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요의 시대라고 말하지만, 오늘의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감정은 풍요보다 결핍에 더 가깝다. 냉장고는 비어 있지 않고, 온라인 장바구니는 늘 채워져 있으며, 하루 일정은 숨 돌릴 틈 없이 빽빽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꾸 부족하다고 느낀다. 더 사야 안심이 되고, 더 해야 뒤처지지 않을 것 같고, 이미 손에 쥔 것이 많은데도 하나쯤 더 붙들어야 삶이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여긴다. 문제는 결핍 그 자체보다 결핍감이다. 충분한데도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게 만드는 시대, 바로 그 모순이 지금 한국인의 일상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한다.
이 대비는 단순한 조형적 장치가 아니다. 오른쪽의 화려한 카트는 오프라인 소비가 주는 즉각적인 쾌락을 상징한다. 마트는 어른들의 놀이공원이다. 잘 정리된 진열대와 시식의 유혹, 필요한 것보다 갖고 싶은 것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구조 속에서 소비는 구매가 아니라 놀이처럼 작동한다. 반면 왼쪽의 먹빛 카트는 온라인 소비의 심리를 드러낸다. 클릭 몇 번으로 담을 수 있고, 결제하지 않아도 이미 가진 듯한 착각을 주는 가상의 장바구니. 끝없이 담기지만 실체는 희미하고, 편리하지만 그만큼 경계도 흐려진다. 그래서 먹으로 표현된 물건들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끝없이 증식하는 욕망의 잔상처럼 보인다. 보이는 풍요와 보이지 않는 공허가 한 쌍의 화면 안에 동시에 놓인 것이다.
작품의 제목에 붙은 ‘달콤한 속삭임’은 그래서 정확하다. 소비는 언제나 명령이 아니라 유혹의 형태로 다가온다. 필요하다고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괜찮다고, 이 정도는 누려도 된다고, 지금의 피로를 위로받을 자격이 있다고 속삭인다. 문제는 그 속삭임이 너무 다정해서 쉽게 거부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렇게 하나를 담고, 또 하나를 담다 보면 어느 순간 차가운 경고음이 울린다. ‘한도 초과.’ 작품은 바로 이 순간에 주목한다. 욕망은 늘 따뜻한 얼굴로 시작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차가운 언어로 끝난다. 달콤한 감정의 끝에서 맞닥뜨리는 것은 만족이 아니라 계산서이고, 설렘의 끝에서 확인되는 것은 충만이 아니라 압박이다.
이 작품이 깊은 울림을 준다면 그것은 쇼핑만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카트는 물건을 담는 수레이면서 동시에 삶 전체를 실어 나르는 장치다. 이미 일이 가득 차 있는데도 또 다른 일을 붙들고, 일정이 숨 막히게 채워져 있는데도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몸이 지쳤는데도 멈추지 못하는 삶. 오늘의 한국인은 물건만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체력, 감정과 관계,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 소비한다. 더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압박, 더 바빠야 성실해 보인다는 분위기, 비어 있는 시간을 불안으로 읽는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삶의 카트를 끌고 간다. 그리고 그 카트가 무거워질수록 이상하게도 안심보다 초조가 더 커진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내숭〉이라는 제목이 빛을 발한다. 겉으로는 화려하고 풍성해 보인다. 카트는 가득 차 있고, 선택지는 넘쳐나며, 삶은 분주하게 굴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표면 아래에는 멈추지 못하는 불안이 있다. 충분한데도 부족하다고 느끼고, 이미 벅찬데도 더 담아야 할 것 같은 강박이 있다. 여기서 내숭은 단순한 여성적 제스처가 아니다. 괜찮은 척하는 시대의 표정에 가깝다. 다들 잘 굴러가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도에 가까워진 채 겨우 버티고 있는 상태. 이 작품은 그 모순을 한복 입은 인물과 쇼핑 카트라는 익숙한 조합으로 유머러스하게 보여주지만, 그 웃음 끝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현실이 남는다.
〈내숭: 달콤한 속삭임(feat. 한도초과)〉은 그래서 소비사회를 비판하는 그림이면서 동시에 과로 사회에 대한 자화상이기도 하다. 카트 안에 담긴 것은 과자와 식료품만이 아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 뒤처지지 않으려는 조바심, 쉬고 싶지만 쉴 수 없는 현실, 이미 충분한데도 더 해야 한다고 믿는 오래된 강박이 함께 실려 있다. 화려한 색채와 먹빛의 대비는 단지 시각적 효과가 아니라, 쾌락과 허무, 충동과 자각, 풍요와 결핍이 한 몸처럼 맞물린 시대의 구조를 드러낸다.
결국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정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물건과 더 많은 기회일까. 아니면 이미 넘치게 실린 카트 앞에서 잠시 멈춰 서서, 무엇이 필요한지 다시 묻는 감각일까. 달콤한 속삭임은 언제나 가까이 있다. 하지만 삶을 지키는 것은 더 담는 능력이 아니라, 이제는 그만 담아도 된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아닐까.

한국화가 김현정은 선화예중·예고와 서울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대 한국인의 삶과 감정을 유머와 풍자로 풀어낸 21세기 풍속도 〈내숭 시리즈〉로 널리 알려졌으며, 2013년 개인전 〈내숭 이야기〉를 시작으로 〈내숭올림픽〉, 〈내숭놀이공원〉까지 큰 주목을 받았다. 2016년 개인전은 국내작가 개인전 최다 관람객 6만7402명을 기록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 최연소 작가로 초청되고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초대 개인전을 열었다. 2017년 포브스가 선정한 ‘아시아에서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30인’에 이름을 올렸고, 작품은 초·중·고 교과서 25종에 수록되었다. EBS ‘해요와 해요’서 댕기언니로 활동했으며, 강연과 전시, SNS를 통해 한국화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김연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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