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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비꼬는 재미, 블랙유머를 아시나요?

김민규 기자
2010-07-09 01:32:42


‘블랙유머’(Black humour)라는 단어는 태생적으로 아이러니를 내포하고 있다.

블랙유머는 사전적인 의미로 ‘불길하고 우울한 유머’, 상대방에게 웃음을 주는 긍정적인 유머가 어떻게 우울할 수 있는지 시작부터 물음표가 생긴다. 그러나 웃기지만, 씁쓸하면서 생각이 많아지고 세상에 대해 불만이 생기더라도 블랙유머는 참 매력적이다.

탄생은 문학적인 기원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문학의 한 장르로 인정받고 있는 블랙유머는 현대문학으로 발전과정에서 이루어진 인간존재에 대한 탐구, 또한 불완전한 인간에 대한 불신 속에서 태어났다. 유머는 인간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지만 블랙유머는 인간에 대한 불신과 절망을 이야기 한다.

이제 블랙유머는 제한적이고 딱딱한 틀을 벗고 다방면으로 변신 중이다. 웃음과 눈물 사이를 절묘하게 넘나드는 블랙유머를 만나보자.

블랙유머 문학들

블랙유머 문학의 효시는 1940년 프랑스 초현실주의작가 앙드레 브르통이 펴낸 ‘블랙유머 선집’으로 알려져 있으며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너새니얼 웨스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조지프 헬러 등의 소설로 개념이 확립되었다. 현대의 블랙유머는 다양한 주제를 통해 표현되며 과거보다 광의적인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① 캐치-22 (조지프 헬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블랙유머 문학을 알고 싶다면 조지프 헬러의 ‘캐치-22’를 놓쳐서는 안 된다. 블랙유머 문학의 명작이자 미국에서만 1,000만부가 팔리고 ‘타임’지가 선정한 현대 100대 영문문학이기도 하다.

소설의 주인공은 2차 세계대전 막바지의 비행 중대의 대위 요사리안, 그는 무의미한 전쟁에 질려 제대하기 위해 갖은 수를 쓰는 군인이다. 그러나 그의 발목을 잡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캐치-22’조항이다. ‘자신이 미쳤다는 것을 아는 미치광이는 미치광이가 아니므로 제대할 수 없다’는 이율배반적인 아이러니가 작품 전체를 아우르며 우스꽝스러운 비극을 완성한다.

②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문학동네)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거장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대표직인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이 작품은 유머, 신랄한 풍자, 인간 근본에 대한 탐구 등을 담은 블랙유머를 특유의 치밀한 구성과 표현방식으로 풀어내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판탈레온 판토하는 탁월한 임무 수행으로 능력을 인정받은 페루의 모범장교다. 그가 이번에 맡은 임무는 페루의 아마존 밀림 지역에 ‘특별봉사대’를 조직하는 것. 군인들이 성욕을 참지 못하고 지역 주민들을 겁탈하자 비밀리에 창녀를 고용해 성욕을 달래주라는 것이다. ‘바른생활 사나이’ 판토하는 임무를 거부하려하지만 결국 명령에 순응하고, 오히려 너무나 완벽하게 특별봉사대를 조직하게 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작품 안에서는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끊임없이 고발한다. 엘리트 아들을 신봉하면서 미신을 믿는 판토하의 어머니, 속은 부패하고 겉으로는 청교도 같은 행동을 보이는 페루 군부, 특별봉사대를 비난하면서도 자신들에게도 공개하라는 지역 주민들, 이런 인간 군상으로 씁쓸한 웃음을 자아내는 것이 이 작품의 힘이다.

③ 독소소설․흑소소설․괴소소설 (히가시노 게이고, 바움)

미스터리 작가로 유명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3권의 단편소설은 이름 그래도 그가 선보이는 독특한 블랙유머 작품이 담겨있다. 기발한 소재와 유쾌한 반전, 풍자를 특유의 치밀한 전개와 긴장감으로 독자들을 매료시킨다.

독소소설은 ‘독기 서린 웃음’을 자아낸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고 웃는다’는 시각으로 자신에게 아부하던 사람들의 뒷담화를 듣게 된 부인, AV비디오를 보려다가 가족에게 들킬 처지에 놓인 교육가 할아버지, 주목받고 싶어 한 거짓말이 걷잡을 수 없게 된 노총각까지 너무 현실성 강한 그들의 불행이 독기 서린 웃음을 발견하게 한다.

흑소소설은 ‘개인의 불행이 결국 사회의 문제와 이어져있는 현실’이라는 시선으로 풀어낸 13편의 단편소설을 담았다. 탁월한 소설을 써낸 작가보다 예쁜 얼굴의 평범한 작가에 주목하는 편집자, 거대유방에 대한 욕망이 강박증으로 이어진 사내, 남들은 볼 수 없는 심각한 환경오염을 보는 남자를 통해 사회에 깔려진 부조리를 비웃는다.

괴소소설은 세상에 대한 통렬한 풍자가 가장 잘 드러난 9편의 단편소설이 실렸다. 할머니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기 위해 자는 척하는 ‘울적전차’와 연예인을 쫓아다니느라 정신없는 할머니의 이야기 ‘할머니 골수팬’, 집값이 떨어지는 것은 막기 위해 서로 시체를 가져다 버리는 두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 ‘하얀 들판 마을 vs 검은 언덕 마을’이 주목할만 하다.

④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나쓰메 소세키, 열린책들)

책의 오만한 제목처럼 주인공은 무례하기 짝이 없는 고양이다. 이름도 없이 길에 버려졌지만 살아남기 위해 병약한 선생 집에 얹혀살면서도 각종 책의 구절을 인용해가며 인간과 세상에 대한 불만만 늘어놓는 한량이다. 나쓰메 소세키는 고양이의 입을 빌어 마음껏 세상만사를 비웃는다. 심지어는 자신을 모델로 한 등장인물인 구샤미 선생에 대한 흉까지 보며 실소를 자아내게 만든다.

⑤ 빗나간 내 인생 (주세페 쿨리키아, 닝기열라)

이탈리아에서 가장 독창적인 목소리를 내는 작가 중 한명으로 평가받는 주세페 쿨리키아의 데뷔작이다. ‘경쾌한 시선으로 타락한 사람을 묘사할 줄 아는’ 작가 찰스 부코우스키를 동경한 것처럼 그도 독특하고 경쾌한 시선으로 부조리한 사회를 말하고 있다.

출세보다 책 읽고 음악 듣고 글쓰기를 즐기는 청년 발테르는 성년이 되지만 진학과 취업, 이성, 가족 문제 때문에 머리가 복잡하기만 하다. 청년실업 시대를 살아가는 주인공의 혼란과 방황을 냉소와 조롱을 담은 유머러스한 문체로 풀어내 큰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사실 블랙유머의 개념은 이제 단순하게 문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문학은 물론 영화, 연극, 만화, 심지어는 음악까지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하나의 문화코드로 자리 잡았다. 조금은 불편한 진실일지도 모르지만 부조리에 대한 신랄한 통찰을 듣고 싶다면 블랙유머를 주목하자.

한경닷컴 bnt뉴스 김민규 기자 minkyu@bn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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