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인터뷰] 임지연에게 찾아온 ‘영광’

임재호 기자
2023-03-17 18:47:30
사진제공: 넷플릭스

3월 10일 공개된 파트 2로 막을 내린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학교 폭력을 다룬 탄탄한 스토리와 출연진들의 놀라운 연기력으로 엄청난 화제성을 이어가고 있는데. 

악역 ‘박연진’을 맡은 임지연은 송혜교가 연기한 ‘문동은’을 학창 시절 물리적, 심리적으로 괴롭히며 성인이 되어서도 끝끝내 본인의 잘못을 뉘우치지 못하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연기를 완벽히 소화해냈다. 잠재력을 터뜨린 그는 드라마 종영 후에도 계속해서 화제의 중심에 서있다. 

3월 17일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더 글로리’ 종영 인터뷰에서 임지연이 ‘박연진’을 연기할 때의 마음가짐과 비하인드, 속 이야기 등을 들어볼 수 있었는데. 

*이 인터뷰에는 ‘더 글로리’의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돼 있습니다. 

Q. 이제 본명보다 ‘연진아’라고 많이 불린다. 소감이 어떻나 

“행복하다. 캐릭터 이름이 이름처럼 불려 좋고, 내가 아닌 연진이가 ‘대세’인 것 같다” 

Q. ‘더 글로리’가 정말 인기리에 종영했다. 소감은 

“한 번에 나온 게 아니라 나눠서 나오긴 했지만, 2022년 내내 ‘더 글로리’에 힘을 썼다. 종영이 되니 한 편으론 아쉽기도 하고, 너무 사랑을 많이 주셔서 행복하고 감사하다. 그렇지만 끝나버렸다는 생각에 조금 시원섭섭하다” 

Q. 이번에 악역 연기로 화제가 많이 됐는데 

“큰 용기가 필요한 작품, 캐릭터였다. 그에 맞게 작품 안에서 잘 녹아든 것 같다. 나를 많이 미워해주시고 싫어해주셔서 성공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어 뿌듯하다” 

Q. 처음에 김은숙 작가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으며 캐스팅 제안을 받았나 

“작가님이 ‘악역이 처음이라고? 내가 망쳐보겠어!’라고 농담하시면서 제안했다. 내가 화장기 없는 얼굴에 미팅을 갔다. 착해 보이는 얼굴에 악마 같은 얼굴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그걸 좋게 보신 거 같다. 자신감을 많이 내비쳤다. 최선을 다해 잘 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제공: 넷플릭스

Q. 어떤 자신감이 있었나 

“일단 대본이 너무 좋았다. 다른 곳에서 얘기한 적 있는데 대본에 반했다. 너무 재밌게 보고 어떻게 이런 대본이 있을까 싶더라. 연진이 아닌 다른 역할이어도 이 작품에 꼭 참여하고 싶었을 것 같다. 근데 연진이 역할이면 ‘당연히 잘해야지’ 싶더라” 

Q. 작가와 감독이 캐스팅 단계에 했던 말 

“연진이가 끝끝내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망가지게 만들겠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좋았다. 그 연진이가 잘 나온 것 같다” 

Q. 시청자 입장에서 학교 폭력 연기를 보는 건 어땠나 

“폭력을 가한 장면은 내가 직접 연기한 게 아니라 아역 배우들이 했다. 그래서 나도 작품이 나왔을 때 봤는데 막상 보니까 묘하고 복잡하더라. 그 악행들과 동은이가 겪은 과거를 보니 ‘동은이가 저래서 복수를 다짐했구나’라는 생각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아역 배우들이 너무 연기를 잘해줘서 고맙기도 하지만 정말 못 됐더라(웃음)” 

Q. 최근 악역이 빛을 발하는 작품이 많다. 어떤 악역으로 비치면 하는 마음으로 연기했나 

“입체적으로 보여야 하기에 고민을 많이 했다. 감정적인 굴곡이 많기에 표출하고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내는 모습도 있지만 반면에 남편에게 애교를 부린다거나 아이를 챙기는 모습, 기상 캐스터로서의 모습 등 착해 보일 땐 한없이 착해 보였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최선을 다해 예뻐 보이려 했고 스타일링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다양한 모습의 나쁜 여자라면 매력적으로 다가가지 않을까 싶었다” 

Q. 표정 연기가 되게 화제가 됐다. 촬영할 때 디테일을 어떻게 살렸나 

“전체적인 라인을 계산했다. 연진이 캐릭터를 처음 시작할 때 내가 잘하는 걸 많이 써보자는 생각이 컸다. 한쪽으로 웃는 버릇이 있다. 그걸 연진이 연기 때 활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을 때도 큰 입을 잘 활용해서 하고 싶었다. 동은이는 침착하고 감정이 안 드러나지만 연진이는 다 드러나기에 대비되도록 최대한 많이 표정을 활용하려 했다”

Q. 욕을 되게 잘해서 시청자들이 놀랐다. 어떻게 연습했나 

“친구들이랑 있을 때 종종 욕을 한다. 욕을 찰지게 안 할 거면 안 하는 게 낫고, 담배도 맛있게 피울 게 아니면 안 피우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연기했다. 상황과 감정에 따라 연기했다. 혼자 흡연할 때, 남편 앞에서 피울 때, 그리고 친구들 앞에서 욕하는 것과 동은이 앞에서 할 때 다르게 하려고 디테일을 잡았다” 

Q. 연진이로 오래 살았다. 연진이 같은 모습이 드러날 때는 

“하루 종일 연기하다가 집에 가서 엄마를 보면 엄마가 ‘얼굴에 그늘이 있다’고 하시더라. 좀 힘들더라. 집에 가면 매사 다 짜증이 날 때도 있고 스스로 ‘성격이 왜 이렇게 안 좋아졌지’ 싶었다. 비연예인 친구들 만나면 좀 당황스러워하더라(웃음)” 

Q. 욕의 디테일을 어떻게 잡았나 

“옷에 ‘담배빵’이 나서 욕할 땐 단전에서부터 화를 끌어올렸다(웃음). 친구들 앞에서 하는 욕은 정말 ‘찐친’ 앞에서 하는 욕을 생각하고 했다. 되게 다양하고 복합적으로 계산해서 연기했다” 

Q. 어느 시점부터 연진이의 역할이 몸에 딱 붙었나 

“처음에 캐릭터 연구에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 많이 돌아다니면서 동료, 선배님들에게 아이디어와 조언을 많이 구했다. 처음엔 사이코패스처럼 아무 감정 없는 여자처럼 해볼까 싶다가도 그냥 미친 사람처럼 다가가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임지연만 할 수 있는 악역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종착지였다. 알아서 상황과 상대방에 집중했고 그러다 보니 수월해졌다”

Q. 연진이를 위해 담배를 배웠다고. 연진이를 하려고 이것까지 해봤다 하는 것은 

“담배는 사실 별 게 아니었다. 대사 하나하나가 다 도전이었다. 기상 캐스터 씬은 한 번에 다 몰아서 찍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장면 찍기 직전까지 계속 외웠다. 운전할 때, 밥 먹을 때, 화장실 갈 때 기상 캐스터 대사를 계속 읊어댔다. 버튼 누르면 나올 정도로 연습했다” 

Q. 마지막 촬영은 어느 장면이었는지, 그리고 격한 감정을 쏟아내서 마지막에 무너지진 않았나 

“교도소 장면이 마지막이다. 그 장면은 조금 힘들었다. 배우로서 연진이에 대한 애정이 있었기에 철저하게 무너지고 좌절하는 모습에 당연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배우로서 복합적인 감정이 들더라. 교도소 장면에선 정말 많이 울었다. 찍고 나서 많이 공허해지기도 했다. 매번 화려하게 하고 다녔는데 그 장면 촬영 땐 사람들과의 관계성이 달라진 걸 느끼다 보니 많이 달라지더라” 

사진제공: 넷플릭스

Q. 연진이로서 첫 촬영은 

“학교에 있는 동은이를 찾아가는 장면이었다. (송) 혜교 언니랑 친해지지도 않았을 때 찍었어야 했다(웃음)” 

Q. 대본을 보고 준비를 많이 했던 장면은 

“남편을 내 편으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은 쳐다보는 눈빛부터 다가가는 몸동작까지 디테일하게 연구했다. 연진이를 많이 나타낼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 장면은 진짜 많이 준비했고 ‘어떻게 하면 이 남자를 내 편으로 만들까’하는 생각이었다”

Q. 오래 연기했고 모든 사람들이 욕하는 캐릭터다. 다 욕을 해도 이때만은 연진이 편을 들어주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나 

“다 들어주고 싶지만 드라마를 본 입장에선 한 순간도 들어줄 수 없더라(웃음). 그래서 좋은 것 같다. 많이 미움받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이 있었기에 대중의 입장에서 봤을 때도 처음부터 끝까지 연진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럼 성공했다 싶더라” 

Q. 송혜교와 현장에서 호흡은 어땠나 

“일단 언니는 내가 막 놀게 도와주셨다. 어떤 연기를 해도 다 받아줬다. 체육관에서 뺨을 때리는 장면이 있었다. 나도 한 번 맞으니 감정이 격해져 멱살을 잡았다. 그런 것도 다 받아줬다. 순간순간 나오는 애드리브도 다 받아줘 나중엔 다 열어 놓고 할 수 있었다. 동은이의 드러나지 않은 감정선과 마구 드러내는 연진이가 대비돼 잘 나온 것 같다” 

Q. 마지막 장면을 촬영할 때도 감정이 복잡했다고. 끝끝내 뉘우침이 없는 연진이를 만들었다고 작가가 말했는데 그 당시 감정 상태는 어떻다고 생각하나 

“나도 뉘우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대신 악행을 다 되돌려 받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떤 가해자들보다 최고의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재준처럼 죽음을 당하는 것보다 더 큰 벌이지 않았을까 싶다” 

Q. 학창 시절 소재 드라만데 실제 임지연의 학창 시절은 

“난 어릴 때부터 연기를 준비했고 학창 시절에 대한 기억은 그냥 좋았던 기억뿐이다. 좀 나대는 걸 좋아했다. 반장, 장기자랑 이런 거 좋아했던 것 같다. 초등학생 때 S.E.S. 따라 하고 핑클 춤추고 했다”

Q. 연기를 하며 ‘학교 폭력’에 대한 생각을 한 게 있다면 

“절대 묻혀선 안 되는 이슈라고 생각한다” 

Q. 드라마 이후 인스타그램 메시지로 전국 고데기 사진이 다 온다고 

“일단 파트 1 나오고 나서 친구들 단톡방에 온갖 고데기 사진들이 다 오더라(웃음). 근데 DM도 오더라. 나도 고데기를 보며 묘한 감정이 들더라. 시청자 입장에서 고데기 장면이 보기 힘들어서 마냥 웃기엔 조금 어려웠다” 

Q. 대사들도 많이 돌아다니는데 가장 맘에 드는 대사는 

“알아들었으면 끄덕여가 가장 꽂히더라(웃음). 잘만 하면 인기 있겠다 싶었다” 

Q. 일상에서 자주 쓰는 대사는 

“’나 지금 되게 신나’ 이거 많이 쓴다(웃음)” 

Q. 사라랑 재준이와 서로 대답은 안 해주고 할 말만 하는 장면은 어땠나 

“정말 힘들었다. 주고받는 대사가 아니다 보니 정말 NG가 많이 났다” 

Q. 가장 힘들게 찍은 장면은 

“교도소 장면이 가장 힘들었다. 심적으로 힘들었다” 

Q. 가해자 친구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따로 시간을 많이 가졌다. 우리 집에서도 많이 만나고, (송) 혜교 언니랑도 많이 만났다. ‘더 글로리’ 촬영 땐 배역 이름으로도 부르고 하면서 잘 놀았다. 너무 친해졌다. 술도 많이 먹고 서로 연기 얘기도 많이 하면서 지냈다. 그러다 보니 현장에서 자연스레 묻어 나오더라”

사진제공: 넷플릭스

Q. 연진이는 엄마, 남편, 딸에게 모두 버림받는다.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엄마에게 버림받는 게 가장 절망적이었다. 딸에게 버림받는 건 그냥 두려움이다. 엄마에게 버림받은 것이 가장 상처가 컸다” 

Q. 데뷔하고 연차도 많이 쌓였다. 임지연에게 연진이는 어떤 의미인가 

“굉장히 큰 도전이고 다시 오진 않을 기회라 생각했다. 하면서도 내가 이렇게 용기 있었나 싶더라. 내가 이렇게 용기 있고 부딪힐 수 있는 사람이자 배우라는 생각이 들게 해주는 그런 작품이자 캐릭터였다” 

Q. ‘더 글로리’ 이전에 크게 연기적으로 엄청난 색을 보이지는 않았다고 느끼는 사람도 많다 

“정말 내가 그동안 아무것도 안 하다가 ‘더 글로리’ 하나가 잘 돼서 터진 건 아닐 것이다. 나도 한 계단 한 계단 성장하는 과정이 있었고 너무 감사하게 상업 장편영화로 데뷔하게 됐다. 현장에서 혼나기도, 울기도 했다. 그게 쌓이고 쌓여 지금 이렇게 칭찬받을 수 있는 것 같다. 난 항상 노력했고, 성장했고 성장할 배우다” 

Q. ‘장미맨션’ 출연 전 슬럼프를 겪었다고. 이 작품이 슬럼프를 깨는 계기가 됐는지 

“어떤 배우든 캐스팅의 기회가 많이 오지 않거나 한정된 역할이 올 때 무기력해진다. 나도 그런 시기가 온 것 같다. 20대부터 쉬지 않고 작품을 했는데 쉬는 시기가 온 거라 생각했다. 중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들어 많은 책을 읽고 작품도 보고, 공연을 많이 보면서 굉장한 도움이 된 시간이었다”

Q. 기대 이상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차기작 선택에 대한 부담은 

“연진이를 잊혀지게 하겠다는 강박은 버렸다. 난 묵묵히 내 길을 걷겠다(웃음). ‘더 글로리’ 촬영 이후에 ‘마당이 있는 집’을 바로 촬영했는데, 너무 다른 역할이라 오히려 잘 된 것 같다” 

Q. 극 중에서 동은이 계속 ‘연진’을 부르며 편지를 보낸다. 동은에게 하고 싶은 말은 

“동은아, 연진이가 정말 큰 벌을 받았어. 너한테도 또 다른 영광이 찾아왔으면 좋겠어” 

Q. 연기 방향성에 대해 말했는데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나 

“되게 빠르게 좋은 기회가 왔다 생각한다. 난 스스로 하는 칭찬에 인색하다. 언젠가 ‘너 진짜 잘했다’라고 진심으로 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스스로 나를 칭찬할 수 있는 성취를 느낄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Q. 임지연에게 있어 영광이란 

“‘인간중독’으로 데뷔했을 때 시사회 날 영화를 보고 나서 엄마가 꽃다발을 주셨다. ‘너 정말 너무 예뻤어’라고 말하더라. 사랑하는 가족들이 날 응원해 주고 노력을 알아주는 건 배우로서 되게 큰 영광인 것 같다”

임재호 기자 mirage0613@bn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