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 (이하 ‘이만갑’)에서 북한에 끌려간 국군포로 아버지를 60년 만에 고향 땅으로 모셔온 딸 손명화 씨의 눈물겨운 이야기가 시청자들을 찾아온다.
그는 1953년 5월, 휴전을 불과 두 달 앞두고 북한군에 붙잡혀 포로가 되고 말았다.
이후 함경북도 무산의 광산으로 끌려간 그는 무려 30년 동안 지하 막장에서 일하며 북한 사회의 최하층으로 살아가야 했다는데. 하지만 그런 자신의 출신 성분이 자식들에게 해가 될까 국군포로라는 사실마저 숨기며 살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6남매의 자식 중 오직 손명화 씨에게만 털어놓은 사실이 있었다고 한다. 평생 고향을 그리워했던 아버지가 비밀리에 남긴 그 말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이만갑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국군포로의 딸’이라는 꼬리표는 손명화 씨의 인생까지 옭아맸다. 열네 살 무렵 아버지의 과거가 알려지며 학교에서는 ‘괴뢰군 자식’이라 손가락질 받았고, 해금 연주로 전국 3등을 차지할 만큼 재능이 있었지만 예술단의 꿈도 접어야 했다.
함께 일하던 다섯 명 가운데 명화 씨만 책임을 떠안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국군포로의 딸’이었기 때문이었다는데. 결국 억울하게 수용소까지 끌려가게 된 손명화 씨.
강제노역과 전염병 속에 죽을 고비를 넘기고 집으로 돌아왔을 땐, 남편마저 세상을 떠난 뒤였다. 결국 모든 것을 잃은 그가 향한 곳은 아버지의 고향, 대한민국. 북한 사회의 차별과 멸시 끝에 탈북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던 손명화 씨의 치열한 탈북기가 낱낱이 공개된다.
대한민국에 정착한 뒤 손명화 씨 마음 한 켠엔 단 한순간도 잊지 못한 한 가지가 있었는데 바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고향 땅에 모시겠다는 다짐이었다.
결국 그는 북한에 남은 형제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처음엔 펄쩍 뛰던 오빠와 막내 여동생도 끝내 마음을 모아 남북의 형제자매가 함께하는 극비 송환 작전이 시작됐다고 한다.
과연 형제들은 첫 번째 관문을 무사히 넘을 수 있었을지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숨 막히는 국군포로 유해 송환 작전의 결말은 오직 이만갑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마침내 중국 땅에 도착한 아버지의 유해. 손명화 씨는 곧장 국방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 유해가 본인과 혈육임을 증명할 방법이 없어 국가의 송환·지원은 불가능했다.
결국 손명화 씨는 직접 중국으로 건너가 아버지를 품에 안았고, 말린 명태 속에 유해를 숨겨 국제선 검색대를 통과하는 대담한 작전까지 펼쳤다고 한다.
그렇게 아버지와 함께 한국행 배에 오른 손명화 씨. 그런데 고향을 코앞에 둔 순간 배 안에 그의 이름을 부르는 방송이 울려 퍼졌다고 한다.
국군포로 아버지를 60년 만에 고향으로 모셔온 딸 손명화 씨의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이야기는 오는 11일 저녁 8시 50분,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윤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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