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한국화가 김현정이 그린 한국의 초상 ㉟] 배고픔 달래주는 라면 값이 오르면 -〈내숭: 아차(我差)〉

김연수 기자
2026-10-16 10: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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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정, <내숭: 아차(我差)>, 145 x 117cm,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주, 2012. (출처: 김현정 아트센터)


화폭 한가운데에 한복 차림의 여인이 맨바닥에 앉아 있다. 쪽 진 머리에는 장식을 꽂았고, 한지를 오려 붙여 지은 저고리를 입은 채 먹빛으로 번진 반투명한 치마를 넓게 펼쳤다. 왼쪽에는 휴대용 가스버너가 놓였고, 그 위 양은냄비에서는 라면이 아직 끓고 있다. 여인은 냄비째 들고 먹지 않고, 냄비 뚜껑에 면발을 덜어 젓가락으로 입 가까이 끌어당기는 중이다. 치마 밖으로는 맨발 끝이 삐죽 나와 있어 격식과는 거리가 먼 자세다. 그런데 화폭 오른쪽 아래에는 전혀 다른 세계가 놓여 있다. 오렌지빛 가죽 테두리를 두른 체크무늬 가방이 비스듬히 누웠고, 그 안에 유명 커피전문점의 종이컵이 걸쳐져 있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붉은색이다. 저고리도, 가스버너도, 냄비 속 국물도 같은 빛깔이다. 하얀 여백과 먹빛 치마가 차분하게 물러서 있어 더욱 또렷하다. 붉은색은 흔히 식욕을 돋우는 색이라고들 하는데, 그림을 보는 순간 매콤한 국물 맛부터 떠올라 입안에 침이 고이는 데에는 이 색의 힘이 크다. 그 반대편 오른쪽 아래 구석에서는 초록 로고가 박힌 종이컵이 이 한 끼를 멀찍이 마주 본다.

제목은 〈아차(我差)〉다. ‘나 아(我)’에 ‘모자랄 차(差)’를 결합해 스스로의 부족함을 돌아본다는 뜻이면서, 실수를 깨닫는 순간 터져 나오는 ‘아차!’이기도 하다. 필자는 작품 설명에 소박한 한 끼를 먹으면서도 좋아하는 브랜드 커피만큼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모습을 돌아보며 시작한 작업이라고 적었다. 간단한 음식에는 거리낌이 없는데 커피에서는 취향과 만족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스스로도 모순처럼 느껴졌다는 것이다. 〈내숭〉 시리즈는 인물을 먼저 맨몸으로 그린 뒤 반투명한 한지로 한복을 지어 입히기에, 단정한 겉옷 아래의 속마음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라면을 후루룩 먹는 여인의 치마 너머로 그 속내가 비치는 셈이다.

이 그림 속 라면이 처음 우리 곁에 온 사연을 떠올리면 장면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라면은 1963년 9월 15일 삼양식품이 국내 최초로 내놓았다. 창업자 전중윤 회장은 1960년대 초 남대문시장에서 미군이 버린 음식을 끓인 '꿀꿀이죽'을 사 먹으려고 줄 선 노동자들을 보고 식량난을 풀 방법을 고민했고, 일본에서 맛본 라면을 떠올렸다. 일본 묘조식품의 기계와 기술을 들여와 만든 첫 라면은 한 봉지에 10원이었고, 중량은 일본 제품(85g)보다 많은 100g이었다.  당시 물가로는 커피 한 잔이 35원, 영화 한 편이 55원이었다. 전 회장은 누구나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가격이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낯선 음식이라 반응이 냉담해 직원과 가족이 무료 시식 행사까지 열었고, 1965년 정부가 혼식과 분식을 장려하면서 판매가 크게 늘었다. 라면은 배고픔을 달래려 들여온 음식이었던 셈이다.

그 한 끼의 값표가 올해 또 바뀌었다. 농심은 8월 1일부터 육개장사발면 등 용기면 18개 브랜드 값을 평균 6% 올렸고, 육개장사발면은 소매점 기준 1100원에서 1200원이 됐다. 오뚜기는 9월 7일부터 컵라면 출고가를 평균 6.7%, 팔도는 9월 1일부터 용기면 출고가를 평균 5.5% 올렸다. 세 회사 모두 봉지라면은 가격을 올리지 않았고, 삼양식품은 올해 국내 라면 가격을 그대로 두었다. 그림 속 냄비 라면은 그나마 가격을 그대로 유지한 쪽에 가깝다. 그럼에도 누구나 배불리 먹으라고 내놓은 한 끼의 값표가 바뀔 때마다 마음 한쪽이 서글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라면을 사는 곳도 달라졌다. 식품음료신문이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조사를 인용해 10월 7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2025년 라면 소매 판매액에서 편의점 비중은 34.5%(8435억 원)로 일반슈퍼 29.2%를 앞서 1위 채널로 올라섰다. 용기면 구매가 늘었다고 답한 응답자의 51.5%는 이유로 ‘간편하게 먹기 좋다’를 꼽았다. 집에서 끓이는 봉지라면도 2025년 판매량이 전년보다 5.4% 늘었다고 푸드투데이는 전했다. 한 끼를 간단히 해결하려는 발걸음이 동네 가게에서 편의점으로, 또 각자의 가스버너 앞으로 옮겨 간 모양새다.

라면 곁의 커피 사정도 비슷하다. 저가 커피 브랜드인 매머드커피는 8월 11일부터 아이스 아메리카노 값을 200원씩 올려, 작은 컵이 1200원에서 1400원이 되었다. 세계일보는 10월 8일 취향을 따라 지갑을 여는 ‘나를 위한 소비’가 번지고 있다고 전했다. 한 끼는 라면으로 아끼더라도 커피 한 잔이 주는 작은 위로는 놓지 않으려는 마음이, 그림 속 가방에 비스듬히 걸쳐진 종이컵과 닮았다.

그렇다고 이 그림이 값비싼 물건에 대한 욕심을 나무라려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한 인터뷰에서 좋은 신발과 비싼 가방, 브랜드 커피에 쏠리는 관심은 자신을 가리킨 것이며, 타인의 시선과 평가를 의식하는 내숭의 한 모습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가스버너 앞에 쪼그려 앉은 여인과 가방 속 종이컵 사이에는 흠잡을 일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있는 작은 모순이 놓여 있을 뿐이다. 오히려 라면을 먹는 여인의 담담한 얼굴에는, 부족한 대로 오늘 하루를 달래 보려는 안간힘이 어른거린다.

배고픈 이웃의 한 끼를 걱정하며 10원에 시작한 라면이 이제는 해마다 값표를 고쳐 다는 음식이 되었다. 냄비 뚜껑에 면발을 덜어 먹는 여인의 소박한 식탁과 그 곁의 종이컵 한 잔을 각자의 방식으로 지켜 내는 사이, 누구나 배불리 먹을 수 있어야 한다던 한 끼의 약속을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이어 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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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가 김현정이 그린 한국의 초상 ㉟] 배고픔 달래주는 라면 값이 오르면 -〈내숭: 아차(我差)〉(출처: 김현정 아트센터)



한국화가 김현정은 선화예중·예고를 거쳐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과·동양화과 학사와 동양화과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김현정 작가는 현대 한국인의 삶과 감정을 유머와 풍자로 풀어낸 21세기 풍속도 〈내숭 시리즈〉로 널리 알려졌으며, 다수의 개인전과 전시 작품 완판, 6만 7402명의 국내 개인전 최다 관람객 기록 등으로 주목받았다. 김현정 화가의 작품은 초·중·고 교과서 31종에 수록되어 있으며, 현재 서울시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MBC 연기대상에서는 연말 방송 시상식 최초로 한국화를 무대 배경으로 선보이며 메인 작품과 로고, 포스터, 티켓, 브릿지 영상을 맡았다. MBC 일일드라마 ‘가족관계증명서’에서 동양화가인 주인공 ‘지니’의 그림 역시 김현정의 〈내숭〉 연작이다. 프랑스 카스텔 그룹의 스파클링 와인 뵈브 드 베르네(Veuve du Vernay) 코리아 에디션에는 서울의 풍경을 그려 넣는 등 방송과 브랜드를 넘나드는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그림에세이 《김현정의 내숭》, 컬러링북 《내숭이야기 컬러링북》, 《한국화를 배우는 시간: 개념편》, 《한국화를 그리는 시간: 실기편》 등이 있다. 또한 김현정 작가는 미술강연과 강의를 이어가는 교수로서 전통 회화와 동시대 시각문화를 연결하고 있으며, 30만 팔로워와 소통하며 국내외 전시·교육·집필·칼럼을 통해 한국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장하고 있다.

글_김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