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에서 ‘망 사용료 법’안이 표류 중인 가운데, 관련 법 반대 서명 운동에 24만명 가까이 참여했다.
유튜브, 넷플릭스 등 과도한 트래픽을 유발하는 사업자에게 망 이용대가 의무를 지도록 하는 법안에 여야는 큰 이견이 없었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유튜브에 이어 트위치까지 망 사용료 분쟁에 끼어들면서 법안에 대한 여론이 악화된 탓이다. 이에 국회의원들 사이에서도 법에 대한 의견이 갈리면서 관련 논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모습이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망 사용료 법 반대 서명 운동에는 23만9000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운동을 주도하는 사단법인 오픈넷은 공식 사이트를 통해 실시간 서명자 수를 공개하고 있다.
역시 같은 제도 도입을 둘러싸고 논쟁 중인 유럽에서는 국내 통신 사업 환경을 두고 “한국의 영상 서비스 질이 낮아졌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망 사용료 법이란 구글 유튜브나 넷플릭스 같은 데이터를 많이 사용하는 해외 콘텐츠 사업자가 SK브로드밴드 등 국내 통신업체에 이에 상응하는 돈을 지불하도록 하는 법안으로, 우리 국회가 세계 최초로 법안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서명 운동에 동참한 이들은 해외 콘텐츠 사업자들이 늘어난 비용을 이용자들에게 부과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구글도 여론전에 적극적이다. 거텀 아난드 유튜브 아태지역 총괄 부사장은 최근 공식 입장을 통해 “망 사용료 입법이 이뤄지면 한국에서 사업 운영 방식을 변경해야 할 수 있고, 추가 비용은 유튜버에게 불이익이 될 것”이라며 법안 반대에 유튜버들이 나서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게다가 세계 최대 게임 방송 플랫폼인 트위치가 한국 내 화질을 1080p에서 720p로 서비스 질은 낮춘 것도 망 사용료 부과 움직임에 불만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망 사용료 문제는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 간의 소송전으로 부각됐지만, 기업 간 갈등에 그칠 뿐 일반 이용자들에게 크게 와닿지 않는 문제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난달 20일 망 사용료 법 국회 공청회를 기점으로 여론이 점차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청회 직후 구글 유튜브가 '망 사용료 법안 반대 청원'을 독려하는 광고 배너를 게재하는 등 입법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고, 유튜브 크리에이터들도 여기에 힘을 실었다.
유튜브는 유튜버들에게 법안 반대 서명 운동에 참여해줄 것을 촉구하며 여론전을 펼쳤고, 망 사용료가 유튜브 등 콘텐츠 업체(CP)에 통행료로 작용해 결국 유튜버들에게도 불이익을 주게 될 거라고 강조했다.
여기에 다시 게임 관련 유명 유튜버들이 망 사용료 법에 대한 비판 의견을 쏟아내면서 반대 여론이 확산될 조짐이다.
이처럼 여론이 흔들리자 국회에서는 망 사용료 법을 놓고 균열 조짐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여야 의원 모두 서로 입장을 분명히 하라면서 다투는 모습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일 트위터를 통해 "망 사용료 (의무화)법에 문제점이 있어 보인다"며 "잘 챙겨보겠다"고 밝혔다. 해당 법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다수 참여했다는 점과 비춰봤을 때 기존 당론과 반대되는 입장이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청래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위원장은 지난달 30일 '딴지일보' 게시글을 통해 "소수의 국내 ISP(통신사업자)를 보호하려는 편협하고 왜곡된 애국마케팅을 하다가 국내 CP(콘텐츠사업자)의 폭망을 불러올 위험천만한 일이라 생각한다"며 법안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나타냈다.
실제 지난 4일, 6일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망 사용료 법을 놓고 책임 공방이 오갔다. 당초 여야 의원들 모두 큰 이견 없이 해당 법안에 참여했으며, 현재 국회에는 망 사용료 관련 법안 7건이 발의된 상태다. 글로벌 콘텐츠제공사업자가 과도한 트래픽을 유발하는 것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국내 통신사업자와 망 사용료 계약을 의무적으로 체결하게 하는 내용 등을 담았다.
과방위 여당 간사인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은 "여당이 같이 하자고 했는데 야당끼리 망 사용료 공청회를 했다"며 "그 사이에 구글, 넷플릭스가 공격하니 물러난 것 같다"고 언급했다.
이에 야당 간사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망 사용료 관련해 박성중 간사, 김영식 의원을 비롯해 7명이 관련 법안을 냈다"며 "이 부분은 야당의 입장을 물어볼 게 아니라 여당 입장이 뭔지 묻고 싶다. 서로 간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다시 의견을 냈다.
법안에 대한 반대 의견도 나왔다.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어떤 근거로 입법하고 이용료를 산정하냐"며 "민간 갈등을 정부가 개입해 입법으로 해결하는 것은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에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원론적인 입장만 나타내고 있다.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은 망 사용료 법에 대한 입장을 묻자 "그 부분에 대해서는 소송이 진행되고 있고 유럽이나 미국의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며 "그러한 부분을 저희도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상혁 방통위원장은 "유튜버까지 동원된 입법 반대 운동이 현실적으로 부당한 측면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규제 필요성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반면, 문화체육관광부는 법안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문체부는 망 사용료 법에 대해 "국내 콘텐츠 제작자에 대한 부담 가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견도 있어 충분한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법안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자 통신사들은 반격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통신 3사가 주축이 되는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는 지난 5일 트위치의 화질 제한 조치에 대한 질의 내용을 공개했다.
KTOA 측은 "최근 귀사의 동영상 화질 저하 조치로 인해 통신사 고객센터에 관련 민원이 접수되고 있다"며 "한국에서 트위치 서비스 운영비용 증가를 이유로 이용자의 화질 저하 조치를 취한 행위는 귀사의 권한이고 책임이지만, 통신사의 귀사에 대한 서비스가 아무런 문제 없이 원활하게 제공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조치가 시행됐다는 점은 상당히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KTOA는 12일 '망 무임승차 하는 글로벌 빅테크 이대로 괜찮은가?'를 주제로 통신 3사와 공동 기자간담회를 열 예정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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