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

골드번호, 전화번호에 담긴 경제학

2010-08-24 08:02:15
기사 이미지
[전부경 기자] 개인의 휴대폰 뒷자리 번호는 사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쉽게는 집 전화번호가 ‘3125’일 경우 휴대폰 번호도 똑같이 ‘3125’로 정하거나 자신의 생일이 5월10일인 경우 ‘0510’으로 정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전화번호는 단순히 본인이 외우기 쉬워서도 있지만 생일이나 기념일의 경우 상대방이 기억하기 쉽도록 PR의 개념도 있다. 평소 전화번호를 누르거나 쳐다보는 사이에 어느 순간 각인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모르던 사람도 전화번호를 보고 생일이냐며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만든다.

기업에서 전화번호는 업종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마케팅의 수단이 된다. 이에 고객센터나 주문을 받는 전화와 같이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전화번호는 ‘1111’, ‘2222’, ‘1234’ 등과 같은 좋은 번호를 선호한다. 그러나 이러한 번호는 기억하기 쉬워 선호도는 높은 반면 희소성이 강하다. 뿐만 아니라 가격도 수십 배에서 수백 배나 비싸다.

그래서 기업들은 이를 대체하기 위해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이용한 전화번호를 사용한다.

1. 숫자를 발음으로 연결

병원은 ‘치료’와 발음이 비슷한 ‘75’, 택배와 같은 배달 업체는 ‘빨리’와 발음이 비슷한 ‘82’가 들어간 번호를 선호한다. 부동산 등 매매 관련 업종은 ‘4989(사구팔구)’, 이사 업체들은 ‘2424(이사이사)’를, 치과는 ‘2875(이빨치료)’, 세탁소는 ‘3989(삶고빨고)’, 종교단체는 ‘9191(구원구원)’, 치킨집은 9292(구이구이), 오일(oil)을 파는 정유회사들은 ‘0051(오일)’ ‘5189(오일팔고)’등의 번호를 사용한다.

2. 전화번호에 서비스를 담았다.

전화번호가 수익으로 직결되는 업종은 외우기 쉬우면서도, 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특징을 담는 전화번호를 선호했다.

2000년 초 대리운전 업체는 전화번호 뒷자리를 이용해 제공되는 서비스의 가격을 표시했다. 가령 ‘1500’은 15,000원, ‘1200’은 12,000원과 같은 식이다. 최근에는 앞뒤가 같은 번호를 선호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는데, 기존에 금액 위주로 이루어지던 대리운전 전화번호 대신에 ‘앞뒤가 같은 서비스’라는 이미지를 전화번호에 함께 담아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다.

3. 기억하기 쉽지 않다면 노래로 각인효과

번호 경쟁에서 밀리면 기업에서는 번호를 알리기 위해 CM송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업종이 피자 업체다. 배달전화가 수익과 바로 연결되기 때문인데 이 때문에 업체 이름만 들으면 번호가 함께 연상될 정도로, 노래를 반복해서 들려주는 CM송이 특징이다. 가사도 단순하다. 도미노 피자의 “1,5,7,7,3,0,8,2 도미노피자”, 힙합가수들의 랩으로 만든 피자에땅의 ‘1,6,8,8,3,6,5,1’이 대표적이다.

중국에서 최근 부를 상징하는 숫자 ‘8’이 네 개 들어간 번호가 약 5천 만 원에 팔린 적이 있다. 국내에서도 음성적으로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한 업체에 의하면 한 골드번호가 1억에 팔렸다는 뉴스기사도 나온 적이 있다. 과연 골드번호라 지칭되는 이러한 전화번호들이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기에 좋은 번호를 차지하기 위한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일까?

관련업계에서는 보통 기업의 경우 전통적으로 고객센터 위주의 전화번호라 수익과 직결되지는 않지만 브랜드의 자존심과 연결되어 있어 쉽게 가치로 측정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전화번호가 수익과 직결되는 업종의 경우 그 가치는 엄청나다.

코리아 드라이브 김동근 대표는 “초창기에도 대표번호 ‘1577-1577’을 사용했지만, 단지 좋은 전화번호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는 수익이 창출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전화번호에 ‘앞뒤가 똑같은 서비스’라는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만들어가면서 수익이 발생하기 시작해 이제는 대리운전하면 이 전화번호를 누구나 기억할 정도로 ‘1577-1577’의 가치는 금액으로 환산 할 수 없을 정도다”라고 말한다. 한편 동종 업계에서는 코리아드라이브의 전화번호 브랜드 가치가 최소 200억이 넘는다고 추정한다.

한경닷컴 bnt뉴스 기사제buridul@bntnews.co.kr

▶ 2010년 추석, 해외여행 추이 '분석'
▶ 연예인은 외제차? 친환경 자전거 픽시 타는 ★
▶ 초보 운전자들을 위한 ‘자동차 고르는 법’
▶ 우리 집 가구, 주말에 만들어 볼까?
▶ 남 71%, 소개팅 후 예의상 ‘문자’
▶ KTX로 떠나는, 홍도·흑산도 2박3일 ‘황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