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현 기자/ 사진 배진희 기자] 김윤석은 우리나라 영화계에서 그 이름만으로 무한한 신뢰감을 주는 몇 안되는 배우 중 하나다. 그리고 필모그래피에서 최동훈 감독은 자신의 성공스토리와 나란히 할 정도로 인연이 깊다. 그 두 사람이 10인의 도둑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도둑들’(7월25일 개봉)을 통해 다시 만났다. 그리고 놀라운 결과물을 탄생시켰다.
소공동에 위치한 모 호텔에서 만난 김윤석은 꽤 넉살좋은 미소로 기자를 맞았다. 하지만 인터뷰가 시작되자 금새 눈빛이 매서워 졌다. 함께 자리한 사진기자가 “인터뷰 전 포즈보다는 인터뷰 중 모습이 훨씬 에너제틱하더라”라고 전할 정도. 그는 영화와 자신의 연기에 대해서는 확신에 가득찬 자신감을 보이다가도 최동훈 감독과 동료 배우들의 이야기가 나오면 풀어질 듯 시원한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
아마 우리가 다 합쳐서 1,500만 정도 기록했을 거다.
두 사람이 계속 같이 가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계속 같이 가려면 최동훈 감독의 시나리오에 내 나이 때 캐릭터가 계속 나와야 한다는 것인데 그럴 필요가 있나. 나는 나홍진 감독하고도 하고 최동훈 감독하고도 하는데 최감독은 억울하지 않겠나.(웃음) 자기도 다른 사람과 해봐야지. 이별은 언제나 익숙해져 있다. 또 다시 만날 수 도 있는거고.
최동훈 감독은 캐스팅 1순위로 생각했다던데?
내가 최동훈 감독 영화에서 맡은 캐릭터들이 아귀(‘타짜’)와 화담선생(‘전우치’)였다. 항상 수면 위의 인물이 아니라 수면 밑에서 잠재해 있다가 떠오르는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들을 나한테 잘 맡긴다. 그래서 어렵다. 항상 9회말 2아웃에 등장시키니까.
이번에도 그런 느낌이 드는 캐릭터다.
그렇다. 영화 중반까지는 포커페이스로 거의 해설자에 가까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 영화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에 대해 스트레이트하게 내레이션처럼 설명하는 사이에 다른 배우들이 자유롭게 노는 거지. 축구로 치면 수비형 미드필더 정도?
이 영화는 챕터가 2가지인 영화다. 전문가들이 모여서 영리하고 세련되게 한가지 프로젝트를 달성하는게 첫 번째 챕터라면 2번째 챕터에는 굉장히 하드보일드하고 원초적인 액션이 등장한다. 그 중간 지점에서 마카오 박이 수비를 하다가 공격 드리블로 전환하는거지. 그런 지점들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최 감독이) 플레이메이커로서 시야가 넓은 배우가 한명 있어줘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영화의 전체흐름과 같이 가야 하니까. 일부러 초반에는 감정을 뺐다. 마치 모노레일이라고나 할까. 어느 순간에는 완전히 뒤로 빠지기도 하고. 그 조율이 굉장히 중요했다.
이게 뭐 ‘추격자’나 ‘황해’처럼 투톱이 쌓아가는게 아니라 10명의 배우들이 자기 영역의 것을 교통 정리를 잘 해서 놀아야 하니까. 전지현이 맡은 예니콜이 수면 위에서 온갖 기교를 다 부릴 때 팹시는 수면 밑에서 쫘악 깔아준다. 예니콜이 동적이라면 팹시는 정적, 정중동이 계속 포지션에 맞게 간다. 마카오 박도 마찬가지다. 그런 역할의 배분이 굉장히 뛰어나다.

‘도둑들’이 시작할 때부터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최동훈 감독과 많이 했다고 들었다. 처음의 구상은 어땠나?
처음에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10인의 도둑이 마카오에서 다이아몬드를 훔치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하더라. 그런데 한국배우 뿐만이 아니라 중국 배우들과 함께하는, 그리고 이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배우, 리더가 필요하다고 하더라. 그걸 나한테 해줬음 하더라. 그게 황해 VIP시사회 끝나고 뒷풀이 할 때였다. 황해에서 중국어 쓰는 걸 봤다면서. 그렇게 시작했다.
처음에 ‘도둑들’이란 타이틀을 들었을 때 단순한 제목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캐이퍼 무비이지만 범죄 자체보다는 10인의 도둑들 캐릭터, 그들의 인간적인 면에 조금 더 집중했달까?
범죄보다는 캐릭터가 굉장히 강한 영화다. 그들이 벌이는 일 밑에 있는 감정들이 더 중요하다. 최동훈 감독은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데 있어서 매우 탁월하다. 내가 봤을 때는 평소에도 많은 캐릭터들을 생각해오고 있는거 같더라. 씹던껌. 예니콜, 팹시 등등, 이 사람은 늘 배우들에게 관심이 많고 뽑아낼 그림들을 계속 그리고 있는거 같다. 영화를 너무너무 사랑하는 사람, 배우를 너무너무 좋아하는 사람이다.
이번 작품에서 최동훈 감독의 호흡이 굉장히 여유로워졌다고 생각한다. 그걸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 옛날 같은 칼 같은 편집, 왜 이렇게 여유로워 졌냐고 말하기도 하는데 최감독은 스스로 변화를 시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는 카메라 워크도 완만하고 유려하게 움직인다. 옛날에는 정말 빠르고 눈 코 뜰새가 없었다면 이번에는 다르다. 최동훈 감독이 또 다른 방향으로 성장해 나가고 있다고 보고 있다.
(최동훈 감독이)장가를 가서 그렇다. 금슬이 좋아서.(웃음)
그에 반해 마카오 박과 팹시(김혜수)의 멜로라인은 상대적으로 약했던 것은 아닌가?
최동훈 감독이 마카오 박과 팹시의 애정신을 용서를 안하더라. 이게 아쉬움이 남아야 한다나? 사석에서는 “15세 관람가에서 그걸 왜 보여주냐”고, “19세 빨간 딱지 붙었을 때 포텐셜 터트리자”는 이야기를 하더라. 아쉽지만 좀 더 뭔가 둘이 있었으면 하긴 했다. 빨간 딱지 달 때 제대로 진한 걸 보여주겠다.
가장 인상 깊었던 멜로라인은 첸(임달화)과 씹던껌(김해숙)이었다.
그 사람들은 막차를 탄 사람들이지 않나. 중년도 아니고 장년이다. 자동차 브레이크가 고장나도 내리지도 못하는 사람, 인생의 마지막 차니까, 굉장히 슬펐다. 짧고 굵고 장렬하게, 중국과 한국의 명배우 두 분이서 멋있게 자기 역할을 해주셨다. 두 분 다 너무너무 존경한다.
김윤석과 김혜수가 다시 붙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타짜’의 아귀-정마담이 보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기우였다. 다른 에너지가 느껴졌다.
성당에서 둘이 과거를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는데 굉장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보는 분들은 아쉬움이 많이 들기도 하는거 같은데 굉장히 설레여 하면서 찍었다. 찍고 난 뒤에 녹초가 될 정도로 피곤했다. 아무것도 아닌 신인데도 불구하고… 그만큼 감정이 매우 뜨거운 장면이었다.
김혜수는 개인적으로 ‘타짜’에서 처음 만났는데 그런 팜므파탈한 모습을 다 버리고 비련의 여인으로 변한 모습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김혜수는 나이를 먹을수록 더 예뻐지는거 같다.
제작보고회, 언론시사회에서 김혜수를 에스코트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냥 호흡을 같이 맞춰서 그런가보다 싶었는데 영화를 보고나니 마카오 박-팹시가 생각나더라.
그런 것도 있지만 하이힐을 신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옆에서 잡아주지 않으면 굉장히 어렵다. 게다가 치마까지 깊게 파이면 그게 또 찍히지 않나. 그래서 내가 앞에서 잡아주고 그랬다. 그게 우리 콘셉트였다. 이게 얼마나 멋있나? 여배우들은 남자의 3배나 힘들다. 솔직히 남자는 대충 해도 괜찮다. 날 봐라.
‘도둑들’ 포스터 보고 느낀 건 마카오라는 도시와 김윤석이 너무 잘 어울린다는 것이었다.
일단 와인색 셔츠라는 의상의 승리다. 의상 실장이 색에 대한 감각이 매우 뛰어난 사람이다. 머리 스타일도 그렇고 어떤 사람은 나만 보면 범죄의 냄새가 풍긴다고 하더라. 의상 피팅할 때 이 와인 색깔이 마카오 박하고 잘 어울린다고 바로 결정했다. 그 옷을 성당에서도 입는다. 그런 콘셉트가 다 들어간다. 속내를 들어내지 않고 자기 생각에 빠져있는데다 신념도 있는 아우라를 마카오 박은 가져야 했다. 복수라는 거대한 그림도 그려야 하지 않나.

홍콩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정말 재밌게 잘 놀았다. 외국 배우들은 시간관념이 칼 같다고들 하는데 편견이다. 전혀 아니었다. 우리보다 더 인간적이고. 그런 사람이 실제로도 있다고는 하더라. 하지만 우리와 함께한 배우들은 그렇지 않았다. 우리보다 더 철저했다. 인상 깊었던게 감독이 컷을 외쳐도 그 자리에 동작을 멈춘 채 가만히 있더라. 알고보니 뒷장면의 연결을 위해서 였다. 홍콩에는 그런 멋있는 룰이 있더라.
임달화 선배는, 우리는 달화형이라고도 했는데 너무 친해져서 영화 안에서도 밖에서도 정말 존경하는 선배였다. 저렇게 멋있게 늙자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너무나도 따뜻하고 배려심은 최고다.
홍콩배우들과 첫 장면이 극중에서도 첫 대면 장면인거 같더라. 긴장감이 넘쳤다.
점보레스토랑에서 찍은 장면이 맞다. 굉장히 재미있었다. 경계심이 있으면서도 서로에게 무엇을 캐내야 하는, 친하면서도 친하지 않은 묘한 긴장감들. 그것들이 필요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중국어 대사를 처음으로 테스트 받는 장면이었다. 중국어로 서로 기싸움을 벌여야 했다. 대사의 늬앙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긴장감이 정말 대단했다. 촬영장이 핫 할 정도로 뜨거웠다.
후반의 와이어 액션 장면은 정말 멋졌다.
캐이퍼 무비스러운 스마트하고 세련된 장면에서 갑자기 야전 게릴라 전투처럼 변한다. 상대하는 웨이홍의 부하들은 정말 용병 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영화의 신 톤이 완전히 거칠게 바뀌어야 했다. 그 장면에서 포텐셜이 터져야 했다. 사전에 최감독이 전부다 계산하고 준비해 놓은 장면이었다. 시나리오 상에는 겨우 반페이지 정도 분량이었는데 찍는데 한달이 걸렸다.
이 장면은 기발함과 스펙타클에서 한국영화 액션신 중 손꼽힐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방점을 찍었다고도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만 나올 수 있는 액션이지 않나. 멋스러움을 강조한 신이 아니라 처절함이 묻어나는 액션이다. 등산복 하나만 입고 온몸이 먼지 투성이가 됐다. 거기다 등산용 자일에 메달리다가 다시 전깃줄에 메달린다.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나보다는 최동훈 감독, 무술팀, 특효, CG팀의 실력이 총망라되어 있는 신이고 고생을 많이 했다. 처음에 간략한 3D로 구현된 영상을 봤는데 ‘이걸 지금 나보고 하라고?’라고 물었다. (웃음) 고생한 만큼 잘 나와서 다행이다. 스태프들도 너무 고생 한 장면이다.
힘든 촬영이었을 텐데 최동훈 감독은 어떻게 김윤석을 설득했나?
촬영 끝나면 항상 내 손을 붙잡고 고기 먹으러 가자고 했다. 고기 먹고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또 메달고, 끈질기게 찍었다. 최동훈 감독이 퀄리티에 대해서는 집요한 사람이다. 부드럽게 부탁을 하는데 거절을 못 하겠다. 최 감독이 그러더라 톰 크루즈도 나이가 50인데 ‘미션 임파서블4’에서 했다고. 그래서 내가 그거랑 이거랑 같냐고 툴툴대긴 했다. (웃음)
‘다크나이트 라이즈’라는 강적과 대결을 펼친다. ‘도둑들’이 줄 수 있는 매력 포인트는 뭐라고 생각하나?
우리에게는 어마어마한 ‘쌍년’ 두 명이 있다. 예쁜 여배우가 입이 걸면 남자들이 쾌감을 느낀다. 변태 같은 면이 있어서 보는 사람마다 다 좋아 죽으려고 한다. (기자를 가르키며) 또 보고 싶지 않나? 다음에 만나면 직접 해달라고 해라.(웃음)
우리 ‘도둑들’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친밀하고 인간적이다. 그에 못지않은 액션을 소화하고 볼거리도 다양하고. 무엇보다 CG가 많지 않은 아날로그 감성이 있다. 알 수 없는 장비로 삐리릭 오케이 하는게 아니라 진짜로 드릴로 박아서 카메라 넣고 땡기고 이런 것들이 우리 영화 만이 가질 수 있는 미학인거 같다. 비슷하다는 비유가 생길 수가 없다. 어떤 분들은 ‘오션스 일레븐’과 비슷하다고 하는데 본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안 할 것이다.
굉장히 좋은 대결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올 여름 시장에 한국 영화가 없었다면 재미가 없을 것이다. 스파이더맨 vs 배트맨 이었다면 ‘지들끼리 싸워라’인데 ‘도둑들’이란 영화가 상업영화로서 맞대결을 펼친다는게 기분이 좋다. 축구로 치면 결승전에 우리나라가 올라갔다는 거다.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을 개최했는데 우리는 탈락하고 결승에서 독일과 스페인이 붙으면 무슨 재미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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