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암괴석이 거대한 병풍처럼 웅장하게 둘러친 월출산과 서해를 향해 굽이쳐 흐르는 영산강의 맑은 물길이 만나는 풍요의 고장, 전라남도 영암이다. 예부터 굳건하고 예사롭지 않은 자연의 기운이 온 마을에 깊게 서린 곳이라 하여 사람들에게 '기(氣)찬 동네'로 통했던 영암에는 묵묵히 삶의 터전을 일구는 이웃들의 땀방울이 서려 있다.

웅장한 바위산이 내어주는 맑은 정기를 마시며, 거친 세상의 모진 풍파에도 절대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만의 꼿꼿한 '기'를 세우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따스한 봄바람이 코끝을 스치는 계절의 길목에서, KBS 1TV '동네 한 바퀴' 361회는 웅장한 자연과 단단한 마음을 지닌 영암의 숨은 명소와 정겨운 이웃들을 찾아 벅찬 발걸음을 옮긴다.

기(氣)찬 고장의 활기찬 아침, 전남 영암읍성
영암읍성은 과거 잦은 왜구의 침입을 굳건하게 막아내며 마을 주민들의 평화로운 일상을 수호했던 호국의 상징이자 자랑스러운 역사적 유적이다. 예부터 선조들이 활을 쏘고 땀 흘려 무예를 닦던 옛 성벽 너머로는 오늘날에도 어김없이 아이들의 우렁찬 기합 소리가 울려 퍼지며 활기찬 아침을 연다.

월출산의 영험하고 맑은 정기를 온몸으로 듬뿍 받으며 이른 아침부터 태권도 품새 연마에 푹 빠져 있는 아이들의 눈빛은 진지하기만 하다. 쌀쌀한 아침 공기 속에서도 야외 수업을 통해 씩씩하게 심신을 단련하는 아이들의 기운찬 모습은, 영암 여정을 갓 시작하는 동네지기 이만기에게 다부진 힘을 불어넣으며 발걸음을 한결 가볍게 만든다.

월출산 아래 포근하게 자리 잡은 유서 깊은 한옥마을의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걷다 보면 아주 특별한 사연을 품은 카페가 손님을 반긴다. 이곳은 수십 년간 험악한 강력 사건을 도맡아 해결하던 베테랑 경찰서장 출신 아버지 최인규 씨와 세련된 젊은 감각을 지닌 딸이 의기투합해 함께 운영하는 다정한 공간이다. 은퇴 후 고향으로 돌아와 평화로운 카페 창업을 결심했지만 시작부터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던 아버지는 결국 딸에게 다급한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거친 범죄 수사 현장을 벗어나 고향 집 마당에서 향긋한 커피 향을 맡으며 비로소 인생의 진정한 평화를 되찾은 아버지와 열정 넘치는 아버지의 오랜 로망을 가장 가까이서 든든하게 지켜주는 딸의 모습이 정겹다. 커피를 내리고 손님을 맞이하며 매일같이 귀여운 다툼을 벌이면서도, 두 사람은 지난 세월 나누지 못했던 속 깊은 대화를 쏟아내며 과거 어느 때보다 돈독하고 끈끈한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중이다.

스피드의 심장, 국제자동차경주장
조용하고 고즈넉한 풍경을 지나면, 포뮬러1 자동차의 굉음과 강렬한 엔진 소리가 심장을 두드리는 영암의 또 다른 역동적인 랜드마크 '국제자동차경주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국내 유일의 국제 공인 1등급 서킷이라는 화려한 타이틀을 자랑하는 이곳의 아스팔트 트랙 위에서는 스피드의 한계를 시험하는 숨 막히는 극한의 질주가 쉴 새 없이 펼쳐진다.

100m 거리를 단 2초 만에 주파해 버리는 엄청난 속도감과 굉음에 감탄을 금치 못하던 동네지기 이만기는 이곳 트랙 위에서 평소 겪어보지 못한 뜻밖의 아찔한 시련을 마주하게 된다. 오직 0.001초의 찰나를 다투며 우승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질주하는 모터스포츠 선수들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과 가슴 뜨거운 열정이 영암의 색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물 위를 걷는 고요한 휴식, 도갑제 수변길

사방이 푸른 산으로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어 바쁘게 스쳐 지나가던 바람조차 잠시 숨을 고르며 쉬어가는 고요한 공간이다. 일상의 번잡함을 내려놓고 고즈넉한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수려하고 빼어난 산세와 잔잔하게 일렁이는 물결이 메마른 마음에 깊고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고향에서 찾은 꿈, 영암의 향기를 디자인하다
조용한 영암 읍내의 골목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친 곳은 다가오는 봄처럼 화사하고 아기자기한 기운을 풍기는 작은 가게다. 이곳은 영암의 다채로운 로컬 크리에이터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배유진 씨가 고향의 아름다운 풍경과 향기를 담아 수제 소품을 정성껏 제작하는 하나뿐인 공방이다. 과거 연예인 코디네이터로 일하며 밤낮없이 치열한 서울살이를 견디다 지친 배유진 씨의 마음을 다시 포근하게 보듬어준 것은 다름 아닌 넉넉한 고향 영암의 품이었다.

월출산의 웅장한 봉우리와 마애여래좌상의 온화한 미소를 똑 닮은 정교한 캔들부터, 영암을 대표하는 깃대종 남생이를 모티브로 삼은 귀여운 캐릭터 소품까지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영암을 떠나 타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짙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추억의 향을, 영암을 처음 방문한 여행객에게는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을 깊은 여운의 향을 꼭 선물하고 싶다는 따뜻한 꿈이 공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갈낙탕·육낙, 독천낙지거리, 산낙지와 한우의 이유 있는 만남
과거 씹을수록 달고 차진 질 좋은 영암 낙지의 산지로 전국적인 명성을 떨쳤던 학산면 독천리 일대를 찾는다. 1980년대 영산강 하굿둑이 거대하게 조성되면서 비록 눈앞의 넓은 뻘은 아쉽게도 자취를 감췄지만, 낙지거리의 뜨거운 명성만큼은 상인들의 고집스러운 노력 덕분에 여전히 굳건하게 맥을 잇고 있다. 과거 엄청난 규모의 우시장이 섰던 동네의 지리적 특성이 자연스럽게 더해져, 붉고 신선한 소고기와 힘 좋은 산낙지가 완벽하게 어우러진 최고의 보양식이 이곳에서 탄생하게 되었다.

독천낙지거리에서 오래전 자전거 뒷자리 짐칸에 잡은 낙지를 가득 싣고 동네 장터 곳곳을 누비던 아버지의 든든한 뒷모습을 가슴 깊이 기억하며, 맹정자 사장님은 무려 50년이 넘는 억척스러운 세월 동안 매일같이 낙지를 만져왔다. 긴 세월의 풍파 속에서 단단하게 다져진 깊은 내공이 뚝배기 가득 고스란히 담긴 진한 국물의 '갈낙탕'과 입안에서 쫀득하게 살아 숨 쉬는 신선한 '육낙' 한 상을 천천히 음미해 본다.

잔잔한 영산강 물줄기와 넓은 바다가 말없이 만나는 영암의 끝자락. 물길을 따라 걷던 중 강에서 숭어 낚시에 푹 빠진 낚시꾼을 만난다. 예부터 물 맑고 숭어가 맛있기로 유명했던 영암 땅에서 집안 대대로 비법을 전수받아 어란을 만들며 8대째 자랑스러운 가업을 묵묵히 잇고 있는 최태근 명인이다. 갓 잡아 올린 숭어의 배를 조심스럽게 갈라 황금빛 알을 상처 없이 꺼내는 섬세한 작업부터 모든 과정이 고단한 수작업의 연속이다.

집안의 보물인 250년 묵은 진한 씨간장을 알에 꼼꼼하게 바르고, 수개월의 긴 시간 동안 하루에도 수없이 알을 뒤집으며 고소한 참기름을 덧발라 서늘한 바람에 말려내는 지난한 과정이 이어진다. 과거 임금님 수라상에 귀하게 진상되던 오묘하고 깊은 풍미의 이면에는 한시도 곁을 떠나지 않는 명인의 고집스러운 정성과 상상하기 힘든 인고의 세월이 깊숙하게 배어 있다. 평범한 영산강 숭어가 명인의 거친 손길을 거쳐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붉은빛의 '영암 어란'으로 찬란하게 탄생하는 경이로운 인내의 시간을 곁에서 지켜본다.

웅장하고 거친 바위산이 기꺼이 내어준 굳건한 정기를 가슴에 품고, 쉼 없이 바다를 향해 흐르는 맑은 강물처럼 요란하지 않게 묵묵히 제 갈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동네, 전라남도 영암군 편 '동네 한 바퀴' 361회 방송 시간은 2026년 3월 14일 토요일 저녁 7시 10분이다.
김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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