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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차이나타운’ 김혜수, 여배우의 삶…그 이면에는

2015-05-01 10: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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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nt뉴스 박슬기 기자] 30년차 여배우의 삶이란, 언제나 화려하고 눈부신 삶은 아니었다. 그 이면에는 공허함과 외로움이 있었고, 그렇게 녹아나오는 삶의 연륜은 영화 속에서 자연스레 표현됐다. 배우 김혜수의 이야기다.

최근 영화 ‘차이나타운’(감독 한준희) 개봉을 앞두고 한경닷컴 bnt뉴스와 만난 김혜수는 “사실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굉장히 망설였어요”라고 운을 뗐다.

“망설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시나리오 자체가 영화적으로 힘이 있었어요. 영화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 형태 자체가 정서적으로 굉장히 버거웠죠. 그런데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이나 소개 자체가 새롭더라고요. 전형적인 방식들이 아니라 빗나가는 방식? 그런 것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극 중 엄마(김혜수)는 냉혹하고 비정한 세상 ‘차이나타운’의 실질적인 대모이다. 뿌리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이민자 출신의 엄마는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자기만의 조직을 일구고, 차이나타운을 군림한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어떠한 일도 마다하지 않으며, 일을 처리할 때는 한 치의 망설임이나 감정의 동요도 없다. 극도의 잔인함을 지닌 엄마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쓸모 있다는 증명’뿐.

“저는 우리 영화에서 나오는 충격과 잔인함의 수위가 정서적으로 좀 세다고 생각해요. 엄마가 영화에서 ‘증명해봐. 네가 얼마나 쓸모 있는지’라고 말하는 것만 봐도 그렇지 않나요? 아니, 그 증명하는 기준을 누구한테 보여주고, 강요받는 건가요? 하지만 알면서도 따라가는 거잖아요. 그런 면들은 우리 일상과 맞닿아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도 매일 사람에게 상처주고, 상처 받고, 죽을 것 같은 기분을 느끼잖아요. 작품을 하면서 많이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그간 강렬한 캐릭터를 맡아온 바 있는 김혜수에게도 이번 작품과 캐릭터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 어떠한 말도, 다양한 표정도 없이 감정을 절제하며 담담함을 표현하기 때문.

“비현실적이고, 비인간적인 극도의 강렬한 생존의 공간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뭐 하나에 흥분하고, 웃고, 화 내고 이런 일은 없겠죠. 몸 속에 이미 인간 이하의 삶을 버텨낸 그런 흔적이 있었을 테니까요. 짐승처럼 생존한 사람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캐릭터라고 볼 수 있죠. 다행인건 영화에서 주는 어둠, 불편하면서도 외면할 수 없었던 정서적인 그 부담감 같은 것들이 촬영 전, 구체적인 작업에 들어가면서 잊어버릴 수 있었어요. 영화, 엄마만 생각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죠.”

김혜수의 디테일한 캐릭터 작업은 엄마와 일체화되기까지 많은 도움을 줬다. 특히 비주얼 적으로도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신경을 많이 썼다는 후문이다. 힘들고, 잔혹했던 엄마의 세월을 반영하기 위해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 기미와 주근깨가 가득한 피부, 거기에 두툼한 뱃살까지. 여배우로서는 선뜻 도전하기 힘든 분장이었을 터.

“이번 작품에서 엄마는 외적인 변신을 부각시키려고 한 게 아니었어요. 엄마를 찾다가 최종적으로 최적화된 외형이었죠. 생존이라는 게 진짜 죽고, 살고의 생존이잖아요. 그래서 ‘이런 사람한테 과연 여성, 남성이라는 게 남아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죠. 내가 여성이고, 말고가 아니라 일단 사는 게 먼저니까요. 이건 완전히 물리적인 것을 뛰어넘어 무시하는 그런 지경이어야 된다는 거죠. 단지 센 역할을 하기 위한 외형을 만들기가 아니라 외형과 내면이 같이 가는 게 엄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외형에 걸 맞는 움직임, 가장 엄마다운 상태를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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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 문득 궁금함이 들었다. ‘극중 엄마의 이름이 왜 하필 엄마였을까’ 하고. 사실 엄마라는 단어에서 오는 따뜻함이 이렇게 잔혹하게 그려지는 것이 의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었다. “왜 엄마였을까” 하고.

“아빠는 아니잖아요?(웃음). 처음에 사람이 태어나면 생명체이지만, 한 인격체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렵잖아요. 그래서 그 생명체의 생명을 쥐고 있는 게 어쩌면 엄마이고요. 엄마가 아이를 키움으로서 완전한 인격체가 된다고 생각하죠. ‘차이나타운’에서 엄마는 조직원들, 운명체의 생존을 쥐고 있는 절대자라고 볼 수 있잖아요. 그런 면에서 엄마라고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그가 말했듯이 이번 영화는 기존 범죄 드라마와는 달리 여자가 조직을 지배한다. 조직의 목숨을 돈으로 다루고, 살인을 서슴없이 하는 엄마의 모습은 남자 못지않은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다. 그런 점들이 새삼 신선하게 느껴져 “이 작품을 시작으로 앞으로 여성 느와르가 많이 나올 것 같다”고 말하자 김혜수는 의외의 답변을 했다.

“글쎄요. 앞으로 이런 영화가 많이 나오기 힘들지 않을까요? 여성이 주체적으로 나왔다고 해서 과연 여성 영화일까 싶어요. 중요한 건 핵심적인 내용이니까요. 여성이 캐릭터를 어떤 식으로 소개하느냐, 소화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점에 있어서 우리 영화는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 한 것 같아요. 그런 점들이 좋아요. 제가 더 바라는 건 상업적인 장르를 떠나서 진짜 캐릭터가 살아 있는 그런 여성의 역할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30년차 여배우의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이번작품이 그에게 유독 특별했던만큼, 그 결과도 기대가 됐다. 특히 개봉 전부터 칸 영화제에 초청돼 그 의미가 더욱 깊다. 하지만 김혜수는 그 공을 모두 스태프에게 돌렸다.

“칸 소식 저도 들었어요. 감독님하고, 제작진에게 축하해주고 싶어요. 처음에 사실 감독님께 ‘첫 영화를 왜 이렇게 어려운 이야기를 하세요?’라고 물었었거든요. 그 때 감독님이 ‘저는 영화를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더라도, 꼭 이 영화로 하고 싶습니다’라고 이야기했던 적이 있어요. 현실적인 여건에서 이렇게 하드한 여자 범죄 느와르 쉬운 거 아니거든요. 그래서 감독님과 제작자의 안목이 탁월하다고 봐요. 외부에서 인정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 그런 것들을 (칸에서) 알아봐주는 느낌이 들어서 기뻐요. 감독님께 축하드리고 싶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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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끝에 다다르니, 문득 실제 김혜수의 삶이 궁금했다. 충무로에서 독보적인 여배우로 삶을 살아가는 그로서는 제법 성공한 삶이니 말이다.

“글쎄요. 사실 공허함을 잘 느껴요. 배우라는 직업자체가 액면가 그대로 비판을 받으니까요. 배우는 좀 더 그 수위가 강렬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마음껏 드러내지 못하는 상황이 많다보니까 답답한 면들도 있죠. 그래도 나름 즐기면서 잘 살고 있어요(웃음)”

그러면서 김혜수는 ‘차이나타운’ 관객들에게 한마디 덧붙인다. “제가 정의할 수는 없지만, 우리 영화는 아주 비정해요. 정서적으로 무거운 여운을 남겨주겠지만, 어떻게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은 영화죠. 이번 영화를 통해서 진한 여운을 얻어가셨으면 좋겠어요.(웃음)” (사진제공: CGV아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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