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레져

한국의 바윗길을 가다(34) 도봉산 만장봉 낭만길 / 요들송 울려 퍼지던 그때 그 길, 아직도 낭만이 가득

2014-09-25 16: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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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률 기자] 6월 하순의 날씨는 계속 한 여름을 방불케 하고 있다. 낮 기온이 줄곧 30도를 웃돌고 있기 때문이다. 일요일 아침의 도봉산 입구는 그러나 무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등산객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졌다. 정말 ‘산행열기’라고 밖에 표현할 수밖에 없는 현상이다. 하기는 도심에 있는 것보다는 산속에 있는 것이 훨씬 더 시원하다.

도봉산 입구에서 만난 일행은 선인봉을 향해 발길을 옮긴다. 이날 기자는 ‘의도적’으로 ‘할머니집’을 찾아갔다. 도봉산 입구 만남의 광장을 출발하면 상가가 들어차있는 두 개의 갈래길이 나오는데 왼쪽길을 택해서 가다보면 오른쪽에 간단한 음식을 판매하는 간이음식점인 ‘할머니집’이라는 작은 가게가 나온다.

외형은 보잘것 없다할지언정 이 할머니집은 1960년대부터 바위를 좀 했다하는 바윗꾼들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의 장소라고 할 수 있다.

핸드폰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196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할머니집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파는 식당의 기능과 산행과 등반에 꼭 필요한 부식 등을 판매하는 상점의 기능에 덧붙여 중요한 업무를 수행했으니 그것은 말하자면 통신의 기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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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산악회의 먼저 온 대원들은 할머니집에 이르러 고픈 배를 채우고 부족한 부식을 챙겨 담은 후 뒤에 혹은 다음날 산에 찾아올 대원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남겨놓았다. 이를테면 무인포스트의 역할을 한 것이었다. 개중에는 “식수가 부족하니 물을 많이 떠오라”는 메시지도 있었을테고 “술부족! 자금 있는 대로 술구입”이라는 내용도 있었을 법하다. 뿐이랴 이렇게 더운 날씨에는 “수박 한 통 사오면 지각한 것도 모두 용서!”라는 메시지를 읽고 ‘지각군기’가 걱정되는 후배들은 잔돈을 세어가며 잔뜩 고민을 했을 수도 있다.

문자를 작성해서 버튼을 누르기만 하는 지금 세상에 수첩 또는 종이를 펴고 직접 적어 넣어야 하는 통신망은 무척 촌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지난 세월을 이어주는 귀중한 고리가 되어주기도 한다. 놀랍게도 도로와 맞닿은 할머니집의 한쪽 벽면에는 아직도 산악회별로 별도의 우편함을 만들어서 언제든지 이곳에서 내용을 확인 할 수 있었다. 6월24일 할머니집의 칠판에는 이런 사연이 적혀있었다.

황00님 15년 전 명동000에 다니던 000기억하세요.
숙대입구로 옮기고서 연락이 끊겼으니 010-5778-XXXX로 연락주세요.

15년 전의 산친구를 찾는 애절한 사연일까? 15년 전의 산친구를 찾는 방법은 최신형 스마트폰에 절대로 없는 기능이다. 꼭 연락이 되어서 오래된 회포를 풀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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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등반할 바윗길은 도봉산 만장봉 낭만길이다. 도봉산 입구를 출발하여 산사태로 무너진 등산로를 우회하여 구조대를 지나 땀을 한 바가지 정도는 흘리고 목이 마를 즈음 푸른샘에 도착하여 단번에 갈증을 해소한다. 이미 반쯤이나 비어버린 물통에 물을 가득 채우고 다시 갈 길을 재촉하여 오르다가 왼쪽으로 난 희미한 길을 따라가면 만장봉에서 이어지는 능선길이 나오는데 왼쪽의 바위가 바로 낭만길의 첫째 마디가 되겠다. 낭만길은 바윗길이라기 보다는 릿지길에 가깝지만 이렇게 무더운 날에는 바람이 불어 선선한 릿지길 등반이 제격일 듯 싶다.

오늘 선등은 돌비산악회를 이끌고 있는 이성종 대장이다. 경동OB의 부등반대장도 겸하고 있는 그와는 이미 설악산 울산바위의 비너스길과 계단슬랩길을 등반한 적이 있다. 그런데 하루 전날 계단슬랩길을 등반했던 팀은 악천후와 일몰로 인해 미처 2개의 캠을 회수하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시작된 등반에서 이성종 대장은 차분하게 바윗길을 리딩하며 캠회수기도 사용하지 않고 간단하게 두 개의 캠을 모두 회수했다. 사실 말이 간단한 것이지 그것은 그만의 경험과 노하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듬직한 체구와 차분해 보이는 그의 자세는 말 그대로 산을 닮아 있다. 그의 매력은 한 가지쯤 더 있는데 어떤 순간에도 놓치지 않는 여유와 이어져 나오는 유머감각이다. 한 마디씩 던지는 그의 말은 등반의 어려움과 갈증을 한 순간에 털어내 주는 약효가 있다. 거벽등반과 설상등반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그와 언젠가 자일을 한 번쯤은 더 묶고 싶었는데 그 기회란 것이 일주일여 만에 찾아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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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장봉 낭만길은 모두 아홉 마디로 구분된다. 아홉 마디라는 것은 자일이 원활하게 유통되는 임의의 구분이지 마디가 끝날 때마다 별도의 확보점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명확하게 구분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첫째 마디는 등반자 전원이 자유등반으로 오를 수 있을 정도로 어렵지 않은 구간이다. 등반거리는 약 10미터로 시작부분의 쉬운 크랙을 오르고 나면 다시 왼쪽으로 슬랩, 오른쪽으로 크랙으로 오르는 구간이 나온다. 항아리 크랙을 잡고 오르다가 끝날 때쯤 확실한 홀드가 없어 당황하기 쉬운데 왼쪽 손을 길게 뻗으면 안전하게 첫째 마디를 마무리 해줄 홀드가 자리 잡고 있다. 첫째 마디의 확보는 나무에 슬링줄을 걸어야 한다.

둘째 마디는 재밍을 적절히 이용해야 오를 수 있는 크랙과 침니 구간이다. 뒤따라 오르던 김란희 대원이 홀드를 찾느라 주춤하더니 이내 거침없이 완등을 한다. 때로는 군기반장에 자상하게 대원들을 보살펴주며 분위기도 살려주는 김란희 대원은 가운데 위치에서 앞과 뒤, 전체적인 등반의 리듬을 조절해주는 역할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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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마디는 약 20미터의 걸어가는 구간이다. 오른쪽으로 자운봉이 보인다. 가히 신선들이 살만한 경치가 멋지고도 신비스럽다. 자운봉 정상을 오르는 배추흰나비의 추억길을 오르는 등반자들의 모습이 마치 개미들이 줄을 지어 절벽을 오르는 것도 같다. 만장봉 위로는 넷째 마디를 등반하려는 등반자들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넷째 마디는 푸석바위로 된 계단식 침니구간이다. 난이도가 없다고 하지만 홀드를 잘 살펴서 등반해야 한다. 이 구간을 등반중에 두 명의 리지 등반자가 아무런 장비도 없이 왼쪽의 낮고 좁은 침니를 통과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다.

본인들은 모르겠지만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이 더 긴장된다. 아무런 보호장구와 안전장비 없이 단 한 번의 실수라도 치명적일텐데 왜 저렇게 무모한 등반을 하는 것일까? 물론 본인들은 짜릿한 기분을 마음껏 즐기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등반사고는 등반능력이 아니라 등반의 횟수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한 북한산구조대 김창곤 대장의 말을 귀담아 둘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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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마디 등반후 클라이밍 다운을 하면 침니형태의 크랙구간이 기다리고 있다. 다섯째 마디는 5.8의 난이도가 매겨져 있어 조심할 필요가 있다. 거의 모든 침니 구간이 그렇듯이 몸을 너무 안으로 집어넣지 말고 홀드를 잘 찾아가면서 잡고 발을 과감하게 짚으면 무난하게 등반을 마칠 수 있다. 그러나 역시 말이 쉽지 초급의 후등자들은 이 구간을 등반하면서 호흡이 가빠진다. 다섯째 마디의 등반거리는 약 35미터.

등반거리 10미터인 여섯째 마디에는 뜀바위가 있다. 그러나 뜀바위라고 해서 절대로 뛰어서는 안된다. 초보자일수록 더욱 그렇다. 왼손으로 이쪽 바위의 홀드를 확실하게 잡고 오른발을 조심스럽게 뻗어 건너편 바위에 올려놓고 오른손을 건너편 바위로 향하며 왼발이 오른발을 뒤따라 건너면 된다. 이렇게 하면 대단히 복잡한 것 같지만 선등자인 이성종 대장은 마치 평지를 걷는 것처럼 슬쩍 걸어 넘어 간다. 마치 마이클잭슨이 문워크를 하듯 신기한 장면이다.

일곱째 마디는 짧은 크랙이다. 우리팀을 앞서가는 선등자가 빌레이 없이 배낭을 메고 오르다가 여의치 않은 지 한 두 번을 실패한다. “빌레이를 보고 안전하게 등반하라”는 충고에도 아랑곳 없이 다시 도전한 그는 의기양양하게 자일을 깔고 사라진다. 만장봉에는 암벽고수들이 많은 모양이다. 조금만 더 신경 쓰면 더 안전하게 등반할 수 있을텐데… 이곳을 오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 같다. 대개 왼손으로 왼쪽 홀드를 잡고 오른발을 바위 중턱에 짚은 다음 몸을 올려 오른 손으로 확실한 홀드를 잡아 오르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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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째 마디에는 넓은 테라스가 나온다. 등반로도 왼쪽의 난이도가 있어 보이는 크랙과 오른쪽의 크랙길 두개로 나뉜다. 왼쪽 직벽 크랙길은 난이도가 5.10급이고 오른쪽 크랙길은 난이도 5.6이다. 왼쪽 수직벽에 볼트 두 개가 박혀있는 크랙길은 첫 볼트의 거리가 멀어서 추락할 경우 발목부상이 거의 틀림없어 보이기 때문에 몸빌레이를 정확하게 보아야 할 것 같다. 앞 팀이 오른쪽 크랙을 어렵게 오르기에 난이도가 있는가 했지만 붙어보니 손홀드 발홀드가 좋다.

이제 마지막 아홉째 마디가 남았다. 왼쪽의 얕은 침니식 크랙과 오른쪽의 슬랩을 이용해서 등반하면 아홉째 마디는 수월하게 끝난다. 거리는 20미터 난이도는 5.6.

아홉째 마디를 모두 마치면 그곳이 바로 만장봉 정상이다. 정상바위를 즐기고 싶다면 걸어서 바위 위로 올라서면 된다. 생각보다도 넓은 바위가 펼쳐져서 이곳 저곳의 경치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등반중에 계속 옆을 호위하듯 서있던 자운봉과 포대능선, 신선대, 선인봉의 전경이 사방으로 화려하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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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길은 2인1조 등반시 자일 1동과 프렌드 1조, 퀵드로 10개, 3∼4개의 슬링이 필요하다. 2인1조 등반시 약 2시간이 소요된다지만 무척 인기가 있는 길이고 일단 정체가 되면 앞 팀을 추월하기가 쉽지 않으므로 시간계획을 넉넉히 잡고 식수 또한 충분히 준비하는 것이 좋다.

선인봉 낭만길은 요델산악회가 개척한 바윗길이다. 올해로 창립 50주년을 맞은 요델산악회의 홈페이지에 가보면 '요델의 발자취'에 1964년 10월1일 선인봉 낭만길을 개척한 것으로 나와 있다. 개척자는 선인봉 표범길을 개척하고 이후 선인과 설악에 숱한 길을 개척한 백인섭 회원을 비롯하여 강길건, 조상규 회원이었다.

백인섭 씨는 <한국의 바윗길을 가다> 선인봉 표범길에 잘 소개되었듯이 산에 대한 열정과 철학이 남달랐던 당대의 톱클래스 산악인이었다.

요델산악회가 이 아름다운 바위능선을 따라 바윗길을 내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요델산악회는 1963년 5월 7일 도봉산 선인봉에서 전문암벽에 도전과 열정을 가지고 개척정신을 추구하며 창립된 산악회이기 때문이다. 즉 산악회의 터전이 선인이었고 선인은 그들에게 베이스캠프이자 모산(母山)이었으며 때로는 놀이터 역할까지 했던 곳이었다.

백인섭 님의 홈페이지에 가보니 백인섭회고록 '1964 선인봉 양지길과 낭만길, 자운봉 전면과 측면 개척'편에 낭만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요델산악회만의 바윗길을 갖고 싶어 가장 먼저 찾아낸 것이 만월암에서 만장봉으로 이어지는 암릉이었다. 쉬운 것에서 어려운 다양한 베리에이션 루트가 있고 군데군데 널찍한 마당바위들이 있어 어설프지만 요델도 불러보면서 우리만의 낭만을 즐기던 암릉이었고 그래서 '낭만길'로 이름 붙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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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장봉 정상에서는 약 40미터와 25미터 두 번의 하강을 통해 너른 하강지로 내려서면 등반을 마무리 지을 수 있다.

디지털 서라운드 입체 음향과 고출력 스피커 시스템으로 생생한 현장감을 더해 준다는 돌비시스템(Dolby system)이 아닌 '펄쩍 뛰어 난다'는 뜻을 가진 돌비(突飛)산악회. 그러나 그들의 외침은 최신형 돌비사운드를 무색하게 했고 등반열정은 그 어떤 고출력 장비도 따라가지 못할 듯 했다. 선배와 후배 그리고 친구들… 이렇게 끈끈한 정으로 뭉쳐진 산악회 활동이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진다면 1대1 방식의 안전교육도 더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것이고 나아가서 우리나라의 산악문화도 더욱 안전하고 친근하게 변해갈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등반을 마치니 어느새 무덥던 한 여름 날의 더위도 사라지고 어디선가 딱따구리 소리가 들려온다. 그것은 안전등반을 축하한다는 신호일까, 이성종 대장과 돌비산악회의 건투를 빌어주는 소리일까? 6월의 신록이 우거진 만장봉이 더욱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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