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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發 기름값 충격, 밥상·약값까지 번진다…‘3고 시대’ 재현 오나

서정민 기자
2026-03-09 06:5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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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發 기름값 충격, 밥상·약값까지 번진다…‘3고 시대’ 재현 오나


중동 전쟁 장기화로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기름값을 시작으로 생활물가 전반에 상승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고유가·고환율·고물가의 ‘3고 충격’이 현실화할 경우 정부의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 2.0%도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9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8일 기준 전국 평균 경유 가격은 L당 1,918원, 휘발유는 1,895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서울은 경유 1,966원, 휘발유 1,945원으로 전국 평균보다 40~50원 높다. 경기도(1,934원)와 인천(1,949원)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상승 속도가 전국 평균을 크게 웃돌고 있으며, 서울 일부 주유소에서는 경유가 이미 2,000원을 넘어 2,400원대까지 치솟은 곳도 확인된다. 반면 전남(1,864원), 강원(1,865원) 등 지방과의 격차도 급격히 벌어지는 양상이다.

이번 기름값 상승의 근본 배경은 국제유가 급등이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군사충돌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면서 지난주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주간 기준 35% 폭등해 1983년 이후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브렌트유도 28% 치솟으며 2020년 4월 이후 최대 주간 상승률을 나타냈다. 블룸버그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선박이 이란 연계 유조선과 중국 소유 벌크선 두 척에 불과하다고 전하며, 국제유가 대표 유종인 WTI와 브렌트도 조만간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한국 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직접적이다. 국내 원유 수입의 71%가 중동산이고 국내 정유 설비는 중동산 중질유 정제에 최적화돼 있어 대체 수입선을 빠르게 늘리기도 쉽지 않은 구조다.

현대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연평균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에 이를 경우 국내 소비자물가상승률은 1.1%포인트 오르고, 경제성장률은 0.3%포인트 하락하며, 경상수지는 260억 달러 감소할 것으로 추산된다. 연평균 유가가 150달러까지 치솟는 오일 쇼크 시나리오에서는 성장률이 최소 0.8%포인트 하락하고 물가는 2.9%포인트 급등하는 최악의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환율 불안도 심각하다. 이달 원·달러 환율의 일일 변동폭은 평균 13.2원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충격이 극심했던 2020년 3월 이후 가장 크다. 지난 3일 야간 거래에서는 장중 1505.8원을 돌파하며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에 1,500원 선이 무너지기도 했다. KB증권은 국제유가가 120~150달러 수준이 되면 환율이 1,550원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전망한다.

기름값 상승은 에너지 가격에 그치지 않고 생활물가 전반으로 번질 조짐이다. 밀, 옥수수, 팜유 등 주요 원재료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식품업계는 환율 상승과 해상 운임 급등이 겹칠 경우 이중·삼중의 원가 부담을 피하기 어렵다. 정부가 주요 식품 기업들과 잇달아 간담회를 열며 가공식품 가격 인하를 압박하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라면의 경우 밀가루 비중이 전체 제조 원가의 10~20% 수준에 불과하다”며 유가·환율 상승 국면에서 가격 인하 수용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제약·바이오 업계도 직격탄을 맞을 전망이다. 국내 기업들이 ‘블루오션’으로 공들여온 중동(MENA) 시장 진출 계획이 잇따라 무기한 연기될 위기에 처했고, 원료의약품 해외 의존도가 70% 이상인 구조상 고환율은 수익성 악화로 직결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9일 비상경제점검회의를 직접 주재하며 에너지 수급에서 물가, 환율, 금융시장까지 범부처 대응을 점검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필요 시 즉시 ‘석유 최고가격 지정제’를 시행할 수 있도록 준비를 마쳤다고 밝혔으며, 유류세 인하 확대와 비축유 방출도 병행 검토 중이다. 정부는 이미 UAE와 협의해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한 원유 600만 배럴을 긴급 도입하기로 했고, 현재 정부 비축유는 약 100일분으로 국제에너지기구(IEA) 권고 기준인 90일분을 웃도는 상태다.

그러나 소매 가격만 통제하는 방식이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있느냐는 회의적 시각도 만만치 않다. 가격 상한이 설정될 경우 정유사와 주유소의 수익성이 훼손되면서 공급 위축이 따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결국 국내 기름값은 국제유가와 환율, 정유사 공급 가격, 세금 구조가 맞물려 결정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2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2.0% 상승으로 아직 관리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최근 유가 급등이 통계에 온전히 반영되지 않은 만큼 3월 이후 유류비 상승이 물류비·가공식품·외식 가격으로 전이되는 흐름에 대한 경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