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후림 기자 / 사진 김치윤 기자] “주어진 것에 도달하는 과정, 모두 예술이죠”
콕 집은 매력이 보인다는 말보다 매력이 흩어진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배우 류현경을 3월6일 오후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진심은 통한다’는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끊임없이 마음을 다잡았다”고, “옆집 언니라는 수식어가 참 좋다”고 말하는 그를 보면서, 본인이 가지고 있는 매력과 장점들을 자연스레 주변에 잘 도달하게 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류현경은 금일(9일) 개봉하는 영화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감독 김경원)’를 통해 전생에도 현재도 본인은 진정한 아티스트라 자부하는 무명 화가 지젤 역을 연기한다. 지금까지 걸어온 독보적인 필모그래피에 걸맞은, 역시나 평범하지 않은 입체적인 캐릭터다.
Q. 시사회를 잘 마쳤다. 소감이 어떤가.
“설레고 떨리는 마음으로 봤는데,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했다. 2년 전에 찍은 작품이라 찍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추억처럼 피어나서 좋았다. 그리고 (박)정민이한테 고마웠다. 촬영할 때 집중할 수 있도록 감정도 같이 공유해주고 했던 기억들이 많이 떠오른다. 참 고맙다.”
Q. 상대 배우 박정민과 굉장히 친한 것 같다.
Q. 이번 영화를 연출한 김경원 감독이 ‘류현경은 본능적으로 연기하는 배우’라 칭했다.
“나랑 (박)정민이도 이번에 영화 보면서 ‘우리 그때 연기할 때 되게 본능적이었나?’라고 생각했다. 근데 그 이후에 시나리오를 보니까 즉흥적으로 한 것 같았던 대사들이 모두 준비된 거였다. 어마어마하게 준비를 많이 했더라. 영화 속에서 술 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즉흥적으로 했을 거라 생각했다. 근데 아니었다. 생각해보니 되게 열심히 한 것 같다(웃음). 이렇게 하면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면 저렇게, 준비를 정말 많이 했고 현장에서도 이야기를 많이 했다. 최근에 그 당시 대본을 찾아서 보니까 그렇더라.”
Q. 이번 영화를 선택한 계기
“이야기 자체가 재밌지 않나. 죽었다가 살아나는(?) 역할이니까. 또 캐릭터를 확장시켜보면 삶을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런 고민들을 한 번쯤 해보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자신의 신념과 가지고 있는 방향들이 어떤 지점에서 흔들릴 때. 이런 지점에서 관객 분들도 같이 공감할 수 있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이미 내가 천재가 아닌 걸 알고 있기 때문에(웃음). ‘연습만이 살길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연습을 엄청 하는 것 같다. 나는 연습을 많이 해야 되는 사람이다. 해도 해도 끝이 없다. 물론 현장에서 상대 배우나 감독님과 이야기하며 맞춰가지만, 나 스스로 연습이 돼있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것 같다. 연습을 많이 해야 그나마 안심이 된다.”
Q. 그렇다면 본인에게 지젤과 비슷한 지점이 있나.
“지젤처럼 고집스럽게 ‘이것만 할 거야’ 이런 성격은 아니다. 같이 협업을 하는 직업이지 않나. 나는 각각의 부분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고 대화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다양한 시선을 받아들이고 공감하는 걸 잘 하는 편이다. 극 중 지젤은 혼자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걸어가고 있기 때문에 고집스런 부분이 있다. 나는 그런 면은 없다. 계속적으로 많은 사람들이랑 여러 작업들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다.”
Q. 그래서 그런지 유독 친한 배우들이 많은 것 같다.
“조은지, 오정세, 박정민, 배성우, 고아성, 김의성, 이 분들과 친하다. 우리들끼리도 서로 마당발 이미지가 있는 걸 안다. 근데 정작 우리는 ‘우리 마당발 아닌데, 왜 그렇게 생각하시지?’라는 의문점을 갖고 있긴 하다(웃음). 다들 오랜 시간동안 배우 일을 하다 보니 아는 사람은 많지 않느냐. 그래서 그런 것 같다.”
Q. 성격적으로 잘 맞나보다.
“같이 나누고, 공유하는 지점이 많은 것 같다. 성격적으로도 다들 모나지 않은 편이다. 다들 유한 것 같다.”

Q. 예술가를 연기하면서 어땠나. 분야만 다를 뿐이지 같은 예술 계열에 종사하고 있다.
“이번에 영화를 찍으면서 동양화를 그리는 과정을 알게 됐다. 과정이 굉장히 정성스럽고, 길고, 섬세하다. 한지 놓고 물 뿌려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한 장 붙이고 또 하루 이틀 기다렸다가 물감을 섞어 그 위에 그린다. 진득한 그 과정이 되게 멋있는 예술 같았다. 그때 지젤의 마음에 공감했다. ‘아, 지젤도 이 과정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겠구나’. 나 역시도 배우로서 카메라 앞, 무대 앞에서 표현하기 전까지의 그 과정 자체가 중요하고 정성스럽다. 그게 진짜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은 예체능계에 있는 사람에게만 국한된 행위가 아니라 본인이 하고 싶어 하는 것에 도달하는 모든 과정,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우리 언니가 조카를 낳았는데, 그 아이를 키우고 기르는 과정이 정말 예술이더라. 과정들에 녹여지는 것들, 본인이 정성스러운 시간을 들여서 무언가를 하는 모습이 정말 예술가다운 모습이 아닐까. 예술이 직업에 따라 특정되어지고 국한되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엄마가 화초를 좋아하는데 그것을 정성스럽게 기르고 물주고 매일 매일 하는 것 자체가 ‘와, 엄마, 예술이다’란 생각?(웃음)”
Q. 류현경에 대해 더욱 궁금해진다. 영화 선택의 기준이 따로 있나.
“기준을 두고 있는 건 없다. 하지만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다. 많은 사람들과 같이. 그런 역할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Q. 예를 들 수 있는 캐릭터는 뭐가 있을까.
“영화 ‘전국노래자랑’을 하면서 부부 연기를 처음 해봤다. 그 전에도 결혼한 사람은 해봤지만, 부부의 갈등을 다룬 역할은 처음이었다. 그 역할을 하면서 계속 엄마 생각이 나더라. 우리 엄마도 이런 시절을 다 겪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 그 영화를 우리 엄마와 결혼한 언니가 봤다. 보고 ‘나랑 비슷한 것 같아’라고 말하더라. 엄마는 많이 우셨다고 하더라. 특히 부산에 무대 인사를 갔는데 어떤 분이 영화를 보시곤 ‘어쩜 나랑 그렇게 똑같냐’는 말씀을 해주셨다. 눈물 날 뻔 했다. 그 말이 나한테는 너무 감동적이었다.”
Q. 공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편한 이미지로 생각하는 대중들이 많은 것 같다.
“나는 그게 좋다. 편하다. 소소하게 직접 오셔서 이야기 해주시는 분들한테 힘을 받는다. 방금 전 이야기했던 ‘전국노래자랑’ 무대인사 때처럼 ‘너무 좋았다’라고 직접 이야기 해주실 때,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너무 좋다. 편하게,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Q. 2년 전 한 인터뷰에서 결혼에 대한 마음이 아직 없다고 말했더라. 유효한가?
“‘내가 그때 그 말을 굳이 왜 했지’란 생각을 많이 했다.(웃음) 안할 건 아니고, 할 때 되면 자연스럽게 하게 될 거라 생각한다. 마음이 좀 편해졌다고 해야 할까. 그때는 작품을 더 많이 하고 싶고, 열심히 하고 싶고 그랬다. 근데 또 그런 생각을 하면 꼭 그 다음부터 일을 쉬게 되더라.(웃음) 그 뒤로 쉬었다, 뭐라 말을 하거나 생각을 하면 그게 잘 안 되는 경향이 있다. 쉬다가 작년에 연극을 몇 개월 정도 하게 됐다.”
Q. 연극무대에 서서 관객들을 앞에 두고 연기하는 것과,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것, 느낌이 많이 다를 것 같다.
“메커니즘이 다르니 그런 부분에서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지만, 항상 무대에 설 때도 그렇고, 카메라 앞에서도 그렇고 ‘진심은 통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연기한다. 진심은 통할거야. 이런 막연한 믿음이 있다. 내가 고민하고 노력해왔던 것들이 잘 묻어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연기한다. 특히 현장에서 연기할 땐 (관객과) 같이 느끼는 순간이 있다. 그 감정을 함께 공유했을 때, 정말 감동적이다.”
Q. 평생 배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도 궁금하다.
“‘신기전’이란 영화를 찍을 때였다. 내 나이가 그 때 스물다섯이었는데 처음으로 ‘연기가 이렇게 재밌는 거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 장면이 아직도 생각난다. 감독님이 알려주신 동선을 따라 대사를 했는데 내 마음이 요동치더라. ‘이게 뭐지?’란 생각이 들었다. 신기했고, 마음이 그렇게 움직이는 게 그때가 처음이었다.”
Q. 아역 때, 어렸을 때는 평생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나보다.
“그때는 어려서 방송국가면 배우도 있고, 가수도 있고, 마냥 신기했던 것 같다. 영화를 보는 건 좋아했는데 영화배우가 돼서 영화에 나오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그냥 무엇이라도 영화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고 싶다는 막연한 마음이었다. ‘신기전’ 하면서 ‘아, 이래서 연기를 평생 하는구나’ 깨달았다. 그 마음을 알게 됐다.”
Q.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
“평생 연기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어떤 작품에서든지 공감을 사서 잘 표현하는 배우가 되고 싶단 생각을 했다. 공감이 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Q. 같이 호흡을 맞춰보고 싶은 배우가 있을 것 같다.
“내가 감히 그렇게 말할 정도는 안 되는 것 같고,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있다. 지금처럼 (박)정민이도 친한 배우인데 이렇게 작품을 같이 했지 않나. 그래서 (오)정세 오빠랑 (조)은지 언니처럼 친한 배우들이랑 같이 나오는 작품을 해보면 어떨까란 생각? 그럼 얼마나 재밌을까.(웃음).”
Q. 워낙 다채로운 작품들에 참여해 와서,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또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나 캐릭터가 있을까.
“공상과학 영화. 정말 재밌을 것 같다. 한국형 SF 같은 작품에 출연해보고 싶다. 내가 미래로 간다면?(웃음)”
류현경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에겐 보통 ‘질투’가 통하지 않는다. 혼자만 빛나려는 욕심도 없거니와, 외려 나아가 가진 것들을 통해 함께 빛나는 즐거움을 알기 때문이다. 거짓 없는 열심과 노력이 진심이기 때문에. 그 진심이 모두에게 닿아 통(通)하기 때문이다.
그 진심이 ‘통’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그가 제일 원하는, 하고 싶어 하는 ‘공감’이 가능하다는 이야기. 추구한 바대로, 삶으로 살아지는 배우 류현경에게 깊이 공감하는 마음을 보낸다.
한편 영화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는 3월9일 개봉, 전국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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