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킹 넷째날. 오늘은 드디어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3,700m)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4,130)로 가는 날이다. 해발이 일천 미터나 올라가는 트레킹이고 이번 트레킹의 하이라이트가 되는 날이다.
트레킹을 시작한 지 얼마 안되어서 일행 중의 한 분에게 구토증세가 발생했다. 함께 가는 가이드가 고소증세라고 한다. 구토를 하려는 분은 토하려고 했지만 나오는 것도 없이 고통스럽게만 보였다. 가이드는 그만 내려가자고 했지만 그 분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어떻게 온 안나푸르나인데, 이제 두 시간만 참고 가면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인데 여기서 멈출 수 있다는 말인가? 고소증세가 나타나면 해발이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 증세가 없어지는 것이 상식이지만 누구도 하산을 권유하지 않았다. 그리고 ABC도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왠일일까? MBC에서부터 나도 갑자기 머리가 멍 하고 힘이 없는 것이 고소증세인 듯 싶었다. 고소증세는 사전에 예고하고 오는 법이 없다. 갑자기 길을 가다가 증세가 나타난다.
사실 일행 13명 중에는 이미 어제부터 머리가 아픈 고소증세가 나타난 분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분들을 위해서 준비해 간 고소예방약(다이아막스)를 한 알씩 복용했었다. 그러나 나는 약을 먹지 않았다. 현재까지 나온 약 중에서 완전한 고소약이 없을뿐더러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산행이 끝나면 나는 다시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로 갈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여러 해 전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산(4,095m)을 등정할 때에도 라반라타산장(3,272m)에서 가벼운 고소증세를 느낀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진통제 한 알을 먹고 자니 거뜬해졌었다. 나는 고소증세를 내색하지 않고 참고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운행했다.
하지만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눈매가 매서운 사람에게는 나의 상태가 노출되는 모양이다. 일행 중의 한 명이 다가와 내게 "고소증세가 온 것 같으니 조심하라"고 말해주었다.
>>9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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