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성재 셰프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모수 서울’이 와인 빈티지 바꿔치기 논란에 휩싸이며 공식 사과를 발표했다. 메뉴에 표기된 ‘샤또 레오빌 바르통 2000년 빈티지’ 대신 2005년 빈티지를 제공했다는 사실이 고객의 사진 기록으로 드러난 것이다. 두 빈티지의 가격 차이는 약 10만 원. 금액의 크기가 문제가 아니다. 미슐랭 3스타, ‘흑백요리사’를 통해 대중이 직접 선택하고 올려세운 셰프의 레스토랑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사실이 핵심이다.
대중의 분노는 사과문 발표 이후 오히려 더 거세졌다. “무엇이 왜 잘못됐는지 한마디도 없다”, “사기치려다 걸린 것 아니냐”는 반응이 쏟아졌다. 반면 “삼성 직원이 사기를 치면 이재용이 사과해야 하냐”며 안 셰프를 두둔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이 극명한 온도 차이야말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이다.
돌이켜보면 ‘전문가 방송인’ 전성시대는 201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됐다.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 오은영 박사의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새끼’, 강형욱의 ‘개는 훌륭하다’까지. 시청자들은 이들에게서 단순한 정보 이상의 것을 얻었다. 전문 지식이 주는 안도감, 그리고 “내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한 지상파 방송사 PD가 말했듯, 전문성은 일종의 후광효과다. 시청자들은 방송 속 전문가에게 지식뿐 아니라 인격까지 투영한다. 요식업계의 혁신가, 훈련의 달인, 마음을 치유하는 의사. 방송은 이들을 ‘완성된 인간’처럼 포장했고, 대중은 그 포장을 기꺼이 믿었다. 문제는 그 믿음이 커질수록, 실망의 낙차도 커진다는 것이다.
지난해는 유독 전문가 방송인 논란이 줄을 이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자 방송인인 양재웅이 대표로 있는 병원에서 30대 여성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양재웅은 “참담한 심정을 감출 수 없다”며 사과했지만 여론의 시선은 차가웠다. 반려견 훈련사 강형욱은 직원 갑질 논란으로 KBS ‘개는 훌륭하다’에서 하차했고,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는 가맹점주들과의 갈등으로 오랜 기간 공들여 쌓은 이미지에 금이 갔다.
이들보다 앞서 오은영 박사와 역사 강사 설민석도 각자의 이유로 논란의 중심에 선 바 있다. 하나같이 ‘전문성’을 무기로 방송에서 이름을 알린 인물들이다.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 잦다. 어떤 구조적인 문제가 이 반복되는 패턴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흥미로운 것은 대중이 ‘전문가 방송인’에게 유독 가혹하다는 사실이다. 안성재 셰프의 경우, 실제 귀책 주체가 소믈리에 개인이든 식당 시스템이든 간에 비판의 화살은 곧장 안 셰프 본인에게 향했다. 백종원 논란 때도 마찬가지였다. 프랜차이즈 사업의 구조적 문제보다 그의 방송 출연 행보가 더 크게 비판받았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한발 물러서야 한다. 전문가 방송인들의 잘못을 외면하자는 말이 아니다. 다만 대중 스스로도 이 관계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방송은 편집된 현실이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본 백종원은 연출된 장면 속의 백종원이다. ‘개는 훌륭하다’의 강형욱은 카메라 앞에서 최선을 다한 강형욱이다. 우리는 그 편집된 이미지를 그 사람의 전부라 믿고, 어느 순간 그 사람에게 완벽함을 요구하기 시작한다. 방송인이자 전문가로서의 직업적 책임을 넘어, 사생활과 기업 경영, 직원 관리, 심지어 도덕적 순결함까지.
이처럼 과도한 기대는 때로 당사자에게도 공정하지 않다. 안성재 셰프 논란에서 “삼성 직원이 잘못하면 이재용이 사과해야 하냐”는 반론이 나온 것도 이 맥락이다. 셰프가 모든 직원의 행동에 무한 책임을 져야 하느냐는 질문은, 우리가 ‘전문가 방송인’에게 어디까지를 기대하는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물론 그 역도 성립한다. 방송이 주는 막대한 인지도와 그로 인한 경제적 이익을 누리는 한,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관리 의무는 분명히 따른다. 모수 서울의 이번 사태가 단순 실수가 아닌 시스템의 문제였다면, 안 셰프는 그 시스템의 최종 책임자다.
전문가 방송인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형태는 바뀌어야 한다. 방송사는 전문성의 후광 뒤에 숨어 있는 인간적 결함을 직시해야 하고, 전문가들은 방송이 부여한 신뢰의 무게를 사업장과 일상에서도 동등하게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대중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올린 기대치만큼, 우리의 시선도 공정해야 한다. 누군가를 신화로 만들어놓고 신화답지 않다는 이유로 짓밟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이 만든 허상에 배신당하는 것에 불과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