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루언서는 멋지다! 행복을 제조하는 그들의 스토리] 연중기획.
중국을 아주 잘 아는 파워왕홍·쇼호스트·인플루언서 ‘은지언니’. 꿈이 있는 사람이 성공 한다는 부모님 말을 100% 실천, 매일이 행복한 중국전문가 이은지.
[김기만 기자∙팀장] kkm@bntnews.co.kr

중국을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별천지인 중국시장을 그냥 놔둘 수만은 없다.
예전에는 기업들이 수출 에이전시를 통해야했지만 요즘은 인플루언서가 답 일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한-중 인플루언서들은 최종 중국 소비자까지 접점을 확실하게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 접점을 빠른 속도로 늘리는 무기도 장착하고 있다.
바로 SNS 플랫폼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 중국 유학생활로 탄탄한 SNS 기반을 가지고 있는 ‘은지언니’
그녀는 파워왕홍이면서 왕홍들을 채용해 중국에 직접 물건을 팔아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그녀는 중국과 동남아 한국을 오가며 글로벌 감각을 많이 익혔고, 중국내 최종소비자들을 꿰뚫고 있다.
요즘 쇼호스트들과 인플루언서들의 큰 꿈 중에 중국을 대상으로 한국에서 라방을 하는 것이다.
그녀에게 답이 있는 듯하다.
파워 한-중 인플루언서 ‘은지’의 이야기를 좀 길게 들어봤다.

1. 먼저 자기소개를 해주시죠.
저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으로부터 꿈이 있는 사람이 성공 한다는 말을 듣고 자랐으며 꿈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목표, 계획, 실천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앞으로는 점점 더 세계가 글로벌화 되기 때문에 국제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어야 큰 꿈을 실현 할 수가 있다고 하시면서 해외에 가서 공부 하면서 각국 나라의 생활과 풍습, 습관, 사고방식을 배우면서 각국의 친구들과 친하게 사귀면서 공부할 것을 권하셨습니다. 그래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한국에서 6개월 다니고 중국 심양 외국어 고등학교 국제반에 입학을 하여 영어와 중국어를 배웠습니다.
졸업 후에 HSK시험에 합격을 하고 북경으로 와서 명문대인 ‘북경어언대학’에 오빠도 입학하여 4년간 본과생으로 공부하여 같이 졸업을 하였습니다. 대학교 2학년 때는 집안 상황이 힘들게 되면서 저는 휴학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가 모델을 해보기로 결심했어요.
전부터 저는 많은 꿈이 있었습니다. 모델, 가수, 선생님, 연예인, 스튜어디스, 의사 자신감이 없었지만 믿는 건 딱 하나였어요!
“무조건 하고 싶은 건 한번 다 도전해보자! 한번 해보고 보자!”
아무것도 몰랐던 저는 아빠에게 부탁해 집에서 깔끔하게 찍은 프로필 사진을 이용하여 인터넷에서 찾은 여러 모델대회에 지원을 했고, 그 대회에 나가게 되면서 비록 상은 못 탔지만 많은 친구들과 경력이 많은 모델 언니들을 알게 되었어요.
성격이 밝고 활발했던 저는 언니들과 친하게 지냈는데요. 그러면서 언니들이 다른 스케줄이 많아 시간이 없어 출전할 수 없게 된 대만과 이태리에서 공동 합작 개최한 2011년 세계비키니 모델대회를 한국대표로 출전하게 되면서 1달 동안 중국과 대만을 돌아다니며 각종 신문과 TV프로그램에 나가게 되어 제 첫 번째 경력을 멋지게 쌓게 되었어요.
사실 1달 동안 나가는 대회라 협찬도 많이 필요했고 외국인 모델들도 80개의 국가에서 참가한 만큼 엄청 많았으며 낯설고 어린 나이에 그 결정을 할 수 있는 용기가 부족했지만 디자이너 출신인 아빠가 중국어와 영어가 되니 무조건 너는 나가서 좋은 경험을 쌓고 오라고 말씀을 해주시고 저와 함께 생각하고 협찬 받은 의상 한복 드레스 칵테일 드레스 등등도 잘 결정을 해주셔서 이 대회에 출전하게 된 것이기 때문에 지금도 아빠에게 너무 감사해요.
결국 저는 이 대회에서 아시아에서 4위를 하게 되고 중국 지역 수조에서는 1위를 하였습니다. 그때 각종사진자료 및 신문기사내용과 TV프로그램 활동 등 좋은 경험을 쌓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중국에서 다니는 대학교를 다시 복학하면서 동시에 방송활동을 하며, 학비를 벌어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 이게 저의 첫 계단 이었어요.

살다보면 꿈을 이루기까지의 기회와 과정도 중요하지만 좋은 인간관계와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는 것을 지금도 저는 느낍니다.
그리고 늘 아버지가 이야기해 주시는 말씀이 정리되어 있는데 성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여섯 가지 단어를 기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Chance! 기회, Choice! 선택, Challenge! 도전, Change! 변화되어야 하고 그 다음이 Habit! 습관, Action! 행동이라는 단어 입니다.
저는 공부를 마치고 진로에 고민하다가 중국에서 남아 한국과 중국 문화교류협력을 위해 저의 꿈을 펼치기로 결정했어요. 학교를 다니면서부터 수많은 중국TV프로그램 게스트활동, 모델, 광고활동, 그리고 2013년도 세계 90개국이 참가한 여행모델대회에서 3위 `미`를 수상한 경력도 있습니다.
이 대회는 중국에서 지금도 인지도가 있는 대회인데요, 전에 나갔던 세계 비키니모델 대회의 수상 경력이 있었기에 바로 결승전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매번 저는 TV프로그램 모델활동에 나가서 다 그들 중에 겸손하고 언어가 안 통하는 외국친구들을 도와주었어요. 아무래도 거기에서 플러스 점수가 있어서 상을 탈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제가 엄청 외모가 예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제가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도전정신을 가지고 열심히 하는 끈기와 노력 입니다. 저는 누구보다 열심히 했고 누구보다 노력했고 누구보다 최선을 다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도와주고 배려를 해주었습니다.
그 후 모델 방송 활동을 해오던 저는 졸업을 앞둔 시기에 친구에게 소개를 받아서 영화 면접을 보게 됩니다. 저는 (태국 사랑해 泰爱你)의 주연을 맡게 되었습니다. 사실 주위 사람들이 다 이 영화 출연을 저에게 반대를 했습니다.
돈도 15일 촬영에 한화 35만원. 그 돈이 전부였고 시간낭비고 40도가 넘는 더운 날씨에 영화를 계속 찍어야 하고 의미가 없다고 다들 반대하고 부모님까지 저에게 이 영화 출연을 잘 점검 하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결국 이 영화를 촬영을 했고. (태국 사랑해 泰爱你)는 아이치이 (爱奇艺)에서 방영한 중국-태국-한국 세 나라의 합작 영화로 당시 1200만 뷰로 인기와 화제로 올랐고, 중국과 관계가 좋은 태국도 참여한 한-중-태국 교류영화로 지금은 저의 하나의 대표작품이 되었습니다.
이 영화를 계기로 저는 많은 영화들을 주연과 조연으로 출연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느끼는 것은 기회를 볼 수 있는 안목과 선택과 집중이 중요합니다.
여러분들이 많은 기회 왔을 때 그것을 제대로 판단하고 잡을 수 있는 것도 그 사람의 능력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이 아빠가 알려주신 성실과 유능인데요, 유능은 어떤 일을 시켰을 때 다른 사람에 비해서 더 탁월하고 잘하는 것이며, 자신의 소질과,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지금은 현재 중국 JY엔터테인먼트 한국 CEO로서 제작자로도 활동 중에 있으며 왕홍으로 있습니다.
중국과 중국어는 저에게 제2의 고향 제2의 모국어와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중국 유명 방송국 CCTV프로그램에 3번이나 참가해 중국 사랑의 내용을 담아왔습니다.
영화경력이 생기고 배우로 활동하던 저는 향후에 제작자의 꿈을 갖게 되어 인터넷 영화를 하나 제작을 하게 됩니다. 필리핀 세부에서 찍은 영화인데요 ‘필리핀은 중국 여행객들이 많이 모르는 곳’ 이고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유명하다. 한국인들이 거주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사업을 하고 있다’
또 한 한국 음식점과 한국 슈퍼마켓 등 한국성 시설이 아주 잘되어 있어서 한국을 알리는데 좋은 곳 이고 바다가 너무나도 깨끗하고 아름다운 곳으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그래서 JY엔터테인먼트 CEO로서 이러한 장점을 살려서 한중동남아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대본 내용은 유쾌한 코믹 사랑 이야기인데요. 현실에서 젊은 남녀 사이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재미있는 사랑 이야기 입니다.
필리핀의 J park 리조트에 있는 카지노 등을 주요 배경으로 했고 한국 중국과 필리핀 사람들이 캐스팅 되어 참여하여 촬영을 했습니다. 언어는 중국어와 한국어로 중국에서는 중국어로 자막이 되어있고, 한국에서는 한국어 현재 네이버에 ‘작업남녀’ 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첫 제작은 저에게 많이 힘들었고 많은 경험과 교훈을 주었습니다. 첫 영화라 사실 반응이 많이 좋지 않았지만 저는 그 계기로 인해서 문제점과 개선점을 찾고,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다른 영화들의 작은 제작 부분을 맡아서 인터넷 영화 2편을 더 제작을 했습니다.
지금은 JY엔터테인먼트 회사로는 중국 영화들을 한국과 해외로 배급하는 업무를 하며, 프로그램 제작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당시 승승장구하던 사드로 중국과 한국의 갈등이 생기면서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그 당시에도 중국에서 정치적인 갈등을 지켜보며 좀 더 성숙하고 침착하게 바뀔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도 있잖아요. 누구나 다 힘든 시기는 있습니다. 그 당시 정말 전과 같지 않아서 너무 많이 힘들었어요.
이 시기에도 아빠가 용기를 주셨는데요, 아빠가 현대그룹에서 오래 근무를 하셨습니다. 그때 일하실 때 생각나는 교훈을 이야기해 주셨어요. ‘소낙비가 올 때는 처마 밑에 들어가서 소낙비가 그칠 때까지 차분하게 기다리면, 검은 구름이 없어지고 밝은 태양이 서서히 나옵니다.’ 그리고 홈런 타자가 헛스윙을 제일 많이 하며, 남몰래 피나는 노력을 제일 많이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한국연기자 한국인 제작자 출신이었기에 한국인 제작자 감독에 대한 중국인들의 부정적인 시선이 있어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민 끝에 한국인들이 아직 방송을 할 수 있는 플랫폼에서 인터넷 방송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번 시작하면 노력하고 열심히 하는 책임감 있는 성격인데요. 그래서 저는 지속적으로 열심히 그 방송을 하며 10만 팬을 확보하게 되었으며, 그렇게 지금은 각종 플랫폼 도인, 틱톡, 인스타, 웨이보, 유튜브 등등을 시작하며 왕홍으로 전향하게 되었습니다.
꿈을 실현하기에는 20대인 저는 아직은 많이 서툴고 부족하지만 그 동안 쌓아둔 실력과 경험, 인맥으로 열심히 더 노력하고 더 발전해 나갈 생각입니다.
여러 가지 부족하지만 천천히 한번더 뒤돌아보고 부족한 것을 채워가며 항상 겸손한 마음과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고, 나는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우리들은 성공할 수 있다는 꿈과 희망과 믿음을 가지고 화이팅해요.

2. 인스타를 일찍 시작하셨는데 당시 이야기와 팔로워수가 늘어나는 시점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시죠.
인스타를 저는 중국에서 모델활동과, 연기자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을 때, 한국에서 인스타그램이 뜨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사진과 프로필 사진 위주로 올렸고, 페이스북과 연동이 되서 양쪽에 다 올릴 수 있어서 너무 편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저는 일하느라 중국에만 주로 있고, 한국에는 거의 방문을 하지 않고 있었던 때 이었습니다. 한국에 있는 제 친구들이나 지인들과는 연락이 뜸한 시기였는데,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제 소식을 알린다는 의도로 시작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여행을 무척 좋아했어요! 특히 동남아를 좋아해서 한달에 1번이나 3달에 1번씩 중국의 해남도나 씨아먼 광저우 등 따뜻한 나라와 지역을 여행을 가기 시작했는데, 여행을 가서 비키니와 바다 등등 여러 가지 피드들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처음에 팔로우가 오르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인스타그램을 하면서 그동안 연락이 끊겼었던 친구들도 하나씩 다시 연락을 하기 시작했고, 연락처 연동과 페이스북을 통해서 팔로워들이 조금씩 늘어났어요.
그 중에서도 특히 외국인들이 저를 많이 팔로우 하더라고요. 그리고 여러 가지 중국 방송과 한국 방송도 같이 진행하고 있어서 그 당시에 팬들도 저를 많이 팔로우 해주었습니다. 중국에서도 인스타그램을 하는 사람들은 한국 VPN을 깔아서 꾸준히 하더라고요.
그리고 한국에 와서 틱톡의 팔로우를 키우게 되었는데, 틱톡이 120만 팔로우를 넘어가면서 인스타로 자연스럽게 연동되어서 10만 팔로우가 넘게 되었습니다.

3. 미래에 인플루언서가 되고자하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팔로워 응대법, 멘탈 유지법 등
인플루언서에는 종류가 여러 가지 입니다.
틱톡으로 물건을 홍보하고 라이브로 판매하는 인플루언서와, 인스타로 공구하고 라이브를 하는 인플루언서, 그리고 유튜브 컨텐츠 제작과 유튜브 방송을 하는 인플루언서, 마지막으로 아프리카, 셀럽티비, 펜더티비, 플렉스티비 등등과 같은 자신의 컨텐츠를 지지해주는 팬들의 후원을 받는 방송으로 나뉩니다.
이러한 인플루언서들은 뭐든지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딜 가나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악플이나 이상한 댓글에도 멘탈을 잘 유지하셔야 할 것 같아요.
저만의 멘탈 관리법은 마노패밀리와 같은 마음을 가진 동병상련의 인플루언서들 끼리의 모임이나 파티에 참석해서 마음 맞는 친구들을 사귀는 것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야지 서로의 심정과 마음을 공유하고 위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10년을 넘게 방송일을 하다 보니 이제는 습관화가 되어버렸습니다.

4. 최근에는 어떤 일에 관심이 많으신지?
최근에는 마노패밀리라는 회사를 친오빠와 함께 만들게 되었는데요. 사람의 형상으로 그려진 큰 대 자에는 사람들이 함께 힘을 모아 사업을 크게 이루어 가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돈보다는 사람, 거래보다는 관계, 유행보다는 기본에 충실한 기업을 만드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보통 많은 회사들이나 사람들이 우리 마노패밀리를 인플루언서들이 모여서 만든 회사이기 때문에 단순한 마케팅 회사라고 생각하는 회사나 사람들이 있는데, 저희 회사의 주요한 수익 모델은 유통입니다.
저희는 상품에 맞게 중국과 한국으로 컨텐츠와 동영상을 제작하고, 주요한 목적은 유통을 하는 회사입니다. 저희 파트너사로 중국 전문 채널로 입점을 시키고 있습니다. 아직 띄운 제품은 없지만 우리의 크리에이터를 활용해서 다양한 외적인 컨텐츠를 만들고, 저희는 위생허가 없는 제품만 주로 다루어서 보세무역 직구형식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만의 인플루언서 크루를 형성하고 국내외 무역라인을 형성하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5. 다시 인스타 이야기로 돌아가서 여러 가지 브랜드사와 협업을 하셨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브랜드는 어떤 것들인지? 에피소드나 감동 팔로워 반응 브랜드사 반응 등등
향기미술관, 베베톡스, 새벽집이 있습니다.
처음에 한국에 와서 너무 오랫동안 중국에서 방송생활만 하다가 온 이유에서인지 한국의 문화와 등등 적응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처음으로 모델을 하게 된 브랜드가 향기미술관 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대표님이 친 언니같이 대해주고 페이도 챙겨주며 한국시장에 대해서 잘 모르던 저에게 물건판매와 한국에서의 인플루언서 시장 등 많은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향수에 대해서 평소에도 관심이 많았던 저에게 향기미술관과 관련된 브랜드 스토리와 여러 가지 박람회와 행사 등등 같이 다닌 것이 지금은 추억같이 새록새록 기억이 납니다.
베베톡스 브랜드는 저를 처음으로 믿고 신뢰하여 주셔서 고정적으로 제 개인 중국 채널인 타오바오 방송을 통해 판매를 할 수 있도록 투자하고 만들어준 브랜드 입니다.
처음 방송을 할 때, 팔리지도 않고 채널도 활성화가 안 된 상황에서 몇 개월 방송을 진행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다 경험이고, 이 브랜드로 인해서 유통을 배우고 중국 라이브커머스 방송에 대해서 조금 더 전문가적인 마인드를 배울 수 있었던 좋은 계기를 만들어 준 브랜드 입니다.
마지막으로 개인 친분을 가지고 있는 새벽집이 있습니다.
마노패밀리 법인 회사를 설립하고, 처음으로 마노패밀리 인플루언서들과 저를 도와주기 위해서 제가 선택한 인플루언서들이 공구를 하고, 이 브랜드를 사용할 기회를 주시고 공구와 라이브커머스 등등 촬영에도 적극적인 협조를 주신 대표님이 있습니다.
은지언니몰과 새벽집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며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많은 유통에 관한 정보와 공구 쪽 기술을 알려준 대표님이 나중에 시간이 지나도 기억될 것 같습니다.

6. 외모나 피드 내용들을 보면 얼굴이 매우 예쁘다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모델로서도 어떤 철학이 있을 것 같아요.
‘여자는 평생 관리다.’ 라는 철학이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살이 찌거나 피부 트러블이 있을 때는 즉각 인지하고 관리를 시작합니다. 아무래도 여자의 외모는 하나의 무기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이 철학을 계속 기억하고 사는 것이 모델로서는 나이를 먹어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현대나이 계산법이 있어서 나이가 많아도 활동하는 인플루언서나 시니어 모델 분들이 많으셔서 평생 관리만 잘하면 계속 활동할 수 있으니, 관리에 소홀히 하면 안 되겠죠.
7. 외모나 몸매 등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저는 평소에 제가 즐겨쓰고 알고있는 브랜드들의 좋은 성분이 들어있는 여러가지 화장품과 미용기기들을 사용하고 비타민과 효소, 영앙제, 콜라겐 등등 매일 챙겨 먹습니다. 그리고 같이 협업하고 있는 몇 군데의 피부과에 가서 2주에 한번정도 관리를 받습니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미용실에 방문해 모발 영양관리를 받고, 몸매는 다이어트 보조제, 단백질 보조제, 그리고 평소에 간단한 스트레칭과 운동을 합니다. 사실 식단관리가 가장 큰 것 같아요. 평소에 먹고싶은 것은 다 먹고 스트레스 풀고 하지만, 가능한 간헐적 단식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8. 자신의 5년 후 10년 후 모습은?
5년 후는 결혼을 했을 것 같아요. 저도 화목한 가정의 꿈이 있고, 우선 그 꿈을 이루기 전에 제 회사인 마노패밀리를 통해 한국과 중국의 유통을 활성화 시켜서 저도 개인 브랜드를 하나 만들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여전히 방송 활동을 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10년 후에는 예쁜 자녀들을 낳고, 그 자녀들을 방송쪽에 데뷔를 시키고 싶습니다. 그 자녀들과 남편과 함께 같이 예쁜 집에서 컨텐츠도 제작하고 회사를 운영하며 유통쪽 자리를 잡아서 지금보다는 조금 더 편하게 사업체를 이루고 가정도 이루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9. 중국진출 관련 그동안 여기저기서 많은 러브콜을 받으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시죠.
저는 오랜 중국 유학생활과 방송생활로 솔직히 한국생활보다는 중국생활에 더 적응되어 거의 한국에는 오지 않고 12년 동안 중국에서만 살았습니다. 중국은 저의 제2의 고향이자 고마운 나라이고 저의 일터였죠, 그렇지만 중국연예인, 방송인, 왕홍으로 활동했던 저에게 한국에 오자마자 인스타를 통해서 수많은 업체에서 저한테 연락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상한 사람들도 많았죠, 러브콜이라고 하면 저희 업체의 제품을 홍보하고 모델을 해 달라는 러브콜도 많았고, 중국 총판권을 줄 테니 팔아달라고 하시는 브랜드사도 많았고, 중국으로 판매를 도와달라는 러브콜이 대부분 이었습니다. 그리고 한국 엔터업계에서도 중국어를 하는 방송인을 찾는다는 러브콜도 많았고, 같이 협업하면서 중국시장을 뚫어보자는 제안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한국에 오자마자 TVN쇼 프리티라는 미용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한국인 왕홍으로 저를 알리게 되었고, 정부 시에서 주최하는 인천국제 행사에서도 중국 1인미디어 특별상을 받았고, 2019년 베이징에 있는 한국 유학생 모델들을 대상으로 미스코리아MC를 봐달라고 해서 미스코리아 MC도 하게 되었습니다.
2019년 황금나침반, TVN프로그램에서 왕홍 아카데미 교육과, 왕홍 컨텐츠 제작 강사로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2019년 YTN방송국(황금나침반) 11월23일 방영
2019년 왕홍전문 교육기관 메인왕홍 및 아카데미 강사
2019년 제1회 베트남 국제 뷰티 bj 스타찾기 대회 심사위원 및 아이콰왕홍
2020년 한국vs중국 의류브랜드 GAROSU전속모델 컨텐츠 제작자 및 왕홍
2020년 타오바오 방송(아이콰박스 메인모델 mc왕홍)
2020년 BEBETOX, 닥터유앤미 홍보모델 및 판매왕홍 3개월
2020년 신라면세점 라이브커머스 방송 메인 왕홍. 쇼호스트 6개월
2021년 펌핑타임 단막극 돈의시대 촬영장 브이로그
2021년 펌핑타임 예능 출연
2021년 바이낸스 광고 NFT광고 중국판 출연.
2021년 일산 킨텍스 식품대전 왕홍 은지언니 후야방송 광고출연
2021년 코엑스 무역협회 판매방송 메인왕홍MC 서울시 강남구 시정부와 한국무역협회 주최.
2021년 GTI강원도 무역,투자 박람회 중국 라이브커머스 대표왕홍MC
2021년 해외바이어 초청 충북 농식품 온라인 수출상담회
2021년 친환경대전 정부 라이브커머스 방송
2021년 무주 태권도 왕홍 게스트로 태권도원 컨텐츠 제작 및 이즈보, 후야홍보 라이브 방송
2021년 국제 크리에이터 연맹 MCN디렉터 단장.
2021년 국제 미용 올림픽 대회의 인플루언서 협회 회장.
2021년 마노패밀리 법인 설립
2021년 새벽집 공구 및 인플루언서 라이브커머스 방송 양념6종, 명절 선물세트 방송

10. 언제쯤 어떤 방식으로 중국대상 활동을 하실 예정인가요?
현재 중국으로 진출하고 싶은 한국 브랜드들과 상품들을 여러 가지 소싱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저희가 협업하는 중국쪽 파트너사들이 그 브랜드와 상품이 마음에 들면, 마노패밀리가 유통을 하게끔 도와주고, 제가 직접 컨텐츠도 제작하고 제가 가지고 있는 250만 팔로우가 있는 채널들에 올리고, 라이브커머스 방송도 해 줄 생각 입니다.
위생허가가 없으면 위생허가를 받아주고, 중국의 플랫폼에 입점을 도와주고 사입도 할 생각입니다. 그렇지만 저희가 원하는 상품이여야 해서 절차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위생허가가 없는 제품들은 저희가 협업하고 있는 중국의 칭다오와 위해 쪽의 보세물류창고로 보내서 직구형식으로 유통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플랫폼은 중국의 채널과 거래처, 도우인(중국의 틱톡), 타오바오, 등 보세구에 보내서 직구 형식으로도 하고 저희 쪽 중국파트너가 사입을 해서 중국 쪽 채널들에 뿌려서 그 채널들이 판매하고 나서 위탁판매로 결제를 해주는 시스템도 있습니다.

11. 중국에 유학 간 이유는?
저희 아버지는 현대에서 28년 근무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변의 자녀분들이 유학을 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다 좋은 대학교에 진학했고, 유학 생활에 잘 적응을 하고 있었죠,
그 당시에 저는 운천이라는 촌에서 자랐습니다. 포천고등학교에 진학을 하게 되면서 서울에 가고 싶었고, 이 곳에서 열심히 공부해도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방황을 하고 있는 저에게 아버지의 친구 중 한분이 중국 심양에서 유학사를 운영하시는데 심양 외국어 고등학교에 중국 유학을 가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셨고, 저는 이유를 물어봤죠!
아버지는 중국어는 비전이 있는 언어이고 중국이라는 나라도 비전이 있으니 중국에 가서 좋은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중국어를 잘 배워두면 나중에 제가 활용할 곳이 많다고 하셨고, 저는 그 의견에 따라 중국에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12. 중국생활하면서 인플루언서 활동 시작? 언제부터 인플루언서에 관심?
중국에서 계속 연기자, 모델로 활동을 하면서 경력을 쌓게 되었습니다. 중국에서 여러 가지 방송 활동과 영화 주연으로 작품을 하게 되고, 여러 가지 한중 수교 활동의 메인MC와 예능프로그램 MC로 활동하였습니다.
새로운 작품이 나올 때 마다 저의 웨이보와 등등 자연스럽게 팬이 쌓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도중에 제작을 해서 영화를 만들어 보고 중국컨텐츠를 한국으로 가져와서 영화 배급 유통을 싶은 꿈이 생겼고, JY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첫 영화 작품으로는 필리핀 세부에서 촬영한 ‘작업남녀’라는 영화를 제작자 및 감독으로 만든 경력이 있고, 중국의 아이치이, 텅쉰에 배급을 했습니다. (2016년 ‘星岛之恋’ 영화감독 및 제작자), 연기자, 제작자로 활동하는 도중에 사드가 찾아오고 더 이상은 중국에서 방송인으로 활동을 할 수 없게 되면서 인터넷 방송을 시작하고, 제작자로만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 중국 인터넷 방송 입니다.
그 이후로 2017년(그녀가 돌아왔다 她回来了)인터넷 영화 제작 및 기획, 2017년 인터넷영화(罗网之旅)제작 및 케스팅매니저, 그리고 2018년 중국가수 등가쿤 덩자쿤 음악 네이버 멜론음악 배급.
2018년 네이버영화(작업남녀) 감독 및 제작자 및 배급, 2019년 네이버영화 (내 여자친구는 천사) 제작참여 및 배급, 을 하게 되면서 물건을 파는 라이브커머스 방송과 인플루언서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실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니는 동안에는 인스타로 공구를 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계속 중국으로 물건을 파는 라이브커머스는 모델로도 왕홍으로 계속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중국어로 물건을 파는 방송은 신라면세점과 롯데면세점 베베톡스, 중국 항저우에 의류공장에서 시작하게 되면서 중국으로 물건을 판매하고 유통하는 일이 관심을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코로나가 찾아오게 되고, 여러 가지 물류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한국 내수시장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해서 한국 쪽 인플루언서 시장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13. 중국유학생활 자세한 소개 부탁합니다.
17살에 중국 유학을 가서 부모님이 너무 보고 싶고, 타지 생활이 힘들 적이 많았지만, 너무 재밌었던 고등학교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중국에 가기 전에 저는 꿈이 있었어요. 중국에 가면 학교에서 쿵푸를 배우고 싶었고, 그 당시에 슈퍼주니어 한경이 중국인이라서 신기했는데 너무 잘생겼잖아요? 그래서 중국 사람들은 잘생긴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서 나중에 한경 같은 남자친구 사귀어야지. 라는 생각이요.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현지생활을 적응하기와 중국어 배우는 게 너무 바빠서 쿵푸도 배울 시간이 없었고 한경 같은 남자는 없었죠.
처음에 중국을 유학 간 첫날부터 저는 매일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유학생활을 기록하여 나중에 제가 나이들 때 다시 보기 위해서였어요. 그 일기를 읽어보니 처음에 중국에 유학을 갔을 때 한국보다는 발전하지 않았지만 낡은 건물들과 골목길 등등 친근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 당시에 1000원이 100위안 이었는데 중국의 물가가10대1로 물가가 싸서 누릴 수 있는 게 많고 너무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제가 처음에 중국에 갔을 때는 여름이었는데, 더워서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는데 아이스크림이 너무 맛있었어요! 그리고 가격도 중국돈1원=한국돈100원 밖에 안했어요! 그래서 신이 나서 그날 아이스크림을 10개나 사먹고 배탈이 났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처음에 중국 가서 언어가 안통해서 너무 답답했는데, 다행히 심양 외국어 고등학교에 조선족 선생님들이 수업을 해주셔서 선생님들 발음들은 다 어눌하지만 말이 통해서 다행이라고 생각됐던 것 같아요. 처음에 제가 중국어를 배운 곳은 입문반 이었는데, 처음 중국어를 배울 때 너무 힘들었어요. 제 이름 세 글자가 중국어로 계속 외워지지 않았어요! 보다 못한 조선족 선생님이 저만 벌로 나머지 공부를 시켰습니다.
그래서 다른 유학생들 다 점심시간에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저는 점심도 못 먹고 울면서 제 이름 세 글자를 외운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심양에는 조선족들이 많았는데, 심양에 조선족들이 운영하는 음식점들과 노래방, 피씨방 등 모여 있는 서탑이라는 한국타운이 있어서 그 다음날 저랑 같이 유학을 간 동생이랑 같이 가서 돈에 대한 개념이 아직 없다보니 바가지를 쓴 기억이 납니다.
서탑에서 이것저것 쇼핑을 실컷 했는데, 엄청 싸다 이러면서 돈을 다 써버려서 또 엄마아빠한테 혼나고 용돈을 다시 달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일반 유학생들의 한 달 생활비를 쇼핑에 다 써버린 거예요. 그 당시에 중국에 간지 얼마 안 되서 아직 환율이랑 중국돈의 가치와 개념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엄청 비싸게 물건을 샀어요. 부르는 대로 주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무조건 5번은 깎아야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한류 열풍이 있었나 봐요. 저희는 심양 외국어 고등학교의 국제부였는데, 매일 쉬는 시간에는 중국 학생들이국제부에 구경을 하러 문앞에서 기웃거렸습니다. 그리고 팬클럽같이 저한테 간식도 많이 사다주고 편지도 써주고 저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중국학생들은 체육복을 교복으로 입었는데, 당시 저희는 한국교복으로 입었고, 화장도하고 향수도 뿌리고 하니까 예뻐 보이고 신기했나 봐요.
그래서 학교 게시판에 저희들을 평가하는 글들이 올라오고는 했어요. 이은지는 화장이 너무 진하다. 향수냄새가 진동을 한다. 이은지는 예쁘다. 이런 글들이요.

14. 본격적으로 인플루언서가 된 시기는? 그리고 계기는?
중국에서는 싸드 이후로 인터넷 방송을 시작하게 되면서 제가 많은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화지아오라는 판빙빙이 광고했던 플랫폼에서 계속 1위를 차지하게 되었죠,
그러면서 시상식에서 상을 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중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왕홍이 되었고, 기존에 있던 팬들과 화지아오 팬들을 바탕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중국 들어오는 한국 브랜드사들이 계속 저에게 제품들을 판매를 해보거나 홍보를 목적으로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 제품들을 협찬 받고 써보고 하면서 인플루언서가 된 것 같습니다. 제가 한국에 3년 전에 들어와서 대학원에 들어가게 되면서도 계속 개인적으로 브랜드사 대표님들이 인스타 디엠으로 연락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지인소개로도 대표님들을 알게 되고 제품들을 협찬 받고 홍보해주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플루언서가 된 것 같습니다.
15. 한국에서 대학원 생활은 어떠했는지?
한국의 대학원 생활은 제가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2년이 지나간 것 같아서 너무 아쉬워요. 돌아보니 어느 순간 저는 졸업을 했더라고요. 6개월 정도밖에 학교생활을 즐기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에 본집인 포천에서 출퇴근을 하면서 학교를 다녔는데요.
학교를 다닐 때 계속 회사에서 비지니스 미팅과 중국방송과 중국 컨텐츠 강의 등 일을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일 끝나면 6시부터 저녁 수업을 듣고, 수업 끝나면 밤늦게 집에 가서 또 숙제와 과제 등등 공부를 하고 다음날 아침 또 촬영과 강의를 가며 힘들게 대학원 생활을 한 기억이 납니다.
이제 이 기억들도 다 추억이 되었네요. 이후 코로나를 겪으며 저는 나머지 3학기를 다 집에서 줌으로 수업을 듣고, 이메일로 제출하며, 남은 3학기를 보냈지만 줌으로 수업을 들은 기억도 좋았던 점도 많았던 것 같아요. 포천에서 왔다갔다 연료비도 들고 힘들었는데 인터넷으로 수업을 듣고 간편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학교에 대한 추억과 학우들과의 추억을 많이 남기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쉬워요.

16. 사업을 시작한 계기와 지금 사업내용 소개 부탁합니다.
보통 많은 회사들이 우리 마노패밀리를 인플루언서들이 모여서 만든 회사이기 때문에 마케팅회사라고 생각하는 회사가 있는 데요. 저희의 주 수익모델은 유통입니다. 저희는 상품에 맞게 중국어와 한국어로 컨텐츠와 동영상을 제작하고 있지만, 주요한 업무 목적은 유통을 하는 회사입니다.
저희는 중국쪽 인맥과 파트너사를 통해 중국전문 채널로 입점을 시키고 있습니다. 아직 마노패밀리의 자체 브랜드로 띄운 제품은 없지만 우리의 한중 크리에이터들과 인플루언서들을 활용해서 외적인 컨텐츠를 만들고 있습니다.
저희는 위생허가가 없는 제품들은 위생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절차를 밟아주고 위생허가 없는 제품도 진행한 적이 많습니다.
보세무역 직구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칭다오 위해에 있는 보세창고에 넣어두면 거기서 주문받아서 바로 보내고, 중국의 파트너사 대행사에 입점 시켜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마노패밀리에서 잘하는 내용입니다.
- 제품에 대한 영상 제작 즉 한국과 중국의 양방향으로 마케팅을 하고 있고요. 제품에 대한 영상 콘텐츠를 제작을 해서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채널마다 유포를 합니다. 인스타그램, 네이버, 그립, 틱톡 중국의 도인, 콰이쇼우, 웨이보, 샤홍슈 등등 있습니다.
- 네이버 블로그, 인스타 체험단과 리뷰도 진행하고 공동구매를 합니다.
- 세번 째는 제품력이 좋은 제품들은 마노패밀리에서 직접 라이브커머스를 진행 합니다. 그리고 저희는 여러 가지 협업되어있는 유통 채널로 지금 한국과 중국 수출을 위한 유통이 주된 목적입니다.

17. 중국 라이브커머스 시장에 대한 분석과 생각, 그리고 어떤 도전이 필요한가요?
중국의 라이브커머스 시장은 한국과 방송하는 방법이 180도 다릅니다. 방송전에 개인의 채널에 방송 예고를 하고 홍보를 하는 방식은 같습니다.
한국은 전문적인 쇼호스트 형식으로 라이브커머스 방송을 하고 발음이 정확하고 상품성 소개와 소통 위주로 어기와 말투를 적당한 속도로 방송 진행을 보통 1시간만 진행 하지만, 중국은 여러 가지 상품들을 한꺼번에 방송 진행하고, 기본 3-4시간, 길 때는 8시간이나 진행합니다.
그리고 말이 엄청 빠르고 “빨리 사야한다”라는 강조를 여러 번 강조하면서 소리를 지릅니다.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상당한 목청과 체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매일 방송을 진행할 경우에는 할 말을 큐시트에 적고 여러 가지 상품들을 몇 시간 동안 방송하기 때문에 그 상품들마다 시간을 나누어 방송합니다.
결론적으로 중국의 라이브커머스 시장은 한국보다 약 5년 정도 빠릅니다. 그래서 먼저 중국 현지에서 몇 년 전에 라이브커머스를 경험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라이브커머스는 끊임없는 끈기와 인내심 그리고 노력이 필요합니다. 제 주위의 왕홍들이 커머스방송이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는 경우도 저는 많이 봤어요.
우선 라이브커머스 방송을 하고 싶다면 판매할 상품을 소싱해서 개인의 팬을 늘릴 컨텐츠를 상품에 맞게 계속 생산하고 그 컨텐츠에 맞는 나만의 팬들이 쌓이면 그때 선택할 상품들을 판매할 쇼핑몰에 연동시켜 물건을 판매합니다.
그래서 지금 처음부터 시작하는 왕홍꿈나무 분들에게 해드리고 싶은 말씀은 처음부터 컨텐츠의 결을 잘 잡아서 커머스 쪽으로 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중국의 라이브커머스 시장은 무조건 가격 경쟁력이 있어야 합니다. 중국에서는 한국보다도 더 싼 물건들을 선호합니다. 저렴하고 좋은 퀄리티의 상품을 소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중국은 하루에도 수천 수십 만 명의 왕홍들이 생겨납니다.
이제 중국도 라이브커머스와 컨텐츠 왕홍도 하나의 직업이 되었고, 그 왕홍과 라이브커머스 판매는 개인의 능력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래서 라이브커머스 시장은 개인의 컨텐츠 제작 능력, 그리고 방송 능력, 그리고 가지고 있는 유통 라인, 그리고 끊임없는 자기개발과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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