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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대호’ 최민식, 믿음직한 끌림…그 감동의 가치

2015-12-17 09:2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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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nt뉴스 이린 기자 / 사진 황지은 기자] 호랑이가 포효하듯 한 마리의 완벽한 호랑이가 된 배우 최민식. 그 범상치 않은 기운의 울림은 역시나 139분의 러닝타임 내내 긴장감을 늦출 수 없게 했다. 지난해 영화 ‘명량’(감독 김한민)으로 묵직한 메시지를 안겼던 최민식이 ‘대호’로 그 감동을 잇는다.

영화 ‘대호’(감독 박훈정)는 일제강점기, 더 이상 총을 들지 않으려는 조선 최고의 명포수 천만덕(최민식)과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를 둘러싼 이야기를 다룬 영화. 최근 bnt뉴스는 서울 종로구 부암동 서울미술관에서 배우 최민식을 만났다.

극중 최민식은 총을 들지 않는 조선 최고의 명포수 천만덕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최민식과 대적하며 극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타이틀 롤 ‘대호’는 백 퍼센트 CG로 구현된 만큼 일찍이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기대만큼 우려도 컸던 게 사실. 이에 최민식은 “작품을 선택하면서부터 언론 시사회 때까지 목구멍에 뭔가가 얹힌 것처럼 정말 불안했다”고 운을 뗐다.

“좋은 메시지, 훌륭한 메시지라고 관객들에게 말을 걸어도 대호가 연기를 못하면 꽝이잖아요. 결과물을 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거였죠. 촬영 중간에 숲에서 걸어 나오는 호랑이 CG를 본 적이 있어요. 진짜 호랑이와 CG 호랑이 중 어느 게 진짠지 골라보라고 했는데 못 골랐어요. 그런데 대호가 걸어만 다니는 게 아니잖아요. 작업의 방향이 다른 거죠.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털 한 올부터 일일이 다 그려야 되는 작업이니까요. 이렇게 불안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김대호’ 씨가 과연 어떻게 나오는가, 지금은 그게 해소가 돼서 너무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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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식이 대한민국 최고의 관객을 동원한 ‘명량’과 할리우드 영화 ‘루시’에 이어 ‘대호’를 택한 이유는 끌림이었다. ‘신세계’(2013)를 함께 작업한 박훈정 감독과 그렇게 인연을 맺은 ‘대호’는 모든 것이 전례 없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인연인 것 같아요. 제가 잘난 게 아니라 전작에 대한 부담이 크고 신경이 쓰였다면 이걸 하면 안됐었죠. 이 불안한 걸 어떻게 하겠어요.(웃음) 완전히 정 반대되는 현대물을 한다거나하는 그런 계산을 할 수 있었는데 이게 마음이 끌렸어요. 인연이죠. 제 끌림에 따라 해서 후회가 없고 이게 정답인 것 같아요. 흥행여부를 떠나서 누굴 탓할 것도 없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요. 잘되면 더 좋은 거고요.”

“중반으로 치달을수록 참 막막했습니다. 잘 표현이 돼서 관객들이 천만덕과 대호의 행위를 이해할 수 있어야 된다는 강박이 있었어요. 처음부터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농담처럼 CG 대호에게 ‘김대호’라고 이름도 지었어요. 그리고 늘 정신을 붙잡고 있으려고 더 노력했죠. 촬영을 하는 내내 이 타이밍에서 어떻게 시선을 보낼 것인지 예측을 늘 해야 했습니다. 재촬영은 불가능했으니까요. 입버릇처럼 이야기하지만 ‘대호’가 잘된다면 백 퍼센트 ‘김대호’의 공이죠.”

‘대호’는 일제강점기 당시 서민들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또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조선을 억누르는 일제와 조선을 대표하는 마지막 호랑이, 대호와의 관계를 통해 자연과 사람, 민족과 민족간의 갈등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중심에 최민식의 천만덕이 있다.

“천만덕은 복수를 하지 않아요. 한 번도 일본군에게 총을 겨누지도 않고요. 욕망의 덩어리, 탐욕의 덩어리에 서있지 않아요. 배경이 일제 강점기기 때문에 항일의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겠지만 그 것과 무관합니다. 일본군이 대호를 잡는 것에 대해 직접적인 표현이 없고 단지 천만덕의 삶의 태도로 인해 자동적으로 일본 고관(마에조 노)의 욕심이 실현되지 않잖아요. 이 작품이 그런 것을 염두 해 놓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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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대호’. 그리고 천만덕은 유일하게 ‘먹고 살 만큼만 잡고 그 이상의 살생은 자제’하며 사는 진짜 사냥꾼이다. 일제의 살생에 끝까지 맞서며 대호와 닮은 운명을 사는 그를 통해 최민식은 “늘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들이 영화 속에 드러났으면 했다”고 입을 열었다.

“인간의 업, 인과응보, 절제, 예의 같은 것들을 늘 생각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런 것들이 드러났으면 했어요. 어떻게 보면 예의에 대한 영화일 수도 있고 생에 대한 예의, 생명에 대한 예의일 수도 있죠. ‘잡을 만큼만 잡자’는 대사에 모든 것이 내포돼 있는 것 같습니다. 창고에 박아 놨던 가치, 쓸모없는 물건이라고 처박아 놨던 가치나 미덕, 잊고 살았던 것들을 환기시키는 작품이 됐으면 합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경쟁 사회 속에 살면서 이런 허구적인 창작물에서라도 뭔가 같이 공유할 수 있고 되짚어볼 수 있는 계기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천만덕과 대호의 닮은 운명에 자신의 운명을 거스르지 않고 무던히 노력하고 한 길만을 걸어가는 배우 최민식 역시 겹쳐 보였다. 이제는 국민 배우 중 한 사람으로 고유명사가 돼버린 최민식의 호탕한 미소가 든든하다.

“대중들이 평가하는 것과는 무관하게 욕심이 자꾸 생겨요. 하고 싶은 일들이 자꾸 머릿속으로 생각나고 표현하고 싶은 것들이 점점 많아지는 게 있어요. 스스로에게도 ‘왜 하고 있지?’라는 질문을 자꾸 하게 됩니다. 어떨 때는 막 달려 가다가 서게 돼요. 그리고는 새삼스럽게 ‘뭐 하고 있지?’라고 물어봐요. 그럼 ‘여태까지 해왔잖아’는 것 밖에 답이 없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나름대로 합리화도 되고 의미부여도 하게 되고 반성도 하고 우쭐해보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는 이야기를 잘 만들고 사람을 잘 표현하는 거더라고요. 이제는 ‘제대로 만들자’ 는 책임감이 생겨요. 그래서 더 ‘원하는 작업을 하자’고 다짐합니다. 아주 이기적인 생각일 수도 있지만요. 제가 원하는 걸 잘 해내고 싶습니다. ‘대호’도 마찬가지였고요. 지금까지 다작은 없었지만 내년부터는 다작도 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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