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중계는 작지만 이상하리만큼 강한 사물이다. 그 위에 올라서는 순간 하루의 기분이 숫자 하나에 흔들린다. 맛있게 먹었던 기억, 친구와 나눈 시간, 피곤한 몸을 달래 준 달콤한 한입은 뒤로 밀리고, 남는 것은 몇 자리의 몸무게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숫자가 한 사람의 삶을 전부 말해 주는 것도 아니다.
이 작업을 구상할 때, 실 한 올도 걸치지 않고 온갖 액세서리까지 모두 벗은 채 진실한 몸무게와 마주하는 장면을 그리고 싶었다. 체중계 앞에서는 누구나 결국 민낯이 된다. 옷의 무게, 장신구의 무게, 겉으로 꾸민 모습의 무게까지 덜어내고 나면 남는 것은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숫자다. 그러나 그 장면을 그대로 그리면 선정적으로 읽힐 수 있었다. 그래서 그림의 장치로 한복 속치마를 넣었다. 한복은 몸을 감싸고, 속치마는 가리면서도 비춘다. 감추고 싶지만 완전히 감출 수 없는 마음, 드러내고 싶지 않지만 결국 마주해야 하는 몸의 현실을 한지의 반투명한 겹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작품에서 한복은 단순한 전통 의상이 아니다. 체면과 격식,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마음, 그리고 사회적 시선이 겹쳐진 옷이다. 그 고운 저고리를 벗어 던지고 체중계 위에 선 인물은 우스꽝스럽지만 처절하다. 맛있는 음식 앞에서는 무장해제되지만, 체중계 앞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비장해지는 우리의 모습이 겹친다. 반투명한 치마 안쪽의 색동 속바지는 장난스럽고 귀엽지만, 동시에 몸을 둘러싼 복잡한 욕망을 드러낸다. 먹고 싶고, 예뻐지고 싶고, 건강하고 싶고, 가벼워지고 싶고, 있는 그대로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한 화면 안에서 서로 부딪힌다.
요즘 다이어트의 풍경은 이 장면보다 훨씬 더 복잡해졌다. 위고비와 마운자로 같은 비만치료제의 이름이 일상 대화에 오르내리고, 다이어트 관련 신상품은 매일 새롭게 등장한다. 이미 알고리즘은 우리의 욕망을 너무 잘 알고 있다. 한 번 다이어트 제품을 찾아보면 다음 날부터 비슷한 광고와 후기, 전후 사진과 운동 영상이 끝없이 따라온다. 이번에는 정말 효과가 있을까. 이번 제품은 다르지 않을까. 그렇게 마음속 지름신은 체중계보다 빠르게 움직인다.
흥미로운 것은 같은 매체 안에서 정반대의 욕망이 동시에 작동한다는 점이다. 한쪽 채널에서는 줄 서서 먹는 맛집이 소개되고, 치즈가 늘어나는 음식과 윤기 흐르는 고기가 화면을 가득 채운다. 다른 한쪽에서는 단기간 다이어트법, 공복 유산소, 식단 관리, 뱃살 빼는 운동이 이어진다. 먹으라고 유혹하는 화면과 빼라고 압박하는 화면이 같은 손바닥 안에서 번갈아 재생된다. 우리는 맛집을 저장하면서 동시에 운동 영상을 저장한다. 배고픔과 죄책감, 즐거움과 관리 욕망이 한 알고리즘 안에서 함께 자란다.
몸에 대한 평가는 특정 성별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물론 오래도록 여성의 몸은 더 노골적으로 평가되어 왔다. 살이 빠지면 관리했다는 말을 듣고, 조금 찌면 자기 관리를 놓았다는 말을 듣는 일은 많은 여성에게 익숙한 경험이다. 그러나 이제 몸을 향한 압박은 성별과 나이를 넘어 확장되고 있다. 남성도 근육과 체지방률을 말하고, 청소년도 전후 사진을 비교하며, 중년 이후의 사람들도 건강검진 수치와 체형 사이에서 흔들린다. 몸은 건강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시선이 머무는 가장 예민한 장소가 되었다.
요즘은 ‘뼈말라’라는 말이 하나의 추구미처럼 소비되기도 한다. 뼈가 보일 만큼 마른 몸을 선망하는 분위기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동시에 예전보다는 운동을 하며 건강하게 빼자는 감각도 커지고 있다. 단순히 굶고 줄이는 몸보다 근육이 있고, 활력이 있고, 자기 몸을 돌볼 수 있는 사람이 멋있다는 인식도 함께 자리 잡고 있다. 현대의 추구미는 그래서 더 복합적이다. 마르고 싶지만 건강하고 싶고, 예뻐지고 싶지만 망가지고 싶지는 않은 마음. 몸을 바꾸고 싶지만 자기 자신을 미워하고 싶지는 않은 마음이 공존한다.
이 작품에서 그런 모순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체중계 위의 인물은 단순히 다이어트에 실패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맛있는 음식 앞에서 흔들리고, 숫자 앞에서 긴장하며, 몸을 사랑하고 싶지만 동시에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내 이야기 같기도 하고, 주변의 이야기 같기도 하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스칠 수 있는 장면 같기도 하다. 체중계 위에 올라서 본 사람이라면 저 발뒤꿈치의 마음을 안다. 아주 조금이라도 덜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 숫자가 낮아지면 안도하고 높아지면 하루가 무거워지는 마음 말이다.
〈내숭〉은 바로 그 마음을 그린다. 아닌 척하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신경 쓰는 마음, 괜찮은 척하지만 숫자 하나에 흔들리는 마음, 맛있게 먹고 싶지만 먹고 나면 스스로를 탓하는 마음. 한복 속치마와 반투명한 한지 콜라주는 겉과 속의 경계를 흐린다. 가린다고 해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드러난다고 해서 전부 설명되지 않는 몸과 마음의 층을 보여준다. 체중계 위의 숫자는 선명하지만, 그 숫자에 얽힌 감정은 훨씬 복잡하다.
결국 〈내숭: 마주한 현실〉은 다이어트를 조롱하지 않는다. 숫자 앞에서 흔들리는 마음을 너무 잘 알기에, 그 마음을 조금 우습고 조금 아프게 그려낸다. 체중계는 몸무게를 말할 수는 있어도 한 사람의 아름다움과 삶의 무게까지 재지는 못한다. 먹고 싶은 마음, 가벼워지고 싶은 마음, 건강하고 싶은 마음, 사랑받고 싶은 마음, 자기 자신을 덜 미워하고 싶은 마음이 한 화면 안에서 동시에 서 있다. 오늘만큼은 숫자와의 전쟁을 잠시 멈추고, 있는 그대로의 몸을 조금 덜 미워해 볼 수는 없을까.

한국화가 김현정은 선화예중·예고를 거쳐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과·동양화과 학사와 동양화과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김현정 작가는 현대 한국인의 삶과 감정을 유머와 풍자로 풀어낸 21세기 풍속도 〈내숭 시리즈〉로 널리 알려졌으며, 다수의 개인전과 전시 작품 완판, 6만 7402명의 국내 개인전 최다 관람객 기록 등으로 주목받았다. 김현정 화가의 작품은 초·중·고 교과서 31종에 수록되어 있으며, 현재 서울시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그림에세이 《김현정의 내숭》, 컬러링북 《내숭이야기 컬러링북》, 《한국화를 배우는 시간: 개념편》, 《한국화를 그리는 시간: 실기편》 등이 있다. 또한 김현정 작가는 미술강연과 강의를 이어가는 교수로서 전통 회화와 동시대 시각문화를 연결하고 있으며, 30만 팔로워와 소통하며 국내외 전시·교육·집필·칼럼을 통해 한국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장하고 있다.
글_김현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