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쿄돔의 밤하늘에 ‘보름달’이 떴다.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무대에서 문보경(26·LG 트윈스)이 강렬한 ’문샷(Moon Shot)’을 쏘아 올리며 승리의 포문을 열었다.
류지현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 대표팀은 5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6 WBC C조 1차전에서 체코를 11-4로 대파했다. 2009년 대만전 9-0 승리 이후 무려 17년 만의 WBC 1차전 승리다. 2013년, 2017년, 2023년 대회에 걸쳐 이어진 ‘1차전 잔혹사’를 드디어 끊어냈다.
문보경은 이날 3타수 2안타 1홈런 5타점 2득점으로 펄펄 날며 경기 MVP로 선정됐다. 경기 후 그는 “첫 타석부터 중요한 찬스가 와서 어떻게든 팀에 도움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최소한 외야 플라이라도 치자는 마음으로 배트를 돌린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며 수줍게 웃었다.
한국 어머니를 둔 셰이 위트컴(28·휴스턴 애스트로스)과 저마이 존스(29·디트로이트 타이거즈)가 한 경기에서 홈런을 합작하며 ‘어머니의 나라’에 특별한 선물을 안겼다.
위트컴은 3회말 솔로포에 이어 6-3으로 좁혀진 5회말 1사 1루 상황에서 결정적인 2점 홈런을 추가해 연타석 홈런을 기록했다. 이날 4타수 2안타 2홈런 3타점으로 맹활약한 그는 경기 후 “대표팀 유니폼을 입어 영광스러웠다. 어머니가 기뻐해 주셔서 좋다”고 환하게 웃었다. 홈런 직후에는 류지현 감독과 ‘하트 세리머니’를 나눠 눈길을 끌었다.
존스 역시 8회말 솔로 홈런을 포함해 2타점을 올렸다. 이날 경기장에는 존스의 어머니가 더그아웃 바로 뒤 두 번째 줄에 앉아 아들을 응원했다. 존스는 “우리 둘 모두에게 정말 특별한 순간이었다”며 벅찬 감동을 전했다.
대표팀 주장 이정후(28·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4타수 2안타 1득점 1볼넷으로 무난히 첫 경기를 소화했지만,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4회말 중전안타 후 송구하는 과정에서 왼발이 도쿄돔 새 잔디에 박히며 발목이 꺾였다. 이정후는 “경기는 할 수 있는 상태였고, 부었기 때문에 휴식일에 치료를 잘 받으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한숨을 돌렸다.
3년 전 2023 WBC에서 일본에 4-13으로 대패한 뒤 믹스트존 인터뷰도 생략했던 이정후는 이번 한일전에 각별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그는 “오늘 처럼만 했으면 좋겠다. 한일전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겠지만 우리가 위축되지 말고, 주눅들지 말고 딱 오늘처럼만 해달라”고 선수단에 당부했다.
오사카 미니 캠프에서 2경기 연속 홈런으로 가장 뜨거운 타격감을 자랑했던 김도영(23·KIA 타이거즈)은 이날 1번 지명타자로 출전해 3타수 무안타 1볼넷 1득점에 그쳤다. 1회 볼넷 출루 후 문보경의 만루홈런 때 홈을 밟아 결승 득점 주인공이 됐지만, 이후 세 번의 타석에서는 모두 범타로 물러나 아쉬움을 삼켰다.
김도영은 “초반에 점수 차가 벌어지면서 저도 모르게 집중력이 흐트러진 것 같다. 반성한다”며 철저히 자기를 돌아봤다. 그러나 7일 한일전에 대해서는 “느낌이 좋다. 이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저만 조금 더 잘하면 될 것 같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오타니 쇼헤이(32·LA 다저스)와의 1번 타자 맞대결도 예고된 상황이다.
류지현 감독은 “역시 쉬운 경기는 없다. 다행히도 1회 만루 홈런이 나와서 더 편안하게 할 수 있었다”며 “오키나와의 좋은 과정이 오사카를 낳고, 그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대표팀 선수들은 안타나 홈런 후 양팔을 활짝 벌려 비행기를 연상케 하는 세리머니를 선보이고 있다. 조별리그를 통과한 뒤 8강이 열리는 미국 마이애미로 전세기를 타고 가겠다는 각오를 담은 것이다. 세리머니 아이디어를 낸 노시환은 “다들 처음엔 부끄러워했지만 이제 모두 따라 한다”고 흡족해했다. 류지현 감독은 “대한민국을 달고 있는 모든 사람의 마음이 똑같을 거라고 생각한다. 흐뭇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편 일본 이바타 히로카즈 감독은 대만이 호주에 0-3으로 완패한 것을 교훈 삼아 경계심을 높이면서도, 이미 시선은 한국을 향하고 있다. 일본 언론과 코칭스태프가 가장 경계하는 팀으로 한국을 지목했으며, 이번 한국 타선을 “역사상 가장 짜임새 있는 타선”으로 평가하고 있다. 일본은 6일 대만전에 야마모토 요시노부를 선발로 내세운다.
한국은 6일 하루 휴식을 취한 뒤 7일 오후 7시 도쿄돔에서 일본과 맞붙는다. 3년 전 ‘4-13’ 대패의 설욕을 노리는 한국 대표팀. 문보경의 ‘문샷’이 도쿄를 넘어 세계를 향해 다시 한번 솟구칠 준비를 마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