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률 기자] 인수봉을 찾는 바위꾼들이라면 언제나 꼭 들리게 되는 샘물이 있다. 비둘기샘. 도선사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가쁜 숨을 쉬며 하루재를 올라 잠시 땀을 들이고 구조대 못미처 오른쪽 야영장 가는 길로 들어서서 인수봉 방향으로 100미터도 못가면 나타나는 바로 그 샘이다. 선인봉에서는 ‘푸른샘’이 오가는 바위꾼들과 산 꾼들의 마른 목을 적셔주듯이 인수봉에서는 비둘기샘이 타는 듯한 산 꾼들의 갈증을 씻어주고 있다. 햇수로 벌써 43년째.
비둘기샘
산비둘기 산우회
1970년 9월9일
오늘 우리가 오르려는 인수봉 비둘기길은 바로 이 산비둘기산우회가 1967년도에 개척한 길이다.
사실 난이도로 치자면 고독길과 함께 인수에 오르는 가장 쉬운 길에 속할 것이다. 최고 난이도가 5.7이라니 하드프리 암장에서 5.10대에서 5.12대를 어렵지 않게 오르내리는 클라이머라면 별로 내키지 않는 바윗길이 될 것이다. 멀티 등반을 즐기는 클라이머 역시 가고 싶은 바윗길로 비둘기길을 꼽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난이도와 상관없이 비둘기길은 인수의 클라이밍 역사와 함께 해온 귀중한 바윗길이자 바위의 선을 잘 살려낸 아름다운 바윗길이다.
인터넷을 검색하여 지금도 활발히 활동중인 산비둘기산우회의 홈페이지에서 짧은 인수봉 개척기를 찾았다.
1 9 6 5 년 철없는 서울의 어느 공고 전기과 동기동창 몇몇이 의협심을 기르자며 북한산 인수봉에 매달려 누가 겁 없나 내기를 했다. 참 한심한 내기였지만 그들은 열혈남아(熱血男兒)였다. 줄이나 칼 갖고 놀지 말라는 어른들 말씀 어기고 그들은 칼은 손대지 않고 줄과 놀았다.
아주 긴 자일(seil)이란 줄로 다른 한심한 친구들을 엮으면서 내세울 간판 이름 붙이길, ‘평화 좋은거다’ 라는 어른들 뜻에 따라 '비둘기'라고 했다. 산 좋아하는 비둘기여서 <산비둘기>로 개명(改名)했다.
그들은 자기들끼리는 이라고 크게 불러 서로를 확인했다. 인수봉에 자기들 이름 새기기로 했다. 한심함에 무작스러움을 더해 철근으로 만든 텔레토비의 <뽀>머리에 있는 것같은 쇠말뚝 7개 박아 지워지지 않을 이름 새겼다.
남들은 인수하강코스 또는 하강코스라 하는데 그들은 하강코스 거꾸로 올라가 <비둘기길>이라 하고 하켄 박고, 카라비나 걸고, 자일 엮고... 오르락 내리락 했다.
거의 같은 무렵 클라이머와는 전혀 어울리지 것 같지 않은, 시(詩) 좋아하는 감수성 여린 20대 청년이 이 한심한 내기에 합류해 그들의 우두머리 되어 20년 가까이 한심함에 이끌려온 졸개들 머리 터지고 이빨, 다리 부러지도록 고생시켰다.
졸개들은 인수(仁壽)라는 이름에 걸맞게 저 세상 가는 한심함 없었고 고생 퍼부은 짱에게 역적질 안했다. 우두머리 팔자 좋아, 이 산 저 산 돌아다니는 짬 속에 모은 <구름 위에 띄운 엽서>를 사람들에게 무수히 날렸으나 돈되는 일 없었다. (사람과 산. 1997년 간행)

근로자의 날인 5월1일, 고백컨대 사실 이날도 처음부터 비둘기길을 오르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다른 길의 등반을 마치고 인수봉 남측하강을 완료했는데 평일이라 그런지 의외로 한가한 하강코스를 보고서는 평소에 점찍어 놓았던 비둘기길을 지체 없이 등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보면 비둘기길은 난이도로 보면 쉬운 길이 될지 모르지만 등반의 기회를 잡기에는 쉽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주말에만 등반을 하는 주말클라이머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2011년 11월, 기자는 갑작스런 추락사고로 왼손 검지 손가락을 스무 바늘 이상 꿰매고 가운데 손가락이 심하게 탈골되는 부상을 당했다. 당시의 추락은 여러 가지로 겸손하지 못했던 등반자세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약 5미터 정도를 추락하는 짧은 시간은 의외로 길게 느껴졌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제동이 제대로 되어 추락이 멈추면서 발목을 다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느냐”였다. 발목을 다치게 되면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오는데 거의 1년의 치료와 재활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추락하던 기자는 테라스를 약 30센티미터 남기고 멈춰 섰다.
라인홀트 메스너는 추락 혹은 추락사에 대한 기록을 담은 <죽음의 지대>에서 "떨어지면서 이제는 죽는구나 하는 순간 불안이 가시고 지난날의 일들이 눈앞을 스치며 시간감각이 없어진다. 그리고 갑자기 가족들과 친구들이 생각나며 자기가 자기의 몸에서 빠져나와 밖에서 자기를 쳐다 본다"라고 기술하고 "의외로 고통은 상처를 본 후에야 느끼게 되며, 극한상황에서는 인식마저 확장되게 된다"라는 언급을 한 바 있는데 기자의 경우도 그랬다. 상처를 보고야 아픔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치료와 회복을 위해서 등반을 전혀 못한 채 추락사고로부터 정확히 6개월이 지난 셈이니 평소에 바라보던 인수봉이 아니었다. 인수봉은 결코 만만치 않고 도도하게 바짝 서보였던 것이다.
비둘기길의 첫째 마디는 인수봉 남측 하강코스에서 시작된다. 남측에 하강하는 클라이머가 많다면 비둘기길 등반을 해서는 안된다. 하강에 지장을 많이 주기 때문이다. 선등자가 떨어지는 자일에 맞게 되면 추락의 위험이 있다. 또한 좋지 않은 날씨에 등반자와 하강자의 자일이 엉키게 되면 의외의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비둘기길이 위치한 인수 서면은 앞서 말했듯이 하강이 빈번하게 이루어지므로 등반이 어려운 곳이기는 하지만 의외로 여러 개의 바윗길이 포진하고 있다. 비둘기길 바로 오른쪽에는 최고난이도 5.10a 두 마디로 이루어진 천방지축, 그 옆에는 역시 최고난이도 5.10a에 두 마디로 구성된 서면슬랩, 맨 오른쪽에는 최고난이도 5.10에 세 마디로 이루어진 환상열차가 있다. 인수 서면으로 등반 할 때에는 이 여러 가지의 길들을 조합해서 오르게 된다.

우리팀은 비둘기길 두 마디를 연이어서 오르기로 했다. 난이도가 쉽다고 하지만 쉬임없이 크랙을 뜯으며 올라가다 보니 역시 숨이 찬다. 바윗길 등반은 난이도의 문제가 아니라 등반자의 연습과 자세의 문제일 것이다. 둘째 마디는 크랙을 잡기가 아주 좋기 때문에 초급자라도 별다른 어려움이 없이 등반할 수 있다. 둘째 마디에서 레이백 자세를 취하며 커다란 날개를 뜯듯이 오르는데 건너편 백운대에서 수 많은 등산객들이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 괜스레 우쭐해진다. 첫째와 둘째 마디를 오르는 기분은 시원하기 이를 데 없다.
셋째 마디는 인공구간이다. 선등자는 둘째 마디 빌레이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트레버스를 한 다음 볼트에 퀵드로를 걸고 자일을 통과하면서 마치 바느질을 하듯이 오른쪽으로 계속 이동한다. 인공등반을 처음 시도하는 등반자라면 당황할 수도 있으니 지상에서 충분한 연습을 하는 것이 좋다. 초급자들은 이 인공구간이 비둘기길에서 가장 어렵다고도 말한다. 아마도 경험이 쌓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셋째 마디 인공구간을 등반할 때 사진을 촬영해 놓으면 두고두고 즐거운 추억이 될 수 있다. 등반자 너머로 보이는 경치와 고도감이 멋지기 때문이다.
넷째 마디는 90도로 꺾어진 직벽 크랙을 레이백 자세를 취하며 오르면 된다. 이 부분의 커다란 바위는 추락의 위험이 있어 인공구조물로 고정이 된 상태이다. 넷째 마디를 완등하고 나면 드디어 인수봉 하강 포인트가 된다. 여기서 50여 미터를 더 올라가면 인수봉 정상. 일명 나폴레옹 바위이자 고인돌이 출현한다. 그제서야 초보 클라이머들은 선배들이 그동안 여러 번 말해왔던 “인수봉 정상에는 자동판매기가 있다”라는 말이 초급자를 놀리기 위한 농담이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47년 전. 등반장비는 고사하고 삶 자체가 신산할 그 즈음, 산비둘기산우회는 이곳 인수에 어떻게 바윗길을 낸 것일까?
때는 1967년하고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1 9 6 7 年 8 月 더위가 한층 기승을 부리고, 많은 인파들이 산과 계곡으로 몰려 나갈 때이다. 언제 부터인가 하켄과 볼트를 병용해서 직벽 훼이스를 올라보고 싶은 욕망이 가득 했었다.
그러던 중 인수봉 측면 오버행에서 우측으로 트레버스 하여 크랙으로 오르는 것과, 현재 전면 대슬랩에서 B코스 좌측으로 흘러 침니로 오르는 Course를 놓고 신중히 검토하던 중 측면 Bolt를 개척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장비를 준비하여 우선 백운산장에 장비를 올려놓고, 제1공격조에는 해영과 용환군이 맡기로 하고 동제와 영채, 헌서는 테라스에서 빌레이를 보며 제2공격조로 편성 하였다.
첫날 해영, 용환, 영채, 동재, 헌서 도합 5명의 대원은 장비 점검 후, 측면 제1피치 슬랩 밑 언더홀드, 크랙을 통과하여 오버행 밑 테라스까지 진출 먼저 제1공격조인 용환군이 오버 행 테라스에 제1하켄을 박고 트레버스, 삼각바위 초입 리스에 제2하켄을 계속해서 오른편으로 0.5 ~ 0.7m 간격으로 제3, 4하켄을 박아 트레버스를 끝내고 제1볼트를 박기 위해 제4하켄에 몸을 확보하고 드릴을 써서 힘차게 바위를 때리기 시작 하였다.
약 40 ~ 50분 경과 후 길이 3cm 가량을 뚫어 제1Bolt를 박았다. Bolt Hagen의 첫 시도인 데다가 자세가 좋치가 않아 쥐가 자주 나는 관계로 계속 해영군과 교대 제2Bolt를 박는 것으로 첫날의 공격을 끝내고 백운산장으로 돌아와 오늘의 시도에 대해 여러 대원들이 토론을 벌여 내일의 공격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교환해 보았다.
다음날은 짙은 안개와 바람이 조금 불어 시간을 지체 하다가 작업이 시작된 것은 약12시경, 악천후를 무릅쓰고 해영군이 제3,4 Bolt를 끝내고 제5Bolt가 끝날 무렵 해머 자루가 부러져 공격이 잠시 중단되었으나 예비 해머로 제5Bolt를 완성, 어제의 경험도 있고 해서 이제는 Bolt 한 개를 박는 시간은 약 30여분으로 단축되어 시간이 많이 절약 되었다. 이렇게 해서 계속 6,7 Bolt를 끝내고 용환군을 선두로 측면 직벽을 사다리를 써서 한 사람씩 건너편 테라스로 횡단에 성공하였다. 이제 남은 것은 약 20미터의 좁은 직벽크랙. 그간 미개척 Course인 관계로 직벽에는 이끼가 많이 끼고, 짙은 안개로 인해 바위에 습기가 많아 좀 미끄럽기는 했으나, 크랙 안쪽으로 앵글 하켄을 박아, 확보용으로 쓰고 해영군을 리딩으로 영채, 용환, 동제, 헌서 등 전 대원이 정상에 도착하여 이틀 간의 측면 도전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측면 신규 Bolt Hagen Course를 비둘기Course라 명명(命名) 하였다.
(산비둘기산우회 홈페이지에서)
1967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46년 전 8월14일부터 16일까지 3일간 계속된 비둘기길 개척등반에는 이해영, 박용환, 안영채, 김동제, 장헌서 대원이 참가했다. 장비는 길이 3cm 직경 8mm의 자체 제작한 볼트 7개와 드릴 3대, 해머 2개, 하켄 10개, 앵글하켄3개, 캐러비나 10개, 줄사다리 5개 그리고 나이론으로 제작된 36미터 자일 2개와 40미터 자일 1동 등 모두 3동이었다.
이들은 백운산장을 베이스캠프 삼아 첫날에 볼트를 두 개 설치하고 짙은 안개가 낀 둘째날에는 12시부터 작업을 시작하여 3~5번째 볼트를 설치할 때쯤 해머가 부러져 작업을 잠시 중단하였다가 시간을 다투어 결국 일곱 번째 볼트까지 설치를 완료하게 된다. 마지막 현재의 넷째 마디에 해당하는 직벽 크랙이 개척 당시에는 이끼가 많이 끼어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크랙 안쪽에 앵글 하켄을 박아 확보용으로 사용하고 결국 인수봉 정상에 두 발을 내딛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곳에 비둘기길이라 이름 붙였다.

개척 당시에도 비둘기길 방면 즉 인수 서면은 하강이 이루어진 곳이었다. 그러나 하강의 횟수에 있어서는 오늘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었을 것이고 때문에 이 길을 등반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산비둘기산우회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면서도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이 커다란 자랑이다. 1987년도에는 유학재라는 걸출한 산악인을 배출하기에 이른다. 그는 1987년 대둔산에 신유길을 개척하는가 싶더니 1989년에는 토왕폭 빙벽을 최단시간에 등반하고 1990년 코뮤니즘 브로드킨 루트를 등정했다.
1992년도에는 김연수 대원이 서울시산악연맨 원정대에 합류하여 낭가파르밧을 등반하고 1997년에는 유학재 대원이 파키스탄 가셔브롬 4봉 서벽에 코리안 루트를 초등하기에 이른다.
비둘기길 등반을 마치고 다시 인수봉 정상에 선다. 명쾌한 크랙을 따라 아름다운 등반선을 구축한 비둘기길. 45년 동안이나 인수봉 서면의 등반과 하강을 묵묵히 지켜온 비둘기길. 비둘기길은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처럼 바위에 온갖 열정과 사랑을 바쳐온 수 많은 클라이머들의 등반과 하강을 지켜보며 암벽과 거봉과 거벽의 꿈을 열리게 한 인수의 자랑스럽고 아름다운 바윗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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