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등룡 DR뮤직 대표는 1세대 한류 제작자다. 한국의 음악을 해외에 알리기 위해 여러 나라를 오갔다. 한류 초창기에는 자신이 비행한 거리가 지구 스무 바퀴쯤 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를 움직인 것은 한류의 지도를 그린다는 사명감이었다.
그 바탕에는 한국 가수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국내에서 얻은 반응만으로 한 팀의 미래를 정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나라에도 그 음악을 좋아할 관객이 있을 수 있었다. 베이비복스와 함께 아시아로 향했던 선택도 그 믿음에서 이어졌다.
해외 공연에서 지금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순간이 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관객들이 자신이 제작한 가수에게 환호할 때다. 한국에서 준비한 노래를 먼 나라의 사람들이 좋아한다. 무대 위의 가수와 객석의 관객이 같은 순간에 기뻐한다.
그 환호 속에는 한국의 음악을 알아봐 준 데 대한 고마움도 있다. 한 가수의 노래를 좋아하는 마음은 그 가수가 온 나라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 윤 대표가 품었던 사명감은 이런 만남에서 구체적인 모습이 된다.
앞서 걸어간 길의 의미는 시간이 흐른 뒤에도 돌아왔다. 베이비복스가 개척한 아시아 시장에서 후배들이 활동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다. 그는 자신들이 걸어온 길이 틀리지 않았다고 느낀다. 함께 열었던 무대가 다음 세대의 기회로 이어진다는 사실이 오랜 수고에 답이 됐다.

K타이거즈의 활동은 나태주와의 인연으로도 이어졌다. 윤 대표는 K타이거즈 제로의 음반 제작에 참여했다. 나태주는 이 팀의 리드보컬로 활동했다. 이후 2020년 ‘미스터트롯’에서 태권도와 트로트를 결합해 주목받았다.
두 사람의 인연은 그 뒤에도 이어졌다. 나태주는 2024년 윤 대표가 이끄는 DR뮤직에 둥지를 틀었다. DR뮤직은 그전부터 그의 활동을 지원해온 곳이다. 팀의 무대에서 함께했던 가수와 제작자가 솔로 활동에서도 호흡을 이어간 것이다.
나태주의 무대에는 한국의 무예인 태권도와 트로트가 함께한다. 절도 있는 동작에 노래의 흥이 더해진다. 태권도를 보러 온 관객은 노래를 새롭게 듣는다. 노래를 들으러 온 관객은 태권도의 매력을 만난다. 한국 문화가 가진 여러 모습을 한 무대에서 전하는 방식이다.
그 길에 늘 좋은 결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경력이 쌓여도 어려움은 찾아온다. 처음 겪는 문제 앞에서는 다시 판단해야 한다. 그럴 때마다 윤 대표가 마음에 새기는 말이 있다.
“위기는 기회라는 놈과 늘 같이 온다.”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위기가 왔다고 다음 가능성까지 닫아두지는 않겠다는 태도다. 지나온 일을 돌아보면서도 앞으로 할 일을 함께 떠올린다. 이미 해본 일의 성과에 머무르지 않고 다시 시도할 이유를 찾는다.
제작자로서 느끼는 보람은 아티스트의 삶에도 닿아 있다. 함께 일한 이가 자신의 힘으로 생활을 꾸리고 가족에게 보탬이 된다. 음악을 하며 쌓은 시간이 일상을 지탱할 힘이 된 것이다. 그에게는 함께한 사람이 잘 살아가는 모습도 오래 남는 기쁨이다.
받은 사랑을 나누는 데에도 그가 지켜온 원칙이 있다. “사랑받는 만큼 돌려준다.”
한국의 음악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을 만났다면 고마움도 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지에서 얻은 관심이 커질수록 그곳에 무엇을 보탤 수 있을지 돌아봤다. 음악을 알리는 일과 마음을 나누는 일을 함께 두었다.
중국에서는 교육을 돕는 활동에 참여했다. 베이징 인근 시골 마을에 전산학교 두 곳을 짓는 일도 했다. 병마와 싸우는 팬을 도왔고, 태국에서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지원과 쓰나미 피해 돕기에 나섰다. 캄보디아의 고아원에서도 봉사했다.
공연장 밖에도 그가 기억하는 얼굴들이 있다. 한국의 가수를 반겨준 나라에는 음악을 좋아하는 팬이 살고 있었다. 도움이 필요한 이웃도 있었다. 관객에게 받은 고마움은 그들이 살아가는 곳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태국의 참전용사를 돕는 일은 오래된 인연을 되새기는 일이기도 하다. 오늘 한국의 노래를 반겨주는 나라에서 한국의 어려운 시절에 손을 내밀었던 이들을 만난다. 지금 받은 사랑과 오래전 받은 도움을 함께 기억하는 것이다.
그가 돌아보는 해외 활동에는 이런 만남이 나란히 남아 있다. 공연을 마쳤다고 그 나라와의 관계가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다시 찾아갈 무대가 생겼고, 고마움을 전할 사람도 생겼다. 여러 나라를 오간 시간이 사람 사이의 인연으로 쌓였다.

지금 함께하는 블랙스완에도 한국과의 인연이 담겨 있다. 파투는 벨기에, 앤비는 미국, 스리야는 인도 국적이다. 가비는 브라질과 독일의 이중국적을 갖고 있다. 서로 다른 곳에서 자란 네 사람이 K팝이라는 공통의 꿈으로 한국에서 만났다.
스리야와 가비, 앤비는 글로벌 오디션을 거쳐 합류했다. 한국어를 배우고 노래와 춤을 익히며 한 팀의 무대를 준비했다. 국적을 넘어 만난 뒤에는 서로의 호흡을 맞추는 시간이 필요했다. 각자의 꿈으로 시작한 도전이 함께하는 일상이 됐다.
그 만남에는 팬이 동료가 된 사연도 있다. 가비와 앤비는 합류 전부터 블랙스완을 응원했다. 파투의 SNS에 응원 댓글을 남긴 적도 있었다. 파투는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눈물이 날 뻔했다고 전했다. 화면 너머에서 힘을 보내던 이들과 이제 한 무대에 서게 된 것이다.
멤버들의 국적에는 한국과의 오래된 역사도 담겨 있다. 미국과 벨기에는 한국전쟁에 병력을 보냈다. 인도는 의료진을 파견했다. 가비가 국적을 가진 독일 역시 의료지원국이다. 정전 이후인 1954년부터 부산에서 의료활동을 펼쳤다.
블랙스완은 2024년 전쟁기념사업회 굿윌앰버서더로 위촉됐다. 멤버들은 전쟁기념관을 찾아 무명용사의비 앞에서 묵념했다. 한국의 음악을 좋아해 찾아온 청년들이 한국이 지나온 시간에도 관심을 기울인 것이다.
오래전 한국을 도왔던 나라들의 국적을 지닌 이들이 한국의 노래를 부른다. 그 모습을 통해 지난 인연을 돌아볼 수 있다. 음악으로 시작된 관심에 서로의 역사를 이해할 계기가 더해진다. 오늘의 만남을 조금 더 깊게 바라보게 하는 장면이다.
한류의 풍경도 달라졌다. 한국의 가수가 해외 관객을 찾아가던 길로, 이제는 해외의 청년들이 자신의 꿈을 찾아 들어온다. 윤 대표는 블랙스완과 같은 글로벌 그룹을 통해 K팝의 영역을 넓히는 것을 남은 소임으로 여긴다.
그에게는 이들이 앞으로 들려줄 음악도 중요하다. 다른 배경을 가진 멤버들이 목소리와 움직임을 맞춰야 한다. 관객을 다시 만나기 위해 다음 노래도 준비해야 한다. 오랜 제작 경험은 새로운 세대와 함께할 일로 이어지고 있다.

윤 대표는 개척 정신을 잃지 않는 제작자로 남고 싶어 한다. 아티스트들에게는 ‘친구 같은 제작자’이고 싶다. 새로운 일을 함께할 때 믿을 수 있고, 함께 일하던 때가 지나도 편하게 마주할 수 있는 사람이다.
오래 함께한 아티스트를 떠올리는 마음에는 기쁨만 있지 않다. 베이비복스 멤버들을 생각하면 고된 해외 일정을 함께한 시절에 대한 미안함도 남아 있다. 새로운 무대를 찾아 나섰던 길을 어린 멤버들도 함께 견뎠다는 것을 기억한다.
언젠가 각자의 자리가 달라져도 다시 만나 웃으며 지난날을 꺼낼 수 있는 사이. 그가 바라는 친구 같은 관계에는 그런 마음이 담겨 있다. 함께한 시간을 좋은 기억으로 나눌 수 있다면 그 만남은 오래 이어질 수 있다.

지구 스무 바퀴를 날았던 기억 속에는 많은 얼굴이 남아 있다. 무대에 오르기까지 품었던 기대, 먼 나라에서 함께 들었던 환호, 어려운 고비를 지나 다시 시작하던 마음. 그 시간을 함께 살아낸 이들이 그의 오늘을 채우고 있다.
결국 남는 것은 사람이다. 함께한 시간, 그 안에 쌓인 추억이다. 그는 그 기억을 안고 오늘도 현장으로 간다.
38년을 걸어온 지금도, 그에게는 만나고 싶은 사람과 함께 만들어갈 무대가 남아 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김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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