. 화면 속 여성은 한복을 입고 포장마차 앞에 서 있다. 진한 분홍 저고리와 반투명한 먹빛 치마는 단아하면서도 강렬하다. 그러나 그의 손에 들린 것은 격식 있는 다과상이 아니라 떡볶이 접시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꼬치에 꽂힌 떡볶이를 입에 가져간다. 뒤편에는 ‘환상의 떡볶이’라는 간판과 메뉴판이 선명하다. 떡볶이 1인분 3,000원, 순대 1인분 3,000원, 튀김·김밥 5개 3,000원, 오뎅 1개 700원. 가격과 글자까지 그대로 남았다. 이 그림은 맛을 그린 동시에 시대를 기록한다.

이 작품의 중요한 힘은 ‘가장 한국적인 것’을 박물관의 유물에서 찾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한국적인 것은 반드시 오래된 궁궐, 고서화, 전통 문양 안에만 있지 않다. 퇴근길 포장마차 앞에서 떡볶이를 먹는 장면, 순대와 튀김을 함께 시키고 어묵 국물을 마시는 습관, 매운맛으로 하루의 스트레스를 눌러 삼키는 생활감 속에도 한국적인 정서는 살아 있다. 한복을 입은 인물이 길거리 음식을 먹는 장면은 낯설지만 동시에 이상하리만큼 익숙하다. 전통과 현대가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의 일상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메뉴판의 숫자는 이 작품을 더 특별하게 만든다. 떡볶이 1인분 3,000원이라는 가격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다. 2016년에 작업된 이 그림 속 3,000원짜리 떡볶이는 벌써 옛말이 되었다. 당시에는 자연스러웠던 가격이 시간이 지나며 한 시대의 물가와 생활 감각을 증언하는 기록이 된 것이다. 훗날 이 그림을 보는 사람은 “그때는 떡볶이가 3,000원이었구나”라고 말하게 될지 모른다. 그 말에는 물가에 대한 감각만이 아니라, 학생들의 간식값, 퇴근길의 허기, 주머니 사정에 맞춰 고르던 길거리 음식의 기억이 함께 담긴다. 회화가 한 시대를 기록하는 방식은 꼭 거대한 사건을 그리는 데 있지 않다. 때로는 메뉴판 위 작은 숫자 하나가 훨씬 정확하게 시대를 증언한다.

가격만이 기록은 아니다. 자세히 보면 포장마차 특유의 생활 방식이 곳곳에 남아 있다. 떡볶이와 순대가 담긴 그릇은 비닐로 한 번 감싸져 있다. 설거지를 줄이기 위한 포장마차의 현실적인 방식이다. 냅킨은 손님이 쉽게 뽑아 쓸 수 있도록 걸려 있고, 조명에도 비닐이 씌워져 있다. 튀김 기름이 튀거나 음식 냄새와 습기가 묻는 것을 막기 위한 생활의 장치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풍경일 수 있지만 바로 이런 사소함이야말로 이 작품을 21세기 풍속도로 만든다. 조선 후기 풍속화가 장터와 주막, 놀이와 노동의 장면을 기록했다면, 오늘의 풍속은 강남역 밤거리의 포장마차, 비닐로 감싼 접시, 기름을 피해 감싼 조명, 걸려 있는 냅킨 한 묶음 속에 있다.

뒤편의 밤거리는 흐릿한 불빛으로 처리되어 있다. 강남의 네온사인과 자동차 불빛은 동그란 빛의 흔적으로 번지고, 그 앞의 포장마차와 인물은 또렷하게 서 있다. 이 대비가 작품의 정서를 만든다. 도시는 멀리서 보면 화려하지만 그 안에 들어가면 피곤하다. 반대로 포장마차는 소박하지만 그 앞에서는 마음이 선명해진다. 흐릿한 도시의 불빛과 선명한 떡볶이의 붉은색 사이에서 보는 사람은 한국 도시인의 밤을 본다. 화려하지만 공허하고 바쁘지만 허기진 시간. 그리고 그 시간을 버티게 하는 값싼 음식의 힘이다.

떡볶이의 붉은 양념은 이 작품에서 감정의 색처럼 보인다. 맵고 달고 끈적한 맛은 한국인의 생활 감각과 깊이 닿아 있다. 슬플 때도 먹고 스트레스 받을 때도 먹고 친구와 수다를 떨 때도 먹는다. 고급 레스토랑의 음식처럼 특별한 날을 기념하지 않아도 된다. 떡볶이는 오히려 특별하지 않은 날의 음식이다. 그래서 더 강하다. 실패한 하루에도, 지친 하루에도, 별일 없던 하루에도 곁에 있다. 〈내숭: 환상의 떡볶이〉 속 인물이 무심하게 떡볶이를 먹는 모습은 바로 그 일상의 힘을 보여준다. 큰 위로가 아니라 작은 위로, 멋진 말이 아니라 매운 한 입이다.

여기서 ‘내숭’은 다시 한 번 작동한다. 한복은 격식과 단정함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인물은 그 격식의 옷을 입고 가장 서민적이고 노골적인 음식을 먹는다. 입가에 양념이 묻을 수도 있고 체면을 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표정은 태연하다. 겉으로는 단아하지만 속으로는 먹고 싶은 것을 향해 곧장 움직이는 마음, 바로 그 어긋남이 내숭이다. 이 내숭은 위선이 아니라 인간적인 균열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품위와 몸이 원하는 욕망 사이에서 사람은 늘 조금씩 흔들린다. 그리고 그 흔들림이야말로 가장 솔직한 얼굴일 수 있다.

작품 속 포장마차 주인의 존재도 중요하다. 그는 배경의 일부가 아니라 이 시대 풍속의 증인이다. 분홍 앞치마를 두르고 음식 앞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은 거리의 노동을 보여준다. 누군가에게 떡볶이는 위로지만, 누군가에게 그것은 생계이고 노동이다. 도시의 밤은 먹는 사람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늦은 시간까지 불을 켜고 기름을 달구고 양념을 끓이는 사람들이 있다. 먹는 사람, 파는 사람, 지나가는 도시의 불빛이 한 화면 안에서 함께 시대를 이룬다.

이 작품은 실제 강남역 인근 포장마차를 모델로 삼고 실제 상호와 가격을 화면 안에 남겼다. 작품의 모델이 된 포장마차 주인에게 작품집과 전시 티켓을 전했다. 그림은 현실을 가져와 화면에 담고 다시 그 현실의 사람에게 돌아간다. 예술이 삶을 관찰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삶과 다시 관계를 맺도록 하고 싶었다. 미술관 안의 그림과 길거리 포장마차는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하지만 이 작품 안에서는 같은 세계에 속한다.

필자는 이 그림에 떡볶이를 먹는 한 여성의 모습만 담은 것이 아니다. 한국 사회가 무엇으로 위로받아 왔는지를 담고 싶었다. 값비싼 것만이 시대를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3,000원짜리 떡볶이 한 접시가 더 많은 것을 말할 때가 있다. 청춘의 주머니 사정, 퇴근길의 피로, 친구와 나눠 먹던 기억, 매운맛으로 하루를 넘기던 밤들. 그 모든 것이 이 붉은 접시 위에 놓여 있다.

강남의 밤은 여전히 화려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바쁘다. 그러나 그 사이에서 누군가는 오늘도 포장마차 앞에 선다. 잠깐 멈춰 서서 떡볶이를 먹고, 어묵 국물을 마시고,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도시 속으로 걸어간다. 그 짧은 멈춤이야말로 한국인의 생활을 지탱해 온 작은 의식인지도 모른다. 2016년의 메뉴판 속 3,000원은 지나간 가격이 되었지만, 그 앞에서 받았던 위로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작품은 현재 갤러리 UHM에서 오는 5월20일까지 전시된다.

기사 이미지
[한국화가 김현정이 그린 한국의 초상⑭] 이 그림 속 3000원, 지금은 얼마일까 (출처: 김현정 아트센터)

한국화가 김현정은 선화예중·예고와 서울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대 한국인의 삶과 감정을 유머와 풍자로 풀어낸 21세기 풍속도 〈내숭 시리즈〉로 널리 알려졌으며, 이를 통해 한국 사회의 모습을 ‘한국의 초상’이라는 시선으로 그려 왔다. EBS ‘해요와 해요’서 댕기언니로 활동했으며 서울시와 희망브릿지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30만 팔로워와 소통하며 국내외 전시와 강연을 통해 한국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글_김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