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의 수도, 그 거대한 심장부인 서울특별시 중구. 600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격동의 세월을 묵묵히 견뎌내며 서울 원도심의 짙은 향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이곳은, 동시에 대한민국의 경제를 든든하게 떠받치는 수많은 금융기관과 고층 빌딩들이 거대한 숲을 이루며 밀집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과거의 고즈넉한 숨결과 현재의 치열한 삶, 그리고 미래를 향한 역동적인 발걸음이 하나의 공간 안에서 경이롭게 공존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도심이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바쁘게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의 물결 이면에는, 오래된 골목길을 굽이굽이 지키며 자신만의 소중한 삶의 터전을 일구어가는 정겨운 이웃들의 따뜻한 온기가 깊숙이 배어 있다.

모진 겨울의 추위를 이겨내고 새봄을 맞이하는 자연의 섭리처럼, 거대한 도심의 그늘 아래서도 저마다의 굳건한 자리에서 희망찬 내일을 일으켜 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 '동네 한 바퀴'의 363번째 여정은 한때 북촌과 쌍벽을 이루며 조선시대 선비들의 꼿꼿한 기개와 맑은 정신이 서려 있던 선비의 마을 ‘남촌’, 즉 지금의 회현동 일대와, 서울역 뒷골목이라는 이름으로 근현대사의 질곡 깊은 굴곡을 골목마다 품어온 중림동으로 떠난다. 오래되어 더욱 가치 있고, 그 오랜 시간 속에서 새롭게 피어나 더욱 가슴 설레는 서울 중구의 숨겨진 명소와 가슴 따뜻한 이웃들의 진짜 삶의 이야기를 깊숙이 들여다본다.

남대문시장,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전통시장, 600년 역사가 굽어보는 치열한 삶의 현장
서울의 주요 핵심 건물들과 국보 1호 숭례문을 지척에 두고 자리한 남대문시장은, 서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이자 하루 평균 30만 명에 달하는 엄청난 인파가 몰려드는 거대한 삶의 용광로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600년의 장구한 역사를 거치며 굳건히 자리를 지켜온 이곳은, 각종 의류와 화려한 액세서리, 정교한 민속공예품에 이르기까지 '남대문시장엔 고양이 뿔 빼고 다 있다'라는 옛말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매일같이 증명해 내는 대한민국 대표 전통시장이다. 이곳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상업 공간을 넘어, 수많은 서민의 애환과 기쁨이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 있는 생생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미로처럼 얽힌 좁은 골목길 사이사이에는 저마다의 사연을 품은 상인들이 빼곡히 자리를 잡고 있다. 반 평 남짓한 아슬아슬한 크기의 작은 가게에서 매일같이 구수한 호떡을 구워내며 손님들을 길게 줄 세우는 당찬 청년 사장님의 이마에는 건강한 땀방울이 맺혀 있고, 1만여 곳에 육박하는 점포 상인들의 바쁜 점심 식사를 책임지기 위해 층층이 아찔하게 쌓아 올린 은쟁반을 어깨에 이고 잰걸음으로 인파 속을 뚫고 뛰어다니는 식당 사장님의 발걸음에는 치열한 삶의 무게가 실려 있다. 사람 냄새가 진동하는 이곳 남대문시장에 동네 지기 이만기가 활기찬 걸음으로 들어섰다.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인파 속에서 우연히 마주친 뜻밖의 반가운 얼굴들과 인사를 나누며, 남대문시장 특유의 넉넉한 인심과 유쾌한 웃음으로 본격적인 동네 한 바퀴의 포문을 활짝 연다.

떡방앗간 옆 떡볶이집, 70대 어머니의 슬기로운 황혼 생활, 36년 내공의 떡방
낡고 거대했던 옛 서울역의 고가차도를 걷어내고 시민들을 위한 푸른 선형공원으로 아름답게 탈바꿈한 '서울로 7017'. 그 길을 따라 서쪽으로 조용히 발길을 옮기면 가장 먼저 여행자를 반기는 동네가 바로 중림동이다. 오래되고 자그마한 옛 가게들이 어깨를 맞대고 옹기종기 늘어선 정겨운 골목 한편에서 아주 아담하고 특별한 떡방앗간을 마주하게 된다. 다소 이색적인 풍경은, 떡을 찌는 방앗간 바로 옆에 세련된 작은 카페가 나란히 붙어 함께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곳은 중림동을 비롯해 오랜 세월 여러 동네를 거치며 무려 36년째 매일 새벽 떡을 뽑아온 73세 오세온 사장님의 소중한 일터다.

살아온 인생의 절반 이상을 뜨거운 김이 오르는 떡집에서 쉴 틈 없이 보내며 관절 성한 곳 없는 어머니를 지켜봐 온 자식들. 그들의 간곡한 걱정과 만류로, 이제는 힘든 방앗간 일은 쉬엄쉬엄하고 작은 카페를 곁들여 여유롭게 운영해 보시라는 권유에서 시작된 두 집 살림이었다. 하지만 야심 차게 문을 연 떡 카페는 예상만큼 손님들의 발길을 끌지 못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겹치면서 텅 빈 가게를 지켜야 하는 매서운 위기를 맞았다. 늘그막에 큰돈을 바라고 한 일도 아니니, 이왕 이렇게 된 거 예전부터 마음속으로 해보고 싶었던 음식이나 원 없이 팔아보자는 호탕한 결심을 내렸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사장님이 매일 직접 뽑은 쫄깃한 가래떡을 숭숭 썰어 넣은 국물떡볶이다. 자식들이 어릴 적 배고프다고 보챌 때마다 뚝딱 해 먹이던 그 투박한 방식 그대로, 진한 멸치육수를 푹 우려내고 36년 장인의 내공이 고스란히 응축된 가래떡으로 끓여낸 떡볶이는, 잊혀진 추억의 맛을 찾아 골목을 서성이는 이들에게 완벽한 위로가 되었다. 명절마다 문전성시를 이루며 줄 서서 떡을 사 가던 화려한 전성기는 지난 옛이야기가 되었을지라도, 오세온 사장님은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 별을 보며 방앗간 문을 열고 정성 가득한 떡볶이를 끓여낸다. 인생의 황혼기를 가장 지혜롭고 따뜻하게 보내고 있는 어머니의 슬기로운 일터를 조명한다.

반백 살에 과감히 쏘아 올린 인생 2막, 화장품 조제사 고재철 씨의 도전

중림동의 후미진 골목 한편에 당당히 자신만의 이름을 건 가게를 차리며 주도적인 50대를 맞이했지만, 그 좁고 험난한 길을 걸어오기까지는 뼈를 깎는 숱한 노력과 주변의 따가운 원성도 홀로 감내해야만 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번듯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하루아침에 제 발로 걸어 나가겠다는 재철 씨의 폭탄선언을 선뜻 이해하고 응원해 주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하물며 앞으로 한창 학비와 뒷바라지가 들어갈 나이의 딸을 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아내의 깊은 한숨과 뼈저린 걱정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하지만 변명하기보다는 묵묵히 땀방울을 흘리며 결과로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겠노라 다짐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공방은 점차 자리를 잡았고, 지금은 그 누구보다 가족들의 열렬한 지지와 응원을 한 몸에 받는 멋진 아빠이자 남편으로 거듭났다. 반드시 지켜내야 할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기에 하루하루가 더 간절했고, 그렇기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히 지금의 인생 2막을 열어젖힐 수 있었다고 고백하는 고재철 씨. 은퇴의 불안감 속에서 흔들리는 대한민국 50대 아버지들에게 훌륭한 본보기가 되고 싶다는 재철 씨의 향기로운 공방에 머물러 본다.

시간이 멈춘 골목을 걷다, 서울의 숨겨진 보물 '남산옛길'과 시민아파트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거대한 빌딩 숲이 빽빽하게 들어찬 서울 도심 한복판, 불과 한 블록 뒤편에 마법처럼 옛 모습 그대로를 온전히 간직한 비밀스러운 길이 숨어있다. 조선시대 권세가들이 모여 살던 북촌과 대비되며, 가난하지만 청렴하고 꼿꼿한 선비들이 모여 살아 ‘남촌’이라 불렸던 회현동 일대다. 남산 자락을 따라 거미줄처럼 뻗어있는 숨은 골목들을 정비하고 재발견하여 새로운 명소로 조성한 회현동 '남산옛길'을 천천히 걸어본다. 남산옛길 골목골목에는 색이 바래고 칠이 벗겨진 낡은 간판을 내걸고 수십 년째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노포들이 세월의 증인처럼 서 있다.

그중에서도 유독 눈길을 끄는 곳은 자그마치 36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자리를 옮기지 않고 여성들의 치맛주름을 손수 정교하게 잡아온 작은 '주름집'이다. 평생을 다리미와 재봉틀 앞에서 보내며 이웃들의 옷매무시를 다듬어온 추창석 부부를 만나, 화려했던 남촌의 옛이야기와 패션의 변천사를 다정하게 들어본다. 발길을 돌려 가파른 남산옛길의 정상 부근에 다다르면, 1970년에 지어져 한국 현대 건축사의 중요한 산증인으로 꼽히는 국내 최초의 시범 아파트, '회현 제2 시민아파트'의 거대한 위용이 동네 지기를 압도한다. 완공 당시만 해도 최신식 수세식 화장실과 중앙난방을 갖춰 당대 최고의 연예인들과 고위 관료들이 앞다투어 입주할 정도로 부의 상징이었던 곳. 하지만 50년이 훌쩍 넘은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낡아버린 지금은 20여 가구의 주민만이 텅 빈 복도를 지키고 있으며 곧 철거라는 역사적 뒤안길로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다. 화려한 서울의 스카이라인 뒤에 숨겨진 진정한 서민들의 삶의 궤적과 매력을 남산옛길에서 온몸으로 마주한다.

비건 도넛, 구수한 된장이 달콤한 도넛을 만났을 때, 청년 사장님의 기발한 'K-도넛'
명동과 남대문시장이 인접해 있어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을 비롯한 유동 인구가 유독 넘쳐나는 회현동. 화려하고 현대적인 서울의 겉모습 이면에, 수십 년 전 원도심의 소박한 풍경을 그대로 간직한 또 다른 서울의 민낯을 보기 위해 최근 회현동 골목을 탐험하는 젊은이들과 외국인들이 급증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인적 드문 좁은 골목 모퉁이에 자리 잡은 자그마한 가게 하나가 기발한 도넛으로 수많은 손님의 입맛을 단번에 사로잡으며 골목의 풍경을 바꿔놓고 있다. 이곳의 주력 메뉴는 다름 아닌 한국의 전통 발효 장인 '된장'을 과감하게 크림과 반죽에 활용한 이색적인 'K-도넛', 그리고 버터와 우유 등 동물성 유제품을 일절 배제하여 독특하게 쫄깃한 식감과 먹고 난 후에도 속이 편안한 '비건 도넛'이다.

과거 트렌디한 외식업 브랜드의 컨설턴트로 활발히 일했던 김애리 사장님은, 화려한 직함을 내려놓고 직접 앞치마를 두르며 비건 도넛 창업이라는 미지의 영역에 뛰어들었다. 이미 해외시장에서는 일상적으로 보편화된 비건 베이커리가 유독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예리한 시장의 틈새를 노렸다. 그녀는 밤낮없이 주방에 틀어박혀 수백 번의 배합 끝에 자신만의 완벽한 비건 도넛 레시피를 완성했고, 더 나아가 외국인들의 발길이 잦은 회현동의 장소적 특성을 십분 고려해 짭조름하면서도 달콤한 된장 도넛까지 뚝딱 개발해 냈다. 거창한 간판이나 마케팅, 특별한 홍보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독보적인 맛은 순식간에 입소문을 탔다. 건강을 생각하는 국내 손님들은 물론이고, 한국의 전통적인 맛에 매료된 해외 손님들에게도 서울을 대표하는 도넛 맛집으로 굳건히 인정받았다. 한국에 입국할 때마다 캐리어를 끌고 가장 먼저 이곳부터 들른다는 열성 단골부터, 한 입 베어 문 도넛 맛에 깊은 감동을 받아 서툰 글씨로 진심 어린 손 편지를 남기고 간 수백 명의 외국인 손님들까지. 이들이 남긴 온기 어린 메시지들은 김애리 사장님이 새벽 일찍 오븐을 켜게 만드는 가장 거대한 원동력이다. 여전히 머릿속에는 세상에 없던 새로운 K-도넛의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하다며 눈을 반짝이는 청년 사장님의 달콤하고 고소한 일터로 들어가 본다.

숭례문, 600년 성문을 열어라! 한양도성을 호위하는 파수군의 웅장한 부활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고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굳건히 방어하기 위해 산세를 따라 축조한 거대한 성곽 '한양도성'. 그 길고 웅장한 성곽의 정문이자 사대문 중 남쪽에 위치하여 흔히 남대문이라 불리는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국보 1호, 숭례문에 당도했다. 수백 년의 비바람과 전란 속에서도 도읍 한양을 수호하고 백성을 지켜왔던 숭례문 앞 광장에서는, 조선시대 도성의 문을 여닫고 경비하던 군례 의식인 '파수의식'이 매일같이 장엄하게 재현되고 있다.

형형색색의 전통 깃발이 나부끼는 가운데, 위풍당당한 갑옷을 입고 근엄한 표정으로 숭례문을 호위하는 파수군들의 모습은 빌딩 숲을 오가는 현대인들에게 시간을 거스른 듯한 경이로운 풍경을 선사한다. 동네 지기 이만기 역시 직접 파수의식 현장에 깊숙이 참여하여 늠름한 파수군들과 함께 도성을 지키는 유쾌한 만남을 가짐으로써, 우리 전통문화의 묵직한 가치와 자긍심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긴다.

서울 중림동 45년 설렁탕, 어머니가 남긴 마지막 유언, 맑은 국물에 녹아든 막내아들의 뜨거운 사모곡
조선 후기, 숭례문 밖에서 난전으로 성행하며 도성 최대의 어물전으로 명성을 떨쳤던 칠패시장의 오랜 역사를 지나 1970년대. 한강 이남인 노량진에 대규모 수산시장이 새롭게 생겨 상인들이 대거 빠져나갈 때도, 끝끝내 자리를 옮기지 않고 남은 억척스러운 상인들이 캄캄한 새벽별을 보며 좌판을 열고 형성했던 곳이 바로 '중림시장'이다. 시대가 변하고 대대적인 도심 개발의 거센 물결에 밀려 지금은 거의 옛 자취를 감추어버렸지만, 그 시절 뼛속까지 시린 칼바람을 맞으며 장사하던 상인들의 꽁꽁 언 몸과 배를 따뜻하고 든든하게 채워주며 융성했던 음식 '설렁탕'의 진한 냄새는 여전히 골목 어귀에 남아 있다. 1960년대 중림동 시장 바닥에서 생선 도매 장사로 억척스럽게 생계를 꾸리다, 우연한 기회에 설렁탕집을 차려 무려 45년이라는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 동안 온 식구를 거둬 먹여 살린 고(故) 안영자 어머니. 여느 뽀얗고 끈적한 설렁탕과 달리 유독 맑고 담백한 국물이 특징인 이 집의 설렁탕은, 어머니가 밤낮으로 손을 다쳐가며 썰어 담근 매콤달콤한 깍두기와 환상적인 궁합을 자랑하며 시장 사람들의 소울 푸드가 되었다.

자애롭던 1대 사장님 영자 씨가 4년 전 불현듯 세상을 떠난 이후, 헛헛한 마음을 달래려 그 옛맛을 잊지 못해 찾아오는 백발의 단골들을 웃으며 맞이하는 이는 다름 아닌 막내아들 김경호 씨다. 젊은 시절 일찌감치 어머니 곁에 붙어 무거운 뚝배기를 나르며 가게 일을 도왔던 경호 씨는, 하루 종일 불앞에서 땀 흘려야 하는 고된 궂은일을 자식에게만큼은 절대 대물림해 주기 싫어하셨던 어머니의 불호령 같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가업을 잇겠다며 우직하게 주방에 매달렸다. 생의 불꽃이 꺼져가는 마지막 순간 병상에 누워서도, 평생을 바친 자신의 분신과도 같던 설렁탕집 걱정에 눈을 감지 못하셨다는 어머니 영자 씨. 막내아들 경호 씨는 지금도 이따금 어머니가 꿈에 찾아와 솥의 불 조절은 잘하는지, 고기 핏물은 제대로 뺐는지 그립고도 잔잔한 잔소리를 늘어놓고 가신다며 애써 눈시울을 붉힌다. 돌아가시기 직전 앙상한 손으로 아들의 손을 꼭 쥐며 마지막으로 간곡하게 남기고 간 그 한마디의 부탁. 어머니의 평생이 담긴 맑은 국물과 손맛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매일 새벽 묵묵히 사골을 우리는 경호 씨의 애절한 사모곡과,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이 무엇이었는지 그 깊은 이야기를 들어본다.

500년 은행나무, 고층 빌딩 숲의 거대한 수호신, 시간이 멈춘 자리
끝없이 솟아오른 잿빛 고층 빌딩과 자동차의 경적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려 퍼지는 도심 한복판. 그 숨 막히는 풍경 사이에서 기적처럼 시간이 완전히 멈춘 듯 고고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거대한 생명체가 있다. 흔히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들 말하지만, 무려 500년이 넘는 상상조차 어려운 억겁의 시간 동안 홀로 수백 번의 모진 비바람과 폭설, 화려한 봄과 스산한 가을을 견뎌내며 이제는 마을 사람들에게 경외의 대상인 '은행나무 어르신'으로 불리는 나무다.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은 높이 약 24m, 성인 장정 여러 명이 양팔을 벌려 안아도 모자란 둘레 8m의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이 은행나무는,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이라는 민족의 아픈 상흔마저 모두 지켜보았을 역사의 산증인이다. 현재 서울시의 특별 보호수로 지정되어 여전히 회현동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수호신으로 푸르게 서 있다. 동네 지기 이만기 역시 은행나무의 거대하고 넉넉한 그늘 아래 잠시 멈춰 서서, 빌딩 숲 사이로 부는 바람을 맞으며 인간의 삶을 압도하는 자연의 위대함과 여유를 가슴 깊이 호흡해 본다.

80년 뜨개 외길, 세 식구가 함께 엮어가는 지하상가의 따뜻한 털실 꽃
이제는 스마트폰 음원 스트리밍에 밀려 자취를 감춘 오래된 LP 레코드판과, 편지를 쓰지 않는 시대에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수집용 우표 등 일상에서 쉽게 마주하기 힘든 진귀한 아날로그 품목들을 여전히 판매하고 있는 회현지하상가. 빛바랜 추억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곳 한구석에는, 앙증맞은 모양의 형형색색 수세미부터 정교한 패턴의 카디건, 세련된 디자인의 가방까지 마치 마법을 부린 듯 다채롭고 아름다운 털실 작품들로 벽면이 가득 채워진 아담한 뜨개방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코바늘 뜨개질 경력만 자그마치 80년에 달하며, 회현지하상가에서만 30년 넘게 뜨개방의 불을 밝히며 터줏대감으로 불리는 86세 이정자 장인의 신성한 구역이다.

아무것도 모를 6살 코흘리개 시절 호기심에 처음 뜨개질을 접했다는 이정자 사장님. 본인이 직접 도안을 짜고 밤새 떠 만든 옷을 다음 날 보란 듯이 학교에 입고 다녔을 정도로 동네에서 소문난 천재이자 신동이었다. 뛰어난 눈썰미와 타고난 손재주로 그 압도적인 실력을 일찌감치 인정받아, 바다 건너 까다롭기로 소문난 일본의 상인들에게 뜨개 가방과 옷을 의뢰받았다. 소싯적엔 직접 물건을 싸 들고 일본 출장을 수도 없이 다녔을 만큼 국가 경제에 이바지한 자랑스러운 수출 역군이었으며, 당당하고 진취적인 신여성의 대표 아이콘이었다.
20년 전, 승승장구하던 개인 사업을 미련 없이 훌쩍 접고 연로하신 어머니의 곁을 지키기 위해 합류한 효자 아들 정현호 씨와, 시어머니의 솜씨를 경이롭게 여기며 기술을 전수받기 시작한 그의 아내 나경진 씨까지 좁은 공방으로 들어오면서, 지금은 매일같이 세 식구가 무릎을 맞대고 도란도란 따뜻한 뜨개 꽃을 피워내는 곳이 되었다. 여든을 훌쩍 넘긴 올해 86세의 나이. 주변의 누군가는 이제 가게 운영은 젊은 아들 부부에게 전적으로 물려주고 집에서 편히 여생을 즐기시라 참견하지만, 이정자 사장님은 여전히 아들과 며느리에게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고 "선생님" 소리를 들으며 매서운 지도를 아끼지 않는 현역 최고의 실력파 스승님이다. 돋보기조차 쓰지 않고 나이가 무색할 만큼 빠르고 섬세하게 코를 엮어내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아들 현호 씨의 눈빛에는 존경심과 안타까움이 교차한다. 평생을 오로지 뜨개질에만 헌신하며 가족을 건사했던 어머니가 이제는 당신의 몸과 건강도 함께 살뜰히 챙겼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뿐이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빠르고 차갑게 흘러가는 거대한 서울 도심의 시간 속에서, 여전히 옛날 방식의 정통 실력을 꼿꼿이 고수하며 느리지만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게 세월을 엮어 내려가는 뜨개방 가족의 포근한 이야기를 만나본다.

시간이 켜켜이 무겁게 내려앉은 낡은 골목 담벼락에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어느새 청년들의 새로운 감각이 덧칠되어 신선한 조화를 이루고, 바쁜 출퇴근길에 무심코 스쳐 지나가며 지나치던 일상의 평범한 풍경들은 때로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깊고 진한 감동의 모습으로 가던 길을 멈추고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오래 숙성되어 더욱 그윽하고 깊으며, 그 오랜 전통의 틀 안에서 새롭게 움트며 피어나 더욱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서울 원도심 골목길과의 귀중한 만남.

저마다의 자리에서 과거의 기억을 보듬고 미래의 희망을 빚어내는 이웃들의 이야기는 '동네 한 바퀴' 363회 '오래되고 새롭다 – 서울특별시 중구' 편, 방송 시간은 2026년 3월 28일 토요일 오후 7시 10분이다.
김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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