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게임업계가 하반기 이후 선보일 예정이던 신작 출시 계획을 하나둘씩 연기하고 있다.
압도적인 기술력과 자금 동원력을 앞세운 중국 게임의 약진 속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소비자들의 눈높이에 한국 게임사들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 게임업계 출시 연기·취소 소식 잇달아
9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카카오게임즈는 최근 실적발표에서 당초 올해 3∼4분기 출시 예정이던 신작 4종의 출시 시기를 내년으로 늦췄다.
또 2026년 1분기 출시 예정이던 '아키에이지 크로니클'은 같은해 3분기로 지연됐고 '프로젝트 S'와 '검술명가 막내아들' 지식재산(IP) 기반 게임은 아예 출시일이 '미정'으로 바뀌었다.
웹젠도 2023·2024년 지스타에 연이어 출품한 서브컬처(일본 애니메이션풍) 게임 '테르비스' 출시일을 올해 하반기에서 내년 이후로 미뤘다.
크래프톤도 지난해 '어비스 오브 던전(옛 명칭 다크앤다커 모바일)'과 '딩컴 투게더'를 선보일 예정이었으나, 두 게임 모두 출시가 연기됐다. '다크앤다커 모바일'은 지난 6월에서야 동남아 및 중남미 시장에서 소프트 론칭(한정 지역 출시)에 들어갔고 '딩컴 투게더'는 아직 출시되지 않았다.
개발 도중 부족한 시장성 등을 이유로 프로젝트가 취소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엔씨소프트에서 분사한 자회사 루디우스게임즈는 지난 7일 모바일 기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택탄(TACTAN)' 제작을 중단하기로 결정하고 이같은 사실을 내부 구성원에 알렸다.
넥슨도 지난 4월 '바람의나라: 연' 제작사 슈퍼캣이 개발해 출시 예정이던 '바람의나라 2' 퍼블리싱 계약을 전격 해지했다.
이보다 앞서 슈퍼캣이 개발해 넥슨이 퍼블리싱 예정이던 '환세취호전 온라인' 개발팀을 해체한 지 3개월여만이었다.

◇ 레드오션 된 게임시장…비용 증가에도 '신중 모드'
신작이 게임시장에 안착하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흥행 신작을 수년 이상 계속 업데이트해 나가는 라이브 서비스가 대세가 되면서다.
이런 현실 인식은 지난 6월 넥슨 개발자 콘퍼런스(NDC) 기조 강연에서 나온 '게임시장 위기론'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박용현 넥슨코리아 개발 부사장 겸 넥슨게임즈 대표는 "국내 PC방 순위를 보면 2020년 이후 나온 게임은 별로 없고 출시한 지 10년 넘은 게임 위주고, 글로벌 스팀 순위 상위권 절반 이상도 5∼10년 묵은 게임"이라며 "모바일 게임도 새로운 게임이 진입하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게임 개발이 늦어질지언정, 완성도와 팬들의 기대감을 끌어올리는 작업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작년 한 해 새롭게 출시된 한국산 게임 중 현재까지 꾸준한 성적을 내는 신작은 넷마블의 '나 혼자만 레벨업: 어라이즈', 스마일게이트의 '로드나인', 111퍼센트의 '운빨존많겜' 정도다.한 국내 게임사 관계자는 "게임시장은 출시 초기에 이용자를 잡지 못하면 나중에 반등하기 어렵고, 개발팀도 퍼블리셔도 동력이 떨어진다"며 "설익은 상태로 게임을 내느니 최대한 완성도를 끌어올리고자 가능한 한 출시를 연기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게임업계가 기존 인기 장르를 답습하기보다는 차별성 있는 게임 본연의 재미에 집중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내 벤처캐피털(VC) 관계자는 "매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비슷비슷한 게임이 '착한 BM(수익모델)'으로 나온다고 소비자가 지갑을 열지는 않는다"며 "규모의 경제 면에서 기존 인기작이나 중국 게임을 넘을 수 없다면, 장르와 기획 면에서 혁신을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