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래하던 사람이 다른 사람의 무대를 꿈꾸다
1970년대 ‘한송이 꿈’과 ‘행복’을 노래하고, 방송을 진행하며 대중과 만났던 이수만이다. 그때의 그는 누군가를 키우는 제작자가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싶은 가수였다.
시간이 흘러 그의 이름 뒤에는 수많은 가수의 이름이 따라붙게 됐다. H.O.T., S.E.S., 보아,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EXO, NCT, aespa까지. 서로 다른 시대와 음악을 가진 이들이지만 그 출발에는 이수만이 구축한 제작 시스템이 있었다.
처음부터 지금의 길이 정해져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자신의 노래를 들려주던 사람이 다른 사람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 가능성이 세상에 닿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사람이 됐다.
무대에 서는 일과 무대를 만드는 일은 다르다.
이수만이 오랫동안 해온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의 이력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미국 유학이다. 컴퓨터 엔지니어링을 공부하던 시절, 그는 MTV를 비롯한 미국의 음악 산업을 접했다. 노래에 춤과 영상이 더해지고, 한 사람의 음악이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의 일상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봤다.
한국의 가수도 저렇게 세계의 관객을 만날 수 있을까.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노래 한 곡만으로 부족했다. 가수를 발굴하고, 훈련하고, 음악과 공연을 만들고, 대중에게 소개하는 과정이 함께 준비돼야 했다.
그렇다고 모든 일이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1989년 시작한 SM기획에서 현진영과 와와를 제작하며 새로운 음악을 선보였지만, 주목받는 가수를 만드는 것과 그 활동을 오래 이어가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성공한 노래가 곧 지속적인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았다. 가수의 재능이 뛰어나도 다음 활동을 이어갈 준비가 부족하면 그 가능성은 쉽게 흔들릴 수 있었다.
이 경험은 이후 그가 신인을 발굴하는 방식에도 중요한 의미를 남겼다.
한 번의 데뷔가 아니라 그다음 무대까지 준비하는 것. 한 사람의 재능을 발견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그 재능이 자기 이름을 갖기까지의 시간을 함께 만드는 것이었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이름을 선택하는 일
1995년 SM엔터테인먼트가 출범했고, 이듬해 H.O.T.가 데뷔했다.
1996년 등장한 H.O.T.는 다섯 멤버의 개성과 음악, 춤을 하나의 팀으로 보여줬다. 데뷔곡 ‘전사의 후예’는 학교 폭력 문제를 다뤘고, 이어진 ‘캔디’는 밝은 음악과 퍼포먼스로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대중은 노래만 기억하지 않았다.
멤버들의 이름을 외우고, 춤을 따라 하고, 새로운 앨범을 기다렸다. 가수를 응원하는 일이 또래의 문화를 공유하는 경험으로 이어졌다.
음악을 듣는 관객이 함께 성장하는 팬이 된 것이다.
그 뒤에는 데뷔 전부터 쌓인 시간이 있었다.
노래와 춤을 익히고, 멤버마다 어울리는 역할을 찾고, 음악과 안무가 하나의 무대에서 어울리도록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대중이 처음 만나는 순간은 데뷔 무대였지만, 제작자는 그보다 훨씬 앞선 시간부터 아티스트와 함께해야 했다.
이듬해 등장한 S.E.S.는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줬다.
세 멤버가 함께 부른 ‘I’m Your Girl’은 H.O.T.와 다른 음악과 분위기를 가졌다. 같은 제작 시스템 안에서 출발했지만 서로 다른 목소리와 개성이 살아 있었다.
이 차이는 중요하다. 한 팀이 성공했다고 그 방식을 다른 팀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사람마다 가진 색이 다르고, 그들이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음악도 다르기 때문이다.
이수만은 제작의 과정을 체계화하면서도 아티스트마다 다른 결과를 만들어야 했다.
그 과정에는 유영진을 비롯한 작곡가와 안무가, 매니저와 수많은 제작진이 함께했다. 가수들이 무대를 완성하기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움직인 사람들이 있었다.
이수만의 역할도 그 모든 일을 혼자 해내는 데 있지 않았다. 서로 다른 재능이 만나 하나의 음악과 무대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방향을 세우는 일이었다.
훗날 그는 이러한 제작 시스템을 ‘문화기술’, CT(Culture Technology)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캐스팅과 트레이닝, 콘텐츠 제작과 마케팅을 연결해 아티스트가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방식이다.
2022년 스탠퍼드대 강연에서도 그는 이 네 단계를 K팝 제작의 핵심 체계로 제시했다. 다만 시스템이 모든 답을 대신해주지는 못한다.
훈련을 오래 받았다고 누구나 사랑받는 것은 아니다. 완성도 높은 무대를 준비해도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은 결국 아티스트의 몫이다.
제작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 가능성이 충분히 자랄 때까지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던 이름이 어느 날 많은 사람에게 기다려지는 이름이 되는 일. 그 과정에는 시간과 비용뿐 아니라 사람에 대한 믿음도 필요하다.
데뷔 전에는 그 누구도 결과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H.O.T.와 S.E.S.의 성공은 이수만이 구축한 제작 시스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동시에 K팝이 한 곡의 유행을 넘어 아티스트와 팬이 함께 시간을 쌓아가는 문화로 성장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제 그의 관심은 한국 밖으로 향했다.
일본에서 다시 시작한 이름, 보아
한국에서 성공한 가수가 다른 나라에서도 사랑받을 수 있을까.
말로는 간단하지만 실행은 쉽지 않은 질문이었다.
한국에서 아무리 유명해도 다른 나라의 관객에게는 낯선 이름이다. 언어도 다르고, 음악을 듣는 방식도 다르다. 익숙한 무대와 방송을 떠나 새로운 시장에서 자신을 다시 알려야 한다.
그 도전의 중심에 보아가 있었다. 2000년 한국에서 데뷔한 보아는 이듬해 일본 활동을 시작했다.
어린 나이에 낯선 언어를 익히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한국에서 준비했던 음악과 무대를 일본의 관객에게 맞춰 다시 보여줘야 했다.
그곳에서는 한국에서 데뷔했다는 사실만으로 특별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일본어로 노래하고, 자신의 생각을 전하고, 처음 만나는 관객에게 보아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해야 했다.
제작자 역시 새로운 시장을 배워야 했다.
현지 음반사와 협력하고, 일본의 방송과 음악 시장에 맞춰 활동을 준비해야 했다. 한국에서의 성공 방식을 그대로 가져가는 대신 현지 관객과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가수와 제작자가 서로 다른 자리에서 같은 목표를 향해 움직인 시간이었다. 그리고 2002년 3월, 보아의 일본 첫 정규앨범 ‘LISTEN TO MY HEART’가 오리콘 주간 앨범 차트 1위에 올랐다.
한국 가수의 앨범이 일본의 대표적인 음악 차트 정상에 오른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이 앨범은 오리콘 앨범 차트에 91주 동안 이름을 올렸다. 잠깐의 관심을 넘어 보아의 음악을 계속 듣는 관객이 있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 결과를 기록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일본어를 익힌 것도 보아였고, 낯선 무대에서 노래한 것도 보아였다. 현지에서 새로운 관객을 만나며 자신의 이름을 쌓아간 사람 역시 보아 자신이었다. 제작자의 구상과 아티스트의 노력이 만나야 가능한 일이었다.
이수만이 준비한 것은 해외 진출의 기회였고, 그 기회를 자신의 무대로 만든 사람은 보아였다.
그 성과가 의미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에서 얻은 인기를 해외에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 명의 한국 가수가 다른 나라에서 자신의 관객을 얻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보아의 일본 활동은 이후 K팝의 해외 진출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영향을 미쳤다.
해외 진출은 국내에서 충분히 성공한 뒤 선택하는 마지막 단계만은 아니었다. 아티스트를 처음 준비하는 순간부터 어느 나라에서 누구와 만날 것인지 생각할 수 있게 됐다.
한 사람의 데뷔가 한국을 넘어 다른 나라의 무대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렇게 제작의 시야도 넓어졌다.
자신의 노래에서 다른 이들의 노래로
이수만의 시간을 돌아보면 흥미로운 변화가 있다.
1970년대에는 자신의 목소리로 관객을 만났다. 1990년대에는 H.O.T.와 S.E.S.라는 새로운 이름을 세상에 소개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보아와 함께 일본 시장에서 K팝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그 과정이 모두 성공으로만 채워진 것은 아니다.
새로운 사람을 찾는 일에는 언제나 불확실함이 따랐다. 어떤 노래가 사랑받을지, 준비한 무대가 통할지, 다른 나라의 관객이 한국 가수를 받아들일지 미리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한 번의 성공에 머무르지 않고 다음 가능성을 찾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물론 이 여정을 이수만 한 사람의 성취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H.O.T.와 S.E.S.의 멤버들이 있었고, 보아의 노력이 있었다. 함께 음악을 만든 창작자와 제작진, 그리고 그 노래를 듣고 기다린 팬들이 있었다.
누군가를 키운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을 대신 살아주는 일이 아니다.
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세상에 설 수 있도록 준비하고, 결국 스스로 빛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는 일이다.
이수만은 무대에서 노래하던 사람으로 출발해 다른 사람의 무대를 준비하는 제작자가 됐다.

그리고 그 무대는 조금씩 넓어졌다.
한국의 방송 무대에서 시작된 이름들이 아시아의 관객을 만났고, 국경을 넘어 자신의 음악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그 출발에는 아직 유명하지 않은 사람의 가능성을 먼저 바라보는 선택이 있었다. 자신의 이름이 불리던 무대에서, 다른 사람의 이름이 불리는 무대로.
어쩌면 이수만이 오랫동안 만들어온 것은 단순히 성공한 가수의 명단이 아닐 것이다.
아직 아무도 모르는 목소리가 언젠가 누군가에게는 기다려지는 이름이 되는 순간. 그리고 그 이름이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넘어 더 넓은 세상에서 불리는 순간.
그가 걸어온 K팝의 길은 그렇게 한 사람의 가능성에서 시작됐다.
김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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