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터뷰] ‘하루’ 변요한, 안착을 부정하고 안주를 거부하고

2017-06-21 14:12:35

[김영재 기자] “도전하고 싶은 것이 정말 많다”

배우 변요한이 대중의 눈에 각인된 작품은 단연 tvN ‘미생’이었다. 그는 신입사원 한석율을 입체적으로 연기해내며 본인의 이름 석 자를 시청자들의 뇌리에 각인시켰다. 이후 영화 ‘소셜포비아’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SBS ‘육룡이 나르샤’ 등은 변요한이란 묘목이 뿌리를 견고히 내리도록 도왔다. 그리고 약 3년이 지난 지금. 그는 이십 대라는 길을 질주해, 스물아홉이라는 터널을 지나, 삼십 대라는 처음 만나는 세계를 조우 중이다.

30은 그저 숫자일 뿐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한계를 몸소 체감하는 인간으로서는 숫자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온다. 살구색을 뽐내는 달걀 한 판과의 사진이, 우스운 것 아닌 하나의 퍼포먼스로 돋보이는 것이 바로 삼십 대다. 외양으로 드러나는 신체도, 내적으로 수렴하는 정신도 한 단계 발전되거나 혹은 퇴화되는 시점인 이때. 취재진은 변요한에게 지금의 나이는 어떤 의미를 갖는지 조심스레 질문했다.

이에 그는 “아직 잘 모르겠다. 나를 잘 모르겠다”라며 머릿속의 생각을 정리했다. “아직도 내가 어느 길로 가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여러 가지 취미들을 만들고 있고, 생소한 것들을 계속 배우려고 한다. 낯선 곳을 가려고 노력한다. 익숙한 것을 피하기 위한 노력이다. 그리고 작품도 ‘열심히 해야 될 때야’라고 누가 채근한다면, ‘그냥 천천히 갈래’라고 답하고 싶다. 나는 이것을 지키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못 즐거울 것 같다.”

변요한은 세상과의 빠르기를 0.5배속으로 설정했다. 사실 이십 대에 모든 채비를 끝마치고, 삼십 대에 전력 질주를 하는 것은 이상(理想)이다. 만약 이것이 가능하다면 누군가에게는 최선이겠지만, 인생의 묘미는 정답이 없다는 것에 있다. 느리면 느린 대로, 빠르면 빠른 대로 모두가 저마다의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바로 조화고 하모니다. 아마 그는 자신만의 리듬을 찾은 삼십 대 초반의 몇 안 되는 행운아일 테다.

여기 생소하고, 낯설고, 느린 것을 선호하는 그의 신작이 2017년의 6시 15분인 6월15일 스크린에 개봉한다. 영화 ‘하루(감독 조선호)’다. 날짜에 시간 개념을 혼재한 이유는 소재가 등장인물이 동일한 기간을 반복하는 ‘타임 루프(Time Loop)’이기 때문. 딸이 사고를 당하기 2시간 전을 반복하는 남자가 시간에 갇힌 또 다른 남자를 만나 비밀을 추적해 나가는 이번 작품에서 변요한은 시간에 갇힌 남자 민철 역을 맡았다.

“마음적으로는 편안했다. 최고의 스태프 분들과 촬영을 했으니까. 스태프 분들 모두 다 좋았다. 내가 그런 복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선배님들께도 감사드린다. 마찬가지로 의지하고, 또 믿는 구석이 있었다. 다만 몸이 힘들었다. 그냥 몸만 힘들었는데, 이것은 대본을 보는 순간 이미 짐작한 부분이었다. 힘들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작품을 선택한 이유 중의 하나였다.”


이와 관련, 그는 만류에도 불구 차량 옆에서 위험한 액션 포지션을 잡는 등 안전(安全)을 불사했다는 후문. 이에 변요한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전부 하고 싶다”라며, “그 대신 안 다쳐야 된다. 무리하진 않는다. 왜냐하면 독립 영화 시절에 다리가 부러져서 캐스팅이 바뀌었던 적이 있다. 며칠을 울었다. 나 때문에 동료 형의 캐스팅도 결국 취소됐다. 죄책감 같은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에 안전적인 부분에서는 책임지고 한다”라고 강조했다.

민철은 아내 미경(신혜선)의 죽음을 계속해서 반복한다. 현실의 관객에게는 가상의 죽음일 뿐이지만, 배우에게는 비극이 연기 이상으로 다가왔을 법하다. “스토리텔링은 분석이 필요했지만, 감정은 계산하고 싶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일곱 번 이상 본다고 하면 나는 미쳤을 것이다. 완전히 미칠 수밖에 없는 상황. 경험을 못 했으니 계산도 불가했다. 솔직하게 연기하고 싶었다. 잘하든, 못하든, 이것이 실험이든, 그냥 솔직하게 갔다.”

결국 아내의 생명을 위해 민철은 살인도 불사한다. 시간은 반복되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개념도 초기화되지만 악행은 핏물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물음표는 없었을까.

“당연히 감독님께 물어보기도 했다.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좋아하는 형을 죽이는 것은 모순이다. 그런데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도덕적으로는 잘못됐지만, 결국 민철의 정서고 인생이다. 아마 살인 이후에 아내가 살아났다면 민철은 감옥에 갔을 것이다. 그만큼 아내가 먼저인 사람이다. 끔찍하고, 소름 돋고, 단순한 장면이지만 나도 불편했다.”


이번 영화에서 변요한은 준영 역의 김명민과 호흡을 맞췄다. 김명민은 KBS1 ‘불멸의 이순신’, MBC ‘베토벤 바이러스’, 영화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로 대표되는 배우. 변요한과 선배와의 앙상블은 처음이 아니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에서는 김윤석과 2인 1역을 선보였다. “(김)윤석 선배님의 뒷모습에서 배운 것이 많다. 책임감과 예민함. 선배님께서 그것들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시는 모습에서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명민 선배님께는 ‘육룡이 나르샤’를 같이 하면서 1년 동안 단 한 번도 질문 드렸던 적이 없는데, 이번에는 ‘연기 몇 년 동안 하셨어요?’라고 여쭤봤다. 변화되는 것들과 따라가는 것들, 흥행하는 것들과 못하는 것들 등 내가 고민하는 지점이 그런 딜레마 부분이었고, 정말 대단하신 선배님이다. 더불어 두 분의 공통점은 꾸밈없고, 멋 부리지 않는 것이었다. 가장 기본적이고 정확한. 기교보다 심플. 정말 어려운 것들이다.”


‘하루’는 ‘제50회 시체스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경쟁 부문인 ‘오피셜 판타스틱’ 초청작이다. 또한, 남미와 아시아를 아우르는 해외 선 판매까지. 그러나 유월 극장가에는 성조기가 펄럭인다. 톰 크루즈의 영화 ‘미이라’, 갤 가돗의 ‘원더 우먼’, 조니 뎁의 ‘캐리비안의 해적: 죽은 자는 말이 없다’가 바로 그것. 그는 “영화의 완성도는 대중의 평가에서 비롯된다”라고 입을 열었다. 그리고 독립 영화에 출연했던 시절의 경험을 언급했다.

“영화를 안 찍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좋은 작품들을 시도하면서, 실험하면서 살고 싶다. 경쟁에 구속 받지 않고. 그런 생각을 할 경력도 아니다. 이제 상업 영화 두 편 찍었는데 내가 언제부터. 흥행에 대한 질문을 들을 때 정말 낯설다. 지금도 낯설다. 독립 영화를 찍었던 시간이 훨씬 더 길기 때문이다. 독립 영화에는 흥행이라는 말이 없다. 다만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 그리고 실험 영화가 있을 뿐이다. 나는 계속 그러고 싶다.”

집에 영화 ‘트랜스포머’ 시리즈와 ’분노의 질주’ 제이슨 스타뎀 피규어도 있다고 이야기한 그는 “문화의 교류에 있어서는 참 좋다고 생각한다”라며, “누군가는 손해볼 수 있고, 안타깝고 조심스러운 부분이지만, 다 배울 것이 있다. 대작은 대작대로, 또 저예산 영화는 그것대로 배울 것이 있다. 문화를 차단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라고 고백했다.

‘하루’의 제작비는 약 60억 원대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에 이어 평균 규모의 한국 영화인 셈. 이 와중에 할리우드에 버금가는 예산은 요원하지만, 100억 원대 혹은 200억 원대의 한국형 블록버스터들은 매년 여름마다 관객들의 가슴을 노크한다. 주목받는 신예로서 대형 배급사들이 주도하는 흥행 예고작들의 각본을 받았을 법하다.

변요한은 “욕심이 난다”라며, “하지만 숙제가 너무 많다. 이렇게도 도전해보고 싶고, 저렇게도 무너져보고 싶다. 그러다가 작품이 끊기면 어쩔 수 없는 것이고. 복귀를 요청 받으면 감사하다고 말씀드리면서 또 하는 것이고. 재밌을 것 같다. 물론 금전적인 힘듦도 있겠지만, 지금이 행복하다. 기회가 된다면 나도 때려 부수는 데 일조하고 싶다. 반대도 일조하고 싶다. 도전하고 싶은 것이 정말 많다.” 흥분 어린 기대가 취재진에게 전달됐다.


인터뷰 초반 그에게 상업 영화로의 안착을 언급했다. 지난 2011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작품인 단편 영화 ‘토요근무’가 데뷔작인 그는 약 서른 편의 작품들에 이름 변요한을 올렸던 바 있다. 이에 안착을 인정하거나, 보류하는 대답을 예상했던 것이 사실. 하지만 그는 안착을 부정했다. 그리고 미래에도 안착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연기의 지향점을 전달했다.

“안착은 없는 것 같다. 고민하고 있는 시점인데, 나에게 안착은 없을 것 같다. 그냥 좋아하는 작품을 하면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 선택한 책에 책임을 지고 싶다. 배우의 특권은 공감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단 한 명일지라도 함께 고민을 나누고 싶다.”

안착을 부정하는 것은 안주(安住)를 걱정하는 것으로 치환 가능할 테다. 상황이나 처지에 만족하는 것을 뜻하는 안주. 분명 안도감을 부여하는 양의 상태지만, 어느새 게으름을 뜻하는 음의 상태로 치부되곤 한다. 아마 변요한의 마음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지금에 만족하지 않거나, 지평선 너머의 한 점을 향해 평생 달리고 싶거나. 어느 쪽이든 관객으로서는 기쁠 따름이다. ‘하루’는 변요한의 매진(邁進)을 확인 가능한 2017년 신작이다. 영화는 6월15일 개봉 예정이다. 90분. 15세 관람가. 손익분기점 190만 명. 제작비 62억 원.

+α. ‘오피셜 판타스틱’ 초청작 중 한국 영화는?

‘시체스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는 스페인 시체스에서 열리는 최대 규모이자 최고의 장르 영화제다. 1968년 판타지와 호러 영화 상영 주간으로 출범했고, 현재는 해당 장르 영화에 관한 첫 손에 꼽히는 세계적 영화제로 자리매김했다. 2001년 김기덕 감독의 ‘수취인불명’과 2004년 박찬욱 감독의 ‘올드 보이’가 해당 부분에 초청됐으며, 지난해에는 ‘곡성’ ‘부산행’ ‘아가씨’가 이름을 올렸다. 이 밖에도 2001년과 2017년의 간극 동안 수많은 한국 영화들이 시체스를 방문했다. 판타지가 주축을 이루는 영화제가 한국 영화계를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신선한 소재, 정형화되지 않은 연출이 크게 작용할 것이다.(사진제공: CGV아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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