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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별잡: 지중해’ 알아두면 쓸데 있는 수다 항해 흔적 셋

한효주 기자
2025-05-27 09:24:02
예능 ‘알쓸별잡: 지중해’ (제공: tvN)

지난 26일 방송된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지구별 잡학사전: 지중해’(이하 ‘알쓸별잡: 지중해’) 최종회에서는 이탈리아 로마, 시칠리아, 제노바, 스페인 바르셀로나, 프랑스 마르세유 등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4개국 10개 도시를 지나, 서울에서의 마지막 수다가 펼쳐졌다.

이 자리엔 MC 윤종신, 배두나를 비롯해, 건축가 유현준, 물리학자 김상욱, 천문학자 심채경, 과학 커뮤니케이터 이정모, 로마법 전문가 한동일, 시인 안희연 등 6인의 잡학박사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두 모였다. 이들은 소행성 충돌, AI 위협,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등 지금 이 시대를 관통하는 주제를 중심으로 ‘알쓸 어벤져스’다운 풍성한 수다를 펼치며 완벽한 대미를 장식했다.

먼저 2032년 소행성 충돌 이슈와 외계 문명 이야기, 그리고 AI가 창작·정보·감정 영역까지 침범하는 현실까지 이어지는 이슈 등은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됐다. 특히 7,000만 년에 한 번씩 일어나는 소행성 충돌 위기를 다룬 토크에서는 이를 피하기 위한 ‘흰색 페인트 도포’ 같은 아이디어가 논의되며 시청자들에게 색다른 충격을 선사해 다양한 상상력을 유발하기도 했다.

AI에 대한 논의는 단연 최종회의 중심축이었다. AI가 인간의 삶 곳곳에 깊숙이 침투하면서, 다양한 업계에서 드러난 AI의 역할과 영향력에 대해 논의한 것. 음악, 건축, 천문학 등 분야별로 AI가 창작과 탐색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지만, 동시에 허위 정보를 사실처럼 둔갑시키는 ‘AI 환각(hallucination)’ 문제, 진짜 같은 가짜 뉴스 생산, 인간의 일자리 침범 등의 부작용도 함께 드러났다.

한편으로는 AI와의 공존 가능성에 주목하는 시선도 있었다. 안희연은 도나 해러웨이의 ‘사이보그 선언문’을 인용하며, 스마트폰을 들고 살아가는 우리 역시 이미 기계와 결합한 존재임을 상기시켰다.

단순히 AI를 경계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공존할지를 고민하고 더 적극적인 사이보그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 이러한 맥락에서 한동일은 인공지능 시대에 필요한 윤리적 기준으로 ‘양심(conscience)’의 개념을 언급했다. 고대 그리스에서 ‘양심’은 개인의 내면이 아니라 공동체의 지식과 기억이 모여 형성된 집단적 의식이었다는 점을 짚은 것.

이날 공개된 미방송분도 시청자에게 인상 깊은 여운을 남겼다. 로마의 미술관을 찾은 김상욱과 안희연은 문과와 이과의 감상법 차이를 보여주며, 예술을 바라보는 다층적인 시선을 공유했다. 천문학자 심채경이 방문한 천천히 침식되고 있는 도시, 치비타 디 바뇨레조의 이야기 역시 흥미를 자아냈다. 그리고 이 긴 여정의 끝에서, 윤종신은 함께한 이들의 이야기를 가사로 담아낸 자작곡을 선물하며 마지막 여운을 깊이 남겼다.

이번 시즌이 더욱 특별했던 이유는, 단지 지중해의 물리적 여정을 담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알쓸별잡: 지중해’는 동시대와의 강력한 접점을 포착하며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진짜 질문들을 던졌다. 바티칸을 방문해 가톨릭 권위의 의미를 되짚은 회차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소식과 겹치며 더욱 깊은 울림을 남겼다.

‘콘클라베’라는 용어가 뉴스에 오르내리고, 종교와 무관한 사람들까지 교황의 이름과 철학에 주목하게 된 이 시기, 한동일은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에 담긴 ‘청빈’과 수행의 상징성을 해석하며, 이 시대의 리더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다시 묻는 시간을 만들었다.

이러한 시의적 논의는 계속됐다. 볼로냐 탐방을 통해 유럽 최초의 대학이 어떻게 학생 주도, 시민 중심의 교육으로 시작됐는지를 다루며, 오늘날 한국 사회가 직면한 교육 불평등과 대학의 위기를 돌아보게 했고, 토리노에서는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삶과 죽음을 조명하며,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는 여전히 전쟁과 폭력이 반복되고 있는 오늘날, 인간성과 존엄이 위협받는 시대를 돌아보게 했다. AI에 관한 토론은 단지 기술에 대한 논평을 넘어서, 우리가 어떤 존재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확장됐다. 이처럼 ‘알쓸별잡: 지중해’는 시대를 정조준하게 된 순간들을 통해, 단순한 잡학 수다가 아닌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건넬 수 있었던 살아 있는 교양 예능으로 자리매김했다.

토크 선장의 시선으로 여정 전체를 이끌며 대화를 안정감 있게 조율한 윤종신과 자유로운 호기심과 감성적 직관으로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에 활력을 더한 배두나를 중심으로, 문과와 이과를 넘나드는 6인의 잡학박사들이 끌어낸 예측 불가 수다 조합 역시 이번 시즌의 백미였다.

이번 시즌에는 기존 멤버인 유현준, 김상욱, 심채경에 더해 새롭게 합류한 이정모, 한동일, 안희연이 가세하며 보다 입체적인 대화 구조가 형성됐다. 매회 4인의 박사들이 유동적으로 조합되는 구성은 매주 시청자에게 새로운 케미스트리를 선사했으며, 각각의 조합은 주제에 따라 깊이도 톤도 전혀 다른 색깔의 이야기를 끌어내며 ‘알쓸별잡: 지중해’만의 묘미로 작용했다.

무엇보다 ‘알쓸별잡: 지중해’가 다른 교양 예능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지점은 바로 ‘공간이 이끈 지식’이라는 점이다. 이번 시즌은 지중해 4개국 10개 도시를 무대로 삼아, 발로 밟은 풍경 위에서 질문을 시작하고, 그 안에서 사고를 확장해 나갔다. 건축가 유현준이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을 마주한 자리에서 가우디 건축의 조형성과 그 안에 담긴 종교적 상징을 설명하고, 시인 안희연이 현지 서점에서 한강의 책을 발견하며 문학의 확장을 이야기하는 순간들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현장의 공기까지 품은 ‘살아 있는 인문 여행’으로 완성됐다.

여정의 형식도 독특했다. 크루즈라는 독특한 여정 위에서 도시마다 마주한 풍경은 각 회차의 주제를 끌어내는 동력이 되었고, 현장에서 길어 올린 지식은 살아 있는 인문학으로 시청자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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