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한국화가 김현정이 그린 한국의 초상 ㉔] 얼굴을 가리는 사회, 마음을 숨기는 사람들

김연수 기자
2026-07-31 10:3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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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가 김현정이 그린 한국의 초상 ㉔] 얼굴을 가리는 사회, 마음을 숨기는 사람들 (김현정, 〈내숭: 누구나 비밀은 있다〉, 187 × 116 cm,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쥬, 2014. / 출처: 김현정 아트센터)


한국 사회에는 얼굴을 가리는 풍경이 익숙하다. 여름이면 썬캡과 선글라스, 마스크가 거리와 공원 위에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겉으로는 햇볕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자외선은 피부 노화와 관련이 있고, 피부를 보호하려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문득 이상한 대비가 떠오른다. 서구 도시의 공원에서는 낮의 햇볕을 즐기기 위해 풀밭 위에 눕는 풍경도 흔하다. 그들도 노화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어떤 문화에서는 장기적 관리보다 지금 이 순간의 감각과 행복을 더 크게 받아들이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 햇볕만 피하고 있는 것일까. 혹시 시선까지 함께 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숭: 누구나 비밀은 있다〉는 그 질문을 근린공원의 운동기구 위에 세운 작품이다. 화면 속 내숭녀는 분홍빛 저고리와 회색의 반투명 한복 치마를 입고, 동네 공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산소 운동기구 위에 올라서 있다. 머리에는 스포츠 썬바이저를 쓰고, 얼굴에는 연한 색의 마스크를 하고 있다. 한 손에는 운동기구의 손잡이를 잡고, 다른 손에는 스마트폰을 들었다. 이어폰 줄은 몸 위로 흘러내리고, 발에는 파란 꽃장식 슬리퍼가 놓여 있다. 한복과 운동기구, 썬바이저와 스마트폰, 마스크와 이어폰이 한 화면 안에 겹치며 오늘의 한국 도시 풍경을 만든다.

이 작품의 핵심은 마스크다. 마스크는 2015년 메르스 사태와 2020년에서 2023년까지 이어진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우리의 생활 도구가 되었다. 그러나 2014년에 그려진 이 그림 속 마스크는 방역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얼굴을 가리는 물건이면서 동시에 마음을 가리는 얇은 막이다. 병균을 막기 위해 쓰는 마스크가 표정과 불안, 피로, 말하지 못한 속마음까지 덮는 장치로 이미 쓰이고 있었던 셈이다.

온라인 공간에서 우리는 이름과 얼굴 없이 말하는 일에 익숙해졌다. 익명성은 때로 약자를 보호하고 솔직한 발언을 가능하게 하지만, 동시에 책임 없는 말과 쉽게 상처 주는 언어를 키우기도 한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다는 것은 보호이면서 회피다.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안전하지만,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더 쉽게 무심해질 수도 있다. 마스크를 쓴 얼굴과 익명의 계정은 서로 다른 물건이지만, 둘 다 ‘나를 어디까지 드러낼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서 있다.

동양권 도시문화에서 얼굴을 가리는 풍경이 더 익숙하게 보이는 것은 흥미롭다. 흰 피부에 대한 미감, 노화에 대한 민감함,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생활문화, 공공장소에서 자신을 단정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압박이 함께 작동한다. 물론 이것을 단순히 동양과 서양의 차이로만 나눌 수는 없다. 다만 햇볕을 쬐며 현재의 쾌감을 누리는 문화와 햇볕을 피하며 미래의 노화를 관리하는 문화 사이에는 분명한 삶의 태도 차이가 있다. 한쪽은 오늘의 감각을 선택하고, 다른 한쪽은 내일의 손상을 미리 걱정한다. 어느 쪽이 더 옳다고 말하기 어렵다. 다만 그 차이는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 보여준다.

작품 속 한복 치마와 마스크가 모두 반투명한 한지 콜라주로 처리된 것에는 의미가 있다. 한지는 가린다. 그러나 완전히 감추지는 않는다. 치마 아래로 다리의 윤곽과 운동기구의 일부가 희미하게 비치고, 마스크 아래의 얼굴 역시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숨기고 싶지만 드러나고, 드러나고 싶지만 숨고 싶은 마음. 이것이 〈내숭 시리즈〉가 오래 붙잡아 온 정서다. 내숭은 단순히 얌전한 척하는 태도가 아니다. 사회적 시선 앞에서 자신을 조절하고, 감정을 편집하고, 마음의 일부를 보이지 않게 접어두는 방식이다.

이 작품 속 인물은 운동을 하고 있는 듯하지만, 온전히 자유로워 보이지 않는다. 몸은 움직이고 있지만 얼굴은 가려져 있고, 손은 손잡이를 잡고 있지만 다른 손은 스마트폰을 놓지 못한다. 귀에는 이어폰이 꽂혀 있고, 시선은 어딘가 안쪽으로 잠겨 있다. 건강을 위해 공원에 나왔지만, 그는 여전히 연결되어 있고, 여전히 관리되고 있으며, 여전히 보이지 않는 시선 속에 있다. 운동기구는 몸을 단련하는 도구이지만, 이 장면에서는 사회적 자기관리의 기계처럼 보인다. 몸도 관리해야 하고, 피부도 관리해야 하고, 표정도 관리해야 한다. 결국 현대인은 쉬는 순간에도 자기 자신을 감시한다.

마스크 아래에는 무엇이 있을까. 병에 대한 불안, 노화에 대한 두려움, 타인의 시선을 피하고 싶은 마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사적인 비밀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어떤 얼굴을 사회에 내놓고, 또 어떤 얼굴은 숨긴 채 살아간다. 문제는 비밀이 있다는 사실이 아니다. 비밀은 인간에게 필요한 내면의 방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비밀이 스스로를 지키는 공간이 아니라, 점점 자신을 가두는 장치가 될 때다. 보호와 은폐, 배려와 회피, 단정함과 자기검열은 종종 한 장의 마스크 안에서 뒤섞인다.

결국 〈내숭: 누구나 비밀은 있다〉가 묻는 것은 마스크를 써야 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어디까지 숨기면 자신을 잃는 것이고, 어디까지 숨겨야 자신을 지키는 것인가.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호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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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가 김현정이 그린 한국의 초상 ㉔] 얼굴을 가리는 사회, 마음을 숨기는 사람들 (출처: 김현정 아트센터)


한국화가 김현정은 선화예중·예고를 거쳐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동양화과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2026년 8월 박사학위를 취득할 예정이다. 김현정 작가는 21세기 풍속도 〈내숭 시리즈〉로 널리 알려졌으며, 다수의 개인전과 전시 작품 완판, 6만 7400명의 국내 개인전 최다 관람객 기록 등으로 화제를 모았다. 김현정 화가의 작품은 초·중·고 교과서 31종에 수록되어 있으며, 현재 서울시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그림에세이 《김현정의 내숭》, 컬러링북 《내숭이야기 컬러링북》, 《한국화를 배우는 시간: 개념편》, 《한국화를 그리는 시간: 실기편》 등이 있다. 또한 미술강연과 강의를 이어가는 교수로서 전통 회화와 동시대 시각문화를 연결하고 있으며, 30만 팔로워와 소통하며 국내외 전시와 교육, 집필을 통해 한국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장하고 있다.

글_김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