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한국화가 김현정이 그린 한국의 초상 ⑳] 익숙한 도시를 낯설게 달리다

한강을 달리는 이방인의 자유 〈내숭: 제니티스〉
김연수 기자
2026-06-26 10:3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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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가 김현정이 그린 한국의 초상 ⑳] 익숙한 도시를 낯설게 달리다 (김현정,〈내숭: 제니티스〉, 128×188cm,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쥬, 2013. / 출처: 김현정 아트센터)



도시는 빠르게 변하지만, 그 안에 사는 사람은 종종 자기 삶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아차리지 못한다. 매일 지나는 길, 늘 보던 강, 익숙한 공원은 어느 순간 배경이 되어 버린다. 그런데 자전거를 타면 이상하게 시선이 바뀐다. 같은 풍경인데도 높이와 속도, 바람의 방향이 달라지면서 익숙한 도시가 잠시 낯설게 보인다. 보행자의 눈으로 보던 세계와 페달을 밟는 몸으로 만나는 세계는 다르다. 그 작은 차이 속에서 사람은 때때로 자신의 삶으로부터 한 걸음 떨어진다.

〈내숭: 제니티스(Xenitis)〉는 바로 그 감각을 그린 작품이다. 화면 속 내숭녀는 노란 저고리와 반투명한 한복 치마를 입고 자전거를 탄다. 귀에는 흰색 헤드셋을 끼고, 손에는 스마트폰을 쥐고 있다. 상체는 앞으로 기울어져 있고, 다리는 페달을 밟으며, 치마는 바람에 부풀어 오른다. 배경은 거의 비어 있다. 산도, 건물도, 도로도 뚜렷하게 그려져 있지 않다. 그래서 이 여백은 더 넓어진다. 한때는 북한강이나 교외의 길처럼 보였던 화면이, 지금 다시 보면 한강 둔치처럼 읽힌다.

요즘 한강에 가면 서울이 예전과 다른 도시처럼 느껴진다. 잔디밭에는 젊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누워 있고, 러닝 동호회와 자전거 행렬이 둔치를 가로지른다. 아이들은 물가에서 뛰놀고, 외국인 관광객은 편의점 음식과 카메라를 들고 강변을 걷는다. 한강버스 같은 새로운 교통수단까지 더해지며 한강은 단순한 강이 아니라 도시의 얼굴이 되어 간다. 물론 그 풍경이 늘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취객도 있고, 노숙자도 있으며, 때로는 경찰차와 구급차가 오간다. 그럼에도 한강은 비교적 안전하고 깨끗하며, 시민들이 질서를 지키며 함께 사용하는 공공의 공간으로 작동한다. 그것은 결코 사소한 성취가 아니다.

코로나 시기를 지나며 사람들의 몸도 달라졌다.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던 만큼, 다시 밖으로 나와 걷고 뛰고 달리는 일이 더 절실해졌다. 러닝, 자전거, 산책, 피크닉은 이제 특별한 취미라기보다 도시인의 생활 방식이 되었다. 건강을 챙기는 문화는 의무처럼 시작되었지만, 어느새 자기 회복의 감각과 연결되고 있다. 더 빨리 성공하기 위해 달리는 것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기 위해 달리는 사람들. 한강의 풍경은 지금 한국인이 몸으로 배워 가는 새로운 삶의 리듬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이 자유로운 풍경 뒤에는 묘한 역설이 있다. 우리는 더 잘 쉬기 위해서도 계획을 세우고, 건강해지기 위해서도 기록을 남기며, 여가마저 관리의 언어로 바꾼다. 러닝 기록을 공유하고, 자전거 속도를 측정하고, 걷는 거리까지 숫자로 확인한다. 휴식마저 성취가 되어 버린 사회에서, 진짜 자유는 어디에 있을까. 한강에 누워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유난히 인상적인 이유는 그래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몸, 그냥 바람을 맞는 몸, 목적 없이 머무는 몸이 오히려 낯설게 보이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제니티스〉라는 제목은 이 지점에서 작품을 다시 열어 준다. ‘제니티스’는 그리스어로 이방인 혹은 타향살이에 처해진 사람을 뜻한다. 이방인은 반드시 먼 나라에서 온 사람만을 뜻하지 않는다. 익숙한 곳에 있으면서도 잠시 낯선 사람이 되는 상태, 자신이 속한 세계를 조금 떨어져 바라보는 감각이기도 하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내숭녀는 어디론가 완전히 떠나는 사람이 아니다. 다만 잠시 자신의 일상 바깥으로 미끄러져 나와, 같은 도시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이다.

이 작품에서 자전거의 속도는 중요하다. 걷기보다는 빠르고, 자동차보다는 느리다. 몸은 바람을 직접 맞고, 귀에는 음악이 흐르며, 발은 페달을 밀어낸다. 이 속도에서는 세상이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고, 지나치게 가까이 달려들지도 않는다. 적당히 멀어지고, 적당히 가까워진다. 그래서 자전거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시선을 바꾸는 장치가 된다. 익숙한 풍경을 낯설게 만들고, 익숙한 자신을 조금 다른 사람처럼 느끼게 한다.

작품 속 한복과 헤드셋, 스마트폰과 자전거는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이상하게 자연스럽다. 전통은 정지된 과거가 아니고, 현대는 전통을 지워야만 가능한 세계도 아니다. 한복의 치마는 바람을 타고, 헤드셋의 음악은 몸의 리듬이 되며, 자전거는 그 모든 것을 앞으로 밀어낸다. 내숭녀는 단아한 옷을 입고 있지만, 그 몸은 분명히 움직이고 있다. 고상한 척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속도로 세계를 통과한다.

이 장면은 오늘의 한국과도 닮아 있다. 한국은 오랫동안 바깥의 시선을 의식하며 성장해 왔다. 선진국을 따라잡아야 했고, 인정받아야 했고, 설명해야 했다. 그런데 이제는 외국인이 한국을 찾아오고, 서울과 제주, 한강과 시장, 궁궐과 골목을 하나의 문화적 경험으로 받아들인다. 한국은 더 이상 따라잡기만 하는 나라가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낯설고 매력적인 여행지가 되었다. 한때 익숙해서 보이지 않던 우리의 일상이, 이제는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풍경이 된다.

그래서 〈내숭: 제니티스〉는 단순히 자전거 타는 여인을 그린 작품이 아니다. 이 작품은 묻는다. 익숙한 세계를 낯설게 볼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로워지는가. 자유란 완전히 떠나는 것인가, 아니면 같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능력인가. 이방인이 된다는 것은 소속을 잃는 일이 아니라, 소속에 갇히지 않는 감각일지도 모른다.

한강의 여백을 달리는 자전거처럼, 사람에게도 가끔은 비어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목적지 없이 달리고, 이유 없이 바람을 맞고, 잠시 걱정의 이름을 잊는 시간. 그때 익숙한 도시는 낯선 도시가 되고, 익숙한 자신도 조금 낯선 사람이 된다. 어쩌면 자유란 멀리 떠나는 일이 아니라, 자기 삶을 잠시 다른 속도로 통과해 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내숭: 제니티스〉의 내숭녀는 여전히 페달을 밟고 있다. 어디로 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그 불분명함이 오히려 이 작품의 핵심이다. 삶의 모든 길에 목적지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때로는 달리는 동안에만 보이는 풍경이 있고, 낯설어졌을 때에야 비로소 보이는 자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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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가 김현정이 그린 한국의 초상 ⑳] 익숙한 도시를 낯설게 달리다 (출처: 김현정 아트센터)



한국화가 김현정은 선화예술중·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동양화과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박사 학위를 취득할 예정이다. 21세기 풍속도 〈내숭 시리즈〉로 널리 알려졌으며, 개인전 전시 작품 완판과 6만 7,402명의 관람 기록 등으로 화제를 모았다. 한국화 작가로서는 이례적으로 두터운 팬층을 형성하며 ‘한국화의 아이돌’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작품은 초·중·고 교과서 31종에 수록되어 있다. 현재 서울특별시 홍보대사와 희망브리지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전시·강연·저술·칼럼을 통해 한국화의 전통과 현재를 잇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글_김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