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라제147’, 사람의 기를 살리는 따뜻한 공간
좋은 공간은 맛으로 기억되기도 하지만, 그곳에서 바라본 풍경과 나눈 이야기로 더 오래 남는다. 갓 구운 빵 한 조각과 따스한 차 한 잔이 여행의 목적이 되는 것도 그래서다.
배우이면서 붓을 들고 동양화를 그리는 김규리는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아티스트다. 화폭 위에 담긴 먹의 묵직함만큼 그 사이를 감싸는 여백을 소중히 여기듯, 그녀는 음식과 공간에서도 눈앞의 화려함보다 그 안에 깃든 사람의 마음과 시간을 천천히 들여다본다. 그런 김규리의 깊은 시선이 머문 곳이 바로 영암의 ‘그라제147’이다.
고즈넉한 한옥의 정취를 품은 건물 앞으로 잔잔한 물과 버드나무가 다정하게 펼쳐지고, 멀리 월출산의 힘찬 능선이 한 폭의 병풍처럼 풍경의 배경이 되어준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물가와 나무의 빛깔도 달라져 같은 자리에 앉아도 매번 새로운 화폭을 마주하는 듯하다. 테라스에 앉아 바람을 맞고 있으면 카페를 찾아왔다기보다 잠시 시적인 여행의 한 장면 속으로 걸어 들어온 기분이 든다.

그리고 그 풍경 앞에 따스한 빵이 놓인다. 노릇하게 구워진 표면 위로 고소한 치즈가 먹음직스럽게 녹아내리고, 톡톡 터지는 옥수수와 올리브 등 다양한 토핑을 올린 빵들은 보기만 해도 풍성한 온기가 느껴진다. 손으로 가볍게 떼어 한입 베어 물고 청량한 음료를 곁들이면 고소하고 짭조름한 풍미 뒤로 여행이 주는 특유의 여유가 번져온다. 유리창 너머 짙은 초록 풍경을 배경 삼은 색감 고운 음료 한 잔은 이곳에서의 시간을 더욱 천천히 흐르게 만든다.

주변 풍경까지 알고 나면 ‘그라제147’을 찾을 이유는 하나 더 늘어난다. 영암에는 기암괴석과 웅장한 산세로 이름난 월출산이 있고, 카페 바로 곁에는 왕인박사가 일본으로 향할 때 배를 탔다고 전해지는 옛 상대포구의 역사를 간직한 상대포 역사공원이 있다. 물길을 따라 놓인 산책로와 넓은 공원은 천천히 걷거나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 깊은 곳까지 환기시킨다.
상대포의 잔잔한 물길을 따라 걷고 ‘그라제147’에 들러 고소한 빵을 고르는 느긋한 오후를 상상해보자. 따스한 빵을 나란히 나누어 먹고, 차가운 음료로 목을 축이며 눈앞의 물과 산을 바라본다. 굳이 거창한 말을 나누지 않아도 좋다. 정성 어린 맛과 아름다운 풍경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은 이미 충분히 충만해진다.
김규리가 이곳을 추천한 이유도 어쩌면 여기에 있을 것이다. 동양화의 여백처럼 우리의 복잡한 하루에도 비워두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 소리, 물 위에 비친 하늘, 막 구운 빵의 고소한 향, 그리고 함께 앉은 사람의 다정한 표정 같은 것들이다. ‘그라제147’에서는 그 평범했던 순간들이 더없이 특별한 추억으로 변한다.

월출산의 웅장함을 품고 상대포의 물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영암은 참 아름다운 곳이다. 여기에 정성스러운 빵과 음료, 다정히 쉬어갈 쉼표 같은 공간이 더해진다. 일상으로 돌아온 뒤에도 문득 떠오르는 것은 거창한 유적지보다 그곳의 바람을 맞으며 맛보았던 따뜻한 빵 한 조각의 위로일지도 모른다.
“그라제.”
누군가의 지친 삶에 기꺼이 장단을 맞추며 힘을 실어주는 짧은 한마디처럼, ‘그라제147’은 찾아온 이에게 오늘도 조용히 다정한 인사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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