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드민턴 여자 단식 세계 1위 안세영(23·삼성생명)이 한 시즌 11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배드민턴 역사를 새로 썼다.
안세영은 21일 중국 항저우 올림픽스포츠센터에서 열린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월드투어 파이널스 2025 여자 단식 결승에서 세계 랭킹 2위 왕즈이(중국)를 2-1(21-13, 18-21, 21-10)로 꺾고 우승했다. 1시간 36분간의 혈투 끝에 거둔 이번 우승으로 안세영은 시즌 11번째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남녀 통합 한 시즌 최다 우승 타이기록을 세웠다.
안세영의 기록 행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올 시즌 77경기 중 73경기를 승리로 이끌며 단식 선수 역대 최고 승률인 94.8%를 달성했다. 이는 2011년 린단(중국)이 기록한 92.8%를 뛰어넘는 신기록이다.
상금 부문에서도 새 역사를 썼다. 이번 대회 우승 상금 24만 달러를 더한 안세영은 시즌 누적 상금 100만3175달러(약 14억8570만 원)를 기록했다. 배드민턴 선수 중 최초로 시즌 상금 100만 달러를 돌파한 것이다. 통산 상금도 256만9466달러(약 38억537만 원)로 늘어나 남자 단식의 전설 빅토르 악셀센(덴마크)의 228만4569달러를 넘어서며 역대 최고액을 경신했다.

이날 결승전에서 안세영은 왕즈이를 상대로 압도적인 경기력을 선보였다. 1게임 초반 4-8로 뒤처졌지만 순식간에 8득점을 몰아치며 21-13으로 첫 게임을 가져갔다.
2게임에서는 왕즈이의 반격에 밀려 18-21로 내줬다. 특히 7-8 상황에서 벌어진 74회 랠리 끝에 득점에 실패하며 탈진한 듯 코트에 쓰러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3게임에서 안세영 특유의 저력이 빛을 발했다. 8-6으로 앞선 상황에서 7점을 연속으로 쓸어 담으며 승기를 잡았다. 왼쪽 햄스트링 통증으로 절뚝거리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21-10으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남자 복식 세계 랭킹 1위 서승재(28)-김원호(26·이상 삼성생명) 조도 안세영에 이어 시즌 11승 고지를 밟았다. 이들은 남자 복식 결승에서 중국의 량웨이컹-왕창 조를 단 40분 만에 2-0(21-18, 21-14)로 완파하고 우승했다.
지난 1월 처음 복식 조를 꾸린 이들은 월드투어 파이널스를 포함해 세계선수권대회, 3개의 슈퍼 1000 시리즈, 3개의 슈퍼 750 시리즈, 2개의 슈퍼 500 대회, 슈퍼 300 대회에서 정상을 밟았다. 복식 종목에서만 따지면 역대 최다승 기록이다.
특히 서승재는 올해 초 진용(요넥스)과 태국 마스터스에서 우승한 것까지 더하면 개인 기록으로 12승을 달성해 한 시즌 개인 최다 우승 신기록을 수립했다. 서승재-김원호 조는 올 시즌 97만2620달러를 벌어들였다.
여자 복식 이소희(31)-백하나(25·이상 인천국제공항) 조도 금메달 획득에 성공했다. 이들은 결승에서 일본의 후쿠시마 유키-마쓰모토 마유 조를 2-0(21-17, 21-11)로 완파하고 이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
과거 그랑프리 파이널 시절이었던 1998년과 1999년 혼합복식 김동문-나경민 조의 2연패 이후 한국 선수로는 26년 만에 나온 역대 두 번째 왕중왕전 2연패 기록이다.
이로써 한국은 한 해를 결산하는 왕중왕전 성격의 이번 대회에서 5개 종목 중 3개 종목 금메달을 휩쓸었다. 2018년 월드투어 파이널스가 시작된 이래 한국이 세 종목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안방에서 열린 대회에서 중국은 혼합복식 한 종목 우승에 그쳤다. 여자 복식을 제외한 4개 종목에서 5팀(명)이 결승에 올랐지만 여자 단식과 남자 복식에서는 한국의 벽에 막혔고, 남자 단식에서도 프랑스의 크리스토 포포프에게 패했다.
안세영은 “정말 11승을 채울 수 있을까에 대해 스스로 의심도 많이 했지만 의심보다 믿음이 더 강했다”며 “이렇게 새 기록을 세우니 더 높은 목표를 향해 도전해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메이저대회인 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 그리고 한 해에 4개의 슈퍼 1000 시리즈를 모두 우승하는 슈퍼 1000 슬램도 달성하고 싶다”며 “길게는 남자 단식 선수들의 기량까지 올라가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1990년대 방수현, 김동문, 박주봉, 하태권 등이 이끌었던 한국 배드민턴의 황금기가 안세영을 중심으로 다시 활짝 열리고 있다.
박지혜 기자 bjh@bnt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