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시아 대표감독 이안(李安), 관객의 마음에 예술을 심다

2015-11-23 10:48:58

[양완선 기자] 히스 레저와 제이크 질렌할, 앤 해서웨이까지 헐리우드의 톱스타들이 동성애 영화에 출연했고 제28회 미국아카데미 각색상, 감독상, 음악상, 제63회 골든 글로브 감독상, 각본상, 작품상, 주제가상을 거머쥔다.

이렇게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2006年)은 그 해 최고의 영화가 되었다. 그리고 이 영화의 감독 이안은 오랜 시간 동안 금기시되었던 소재인 ‘동성애’를 주제로 문화와 국가, 성의 경계까지 허무는 유일무이한 감독이 되었다.

물론 대한민국에도 임권택, 김기덕 감독이나 봉준호, 홍상수 감독처럼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감독들이 많다. 하지만 국제적인 위치로 볼 때 제 66회 칸 영화제의 심사위원이며 제 85회 아카데미 감독상을 거머쥔 이안은 구로사와 아키라를 잇는 ‘아시아 대표감독’이 분명하다.

# 프롤로그 – 이안, 영화를 시작하다


1954년 대만에서 태어난 이안은 1975년 국제 타이완 예술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으로 이주하게 된다. 이후 1978년 일리노이 대학, 뉴욕대학에서 연극영화과 학위를 받은 후 1983년 ‘Dim Lake’로 타이완 골든 하베스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다.

“될 성 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이 있듯 그는 이미 뉴욕대 재학시절 만든 45분짜리 영화 ‘Fine Line’으로 뉴욕대 영화제에서 감독상과 작품 상을 받은 이력도 있다.

그의 첫 번째 장편영화를 데뷔 영화라 칭한다면 1992년 영화 ‘쿵후 선생’을 말할 수 있다. 이 영화로 그는 태평양 영화제에서 최고작품상을 수상하고 타이완 ‘Golden Horse Awards’에서 9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는 영광을 누렸다. 가히 새로운 스타 감독 탄생의 순간이었다.

# 이안,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다


첫 장편영화를 성공적으로 마친 이듬해 1993년, 그는 ‘결혼피로연’을 발표한다. 이 영화는 미국인 사이먼과 그의 동성애인인 대만인 웨이퉁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장르로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하고 비평가들의 후한평가와 박스오피스 성공까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두 번째 흥행작이 된다.

다음 작품 ‘음식남녀’(1995年작) 역시 마찬가지. 문화 정체성과 세계화를 솔직하게 풀어낸 이 영화는1994년 깐느 영화제 감독주간 개막작으로 선정되었으며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잇따른 성공에 힘입어 그는 1995년, 엠마 톰슨, 케이트 윈슬렛, 휴 그랜트와 같은 슈퍼스타들과도 작업을 한다. 바로 ‘센스앤센서빌리티’. 이 작품 역시 아카데미 각본상,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 골든글로브 각본상, 작품상을 수상하며 명실상부 ‘아시아 최고의 감독’으로 떠오른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이안이 드디어 ‘인생영화’를 만난다. 2000년 개봉한 ‘와호장룡’은 역사상 미국 박스오피스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아시아 영화. 1억2800만달러의 흥행 기록을 세우며 이안 감독을 대표하는 영화가 되었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주는 의미가 큰 점은 중국 영화 전통의 무협과 이안 특유의 캐릭터의 내면을 읽어주는 능력이 만나 전 세계에 어필했다는 점이다.

# 실패가 만들어낸 역작 – 브로크백 마운틴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금기시되는 주제, 사상적인 면 등을 거침없고 솔직히 풀었던 그에게 전 세계는 열광했다. 당연히 영화 제작사들은 그를 감독으로 모시기에 혈안이 되었고 그는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헐크’(2003年작)를 연출하기 이른다.

결과는 실패였다. 1억3천7백만 달러를 쏟아 부어 만든 마블코믹스의 ‘헐크’는 북미에서 1억3천2백만불, 해외에서 1억1천3백만불만을 벌어들였을 뿐이다. 그 동안 흥행과 작품성을 동시에 인정받았던 ‘이안 필모그래피’의 오점이 된 것이다.

이안은 이 작품에 대해 “나의 헐크는 모든 것을 너무 진지하게 그린 것이다. 심리극 보다는 재미 위주로 그렸어야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 하지 않았는가. 이안은 ‘헐크'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런 점에서 ‘브로크백 마운틴’(2006年작)의 어머니는 ‘헐크’다. 2006년 이안은 자신이 가장 자신 있어하는 감성적인 인물의 해석을 동성애에 담았다. 또한 이미 유명한 그의 입지는 제이크 질렌할, 히스 레저, 앤 해서웨이라는 흥행을 보장시켜주는 톱스타들을 주연으로 끌어 모을 수도 있었다.

# 이안, 예술의 경계를 허물다


이안은 영화 속에서 특히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자주 다룬다. 그의 초기작 ‘쿵후 선생’, ‘결혼 피로연’부터 2006년 ‘브로크백 마운틴’까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계속 나온다. 동양문화권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엄청나며 이안은 이러한 문화적 특징을 세계화라는 물감을 통해 그려낸다.

‘헐크’이후 “영화를 계속 만들 자신이 없다”라고 말하던 그 역시 아버지의 응원으로 ‘브로크백 마운틴’을 만들고 골든글로브 4관왕, 미국 아카데미 3관왕, 영국 아카데미 4관왕 등 전 세계적인 극찬을 한 몸에 받았다.


이후에는 ‘색, 계’(2007年작)를 통해 이안만의 강점이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줬다. ‘색, 계’의 플롯은 보이는 대로 해석하면 문제의 소지가 많을 수 있다. 만약 일제시대 한국의 독립운동가 여성이 일본의 앞잡이를 청산하기 위해 유혹하는 영화가 있다면, 그리고 그 방법이 섹스이며 적나라한 노출이 있다면 대중들은 참고 있지 않을 것이다.

‘색, 계’는 한발 더 나아가 일본의 앞잡이와 섹스를 하면서 마음까지 줘버리고 임무를 실패하기 이른다. 그래도 관객은 감독에게 분노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작품은 극찬을 받으며 제 64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황금사자상, 제 44회 금마장 감독상을 탄다. 이는 이안만이 할 수 있는 인물의 심리묘사에 관객이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역사적 사실이나 노출은 모두 영화 속에서 인간의 심리를 표현하는데 도움을 주는 ‘도구’일 뿐이다.

# 에필로그 – 이안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


최근 아이유가 발표한 ‘제제’의 앨범 재킷이 화제가 되고 있다. 소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속 제제를 성적 대상으로 삼았다는 비판에 허지웅은 “예술작품의 해석에는 자유가 있다”며 아이유를 옹호했다.

하지만 대중들은 음악에 대해 집중하기 보다는 하의를 입지 않고 망사 스타킹을 신은 제제의 그림에 주목했다. 이쯤에서 그룹 너바나의 1991년 앨범‘Nevermind’의 재킷 사진을 보자. 발가벗은 아기가 물 속에서 돈을 향해 헤엄치는 장면을 담았다. 그리고 이 앨범은 ‘역사를 바꾼 한 장의 앨범’이라는 극찬을 받고 있다.

만약 이안이 ‘제제’의 앨범 재킷을 그렸다면, 혹은 작사를 했건 어느 방법으로든 이 앨범에 참여했다면 어땠을지 생각해본다.

허지웅의 말처럼 예술작품의 해석에는 자유가 있다. 그리고 이안은 그 자유를 지배하는 감독이다.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본 의미를 관객들의 마음속에 심기 때문이다. 예술에 대한 평가는 이렇게 한 끗 차이로 달라진다.
(사진출처: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센스앤센서빌리티’, ‘쿵후 선생’, ‘와호장룡’, ‘헐크’, ‘브로크백 마운틴’, ‘색, 계’ 스틸 컷, 너바나 ‘NEVERMIND’, 아이유 ‘제제’ 앨범 재킷 캡처, 하지원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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