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3년 공사 창립을 기점으로 대한민국 방송의 뼈대를 세운 KBS가 걸어온 53년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시간을 '한국인의 밥상'이 전한다. 보이지 않는 전파를 매개로 사람과 지역, 과거와 현재를 이어온 감동적인 사연과 그 안에 담긴 특별한 한 끼를 만난다.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서민들의 밥상에 얽힌 따뜻한 이야기를 전해온 최수종이 이번에는 방송이 만들어낸 기적 같은 인연을 찾아 나선다. 절망의 순간에 한 줄기 희망이 되었던 공영방송의 역할과, 그 모진 시간을 함께 버텨낸 이웃들의 투박하지만 정겨운 음식을 조명한다.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굳건하게 살아남은 사람들의 생명력은 밥상 위에서 가장 찬란하게 빛난다.

■ 138일간의 기적, 그 후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1983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무려 138일 동안 생방송으로 진행된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는 한국 전쟁이 남긴 상흔을 여실히 보여주며 전 국민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애초 90분 편성이었던 이 프로그램은 전국에서 몰려든 인파로 여의도 광장을 벽보로 뒤덮게 만들었고, 결국 세계 방송 역사상 유례없는 최장기 연속 생방송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1만 명이 넘는 혈육이 다시 만나는 기적을 연출했으며, 관련 기록물 2만여 건은 2015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어 역사적 가치를 입증받았다. 충남 논산에 거주하는 허현철(86), 허현옥(84) 남매 역시 이 방송을 통해 33년 만에 서로의 생사를 확인했다.
과거 피난길의 지독한 굶주림 속에서 흙 묻은 참외 껍질을 주워 먹던 아픈 기억을 마지막으로 헤어졌던 두 사람은 텔레비전 화면 속 낯선 주름 사이에서 단숨에 핏줄임을 알아봤다. 다시 43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러 백발이 성성해진 남매는 나란히 앉아 만두를 빚는다. 황해도 개성이 고향인 이들에게 돼지고기 대신 꿩고기를 다져 넣은 꿩만두는 북녘의 맛을 고스란히 재현해 내는 유일한 매개체다. 겨울 산에서 아버지를 따라나섰던 꿩 사냥의 추억은 팍팍했던 피난살이를 견디게 해 준 원동력이었다.
어린 시절 고향에 가지 못하는 명절마다 마주하기 싫었다던 꿩떡국도 세월이 흐른 지금은 서로의 생존을 축하하고 온기를 나누는 귀한 만찬이 되었다. 여기에 전쟁통 이별의 뼈아픈 사연이 서려 있는 참외 껍질 무침까지 더해지면 남매만의 애틋한 밥상이 완성된다. 먹거리가 귀하던 시절 버려진 과일 껍질조차 허기를 달래는 식량이 되어주었던 셈이다. 기나긴 외로움의 시간을 지나 다시 하나가 된 기적의 주인공들이 나누는 밥상에는 지난날의 눈물과 오늘의 위로가 짙게 배어 있다.

■ 국토의 끝, 전파의 파수꾼들 -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상하수도 시설이 닿지 않는 산꼭대기 중계소에서는 쌓인 눈을 깨끗하게 퍼다 녹여 끓여 먹는 일명 '눈물라면'이 최고의 특식이자 생존식이다. 혹한의 환경에서 묵묵히 일하는 4명의 직원을 위해 울릉도 토박이 김옥분 셰프가 8년째 따뜻한 밥을 책임지고 있다. 매서운 겨울 파도를 온몸으로 맞고 자란 갯바위에서 조심스레 채취한 긴잎돌김을 얇게 부쳐낸 긴잎돌김전은 쌉싸름하면서도 향긋한 해조류 특유의 바다 내음을 듬뿍 품고 있다. 일반 김보다 식감이 거칠지만 그만큼 맛의 깊이가 남다르다.
섬사람들의 알뜰한 지혜가 돋보이는 오징어누런창찌개는 버려지기 쉬운 내장 부위를 발효시켜 강렬한 쿰쿰함 속에 진한 감칠맛을 감춰둔 매력적인 향토 요리다. 과거 식재료가 부족했던 시절 내장 하나도 낭비할 수 없었던 절박함이 빚어낸 걸작이다. 여기에 한겨울 연안에서 낚아 올린 쫄깃한 볼락을 새콤하게 버무린 볼락회무침까지 상에 오르면 거친 자연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밥상이 완성된다. 뭍과 섬을 잇는 보이지 않는 길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전파 파수꾼들의 든든한 한 끼를 들여다본다.

■ 괴산 외사리마을, 위기를 함께 넘다 - 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
순수 국내 기술로 건설된 최초의 수력발전소인 괴산댐 바로 아래, 달천강 변에 자리 잡은 외사리 마을 주민들에게 장마철 비 내리는 밤은 두려움과 사투의 시간이다. 빗방울이 조금만 굵어져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이들에게 수위 정보와 대피 명령을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재난방송은 마을의 생명줄과도 같다. 실제로 2023년 7월 기록적인 폭우로 괴산댐이 월류하던 위급한 새벽, 자동 우량 경보와 재난방송을 주시하며 신속하게 이웃을 깨워 대피시킨 이장과 주민들의 대처로 단 한 명의 희생자 없이 끔찍한 재난을 피할 수 있었다.
위기를 무사히 넘기고 마을에 다시 평안이 찾아오면, 사람들은 수위가 낮아진 맑은 강변으로 나가 다슬기를 줍는다. 간 건강에 탁월하다고 알려진 다슬기를 듬뿍 삶아내고 연한 아욱을 풀어 끓여낸 다슬기아욱국은 속을 편안하게 달래주는 구수한 별미다. 여기에 충청도 사투리로 징거미라 불리는 민물새우를 무와 함께 숭숭 썰어 넣고 시원하게 끓인 새뱅이탕 역시 고단한 농번기의 피로를 씻어준다. 거대한 자연의 분노 앞에서도 절대 서로의 손을 놓지 않고 끈끈한 공동체 의식을 나누며 살아가는 외사리 마을 사람들의 밥상에는 꺾이지 않는 강인한 생명력이 담겨 있다.
한국인의 밥상 744회 방송시간은 5일 밤 7시 40분이다.
김민주 기자
bnt뉴스 연예팀 기사제보 star@bnt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